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4년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코트라 글로벌 취업 상담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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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하루 회사 나오지 말고 쉬어~ 외근하느라 고생했어."
새벽 5시 반 출근, 밤 10시 귀가하는 쳇바퀴 생활을 2주간 반복하고 난 어느 날이었다. 팀장님은 나에게 쉬고 오라고 하셨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인턴에게 주어지는 유급휴가 이야기였다. 주말 근무나 외근 수당은 기대도 안했지만, 몇 달을 다니면서도 휴가를 쓰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건 쉽지 않았다. 일본으로 다녀올 계획을 짜놓고 미리 제출한 휴가기안도 팀장님의 말 한번으로 미뤄지곤 했으니, 하루라도 쉬고 오라고 먼저 말해주면 감사히 쉴 뿐이었다.
"아, 인생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구르다 친구와 맥주라도 마실 때면 우리는 인생을 안주처럼 씹어대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이 모이면 훌쩍 한국을 떠나 여행하다가 돌아오곤 하는 친구는 앞으로의 인생이 궁금하다고 했다. 기대가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져 간다는 말이었다.
나는 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나
친구랑 같이 사는 우리의 보금자리는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가 60만 원. 입구는 분명 지상인데 현관으로 들어오면 어두컴컴한 반지하 방이다. 이마저도 방을 보자마자 바로 계약하겠다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가격에 구하기 어려운 투룸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을 미뤄두고 구직 생활을 하는 동안 버는 수입은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비로 쓰기도 빠듯해서, 그조차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미성숙한 삶을 살아야 했다. 우리는 학생도 백수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으로, 스무 살을 훌쩍 넘겼음에도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반지하 방만큼 어두운 좌절에 젖곤 했다.
조심스레 공무원 학원을 다녀 보겠냐고 묻는 엄마, 교육대학교로 다시 입학할 생각은 없냐는 아빠. 한숨을 내쉬는 딸의 눈치를 보며 조심히 묻는 부모님의 눈에 이십대 우리의 삶은 어떤 색일까?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나를 필요로 한다면 무조건 오케이 할 수밖에 없는 삶. 푸르를 수가 없는 청춘이다.
분명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우리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났을 테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그 목표를 위해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고. 그 대가로 큰 돈을 가져다 바쳐야만 하는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얻어냈으니 말이다. 더 이상은 돈을 가져다 바친다 해도 학생으로 남을 수 없는 시기에 우리는 의지에 상관없이 사회로 튕겨져 나왔다.
고등학생 시절에 꿈꿔온 미래는 여전히 멀리 있는데, 쫓겨난 곳은 현실이었다. 현실의 삶에서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아무리 고민한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둘 모두 아니었다. 돈, 돈, 돈.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즐거울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쥐꼬리만한 노동의 대가로 근근히 살아가며 꿈을 좇아야 하는 청춘들은 더욱 그렇다. 돈이 있어야 취미생활도, 꿈을 위한 투자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투자비용은 결국 값싼 노동력으로 나를 팔아 넘겨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나를 내던질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벌써 이민 준비하는 친구, 한국은 왜 이러나
▲ 청년에게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박람회'가 지난 16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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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 알선한 해외취업인턴제로 필리핀으로 떠났던 친구는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건강만 악화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다. 외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는 몸이 아파도 한국으로 돌아와서 병원에 간다고 했다. 이민 신청을 할 때 병원기록 심사과정에서 문제라도 생길까 봐 그런다고 했다.
이미 떠나고 싶은 곳이 된 우리의 현실은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더라도 달라지는 게 없다. 무언가를 증명함으로써 얻어야 하는 지원이 아니라, 모든 청년들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혜택이 필요하다. 여행객 신분이었던 외국에서는 하다못해 청소년이라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백만 원 남짓 주는 월급에도 만족하며 인내하기를 강요 당한다. 우리의 청춘은 이미 회색빛이라, 푸르고 싶으면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더 이상의 생기가 없다.
학생도 백수도 아닌 채 살아가는 우리의 불완전한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선거 기간을 제외하고 청년의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된 적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언제까지 이런 문제를 반복해서 후배들에게 내려보내면 청년세대는 폭발할 것이다. 청년의 삶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대표가 되어 입장을 말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두고 비례를 줄이고 지역구를 늘리려는 논의가 있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중단하고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기반으로 비례대표의 확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영원히 떠날 것이 아니라면, 돌아와야만 하는 이 팍팍한 현실에 한 꼬집의 소금이 필요하다.
청년위원회 예산 '0원', 이게 한국정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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