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선에서 진 것 때문에) ‘의정활동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든가 ‘청년정치의 한계가 저런 건가’ 하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죄송스럽다”며 “청년정치의 한계가 아니라 온전하게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국회의원 김광진
국회의원 김광진
정치는 공학이 아니다. 정치는 예술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감정이입하고 그 아픔과 소망에 깊이 공명하면서 조화와 역동성, 균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집체예술이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은 오직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무엇을 위해 이겨야 하는지, 지더라도 염치와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되묻지 않고 오로지 공학적 계산으로 승리만 추구한다. 자의식과 성찰이 없는 정치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가가 아니라 영혼 없는 기계음을 단순 반복하는 로봇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적이다.
때론 망설이고 두려워하면서, 자괴감과 외로움에 부대끼지만, 지더라도 꼼수 없이 멋진 승부를 펼치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할 줄 아는 게 인간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이 하는, 인간을 위한 정치를 원한다. 눈앞의 승패를 넘어서 인간에게 깊은 떨림과 감동을 선사할 때 정치는 예술이 된다. 가슴을 울리는 정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자고 새면 쏟아져 들어오는 입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는 미세먼지처럼 집요하고 성가시다. ‘격려와 성원에 감사하다’는데, 격려도 성원도 보낸 적 없는 사람들한테 왜 이런 문자를 살포하는지 모르겠다. 대량 복제된 문안은 건조하고 단조롭다. ‘준비된 후보, 행복한 ××시를 만들겠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기호 ○번과 함께!’ 천편일률적인 인사말은 그 마무리도 비슷하다. ‘…불편을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정~말 불편하다!’고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을 때도 처음엔 그랬다. 반사적으로 ‘삭제’ 아이콘을 더듬다가 눈에 들어온 메시지.
“노관규 후보가 새누리당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할 수 있도록 전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셨던 지지자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삶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라는 신념을 어깨에 이고 ‘재선을 넘어 대선으로’ 가는 길로 다시 걸어가겠습니다.”(2016년 3월20일 김광진 문자메시지 중에서)
묘하게도 그의 문자에선 눈물방울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못 지웠다. 전남 순천의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노관규 후보에게 패한 뒤 김광진(35) 의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4년 전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 후보 공모로 뽑힌 19대 최연소 국회의원.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려는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나서 정치에 시큰둥한 사람들의 시선을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아낸 인물. 그는 탈락했지만 그의 고별인사는 사뭇 감동적이었다.
그의 임기는 5월29일로 끝난다. 김광진이 지난 4년간 경험한 의회 안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대한민국 정당에 아직 희망은 남아 있을까? 지난달 2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방 빼야 하는데 이 짐을 어디로 옮기나
“여기, 화단이 있네요!”
그의 방 책상 옆으로 한 평 남짓한 실내화단이 꾸며져 있었다. 지역구에 내려가 있는 동안 관리를 못한 탓인지 휑뎅그렁하게 맨흙이 드러나 있고 행운목과 한두 가지 관목류 잎도 누렇게 말라붙어 있었다.
“지금 화초 사다 심을 땐데… 봄꽃을 못 심고 나가네요.”
맞은편 벽 앞에는 철사로 된 명함꽂이가 트리 모양으로 서 있었다. ‘재밌는 정치를 해주세요’ ‘청년의 말을 열심히 전달해 주세요’ 같은 문구와 함께 각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손글씨로 적힌 카드들이 나뭇잎처럼 꽂혀 있었다.
“이건 뭐죠?”
“제가 만나는 분들은 명함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두 쪽짜리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제 이름이 적힌 명함 한쪽은 찢어서 드리고 나머지 한쪽에 이렇게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서 명함 대신 받아 옵니다.”
트리에 매달린 청년들의 ‘아우성’이, 시들어가는 행운목 이파리와 닮아 보였다. 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낙천되고 나서 보내신 메시지는 비서진이 쓴 건가요?
“그건 제가….”
-필리버스터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는데 지역구 공천 경쟁에선 패배하셨어요.
“전국적인 유명세만으로 선거가 치러지는 건 아니니까요. 순천은 도농복합도시이기도 하고, 전남이 워낙 농촌이나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지 않습니까? 수도권의 지지자층과 괴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재선 시장을 하셨던 경쟁후보에 비해서 제가 조직력이나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고요.”
-요즘 의원실 나오면 느낌이 이전과 다르겠네요.
“다르죠. 이 짐을 어디로 옮기나 고민입니다. 당장 (5월)20일까진 짐을 빼줘야 하는데, 책도 많고 제 개인사무실 같은 걸 하나 가져야 할 텐데 그걸 서울에 둬야 할지 순천에 둬야 할지….”
-어디로 옮길지 모른다는 건 앞으로의 거취를 정하지 못했단 뜻인가요? 국회의원들은 낙천, 낙선하면 보통 어떻게 지냅니까?
“변호사 출신은 다시 변호사를 하고, 교수 출신도 학교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죠.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으로 올라오는 분들은 대개 자산이나 자기 기업체가 있는 분들이 많아서 크든 작든 본업으로 돌아가고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정치낭인이 되거나 종편 같은 데서 패널을 하는데… 제가 국회의원 4년 하면서 조중동 인터뷰 안 하고, 종편 <티브이(TV)조선> <채널에이(A)> 인터뷰 1분도 안 하고 버텼거든요. 이제 와서 밥벌이 때문에 거길 나갈 수는 없어요. 요즘 사람들이 ‘뭐 먹고 살 거냐?’고 자꾸 묻는데 ‘아프리카 티브이’(인터넷 개인방송국)에서 홈쇼핑 할 거니까 불쌍하면 많이 사주라고 그러죠.(웃음)”
국회의원이 된 뒤 김광진이 처음으로 대표발의한 법안은 ‘국회의원 연금 폐지’다. 하루만 국회의원으로 재직해도 65살 이후 월 120만원씩 가져가는 연금을 폐지하고 19대 의원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정치낭인으로 떠돌지 않고 퇴임 후에도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숙제를 그는 스스로 걸머진 셈이다.
미세먼지처럼 집요하고 성가신
입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
두 달 뒤 임기 끝나는 김광진
그의 문자에선 눈물이 반짝였다
그가 경험한 의회는 어땠을까
‘뭐 먹고 살 거냐’ 물으면
‘홈쇼핑 할 거다’ 농담
첫 대표발의한 법이
국회의원 연금폐지법
스스로 숙제 걸머진 셈
어떤 고양이도 쥐를 대변하지 못한다
김광진은 순천 사람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진 일주일 이상 서울에 머물러본 적이 없을 만큼 순천 토박이로 살았다. 순천고 입학 후 미대 입학을 꿈꿨지만 “미대를 가기엔 공부를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술을 포기한 후부턴 글 쓰는 데 푹 빠져서 백일장이 열리는 곳마다 나가 수상도 여러 차례 했다. 문예특기자로 고려대 문예창작과에 합격했지만, 전액 장학금에 해외 유학까지 약속한 순천대를 택했다.
-김광진에게 고향 순천은 어떤 의미인가요?
“고향을 얘기하기엔 제 나이가 아직 어려서….(웃음) 정치인으로서 왜 순천을 택했는지에 대해선 답할 수 있어요. 제가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 대학원, 군대까지 다 순천에서 나왔거든요. 국립순천대가 개교 81주년 됐는데 제가 순천대 출신 첫번째 의원입니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의 슬픈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목소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서 대의정치를 하는 건데 막상 사람들이 투표할 때는 ‘서울에서 유명 대학 나온 놈이 낫지’ ‘어디서 검사 하고 장관 하던 사람이 낫지’ 하는 거죠. 어떤 고양이도 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조선시대부터 있던 얘긴데 이 급변기에 20~30년을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중·고등학교 겨우 순천에서 나오고는 ‘제가 순천의 아들입니다’ 하고 출마하잖아요. 지역민의 삶과 같이하는 정치란 어떤 걸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역민들하고 일상에서 부대끼면서 목소리를 내줄 사람,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되는데요.
“대의민주주의는 대표되지 못한 자들의 대표를 뽑는 거예요. 근데 대표되지 못한 분들의 얘기가 정확히 대변되고 있냐? 이게 문제죠. 대한민국 청년층이 20·30대 합쳐서 인구의 30%입니다. 국가를 운영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국회에 이 30%를 대표하는 사람이 몇 %나 될까요? 제가 서른여섯 살 먹고 ‘최연소 의원’이에요. 20대는 아예 한 명도 없고. 이게 정상적인 대의제입니까? 직업군도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300~400명 중에 변호사가 몇 명이나 되죠? 한 명 있을까 말까 해요. 근데 300명 의원 중에 변호사가 1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 국회에서 하는 행위가 실제 ‘내 삶’을 바꾸지 못하는 거죠. 우리가 (정치권) 물갈이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람만 그 계층 안에서 바꾸는 걸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는 <7분의 전투>란 책에서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는 격언을 인용했다. ‘정치적 약자’인 청년이 정치적 기득권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기성 정치인과 경쟁해서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공천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청년대표는 안정권 밖으로 밀려났다.
-<7분의 전투>란 책이 2013년에 나오고 절판된 상태라 구하기 어렵더군요. 선거 앞두고 왜 새 책을 내지 않으셨죠? 선거 무렵이면 정치인마다 책 내고 출판기념회 하던데.
“출판기념회 하자는 의견이 많았어요. 원래 책 한 권 낼 원고를 준비해놨는데 저희 캠프에서 ‘선거 앞두고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나서….”
-참 특이한 의원실이네요. 왜죠?
“처음 (선거에) 나오는 분이라면 도움받을 통로가 없으니까 하는 것도 괜찮은데, 저처럼 현역 의원이 출판기념회 한다고 하면 유관기관에서 많이 올 수 있어서요.”
-유관기관에서 많이 올까봐 선거 앞두고 안 한다고요? 순천 ‘길 문학회’에서 시를 쓰셨던 분이라더니, 이건 정치인의 논리가 아니라 시인의 감수성인데요.(웃음)
“시인이라서가 아니라 정치인이라서 그런 겁니다.”
-정치인이라서?
“네. 전 정치를 길게 할 사람이니까요. 국회 인사청문회에 많이 들어가봤는데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 다운계약서 작성 같은 게 20~30년 전에는 별문제가 안 됐을지도 몰라요. 그 시절엔 관례로 통했을 수도 있고요. 2016년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관례라는 게 있지요. 근데 전 10년 후에도 정치를 할 거고, 2026년 기준의 도덕성으로 옳은가 아닌가 판단받아야 할 사람이니까요. 고민이 될 때마다 항상 그 기준을 생각합니다.”
초코우유 빛깔, 인도 현지인으로 취급받아
-국회의원이 되기 전엔 어떤 청년이었죠?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요?
“정치할 생각은 없었어요. 생활정치엔 관심이 많았죠. 지역사회 바꾸는 운동들. 대학 들어가고부터 10년간 시민운동을 했는데 월급은 10만원도 받아본 적 없어요.(웃음)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었죠.”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면서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 사무국장, 순천 와이엠시에이(YMCA) 이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순천지부 활동 등 지역 시민단체에서 두루 일했다. 학생운동에는 깊은 관심이 없었다.
-직업정치인이 될 생각은 안 했고요?
“예. 원래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성격이에요. 좋아하는 일만 하려면 계속해서 새 일을 하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조경학과로 입학을 했는데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했고요. 컴퓨터공학과로 1년간 유학을 했어요.”
-어디로요?
“인도. 제가 인도풍 아닙니까?(웃음)”
-하하하, 거의 현지인인가요?
“그렇죠. 인도 관광지에 가면 현지인과 외국인 입장료 차이가 엄청나요. 타지마할은 인도 사람이 5루피인데 외국인은 750루피래요. 전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외국인 입장료를 내본 적이 없어요.(웃음) 그렇게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은 사학과를 나왔어요. 이것저것 재밌어하는 것들만 배웠죠.”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별명도 재밌던데요.
“우유빛깔 김광진이라고. 근데 초코우유빛깔… 하하하.”
-그럼 처음 정당활동을 시작한 건 언제예요?
“2002년 유시민씨가 만든 개혁국민정당에 처음 가입했어요. 당이 1년 만에 없어지니까 제대로 활동을 하진 못했고요. 그러다가 근 10년 만에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시민통합당을 만들었을 때 잠깐 도당 대변인을 했고요. 어차피 한 달 뒤에 민주당, 한국노총과 합당하기로 한 정당이어서 창당 브리핑, 위원장 선임 브리핑, 해산 브리핑, 딱 세 번 하고 끝났지만요.(웃음)”
-그러다가 2012년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는 어떻게 하게 되었죠?
“그때 청년비례대표 제도가 처음 생겼는데 초기라 인기가 없어서 응모율이 저조했대요. 그래서 재공모를 하는데, 사람들이 ‘전남에서 한 명도 안 나간다는 게 말이 되냐? 도당 대변인 했던 너라도 총대를 메라’고 해서 마지못해 ‘접수는 할 게요’ 한 거죠. 전혀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청년비례대표가 되려면 (후보 선정을 위한) 전국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제가 학벌이 좋습니까? 정치 연줄이 있습니까? 떨어질 게 뻔한데…. 그런데 그때 응모한 372명 중에서 1등을 해서 이렇게 된 거죠.”
-어떻게 했길래 1등이 되었어요? 감동적인 연설을 했나요?
“그건 아닌 것 같고요. 접수 때 보니까 10년 전 개혁당 할 때 봤던 선배, 동료들이 두각을 드러내더라고요. ‘지금 접수한 애들이랑 친해지면 10년 후엔 같이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무 부담 없이, 낙선한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냈지요. 그때 선거인단을 공모로 뽑았는데, 홍보가 덜 돼서 372명의 후보들이 열 명, 스무 명씩 자기 아는 사람을 모아온 거였어요. 그 사람들이 저를 찍어줬나 봅니다. 일등 할 거란 생각을 처음부터 버려서 당선이 된 거죠.”
장관이 금메달 따고 수술하나?
-국회의원이 되곤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셨어요. 의원들 사이에서 국방위는 비인기 상임위라고 하던데, 왜 그렇죠?
“가장 인기 없는 상임위 1위가 국방위, 2위가 외교통일위, 3위가 법제사법위 순이고요. 인기 있는 걸로 치면 1위 국토교통위, 2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3위 산업통상자원위, 4위 정무위 순입니다. 국방위가 인기 없는 이유는, 우선 후원금 들어올 데가 없어요. 관계자, 민원인이 없으니까. 그리고 민간 산하기관이 없습니다. 지역구 관리에 별 도움이 안 돼요. 인기 상임위는 건설회사나 은행 같은 기업과 연관되어 있고 기업들 사회공헌활동 할 때 ‘기왕이면 우리 지역에 와서 해주라’ 이런 경우가 있죠.”
-그래도 이번 19대 국회에선 국방위 활동에 관심이 많이 쏟아졌어요.
“국방위 활동하면서 사이버사령부 댓글부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고, 통영함 방산비리도 지적했죠. 윤 일병 사건을 처음 의제화하기도 했고….”
-저는 아들이 없어서, 군대 실정을 통 모르고 지냈어요. 군대에서 세탁기, 건조기, 컴퓨터 쓸 때 돈 낸다는 걸, 김광진 의원 발언 통해서 처음 알았죠. 국방예산이 37조원이 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죠?
“그래서 당사자 운동이 필요합니다. 군 인권 문제가 해결되려면 우선 일반 국민의 시선이 바뀌어야 해요. ‘군대는 원래 그래’ 하고 넘어가버리면 해결이 안 돼요. 조직된 힘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군 골프장이 하나 개장했는데, 장군 전역한 사람들이 조직 만들고 부사관들이 뭐 만들고 하면서 되는 겁니다. 근데 병장으로 나온 사람들은 조직화할 생각을 안 하죠. 군인들 한 시간 피시(PC) 사용료가 540원이에요. 대학가 피시방이 800원 하는데. 요즘 어느 관공서 민원실 가도 공짜로 쓰는 인터넷을, 군대 가면 돈 내고 쓰는 거죠. 그게 다 군인공제회 수입으로 가는 겁니다.”
-군대에서 어떻게 당사자 운동을 합니까?
“요즘 군대는, 부모들하고 소통하라고 (온라인) 카페도 만들고 ‘밴드’도 만들고 그래요. 근데 전역하고 나면 더 이상 참여하지 않죠. 현역병사들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구조예요. 그 부대에서 전역한 사람들이 ‘제가 군생활 할 때 이랬는데, 아드님한테 이런 것도 확인해보세요’ 하고 계속 댓글 달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부대에서도 거짓말하지 못하죠.”
-그런 방법이 있군요.
“더 근본적으로는, 빨리 문민 국방장관이 나와야 합니다. 하루 세끼 6200원도 안 되는 식비로 밥을 먹이고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 게 문민 국방장관이 아니어서 그래요. 국방장관은 전쟁 났을 때 지휘하는 합참의장이 아닙니다. 정무직입니다. 미국에선 골드워터-니콜스법(Goldwater-Nichols Act)이라고 해서, 군복 벗고 7년이 되지 않으면 국방장관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도 애초 10년이었다가 최근 준 거예요. 그게 문민통제의 기본입니다. 선진국가라는 스웨덴, 덴마크에선 군 경험 없는 여성이 국방장관 하고, 캐나다에선 임신한 사람이 한 적도 있어요.”
-국방장관 하려면 군 출신이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아닌 경우를 본 적이 없으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합니까?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가 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장관이 수술합니까? ‘전문성’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의사 출신 장관이 의학과 한의학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국민의 시선에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국회는 일반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거예요.”
“청년층은 인구의 30%지만
36살인 내가 최연소의원
이게 정상적인 대의제인가
문민 국방장관 나오고
군인들도 당사자 운동해야”
“의정활동 열심히 했지만 패자
돈·조직 없어도 오직
시민의 열망으로 넘고 싶었다
청년정치의 한계 아니다
온전히 나의 부족함 때문”
‘의정활동 잘해봐야 소용없다’지만…
-그간 사병들 처우 문제나 군 인권 문제에 주력해오셨어요. 군대 내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도 순직 처리하도록 군 인사법을 개정해서, 2015년 <머니투데이>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을 타셨습니다.
“법안의 반만 통과된 겁니다. 군에서 1년에 150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 중 100명이 자살입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한 건 그간 의문사한 사병의 유가족을 위해서였는데,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반대해서 과거에 죽은 사망자는 이 법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어요. 마지막 통과시한을 앞두고 유족회에 여쭤봤어요. ‘특별법이 안 돼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멈출까요?’ 하니까 유족회장님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한 해 150명이 죽는데, 삼일장으로 쳐도 1년 365일 내내 곡이 끊이지 않는 나랍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오늘은 내 자식이 피해자지만 내일은 또 누군가의 자식이 그렇게 될지 모르는데, 내 자식이 보상 못 받는다고 반대할 순 없습니다. 가서, 김 의원! 이 법을 통과시켜주소!’ 그래서….”
울컥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그가 천천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좀 다른 얘기를 해보죠. 이번에 1기 청년비례대표로 들어온 장하나, 김광진 의원이 모두 공천경쟁에서 밀렸습니다. 흔히 정가에서 떠도는 얘기가 ‘의정활동 잘한다고 재선에 유리한 건 아니다’란 건데, 이게 사실인가요?
“국회에서 제일 중요한 회의가 ‘소위원회’ 회의라고들 합니다. 법안소위, 예산소위 이런 데서 중요한 게 많이 결정되거든요. 근데 ‘소위원회 참석 잘하는 사람치고 당선되는 사람 없다’는 얘기가 있어요. 법안 소위 같은 경우도 6시간, 7시간씩 하는데 (취재)카메라 한 번 안 들어오죠. 사람들도 관심이 없고. 국회의원의 역할이 지역 면민대회, 노인 체육대회 축사하러 다니는 건가, 고민될 때가 많았어요.”
-의정활동 열심히 하고도 떨어졌으니, 김광진 의원은 승자입니까? 패자입니까?
“선거에서 지면 패자죠.(웃음) 그런데 후회는 없어요. 미련도 없고. 다만 제가 실패한 것 때문에 ‘의정활동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든가 ‘청년정치의 한계가 저런 건가’라든가 ‘돈 없고, 시의원 끼지 않으면 정치를 못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선거 2.4% 차이로 졌는데 시의원 24명 중 단 한 명도 저희 캠프에 오지 않으셨어요. 돈 쓰지 않고 조직선거하지 않고 시민의 열망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걸 못 해 죄송합니다. 이건 청년정치의 한계가 아니고 온전하게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이세돌의 패배’였던 것처럼, 그는 ‘청년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김광진의 실패’라고 거듭 강조했다. 때로는 패배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라야 이길 수 있다.
이진순· 녹취 김성희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김광진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놓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앞에 서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입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
두 달 뒤 임기 끝나는 김광진
그의 문자에선 눈물이 반짝였다
그가 경험한 의회는 어땠을까
‘홈쇼핑 할 거다’ 농담
첫 대표발의한 법이
국회의원 연금폐지법
스스로 숙제 걸머진 셈
김광진 의원이 인터뷰를 위해 국회의원회관을 찾은 이진순씨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 뒤로 보이는 것은 김 의원이 국회 국방위원회 활동 중 군인들로부터 받은, 방문한 부대 마크가 새겨진 ‘코인’들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36살인 내가 최연소의원
이게 정상적인 대의제인가
문민 국방장관 나오고
군인들도 당사자 운동해야”
돈·조직 없어도 오직
시민의 열망으로 넘고 싶었다
청년정치의 한계 아니다
온전히 나의 부족함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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