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부산을 방문한 안철수 의원이 이날 오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정민규 |
한동안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의 당권과 혁신안을 두고 문재인 대표와 갈등했던 안철수 의원이 마침내 탈당을 결행했다. 2014년 3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시작된 새정치연합은 창당 1년 9개월 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되었다. 이 탈당에 대한 평가와 입장은 매우 다양하다.
친노 패권에 대한 비판 및 안철수의 새정치에 대한 강고한 신뢰와 기대, 안철수란 인물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방향성에 대한 회의에까지 여러 입장들이 제시되고 있다. 어쨌든 안철수란 인물은 다시 홀로서기에 나서게 되었고, 이번 탈당은 그의 재선 여부 그리고 그토록 설파해온 '새정치'의 정체, 독자세력화 방향의 성공 여부와 맞물려 21세기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기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의대생 출신 1세대 IT 개발자, 경영자이며 동시에 성공한 21세기의 멘토 그리고 '새정치', 안철수를 수식하는 여러 수식어들이다. 그런데 현재 그의 존재는 이런 수식어와 거리가 먼 정치 투쟁의 1선에 놓여 있다. 지금 그의 행보와 모습들은 2012년 이전의 삶의 이력과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어 보인다. 현재의 위치는 2012년 제18대 대선을 전후한 정치적 부상과 후보 단일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과거에 본 적 없는 정치적 역할과 지위에 서 있었다.
그는 기존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달리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 내지 조직이나 조직화된 지지 대중, 금전이나 정치적 기획으로 무장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다. 여러 연결망들 위에 존재하지만 고유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 현실로부터 연원한 정치적 기획과 전망은 부재하지만, 열광적인 대중적 신뢰와 지지 그리고 그것들이 응집된 '새정치' 라는 이미지를 통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근래 당권과 혁신안을 둘러싼 그의 행보와 선택이 가끔 경악할 만큼 납득하기 힘든 지점이 있고 정치 활동 이후 이미지를 스스로 훼손시켜 왔지만, 여전히 그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적으로 큰 위치를 지니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는데 있어 많은 이들은 그의 인격이나 스타일, 경향, 관계망에 대한 분석을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기존에 경험한 대부분의 정치적 지도자와는 차별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그를 순식간에 부상시킨 그 '현상'에 대한 검토가 없다면 안철수란 인물에 대한 설명은 힘을 얻기 힘들 것이다.
안철수, 새로운 정치적 메시아의 강림
▲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들과 함께 지난 2014년 1월 2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펼쳐라! 새정치, 응답하라! 국민추진위' 거리 설명회를 열었다. | |
ⓒ 남소연 |
안철수가 최근 정치적 악수를 연이어 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상당하다. 특히 새정치연합을 지지하지 않음에도 안철수를 지지하는 집단의 존재는 안철수에 대한 고유한 지지층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수많은 나쁜 선택과 납득하기 힘든 방향으로 초기의 이미지를 상당히 상실했음에도 이런 지지가 존재하는 힘은 무엇일까? 답은 안철수가 가진 메시아적 요소다. 현대화된 정치에서 왜 갑자기 메시아와 같은 종교적 표현이 나타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여전히 한국 정치에는 메시아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정치 지도자들이 존재한다.
메시아는 말 그대로 구원과 해방 같은 특정한 소명과 목적을 위해 강림한 존재다. 메시아에겐 필연적으로 독특한 인격(훌륭한 인격과 메시아적 인격을 구분해보자)을 가지고 있고 구원의 서사와 신화적인 존재의 정당화를 통해 수립된다. 메시아는 한국 정치에 흔하게 나타나는 바람과 같은 운동성과도 구분된다. 운동성과 달리 메시아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의미와 역할, 소명이 주가 된다.
이 목적과 소명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일반적인 그에 대한 선호나 지지와는 다르다. 실제 대부분의 정치인들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목적과 소명에 대한 기대와 신뢰보단 그 이미지 자체에 대한 호불호와 지지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메시아적 정치인의 존재는 그 시대의 특정한 요구나 기대와 관련된다.
메시아적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요구는 많은 경우 개인의 삶의 문제와 닿아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전국환 분)을 체포하면서 이성계(천호진 분)이 하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메시아적 정치인의 중요한 미덕을 보여준다. 이성계는 자신의 죄를 묻는 최영에게 이렇게 답한다. "티끌만 한 사심도 없는 사람이 권력을 잡은 게 죄다." 그러면서 최영이 사심이 없기에 백성들 그 누구의 사심도, 소망도 허락지 않고 전쟁과 고통에 밀어 넣었음을 지적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살펴보면 메시아는 어떤 상황의 종결과 같은 목적과 역할을 기대받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 소명과 역할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전체 내지 일부가 경험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것이며, 변화한 상황에 대한 욕망이 투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은 한국 현대정치에서 안철수 이전 가장 대표적인 메시아적 정치인이다. 이명박은 경제적 불안정과 양극화 속에서 경제적 부와 성공에 대한 욕망과 저성장이란 상황의 종식이란 기대가 투영된 구원의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를 바로 메시아로 만든 것은 일종의 '이명박 신화'였다.
그에게는 한국 자본주의 고도화 시기에 있었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과 부를 향해 움직이던 경험이 녹아 있고, 그의 서사는 바로 그 시기 가난한 대학생으로부터 시작해 대기업의 CEO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인격은 이렇게 속삭인다. "나를 찍어, 너희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그는 경제적 불황의 시기, 압도적 지지로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물론 그의 구원이 유효했는지 혹은 성공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인격과 서사와 지지자들의 기대가 어떻게 조응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요컨대 허경영 역시 메시아적 정치인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반지성적 회의와 조소가 녹아 있다. 그의 황당하고 해괴한 정치적 공약에 대한 열광은 비록 진지한 지지는 아니지만 어떤 묘한 해방감과 쾌감에서 출발하고 있다. 단 메시아가 되기에 개인의 신화와 서사가 부재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성 정치로부터의 탈출과 변화를 염원하고 있고 그 가운데 특정한 정서가 허경영에 대한 관심으로 투영되고 있다.
'청년'을 움직이게 만든 안철수
▲ 지난 2011년 9월 2일 '2011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시골의사' 박경철 의사가 '내 아이 건강하게 키우는 교육'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
ⓒ 유성호 |
그렇다면 안철수는 어떨까? 안철수가 지니는 메시아성은 바로 그의 이미지와 그가 소구하는 메시지가 그를 지지하는 2030 세대와 만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한국의 청년 세대는 그간의 어떤 기성세대보다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안정과 좌절, 고통 속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 발전국가 전략이 낳은 고도성장이 둔화되고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저성장과 노동유연성의 증대는 이들을 더 나은 삶, 더 안정된 삶을 향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동시에 이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이미지에 대한 소비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동시에 이 세대는 상당히 탈정치화된 세대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학생운동의 쇠락과 소비주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의식화될 기회를 잃은 개인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 더해 이미지에 대한 선호가 탈정치화와 맞물린 결과 다수 청년들은 정치를 구태의연하고 귀찮고 자신과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기고 무관심해졌다.
그런데 그들이 정당을 창당했다. 바로 안철수가 박경철, 법정 스님 등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진행했던 청춘콘서트의 자원봉사 스텝들을 주축으로 '청년당'이 만들어 진 것이다. 비록 청년당이 단명했고, 안철수와의 공식적 관계를 구축하거나 그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높은 수준에서 탈 정치화된 청년들 일부가 안철수와의 만남을 정치적 개방의 기회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인상적이다.
▲ 지난 4.11 총선 하루를 앞둔 2012년 4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앞에서 청년당 강주희 대표(가운데)와 선거운동원이 <오마이뉴스> 총선버스 4.11에 출연해 유권자들에게 지지와 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 |
ⓒ 유성호 |
이는 안철수의 인격과 서사, 메시지가 그들을 위시한 청년 세대의 바람, 소망과 조응하는 과정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의대 출신의 1세대 IT 개발자이자 경영자로 자수성가했지만 그에게는 우리가 흔히 자본가에 대해 가지는 마치 '심슨 가족'의 번즈 회장과 같은 이미지가 읽히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메시지의 요지는 이른바 전통적 기성세대의 '노오력'이 아니며 그렇다고 그가 매우 투쟁적이고 거친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는다. 즉 그는 자수성가한 세련된 기업인이며 사회적 명사로, '혁신'과 같은 세련되고 부드러운 언사로 세계의 변화를 소구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인격과 서사 그리고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참신한 이미지는 세련되게 성공하고 싶고, 동시에 거칠고 투쟁적인 '운동'과 낡고 쓸모없는 '정치'가 부담스러운 청년의 욕망과 결합하여 소구력을 가질 수 있었다. 더욱이 정치 구조나 제도, 형태의 변화가 아닌, 새롭고 신선한 인물의 영입을 통해 이미지의 변화를 시도하는 한국 정치의 행태는, 금세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 안철수를 유력한 새 대통령 후보이자 새로운 희망의 아이콘으로 띄웠다. "저 사람 좀 다르다"에서 "저 사람은 뭔가 세상을 바꿀 것 같다"는 믿음은 그렇게 형성됐다.
메시아의 파산
▲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012년 10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김대중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대한민국의 미래 토론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 |
ⓒ 유성호 |
준비되지 않은 혁명은 무너진다. 언제나 변화는 반동과 내홍의 불안정 위에 놓여 있다. 동시에 변화를 만들려는 메시아는 언제나 그가 구원하고 목적한 대중으로부터 위협받는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백성을 구원코자 했지만 그는 이스라엘인들로 인해 죽어야 했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한때 동료였던 독일 사회민주당 정권하에 죽어 갔던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메시아적 정치인은 언제든 그렇게 파산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체적 기획과 전망, 탈 인격화된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 없이 한 개인의 인격과 신화에 의존하는 메시아는 언제나 안팎으로 위협받는다. 형이상학적 구원이나 영적 구원이 아니라 지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은 구원의 이미지나 개인의 선량함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정치적인 변화의 기획과 구체적 전망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대중적인 운동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끊임없이 개인의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연달아 이어진 정치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악수들은 사실상 그가 가진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사실상 파산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물론 파산의 과정은 상이하다. 홍수전의 태평천국처럼 화끈하게 중국을 뒤흔들며 파산할 수도 있고, 허경영처럼 오타쿠들의 서브컬처 코드가 되어 하찮게 사라질 수도 있다. 한 인물을 메시아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인격적 탁월함과 이미지, 그리고 그의 서사지만 그 구원을 이뤄내는 것은 기획과 전망, 운동의 힘이다.
물론 안철수 개인만을 탓하기는 참으로 아쉽다. 왜냐면 우리 현실이 가진 절망의 크기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의 현실을 돌아보라, 우리 정치는 일종의 영매적 존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이 바로 그런 영매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에겐 자신의 서사와 인격이 취약하다. 물론 그의 정치적 수완이 탁월한 지점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훌륭한 지도자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 대통령이 수행하는 통치는 많은 부분에서 그가 받들고 모시는 신의 성공적이지만 비극적인 서사와 인격으로부터 정당성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는 정치적 자원 역시 바로 그 신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메시아적 정치인에 의존하는 것보다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정치 방식이다. 현 대통령의 정치적 기획과 전망은 직전 정부에 비해서도 훨씬 취약하며, 권력의 행사 역시 퇴행적이기 그지없다. 이런 정치적 환경과 사회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메시아적 정치인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메시아도 싫고 영매도 싫다. 영매와 메시아의 퇴락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백'이 또 다른 영매와 메시아가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뼈와 살에 온기가 도는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낸 정치에 의해 채워지길 소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낼 정치적 기획과 전망,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낼 변화의 서사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더 이상 이런 주술과 신화의 정치가 아닌 좀 더 인간적인 정치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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