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답을 했고, 또 한 사람은 답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 공동지도체제' 제안에 당사자들의 반응은 저렇게 나뉜다. 답이 있는 사람과 답이 없는 사람. 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고 후자는 안철수 의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재인 대표의 제안에 긍정적인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당의 통합과 혁신을 모색하자는 취지에 공감하며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지자체장임에도 불구하고 당의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아직까지 답이 없는 가운데 문재인 대표의 제안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 대표의 권한을 함께 공유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에도 앞서 자신이 제시했던 10가지 혁신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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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의 제안에 안철수 의원의 대응은 가장 '그'다운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좋게 말하면 지나치게 신중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철저히 계산적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든 그의 대응이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독한 불신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대선 이후 안철수 의원은 한결같이 '반 문재인', '반 친노'의 선봉에 서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 문재인이 싫은 것이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다. 총재의 뜻이 당의 의사결정 과정의 거의 전부였던 3김 시대와 달리 지금은 같은 당 내에서도 다양한 철학과 노선을 가진 계파들이 존재하고 있고, 당권을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형식적이지만 당내 민주화가 이루어진 탓이다.
정당 안에서 벌어지는 당권 경쟁은 자신들의 정치 철학과 가치관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당권 경쟁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안철수 의원이 연일 비판하고 있는 '친노' 역시 당권 경쟁에서 승리한 계파의 하나일 뿐이며, 이는 비주류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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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계파들 간의 당권 경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과연 무엇이냐에 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홍은 정치 철학과 가치관이 첨예하게 다른 사람들이 억지로 한 울타리에서 공존하려 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나의 정당 안에 있기에는 이 정당의 스펙트럼 자체가 너무 넓다.
당장 안철수 의원만 하더라도 그의 정치 노선은 '중도 보수'에 가깝다. 그가 '안철수 신당'의 창당이 아닌 민주통합당과의 합당을 전격적으로 결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통합당과의 합당은 신당 창당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중도 보수화'를 선언한 김한길 체제와 정치 철학과 노선을 공유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재인 체제는 정치 철학이나 노선, 가치관 등에서 김한길 체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연히 안철수 의원과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대권주자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계파도 없고, 당내 입지도 불안정한 안철수 의원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존의 비주류와 합심해서 '반 문재인' 연대를 결성하는 것 뿐이다.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야 안철수 의원의 입지가 바로 서기 때문이다.
물론 당의 정치개혁과 혁신을 부르짖고 있는 안철수 의원의 외침이 정치공학이 배제된 진심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을 향한 안철수 의원의 충정이 진심이라고 해도 연일 아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그의 모습이 시의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미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10가지 혁신 방안에 대해 공감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고, 기득권을 버리고 당 대표 권한까지 나누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당의 통합을 모색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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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필자는 안철수 의원이 보여준 불확실성의 정치, 신기루 정치, 기계적인 양비론의 정치, 정치공학에 충실한 구태 정치에 대해 여러차례에 비판해 왔다. 국민이 그에게 원한 것은 정치 개혁가로서의 '안철수'이지, 중도 개혁가로 포장된 정치공학도 '안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와 박원순 시장은 지난 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청년간담회에 참석한 뒤 비공개 회동을 갖고 "(문안박 연대와 관련해) 당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협력해 나가겠다"는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대표의 제안을 뒤로 한 채 천정배 신당 측 인사와 회동을 가졌다.
한 사람은 문재인 대표의 제안에 바로 화답을 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답이 없다. 이 상징적인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정치인 안철수, 그(에게는)는 답이 없다.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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