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는 이제까지 관습적으로 써오던 ‘보수언론’이라는 용어를 ‘권력언론’으로 대치하기로 한다.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언론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판단 때문이다. 권력언론은 나라의 주권자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상공업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보다는 국가기구들이나 의회에서 권력을 잡고 부당하게 휘두르는 세력의 편에 서서 특혜를 누리는가 하면 스스로 권력이 되어 대중을 향해 정신적, 이념적 폭력(언어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공짜 점심은 없다’···나경원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낸 것은 지난 3월 17일이었다. 그 기사는 부정입학이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의 딸 김모 씨가 지난 2012년 성신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지만, 학교 측이 이를 묵인하고 특혜를 줘 결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같은 날 관련기사 2건(‘나경원 의원 측근들, 비리 의혹 총장 지원?’, ‘성신여대 총장 표절의혹 친인척 교수 채용’)을 더 실었다. 이튿날인 18일 포털사이트에서 상위에 오른 검색어는 ‘나경원’과 ‘뉴스타파’였다. 그 보도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이라는 증거였을 것이다. 그런데 9개 종합일간지 가운데 한겨레와 경향신문만이 3월 18일자에 뉴스타파 기사를 인용 보도했을 뿐이다. 다른 모든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은 그 사건을 완전히 외면해버렸다.
지난해 11월 30일 뉴스타파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노영민이 사무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자신이 속한 상임위 산하 공공기관에 자기가 펴낸 시집을 판매했다”고 단독 보도한 뒤 주요언론이 수백 건의 기사를 쏟아낸 것과는 정반대였다. 결국 노영민은 그 사건 때문에 당 윤리심판원에서 중징계를 받고 20대 총선 출마를 포기하기까지 했다.
· “나경원-성신여대, ‘부정입학’ 해명 거부하고도 뒤늦게 언론플레이”(3월 18일자)
· ‘성신여대, 나경원 딸에게 성적도 특별대우 정황’(3월 21일자)
· “나경원 의원 딸 면접교수 ‘실기도 점수에 반영했다’”(3월 25일자)
· “‘글로벌 메신저’ 공모절차 없이 나경원 딸 추천”(3월 28일자)
서울에서 발행되는 매체들 가운데 위의 속보기사들을 단신(短信)으로라도 다룬 곳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침묵의 카르텔’이라고나 할까?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가 뒤늦게 3월 30일자에 ‘또 딸 특혜···나경원 의원 이번에도 침묵하나’라는 제목으로 뉴스타파가 여러 번에 걸쳐 보도한 기사들을 요약해서 소개했을 뿐이다.
뉴스타파는 나경원의 딸인 장애인 김아무개가 성신여대 실용음악학과에 ‘부정입학’ 했다는 것을 추측이나 막연한 정황에 따르지 않고 구체적인 증거와 사실을 들어 강조했다. 나경원의 딸이 성신여대 실기 면접 과정에서 ‘자신이 나경원의 딸’이라고 신분을 노출하는 말을 했지만 학교 측은 그런 부정행위가 정신 장애에서 비롯된 단순 실수라고 감쌌다고 한다. 당시 면접 심사에 참여했던 성신여대 정보기술(IT)학부 교수 이재원은 “면접에서 김 씨가 ‘저희 어머니는 어느 대학을 나와서 판사 생활을 하시고, 국회의원을 하고 계신 아무개 씨다”라며 어머니가 나경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말했다고 뉴스타파 기자에게 증언했다. “김 씨를 실격 처리할 이유는 또 있었다. 실기 면접에서 드럼 연주를 준비한 김 씨는 반주음악(MR)을 틀 장치가 없어 연주를 하지 못한 채 면접 시간을 넘겼다. 이에 이병우 교수(실용음악학과장)는 면접장에 나와 있던 교직원들을 시켜 카세트를 수배했고, 25분여 뒤 김 씨의 실기 면접을 재개했다.” 같은 학과의 한 학생은 “다른 입시생 같으면 곧바로 퇴장당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 뒤 나경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고, 선거 3일 전에 그의 딸은 성신여대 특별전형 실기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이 사건에 관해 단독기사를 처음으로 쓴 뉴스타파 기자 황일송은 나경원의 반론을 들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성신여대에 이메일을 보내고 총장 심화진과 교수 이병우를 직접 찾아갔지만 아무런 해명도 듣지 못했다.
▲ 지난 1월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주최로 열린 '12회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에 참석한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엄마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딸의 인생이 짓밟힌 날입니다.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며 우리나라 선거의 고질인 흑색선전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습니다. 비방은 이제 저 나경원에 대한 거짓과 모함을 넘어 가족에 관한 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함을 참는 것이 억울함을 키울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관계를 아무리 투명하게 해명한들 끝없이 의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들에게 단호하게 대처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법관 출신 나경원이 아니라, 정치인 나경원이 아니라 아픈 아이를 둔 엄마 나경원으로서 반드시 왜곡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나경원은 이 반박문에서 뉴스타파의 보도, 곧 그의 딸이 부정한 방법으로 성신여대 실용음악학과 특별전형 실기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해명도 하지 않았다. 오직 정치인 딸의 인생이 짓밟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끝없이 의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해명’하는 것이 먼저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나경원의 ‘아픈 아이’가 특별전형을 통과함으로써 다른 ‘아픈 아이’가 희생당했을 가능성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뉴스타파는 3월 21일자에 “성신여대가 부정입학 의혹을 받고 있는 나경원 의원의 딸에게 학점을 상향 조정해 준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한 데 이어, 28일자에는 “‘글로벌 메신저’ 공모절차 없이 나경원 딸을 추천”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나경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인 글로벌 메신저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공개모집 절차 없이 나경원의 딸 김아무개를 단독 추천했다는 것이다. 국내 수백명이나 되는 지적 장애인 선수들은 응모할 기회도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뉴스타파가 나경원과 그 딸을 둘러싼 ‘부정 의혹’을 잇달아 보도한 것이 ‘사실 왜곡’이라면 그는 마땅히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반박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뉴스타파의 기사들이 SNS에 널리 퍼지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조선·중앙·동아일보와 KBS, MBC 같은 권력언론은 마땅히 나경원과 뉴스타파를 상대로 집중취재를 해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밝혔어야 옳다. 그러나 종편인 TV조선이 3월 18일 <이슈해결 박대장>이라는 프로에서 ‘나경원 금수저는 괴로워?’라는 제목으로 대담을 하면서 그 ‘모녀’를 옹호했을 뿐, 권력언론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다. 그 결과 유권자들이 후보 개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서울 동작을 주민들에게는 뉴스타파의 단독기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뉴스타파 기자 최경영은 이런 현상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게 만약 합리적 이성의 서유럽국이나 미국서 일어났다면 나경원은 모든 공직을 사퇴하게 됐을 겁니다. 이런 수준이 국회의원 후보, 그것도 동작구 주민의 유력한 후보랍니다. 이 나라 국민은 아프리카 원시부족만도 못한가요?”
서울중앙지검은 3월 23일 “나경원 의원이 자신의 딸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 황일송을 고소한 사건을 형사7부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이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동작을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나경원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3월 28일 발표한 것을 보면 나경원은 51.1%로 더불어민주당 후보 허동준(18.9%)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나경원은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던 때 “연회비가 1억원이나 되는 강남의 피부과에 다녔다”는 사실 때문에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는 결국 민주당 후보 박원순에게 46.2% 대 53.4%의 득표율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렇게 ‘악몽’ 같은 경험을 한 나경원은 이번 총선 기간에 ‘딸의 부정입학’을 단정적으로 보도한 기자를 형사고소한 것이다. 검찰이 기자를 기소한다면 법원이 재판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기자를 기소했다는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경원이 오는 총선에서 당선되어 4선 국회의원이 된다면 지금 안개처럼 사라진 이 사건은 영영 파묻히고 말까?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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