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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18, 2015

박정희는 '신', 박근혜는 '제사장'이 되는 비극 사이비 종교와 후진적 정치의 합작품

지난 20세기에 오랜 세월 일제식민지와 군사독재를 겪은 대한민국은 마침내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다. 비록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독재세력에 대해 마땅한 처벌도 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한국사회는 조금씩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IMF 사태를 기점으로 정권교체도 이뤄졌고, 10년간의 탈권위주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다시 정권은 바뀌었고, 이제 서울 한복판에서 일반시민들이 최루액 물대포를 맞는 시대로 돌아왔다. 이번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발표되었고, 바로 그 국정화를 예전에 시행했던 독재자를 향한 '98주기 탄신제'도 저번 주에 구미에서 열렸다. 결국, 그의 탄신 100주기인 2017년부터는 우리 아이들이 국가가 만든 하나의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은 10월 26일 즈음부터 그의 탄생일인 11월 14일까지는 박 전 대통령의 추모·계승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때라고 한다. 지난 주에 이 기간이 끝났는데,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일들과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왠지 어느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먼저, 인상적인 장면 몇 개를 살펴보도록 하자.

장면 1.

기사 관련 사진
▲  박정희 대통령 98회 탄신제 무대에 선 남유진 구미시장(2015/11/14)
ⓒ 남유진 구미시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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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생가 추모관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2015/11/14)
ⓒ 남유진 구미시장 페이스북

박정희 생가가 있는 경상북도 구미시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2008년 4월말부터 시청 문화예술담당관 산하의 박대통령기념사업담당 부서 직원들을 생가 안에 배치해 업무를 보도록 했다. 구미시 상모동의 박정희 생가는 대구·경북 보수 정치권의 성지처럼 취급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구미시(龜尾市)'를 '박정희시(朴正熙市)'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올해 박정희 탄신제에는 남유진 구미시장을 비롯해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태환 국회의원(경북 구미시을), 각종 기관단체장, 시·도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지역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구미시의 각종 선출직 공무원 출마자들이 박정희 생가를 방문함으로써 출마 의지를 밝혔고, 박정희 관련 기념사업 및 시설에 수백 억 원의 중앙정부 및 지자체 예산이 투입됐다.

장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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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 올라온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 미디어몽구 촬영 영상 갈무리(2013/10/25)
ⓒ 미디어몽구

박근혜 정권 탄생 첫 해인 2013년 10월 25일,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는 '제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 예배'가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성경 구절에 빗대어 성찬하고, 찬송가를 불러야 할 때 박정희가 만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통 십자가가 있는 자리에 박정희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기독교에서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다).

바로 그 다음 날인 10월 26일 오전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가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에서 연 '제34기 추도식' 당시,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경북 구미시갑)은 추도사에서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운을 뗀 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4년이 됐다. 아버지의 딸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 대통령'과 '아버지의 딸'이 묘하게 공명을 일으키는 듯했다(심학봉은 이전에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었고, 올해 10월에는 성폭행 관련해서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했다).

장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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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홈페이지의 제48회 국무회의 관련 영상 갈무리(2015/11/10)
ⓒ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중남미 순방에서 마지막 방문국이었던 브라질의 경제인 행사에 참석해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을 한다(원래 이 표현은 브라질 출신의 유명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연금술사'에 나오는 문구다). 그리고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아이들을 향해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고 한 번 더 말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던 10월 22일, 이렇게 중요한 시점의 청와대 여야 회동에서 박근혜는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는 발언을 한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떤 부분인가?"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인데,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이 마치 '무속인' 같은 대답을 한 것이 많은 이들의 패러디를 양산했다.

또 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10일 제48회 국무회의 자리에서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온 우주가 도와준다" · "그런 기운이 온다"에 이어 "혼이 비정상이 된다"로 일종의 '신정(神政) 3종 세트'가 완성된 셈인데,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이런 식의 화법을 구사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은 제정일치 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는가?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 대통령이 아닌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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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11월 15일(현지시간) 오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에서 정상회의 전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지금 이 순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인데, 국내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출국해서 여기저기 자신만의 패션쇼를 펼치는 건 이제 한두 번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끝까지 침묵하다가, 해외에만 나가면 맨날 패션쇼나 하는 인물은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그냥 '영부인'에 가까운 것 아닐까? (취임 이후 약 1년 동안 공식석상에서 착용한 옷만 무려 122벌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 대표자는 모두에게 비극이다.

이마저도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옷을 입지 않아서 비판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측 수행원들이 다 어두운 정장 차림을 하고 묵념을 했는데,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대통령이 오히려 하늘색 옷을 입어서 빈축을 샀다. 이번에도 G20 정상회의에서 프랑스 파리 테러를 추모하는데, 괜히 밝은색 옷을 입은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도대체 이런 걸 '패션외교'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해서 문제가 돼왔던 게 박근혜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최종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순전히 자기 편의에 따라서 '피해자'와 '심판자'와 '관찰자'를 마구 오가는, 너무나 '변칙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박근혜는 항상 자신이 스스로 고개를 숙여야 할 때 아랫것들을 꾸짖고, 자기가 직접 다짐을 해야 할 때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할 때 남들 눈치를 본다.

이 나라에서 공적 책무의 유일무이한 화신인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유령처럼 빌붙어서 혼돈을 야기시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여기에 더해서 우주, 기운, 혼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제사장 화법'까지 구사하고 있다. 요즘 박근혜를 보면 국민의 대리인인 대통령이 아니라, 신의 대리인인 제사장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박근혜가 유체이탈 화법을 쓸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사이비 종교적 기반으로부터 나오는 측면이 강하다.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유권자들에게 박근혜는 박정희의 현신(現身) 또는 메신저인 셈이다. 그래서 (신정정치 사회의 제사장처럼) 자신이 그대로 책임을 지기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박정희의 뜻을 내세우거나, 제3자의 입장에서 심판을 내리고, 마치 자기와는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얘기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 지배의 정통성이 지배자의 신성(神性)에 바탕을 둔 체제를 신정정치라고 한다면, 일부 유권자들이 탄신제를 지내며 예배에서 '우상숭배'를 하는 박정희의 대리인인 박근혜(제사장)는 책임의 주체가 아닌 순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영국 가디언지이 특파원이 세월호 참사 때 "서양국가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걸 봐도 알 수 있듯이, 전혀 아무런 실질적 업적이 없는 박근혜 같은 통치자는 '제정일치 국가'에서나 가능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대통령이 아니라 제사장인 박근혜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종교의 시대인 중세 유럽에서도 원래 대부분의 학교는 교회의 일부분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종교는 합리적 토론이 아닌 맹목적 믿음의 대상이고, 박근혜에게 있어서 박정희와 관련된 역사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역사·다른 교육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유권자들에게도 종교적 성격은 동일하게 적용되기에, 이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정치학자나 평론가들이 (제정분리와 세속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기반해서) 온갖 이론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를 설명하려 해도, 결국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 추종 외에는 별로 남는 게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이미 박정희는 신격화 됐고 박근혜는 제사장처럼 됐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적 퇴행을 막기 어려울 듯하다. 국정교과서도 여러 가지 다양한 퇴행 중 하나이고, 최근 박근혜의 "온 우주가 도와준다" · "그런 기운이 온다" · "혼이 비정상이 된다" 역시 그런 연장선 상에서 봐야 한다. 헬조선은 사이비 종교와 후진적 정치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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