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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19, 2015

시간강사 뼈로 쌓은 착취의 상아탑을 빠져나오다

‘309동1201호’라는 필명으로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비판해온 김민섭씨는 대학을 빠져나오면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다. 맥도날드는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지만,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309동1201호’라는 필명으로 대학 시간강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비판해온 김민섭씨는 대학을 빠져나오면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다. 맥도날드는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지만,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강재훈 선임기자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지방시’ 저자 김민섭씨
▶ 2010년 봄, 대학생 김예슬씨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로서 ‘신자유주의적 기업’이 된 대학을 고발하는 선언이었다. 2015년 겨울, 한 대학교 시간강사가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고 선언했다. 그는 학부 아르바이트생, 조교, 대학원생, 시간강사 등을 촘촘하게 착취하면서도 이들을 노동자나 사회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기업’ 맥도날드보다도 못한 대학의 맨얼굴을 고발한다.
‘309동1201호’란 필명도,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란 별명도 내려놓았다. 결국 대학을 그만두고 ‘김민섭’이라는 본명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터뷰까지 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이 속했던 대학이 어딘지는 한사코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 속에 그가 세상에 말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것은 특정 공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말들이 내가 속했던 특정 공간의 ‘슬픈 이야기’로 수렴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김민섭(32)씨는 2008~2012년 모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모교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교양 강의를 맡아 시간강사로 일해왔다. 그는 대학사회와 시간강사의 삶을 다룬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라는 글을 인터넷에 연재해 큰 호응을 얻었고, 올해 10월에는 이를 단행본으로도 펴냈다. 그리고 이달 초 대학을 그만뒀다. 인터넷에는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라는 제목의 선언과도 같은 글(slownews.kr/49121)을 올렸다. 그는 <지방시>의 프롤로그에서 정이현의 소설 <안녕, 내 모든 것>의 제목을 떠올리며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아카데미의 삶과 온전히 이별을 고할 것”이라고 썼는데, 결국 자신이 한때 “모든 것”으로 삼았던 대학과 정말로 이별하게 된 것이다.
대학 배회하는 유령은 나
지난 1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난 김씨는, 언론과 대중이 자신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을 먼저 털어놓았다. 그가 처음으로 실명을 드러내고 했던 지난주 <조선일보>인터뷰 기사에는 “시간강사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니”,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면서까지 ‘지잡대’(지방대를 비하하는 말)를 다니느냐”,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면 건강보험 안 되는 것 서운해하지 말라”, “등록금이 아깝다. 조금만 참아라” 등의 댓글들이 달렸다. 대부분 명문대와 지방대를,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를, 교수와 시간강사를, 이래저래 ‘구분짓는’ 말들이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대학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맥도날드’와 같은 선정적인 소재나 ‘지방대’ 같은 특정 공간의 이야기로 흐르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자신의 말이 가리킨 곳은 단 하나, 성채처럼 구조적인 ‘대학’이라는 존재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도 제도와 관습을 넘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 ‘내 처지는 좀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면, 스스로의 현실을 좀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제 지도교수님과 동료들을 아직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다만 대학이란 시스템 자체가 ‘슈퍼 갑’이고 그 밑에서 모두가 ‘을’로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고 지도교수가 말한 ‘학문의 즐거움’이 궁금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대학이란 지성·진리·학문의 총체라고 생각했고, 강의실과 연구실은 내게 가장 가치있는 공간이었다. 대학의 합리성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괴물’로서 대학의 맨얼굴을 보게 된 계기는 “본업인 연구와 강의로는 도저히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논문을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글을 어딘가에 투고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회 가입비와 연회비, 그리고 심사에 대해 고맙다는 의미의 심사비 등 도리어 20만원 가까이를 학회에 내야 해요. 최근에는 6~8학점을 강의했는데, 그러면 1년에 1000만원 내외를 버는 수준이에요. 그리고 건강보험 등 4대보험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했고 아들이 태어났다. 기쁜 일인데도 막막한 마음이 앞섰다. 아들과 아내를 산후조리원에 두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걷다가, 문득 맥도날드 앞에 붙은 구인공고를 봤다. 새벽에 나가 매장에 들어오는 150여개의 물류 박스들을 하차하고 다시 건자재실에 유통기한순으로 쌓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달에 60시간 이상 일하면 직장가입자로서 4대보험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덜컥 일을 시작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최저시급 5580원은 생계에 쏠쏠한 도움이 됐고, 직장 가입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해 부모님까지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대학과 맥도날드를 비교해봤어요. 맥도날드는 신자유주의의 표상이지만, 그곳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나 매뉴얼이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의 표상이라는 대학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어요. 시간강사부터 조교, 학부 아르바이트생까지,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가혹한 착취를 하고 있는 ‘괴물’로서 대학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나 ‘사회인’이 아닌,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됐죠.”
일년 많이 벌어야 1천만원
연구, 강의로 생계 못 이어
선택한 맥도날드 알바
그곳의 매뉴얼과 제도가
오히려 대학보다 나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책 쓰자 동료들 불편해했고
대학 밖의 큰 연구실 보였다
학생들 있다면 대학은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
‘기록하는 사람’이 되려 했다
그래서 <지방시>를 쓰게 됐다. 처음에는 ‘내 삶을 한번 돌아보자’ 정도의 생각이었지만, 쓰면 쓸수록 ‘이것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보편적인 대학 노동자의 삶이구나’ 깨닫게 됐다고 한다.
“1년에 한두번씩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거나, 과로로 쓰러져 숨졌다거나 하는 얘기들을 듣습니다. 고 서정민 선생님(조선대 시간강사로 일하다 2010년 대학사회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의 경우처럼, 선배들의 삶은 극단적인 결말일 때에나 사회의 관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아무도 이 같은 삶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데에 새삼 놀랐어요. ‘글로써 증명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그의 기록은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수고롭게 해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라고 했다. 따라서 강단에 서는 강사도, 연구실에 있는 연구자도 노동자였고, 노동자가 되어야만 했다. 문제는 스스로 노동자로 규정짓는다고 해서 맘대로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이다. 그는 “노동을 통해서 사회적인 보장을 받아야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노동자로서의 자각과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슈퍼 갑’인 대학은 수많은 ‘을’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학은 ‘잡일’이라는 이름으로 행정·사무 등을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사무실이 있으면 직원이 있어야 하는데, 등록금을 일부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학과 근무의 최전선을 지키게 합니다. 또 그들을 보조하는 인력은 한 학기에 70만~80만원 정도 받는 학부 조교들이죠. 말하자면 대학은 재학생, 대학원생, 졸업생 등의 값싼 노동으로 대학 사무 행정의 최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요즘 대학에서 볼 수 있는 20~30대는 거의 모두 비정규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로 뽑는 교수직은 대개 ‘비정년트랙’(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계약직) 교수들이에요. 또 소수의 ‘강의 전담’ 교수들을 만들어 다수의 시간강사들을 해고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현재 시행을 앞두고 ‘유예’ 논란에 놓인 ‘강사법’(<한겨레> 18일치 12면)의 중요성에 대해 몇 차례나 강조했다. 이전에 없었던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제도와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1년 단위 계약’, ‘4대보험 보장’ 등 현재 법안의 내용이 되레 시간강사들의 해고나 처우 하락으로 이어질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찬성이냐 반대냐가 아니라, 앞서 2년 동안 유예되는 사이 아무도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손보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강사법은 서로의 삶에 대한 공감이나 연대 없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학은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강의전담 교수를 만들어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하는 등 자신들을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사회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2년 주기로 똑같은 논란을 되풀이하는 꼴이에요. 시간강사들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강사법의 핵심은 간명합니다. 강의와 연구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곧 노동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최소 몇 학점을 강의하던 노동자로서 4대보험은 보장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대학 밖에서도 ‘학’이 가능하다는 희망
대학을 떠나게 된 것은 예상하거나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다. 책이 나온 뒤 선배들은 “<지방시>를 네가 썼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왜 우리를 모욕했느냐”, “왜 대학을 비리의 온상으로 묘사했느냐”, “너 때문에 학교가 감사를 받을 수도 있다” 등등의 말이 돌아왔다. 선배 가운데 한명은 “날더러 서운한 걸 쓰라면 대하소설 한편을 쓸 수 있었지만…”이라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그가 그 뒤에 하고 싶었던 말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건 아마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였을 것이다. 이틀 정도 고민한 끝에 연구실에 있던 자리를 뺐다. 강의도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그만두기로 했다.
“책에 대해서 학교나 보직교수 등의 압력이 들어온다면 ‘버티겠다’는 각오를 내심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동료들의 반응이 가져다준 충격은 컸습니다. 내 옆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어느 순간 내 앞에 서 있더군요. 외로우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그러나 대학을 그만둔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이전까지 김씨에게 대학은 “내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쓰고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학 밖에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지방시>를 쓴 경험과 맥도날드에서 육체노동을 한 것은 중요한 계기가 됐다.
“표현하긴 어렵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면서 노동이 가진 힘을 알게 됐습니다. 노동에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게 만들어주는,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더군요. 노동은 모든 사람을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건강한 갑’으로 만들어주는 고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방시>를 쓰면서 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됐고, ‘모든 것이 내 주변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전까지는 대학만이 지식을, ‘학’(학문)을 생산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밖의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학’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김씨는 앞으로 대학이란 제도권 바깥에서 대학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대학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그는 대학을 더 올바른 방향으로,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가 여전히 대학의 가능성을 믿는 이유는, “그곳에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태껏 대학 자체가 ‘슈퍼 갑’이 된 현실을 말씀드렸는데, 만약 학교에 ‘갑’이 있다면 그건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인 학생이 되어야 옳습니다. 학생들이 있는 강의실을 가지고 있기에 대학은 언제나 가능성을 가진 공간입니다. 예전에 정원 2명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한 선배의 강의가 폐강된 적이 있어요. 그 선배의 6개월 생계가 날아간 거죠. 그때 한 학생이 나서서 교무처에 항의를 하더니, 다른 학생들 모두로부터 동의서를 받아와서 강의를 다시 살렸어요. 조그만 에피소드지만, 학생들은 학과장도, 교수도, 시간강사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김씨는 대학을 그만두면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도 함께 그만뒀다. 맥도날드는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지만, 대학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는 돌아가지 않겠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는 다시 가게 될 수도 있을 거라 했다. 그는 아직 어린 아들이 나중에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지방시> 1쇄를 줄 계획이다. 아이가 그걸 보고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많은 것들이 충분해질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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