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낯선 번호 뜨면 울렁증”
메시지에 익숙한 젊은 세대 중심
음성 통화는 기피하는 현상 뚜렷
총선 앞두고 조사 업체들 속앓이
가중치 대입 등 불구 왜곡 가능성
“정치 불신 원인… 걸맞는 소통환경 필요”
휴학생 송모(25)씨는 4ㆍ13 총선을 꼭 한 달 앞둔 지난달 13일 한 여론조사 업체에서 전화 설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의 업무는 오전 10시부터 저녁까지 정해진 설문 문구를 되풀이해 묻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화 받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일과의 절반이 넘는다. 송씨는 31일 “10번 전화를 걸면 한 명이 받을까 말까 한다”며 “그마저도 20,30대는 아예 통화가 안돼 연령대별 할당 인원을 채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총선을 10여일 앞둔 여론조사 정국에서 전화 통화를 기피하는 ‘폰포비아(전화울렁증)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폰포비아는 휴대폰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도 정작 음성통화는 꺼리는 현상. 최근 온라인상에는 “낯선 번호가 휴대폰에 뜨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진다”며 도움을 호소하는 글이 여럿 눈에 띈다. 모르는 번호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고, 구글링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발신번호가 누구인지를 추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여론조사 응답률은 두 자릿수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현상은 젊은 세대일수록 심하다. 어렸을 때부터 단문 텍스트 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익숙한 까닭이다. 대학생 박동원(22)씨는 “월 200분 무료통화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쓰지만 실제 사용 시간은 20분이 채 안 된다”며 “대화가 끊길 때 어색함이 느껴지는 통화 대신 생각을 정리한 뒤 담백하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메신저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정치 시즌에는 통화를 거부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그저 세대 차이로만 넘기기 어렵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도우려면 20대부터 60대까지 균일한 표본조사를 거쳐야 하지만 젊은 층의 응답비중이 현저히 낮아 민심의 향방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일례로 A 여론조사 업체가 지난달 3~6일 서울 중구ㆍ성동을 지역 유권자 500명을 상대로 지지후보 등을 조사한 결과, 60대 이상은 290명이 참여한 반면 20대 이하는 34명, 30대는 43명만 설문에 응했다. 20대 응답률이 60대의 10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한 여론조사업체 대표는 “지난 총선 때만해도 전화를 일단 받은 뒤 여론조사라고 하면 끊는 유권자가 많았으나 요즘에는 통화 연결조차 되지 않는다”며 “20,30대 응답률이 50,60대 응답률의 10%에 못 미치는 날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조사업체는 가중치를 대입해 실제 인구 비율에 맞게 결과를 조정하고, 젊은층을 겨냥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혼용 조사방식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여론왜곡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려 하기보다 정치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진단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소비를 피곤하게 여기는 세태를 거스를 수는 없다”며 “오히려 젊은 세대의 여론조사 기피는 정치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 만큼 달라진 소통 방식에 맞게 이들의 표심을 대변할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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