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이기가 세계 챔피언 수준이다. 생각과 가치판단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준이 저열하고, 암담하다. 임금피크제 도입, 쉬운 해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일반해고의 도입,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 기간제 일자리 기간 연장, 그리고 파견근로 확대. 이번 노동법 개악의 주요 내용이다.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해서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정년에 이르는 고령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고, 이 비용으로 청년을 고용하겠다는 생각이다. 해주면 좋고,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청년고용. 임금축소와 고용불안 확대는 필수적인 내용이고 청년 일자리 확보는 옵션이다.
쉬운 해고에 대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실업급여 개선(?)은 확대는커녕, 오히려 그 범위를 줄이거나 수급요건을 강화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에 평등하게(?)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불안을 안겨 주겠다는 이번 노동법 개악을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과 국가발전으로 포장하고 있는 광고는 암담함의 극치다. 고용불안 확대, 장시간노동 유지, 부적절한 사회보장확대가 '박근혜식 노동개혁'의 핵심이다.
'일반해고'의 도입과 고용불안 확대
계약과 계약해지가 이미 일상화되어 있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반해고를 통해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주제일 수 있다. 이미 해고가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 일반해고의 도입은 그나마 헌법과 근로기준법과 같은 법률로 보장받고 있던 정규직마저 쉬운 해고를 하겠다는 시도이다. 계약 기간과 무관하게 저성과자가 되면, 언제든 퇴출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시도는 계약과 계약해지라는 제도적 약속마저 깨뜨리겠다는 것이다.
퇴출이란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니라, 힘을 가진 자의 권한이자 명령이다. 가진 자(자본)의 명령은 당연한 권리가 되고, 노동자는 그 힘과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정당하고 공정한 사회라는 논리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고용불안이 가져오는 노동자 건강의 악화를 지적한바 있다1). 이들 연구에 따르면 고용불안이 정신건강뿐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 과도한 음주와 흡연과 같은 건강행태의 악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불안에 의한 노동자 건강의 악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전 세계 연구자들이 그 관련성을 밝히고 있는 주제이다. 다만, 한국에서 고용불안에 의한 건강영향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은 고용불안이 심리적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와 사회보장으로부터 배제되는 등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국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그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저임금, 실업급여를 비롯한 사회보장으로부터의 배제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어, 고용불안으로 인한 건강영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 관련 법안들이 정부가 원하는 방식대로 쉬운 해고가 되는 상황으로 바뀐다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실제 모두가 비정규직으로 바뀌는 것이며,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저임금과 시간제 임금체계
24시간 생산해야 하며, 24시간 소비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심야노동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 소방, 보건의료 등 필수 공공서비스를 제외하고 심야노동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위해 지속적으로 심야노동이 만들어지고 있다. 만약 낮에 8시간만 일해도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자신의 생체리듬을 깨뜨리며 밤을 새우며 일하려 할까?
그래서 그동안 '밤에는 집에 가서 자야 한다' '심야노동 철폐' '노동시간 단축'을 사회적 아젠다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었다. 제조업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분으로 IMF 경제위기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12시간 맞교대 노동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위협했던 교대의 방식을 바꾸고, 생활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했던 노동시간 구조를 깨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생활임금과 기본급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이미 세계 최고이다. 2000년 OECD 국가에서 유일하게 연간 2500시간을 넘는 노동을 한 나라이고, 2012년 통계에서는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노동을 하는 나라로 조사되었다 (그림 1).
현재 세계에서 최장시간 노동을 하는 한국의 노동자는 '주 40시간 노동'이라는 아주 옛날 구호조차 외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한국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은 주 40시간 노동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저임금, 시간제 임금체계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정책은 말뿐인 정책, 혹은 노동자 임금 삭감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의 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에 의해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우울증 등을 앓고 있으며, 산재 사고의 증가, 결근 등의 증가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할수록 우울증, 비만, 심혈관계질환의 위험요인이 증가함을 밝히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연구와 비교했을 때, 그 현상이 보다 뚜렷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분명 한국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판단된다2).
그러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노동시간 통계를 줄이기 위한 편법이 등장하고 있다. 단시간 노동자의 증가는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단시간 노동자 고용 확대 움직임은 '평균의 오류'를 이용하여, 국내 노동자들의 장시간노동의 현실을 감추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 59조'에는 법적으로 정해진 12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해도 되는 업종을 매우 넓게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비스업과 운수업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운전노동을 하는 노동자도 이러한 극도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표 1).
이러한 노동악법을 바꾸는 것이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것이며, 노동자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장시간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저임금체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근로기준법 59조를 바꾸어, 장시간 노동이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열악한 사회보장
이번 노동법 개악의 내용에 실업급여를 한 달 더 주고, 금액을 10% 더 늘리는 등 해고를 당한 노동자를 위한 보호대책을 강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낮추고, 수급자격을 오히려 강화하는 등, 실업 상태에 놓인 노동자에 대한 보호 대책이 오히려 후퇴하였다. 애초에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청년 노동자, 단기간 노동으로 고용보험의 수급자격을 얻지 못한 채 해고된 노동자들을 보호할 대책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업급여 대상의 확대와 실질적인 소득보장이 이뤄질 수 있는 실업급여 체계의 확립이지, 부정 수급을 논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 현재 실업급여가 필요한 노동자들 중에 60% 이상의 노동자가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정책 변화에 더 중요한 고려 지점이 되어야 한다. 해고와 실업 상태는 그 자체로 건강의 위협이 된다. 실업을 당하면 가장 먼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의료이용이 어려워지고, 건강행태의 악화, 자존감의 상실 등이 나타나며, 이로 인해 정신과 신체에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심혈관계질환, 정신질환, 심지어 사망률까지 높인다는 연구가 있다. 특히 실업을 당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서 그러한 악영향이 더 심각하게 나타남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있다. 당연히 해고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겠지만, 설사 실업상태에 놓인다 하더라도 새로운 직장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막지 못하면 우리의 딸과 아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극도의 장시간 노동 체계는 변화할 기미가 없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 심해지고, 실제 해고가 되어 실업상태에 있게 되어도 실업급여를 비롯한 사회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뭘 바꾸겠다는 것인가? 뭘 바꿨다는 것인가?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자법이 도입되었다. 당시 노동계의 반대와 투쟁이 이어졌지만 결국 대부분의 내용은 사용자의 입장이 수용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이후 IMF 시기가 오면서, 우리는 이 법의 위력을 확인하였다.
현재 논의되는 '노동법 개악'은 저임금과 고용의 불안정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법안일뿐이다. 더 쉽게, 더 많은 노동자들을 무권리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노사정 야합의 핵심이다. 지금의 노동법 개악을 막지 못하면, 더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 사회보장 확대에 대한 대안을 만들지 못하면 누구의 표현대로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막지 못하면 우리의 딸과 아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각주
<의료와 사회>는 건강권과 보건의료운동의 쟁점을 정리하고 담아내는 대중 이론 매체입니다. 한국의 건강 문제는 사회와 의료,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볼 때만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와 사회>는 보건의료·건강권 운동 활동가 및 전문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건강을 위한 사회 변화를 논의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바로 가기 : 보건의료단체연합)
김형렬 카톨릭의대 교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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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19, 2015
국민에게 '평생 비정규직'의 굴레를 씌우려 한다 "지금 막지 못하면 우리의 딸과 아들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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