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장관님은 선비가 아닌 장군이셨네요.
적폐세력을 일당백으로 모두 상대하고 계시고 모두 완승으로 이끄실 위대한 분이셨네요.
조국장관님을 전에도 응원했고 앞으로도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합니다.
조국장관님은 선비가 아닌 장군이셨네요.
적폐세력을 일당백으로 모두 상대하고 계시고 모두 완승으로 이끄실 위대한 분이셨네요.
조국장관님을 전에도 응원했고 앞으로도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합니다.
피해사실 유출은 변호인이 하고 다녔네...어이없다
김재련을 고발해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김 재련이 이제 박원순 시장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때네!
국가가 존재하는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것이다 ᆢ
트럼프는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져버린 역사상 수많은 국민들을 죽게한 최악의 대통령이다
이래서 대통령을 잘 뽑아야하는것이다 ᆢ
지금의 한국처럼 말이다 ‥^^❤
[서울신문]세계 최대 수력발전… 최고 수위 10m 남겨
만리장성 후 32조원짜리 최대 토목사업
“쓰촨 지진은 저수량 390억t 압박 탓” 주장
정부 ‘뒤틀린 댐 사진’ 해명에도 민심 우려
중국 남부 지역에 한 달 넘게 폭우가 쏟아져 창장 유역을 중심으로 인명·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30여개 하천이 범람해 140명 넘게 사망했다. 이재민도 4000만명 가까이 생겨났다. 창장 수계 전역이 넘쳐 4150명이 숨지고 2억명 넘는 수재민이 발생한 1998년 대홍수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창장에 위치한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인 싼샤댐의 수위가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뉴스가 연일 타전돼 중국인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현재 싼샤댐의 수위는 164m로 홍수 통제 수위인 145m를 20m 가까이 넘겼다. 최고 수위인 175m도 불과 10m 남겨 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곧 싼샤댐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 세계 언론들이 갑론을박 중인 ‘싼샤댐의 미스터리’를 살펴봤다.
●양쯔강 치수는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꿈
2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우리에게 ‘양쯔강’으로 잘 알려진 창장은 중국 대륙 중앙부를 관통하는 하천이다. 아마존강(7062㎞)과 나일강(6690㎞)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길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쓰촨성 청두와 충칭, 후베이성 우한 등을 지나 장쑤성 난징, 상하이 등 19개 성시를 두루 거친다.
창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적 상징으로 쓰인다. 큰 하천을 뜻하는 ‘강’(江)이라는 일반명사는 원래 창장을 가리키던 고유명사였다. 소설 ‘삼국지연의’ 등에서 볼 수 있는 ‘강남’(江南)이나 ‘강동’(江東) 등도 이 강이 기준인 지명이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는 초나라 재상 굴원(기원전 BC 343~277)이 나라를 걱정하다가 창장에 몸을 던진 날을 기리는 행사다.
창장은 거대한 규모 때문에 크고 작은 범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중국 역대 지도자들의 핵심 과제였다. 쑨원(1866~1925)은 창장을 관리해 홍수를 예방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치수’(治水)의 실현이자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봤다. 1919년 출간한 ‘건국방략’을 통해 이 강에 댐을 짓자고 처음 제안했다. 1932년 중국 국민당 정부 수반이던 장제스(1887~1975)도 쑨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댐 건설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했다. 마오쩌둥(1893~1976) 역시 이 사업을 지원했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싼샤댐 건설 사업이 구체화된 것은 1980년대 덩샤오핑(1904~1997)이 관심을 두면서부터다. 개혁개방이 시작돼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자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했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는 환경오염 문제로 반발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수력발전소가 정치적인 부담이 적었다.
●세계 최대 규모 때문에 늘 구설 올라
결국 1992년 리펑 당시 국무원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창장 상류인 후베이성 이창의 협곡을 이어 싼샤댐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공산당 내에서도 건설 능력에 대한 회의론과 환경 파괴, 문화재 수몰 등을 두고 논쟁이 거셌다. 표결 결과 대의원 2608명 가운데 3분의1에 가까운 841명이 반대·기권표를 던졌다. 지금까지도 전인대 역사상 찬성률이 가장 낮은 결정으로 남아 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2월 착공식을 가졌다. 댐이 최종 완성된 것은 2009년으로 공사를 시작한 지 15년 만이었다.
싼샤댐은 높이 185m, 길이 2.3 ㎞로 세계 최대 규모다. 저수량은 약 390억t으로 우리나라 소양호의 14배다. 발전기 설비용량도 2250만㎾로 일반적인 원자로 출력의 20배가 넘는다. 워낙 거대한 공사였기에 ‘만리장성 이래 최대 토목공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이 댐은 건설 계획안이 공론화된 뒤로 붕괴 우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사고가 나면 초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댐이 무너져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배후지인 이창에서만 50만명이 희생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한과 광저우, 난징, 상하이에도 큰 피해를 줘 4억명 이상의 이재민이 나올 것으로 추산된다. 대도시 주민들은 교통 체증 때문에 피난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적국이 가장 먼저 싼샤댐을 공격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국 정부는 부인하지만 댐이 가둬 놓은 엄청난 양의 물이 쓰촨성의 지반을 압박해 대규모 지진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75년 반차오댐 붕괴로 수십만명 사망
지난해 7월 싼샤댐이 전반적으로 휘어진 것처럼 보이는 구글 위성사진이 공개돼 중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중국 매체들은 “위성사진이 보정되지 않아 나타난 단순 해프닝”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과연 싼샤댐은 붕괴될 가능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나타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의혹과 외신 보도는 댐이 부실하다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이상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정부도 싼샤댐의 상징성을 감안해 다른 댐보다 더욱 철저히 관리한다. 그럼에도 상당수 중국인들은 싼샤댐이 붕괴될 수 있다고 여긴다. 왜 그럴까.
중국에서는 1975년 8월 태풍 ‘니나’로 동부 허난성의 반차오댐이 허물어져 하루 만에 17만명 넘게 사망한 경험이 있다. 이때 중국인에게는 ‘언제고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트라우마(정신적 충격)가 생겨났다. 중국 토건업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붕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과 비슷하다.
최근 중국 온라인에서 중국건축과학연구원 황샤오쿤 연구원 명의로 “마지막으로 한 번 말한다. (싼샤댐이 있는) 이창 아래 지역은 달아나라”는 SNS 글이 널리 퍼진 것이 이같은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 언론들이 “해당 글은 내가 쓴 게 아니다”라는 황 연구원의 해명을 전했지만 우려를 말끔히 지우지는 못했다. 중국 언론사들이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주민들도 잘 알기에 이들의 해명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서다.
싼샤댐이 ‘부실공사와 비리의 온상’이 된 이력도 한몫한다. 이 댐은 공사를 시작할 때 책정한 예산의 두 배 이상인 1800억 위안(약 32조원)이 투입됐다. 요즘 말로 ‘돈 먹는 하마’였다.
대만 등 중화권 매체들은 “싼샤댐 공정에 투자된 공사비 가운데 외국에서 부실 자재를 수입해 사용하는 수법 등으로 6분의1 정도가 빼돌려졌다”고 지적한다. 댐 건설을 제안한 리 전 총리의 측근과 친인척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은 더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싼샤일기’에서 “싼샤댐 프로젝트에 대한 중대한 결정은 모두 장쩌민이 내렸다”고 밝혔다. 책을 집필할 때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을 사실상 부실공사 책임자로 지목해 자신에 대한 비리 수사를 원천 차단하려는 ‘물귀신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댐 준공식에 중국 지도부 불참
2006년 5월 싼샤댐 마무리 공사를 앞두고 열린 준공식에 후진타오 당시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불참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이렇게 거대한 토목공사를 마무리하고도 국가 지도자들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시 서구 매체들은 “그들이 총체적 부실 덩어리였던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싶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수리학자인 황완리(1937~2001) 전 칭화대 교수의 이야기도 자주 오르내린다. 싼샤댐 건설을 반대하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배제된 황 교수는 임종 직전까지도 “싼샤댐은 절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는 싼샤댐에 대해 12가지를 경고했다. 하류 제방 붕괴와 수질 악화, 이상기후 초래, 지진 빈발, 생태계 악화 등이다. 이 가운에 11가지가 적중하고 하나만 실현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바로 ‘댐 붕괴’다. 이렇게 중국 건설업계의 부실 공사와 비리 의혹, 언론 통제, 중국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 등이 맞물려 멀쩡한 댐이 큰 비만 오면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험 구조물’로 각인된 것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이창[중국 후베이성]=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185m 높이의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장벽이 집채만한 하얀 물기둥을 맹렬한 기세로 뱉어내고 있었다.
21일 오후, 중국 창장(長江·양쯔강)에 세워진 세계 최대 수력발전용 댐인 싼샤(三峽)댐은 상류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물줄기와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었다.
약 3㎞ 길이에 달하는 싼샤댐을 사이에 둔 창장 동서 양측은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초록빛이 맴도는 댐 안쪽의 인공 호수 수면은 비교적 잔잔했다. 그러나 싼샤댐이라는 관문을 돌파한 물줄기는 거칠게 일렁이며 중·하류 지역으로 거칠게 내달리고 있었다.
싼샤댐에서 만난 한 이창(宜昌)시 주민은 "싼샤댐에 여러 번 와봤지만 오늘처럼 강물이 이렇게 무서운 모습으로 흘러가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6월부터 한 달 넘게 계속된 폭우로 창장 일대의 중국 남부 지방에 1998년 대홍수 이후 최악의 물난리가 난 가운데 중국인들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시선으로 싼샤댐을 바라보고 있다.
◇ 장마 아직인데…벌써 만수위까지 바라보는 싼샤댐
이날도 싼샤댐에는 굵은 빗줄기가 떨어졌다. 댐의 수위는 어림잡아 최고 수위인 175m까지 10m가량만 남겨둔 상태로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싼샤댐 관계자는 선박이 지나는 수로 인근에 박힌 길쭉한 직육면체 모양 콘크리트 구조물을 가리키면서 "저기 표시된 것이 최고 수위"라고 말했다.
최근 싼샤댐의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실시간으로 수위를 공개하지 않는다. 관영 매체들의 간헐적인 보도로만 싼샤댐의 정확한 수위를 알 수 있다.
중국 매체가 전한 지난 20일 오후 2시 수위는 164.4m. 2006년 싼샤댐 완공 이후 가장 높은 수위다.
싼샤댐을 관리하는 싼샤그룹에 따르면 185m 높이 댐의 '정상 홍수 조절 수위'는 145∼175m다.
올해 처음 방류를 시작한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수위는 147m였다. 그런데 20여일 만에 20m 가까이 수위가 올랐다.
유입량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 18일 최대 유입량은 초당 6만1천㎥에 달했다. 1초마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24개를 동시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정도의 물이 싼샤댐에 새로 몰려오는 셈이다.
싼샤댐이 방류구를 열었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것보다는 적은 양의 물을 내보내 수위가 그만큼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댐의 홍수 조절 능력 상실은 가뜩이나 초대형 홍수 위기에 처한 창장 중·하류 지역 지역에는 재앙 같은 일이다.
천꾸이야(陳桂亞) 창장수리위원회 연구원은 후베이일보에 "7월 말부터 8월 상순까지는 창장 홍수 대응의 관건 시기"라며 "앞으로 창장 상류에 또 홍수가 발생할 수 있어 창장 상황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 "왜 위서 물 안 막아주냐"…당국 "싼샤댐이 천하 책임 못 져"
중국 당국은 싼샤댐이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는 역할을 더 수행할 수 있다면서 대중의 불안 잠재우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바오정펑(鮑正風) 싼샤댐 조절센터 주임조리는 최근 CCTV와 인터뷰에서 저수량이 최대 393억㎥인 싼샤댐이 아직도 100억㎥가량의 물을 더 가둬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역에서 이미 막대한 수해가 난 싼샤댐이 왜 피해를 막아주지 못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점도 중국 당국으로서는 크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특히 최근 홍수 피해가 극심해진 안후이성 등 창장 중·하류 주민 중에서는 싼샤댐이 물을 대규모로 방류하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紅火*'라는 누리꾼은 시나닷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싼샤댐의 방류 모습을 '장관'이라고 표현한 한 관영 매체를 비난했다.
그는 "(창장) 하류 인민들이 깊은 물과 뜨거운 불에 휩싸여 있는 이때 싼샤댐의 홍수 방류를 '장관'이라니 양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창장 전역에 오랜 기간에 걸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상류 지역과 중·하류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중국 당국이 어려운 선택에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
급기야 관영 신화통신은 '싼샤 공정이 있는데 왜 창장의 홍수가 이토록 긴장 상태인가'라는 해명성 기사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꾸이야 연구권은 관영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올해 창장 '1호 홍수'가 지날 때 싼샤댐이 다섯 번 브레이크를 밟아 하류로 내려가는 물의 양을 초당 3만5천㎥에서 1만9천㎥로 줄였다"면서 "싼샤댐 공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천하를 책임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가운데 중국 인터넷에서 최근 '싼샤댐 붕괴설'이 또 빠르게 확산한 것은 극도로 불안해진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창장서 황허·화이허까지…초대형 내륙호수들 범람 위기
6월부터 계속된 폭우로 윈난성, 구이저우성, 광시좡족자치구, 후베이성, 장시성, 안후이성 등 중국 창장 일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물난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 중국 정부가 발표한 피해 중간 집계에 따르면 중국 31개 성·자치구·직할시 중 27곳에 피해가 미쳤다. 141명이 사망·실종됐고, 이재민 3천873만 명이 발생했다. 경제적 손실도 860억 위안(약 1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태의 민감성 때문인지 중국 정부는 수해 관련 전국 집계 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해 발표하지 않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도 지역별로 산발적인 피해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도할 뿐이지 전국의 피해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다.
지난 19일 안후이성 당국이 하류 대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으려고 창장의 지류인 추허강 농촌 지역의 제방을 폭파해 수위를 낮춘 것은 긴박한 창장 중·하류 지역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방식은 1998년 대홍수 때 이래로 쓰인 적이 없었다.
창장 일대의 홍수는 최근 들어 황허(黃河)와 화이허(淮河) 등 중국의 중요 대형 강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포양호, 둥팅호, 타이후 등 중국의 초대형 내륙 호수도 이미 일부 범람했거나 대규모 범람 위기에 처해 있다.
수해 피해가 계속 커지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1998년 대홍수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98년 중국에서는 폭우로 창장 대부분 지역이 범람하면서 4천150명이 사망하고 2억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직접 경제 피해액은 1천660억 위안에 달했다.
cha@yna.co.kr
“백선엽은 조작된 전쟁영웅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박경석(88) 예비역 준장은 단호했다. 육사생도 2기 출신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야전을 두루 거친 노병인 그는 백선엽씨가 전쟁영웅이 아니라고 했다. 19일 오전 대전 유성 자택에서 만난 박 장군은 “백선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없다. 백선엽 가족은 그의 주검을 가족묘지로 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선엽이 일본군 장교로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며 항일독립투사를 체포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고, 여기에 더해 한국전쟁사를 왜곡해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 위선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제1사단장이었으니 공적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장군은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죠. 그런데 그의 행적을 보면 장군의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어요.”
그는 “백 장군이 예편 뒤 자진해 30여년 동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며 자신과 채병덕 총참모장 등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전쟁사를 미화했다”며 그 예로 백씨를 전쟁영웅으로 만든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를 들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의 제1사단은 적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해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등 8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며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했다. 일부를 전체로 과장했다는 얘기다.
또 개전 초기 전투 상황도 왜곡됐다고 했다. 제1사단은 개성에 주둔했는데 북한군은 개전 5시간 만에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했다. 당시 백선엽은 경기도 시흥 보병학교에서 교육받다가 참모의 연락을 받고 즉시 귀대해 부대를 지휘했으나 전차 등 장비에 밀려 후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설명은 다르다. 6월24일은 육군구락부(현 육군회관) 준공 기념 파티가 열린 날로, 춘천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친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을 포함해 전방 사단장은 모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백선엽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임진강 남쪽에서 후퇴하던 사단에 합류했다. 그도 사단장으로서 당연히 이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라며 “부대를 비운 이유로 든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출석을 임의로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 술판을 벌이고 있어 남침에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개전 과정에서 북한군의 전차를 몸으로 막고 산화한 것으로 알려진 ‘제1사단 육탄 10용사’는 뒷날 10용사 가운데 몇몇이 북한방송에 출연해 ‘조작’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 외에 제6사단의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도 조작 무용담이죠. 모두 일제 강점기에 조작된 ‘일본군 육탄 3용사’를 베끼기 해 지휘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그는 “백선엽은 후퇴를 참 잘하는 사단장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여서 ‘내가 등을 보이면 총을 쏘라’며 진두에 서서 전투를 지휘했다는 미담 역시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백선엽은 미군 군사고문단을 극진히 대접해 맺은 인연을 배경으로 승승장구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백선엽 명예원수(5성 장군) 추대를 막아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앞잡이였던 백씨가 한국군 최초의 명예원수가 될 순 없다’고 앞장서 반대했다.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장군 등 참전 군 원로들도 그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 결국 무산됐다.
진짜 한국전쟁의 영웅은 누구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1984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선정한 4대 영웅인 김홍일 장군, 김종오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워커 장군이라고 밝혔다. 김홍일 장군은 개전 초기 국군 패잔병을 모아 한강방어선을 구축해 3일을 버텼고, 김종오 장군(당시 대령)은 제6사단장으로 3일 동안 춘천을 방어하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해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사령관으로 전황을 뒤집는 인천상륙작전 등을 이끌었고 워커 장군은 낙동강을 사수했다. 당시 정부는 김홍일, 김종오 장군의 일대기를 펴내고 맥아더와 워커 장군의 다큐멘터리도 제작해 방송했다.
“나는 강재구 당시 대위가 참 군인 정신을 지킨 재구대대의 첫 대대장입니다. 영원한 재구대대장으로서 전사를 왜곡해 진짜를 밀어내고 영웅이 된 가짜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보수 세력들이 주장하는 백선엽이 간도특설대 시절 반공 투사였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800명 단위의 간도특설대는 중국 정규군인 팔로군과 전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전투부대가 아니라 공작부대로 봐야 합니다.” 강재구 대위는 1965년 10월4일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 훈련 중 부대원이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에 몸을 던져 부대원의 생명을 구하고 본인은 장렬히 산화한 인물이다. 순직 후 1계급 특진이 이뤄졌다.
그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반민족 주의자 문제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했잖아요?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겁니다. 나쁜 짓 했으면 사후라도 그 죗값을 물어야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여생을 왜곡된 군사를 바로 잡는데 바치겠습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이은덕 사진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