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한명숙, 곽노현과 신재민으로 보이는 검찰(서프라이즈 / 화씨911 / 2011-09-23)
어제오늘 우리 언론에 이국철 SLS회장이 신재민 전 문광부 차관에게 지난 수년 동안 10억여 원을 제공하고, 그 외 현 여권실세 여러 사람들에게도 거액의 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어 나라 전체가 매우 시끄럽습니다. 그리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핵심부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은 당연히 비상이 걸렸습니다.
물론 이 사건도 돈을 줬다고 폭로한 사람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받은 대상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형국입니다. 모든 불법자금 수수나 제공 사건이 그렇듯 말입니다.
이때 이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습니다. “모른다.” “알기는 하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다.” “일면식도 없다.” “친하기는 하나 돈을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다.” 등등. 물론 이런 사람들 중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법적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기소독점권를 가진 이 땅 검찰들 입맛에 따른 결과지요.
대검중수부, 서울중앙지검특수부, 각 지방검찰청특수부 등에 소속되어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 중 초임검사는 없습니다. 초임시절 수사실력을 보이면 최소 5년차 이상이 되어 특수부로 가서 잔뼈가 굵으면 특수통이라는 이름으로 검사인생 거의를 보냅니다. 따라서 어느 지검에 있든 특수부 검사들의 수사기법이나 검사 개개인의 기질 또한 거의 유사하다고 보면 됩니다.
끈질김, 미세한 부분까지 파고드는 철저함, 그리고 공소제기 후 유죄 판결을 받아내려는 승부근성까지 상당 부분이 얼굴만 다른 이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아마 선배들에게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수부 사건들은 대략적으로 두세 가지의 경로로 시작됩니다.
우선 인지수사라고 하는 검찰의 독단적 내사에 의해 이어진 수사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나 또는 권력층, 그리고 재벌들에 관련된 내사 사건은 검찰이 먼저 시작한다기보다. 청와대 사정팀이나 정부기관 공직자 감찰팀 같은 곳에서 이첩되는 경우가 거의입니다.
이들 기관이 비리에 대한 소문을 포착하고 은밀하게 내사한 뒤 혐의점이 발견되면 검찰로 보내죠. 그리곤 검찰 내사가 이뤄지는 경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내사를 진행한 검찰이 도저히 덮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피내사자 신분이 참고인 또는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면서 공개수사가 진행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고발사건 수사입니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 이미 공개된 내용들을 수사하는 것이지요. 예를 든다면 지금 부산저축은행 사건 같은 것을 말합니다. 고발처도 다양하지만 대부분 국세청, 금감원, 감사원 같은 감사기관이 주류를 이룹니다. 즉 행정감사에서 불법사항이 발견되어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은 하명사건입니다. 겉으로는 인지수사의 성격을 띠지만 실상은 하명사건인데, 검찰도 손을 쓸 수 없는 고위직이나 고위층 가족이 관련된 비리가 세간에 알려졌을 경우 시작됩니다. 즉 언론이 들끓고 여론이 불붙어 타오르는 민심을 감당하지 못한 고위층이 직접 지시하여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지요.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 사건이나 김대중 정부의 3홍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각설하고. 이전에도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는 대한민국 검찰의 위세를 너무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대검중앙수사부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국세청의 고발이란 명목으로 수사하여 구속시킨 뒤 박연차 게이트란 이름으로 전 정부 핵심 실세들을 비롯한 노무현 대통령까지 옥죄었습니다. 그리곤 끝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하고도 기소하지 않은 채 창피를 주다가 그분을 서거로 몰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국세청 고발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배임죄로 구속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되어 기소되었지만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1심에서 무죄가 났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부 판결 공판 하루 전날 검찰은 다시 복역 중이던 한만호에게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며 별건수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도 이제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1심 재판부의 판결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반면 박연차 게인트의 사실상 출입구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자신이 국세청장이 되기 위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로비용 그림을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기소되었으나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박연차 씨가 구속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한상률 전 청장이지요. 그가 국세청장이 되면서 박연차 씨의 태광실업이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그 세무조사의 결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의혹을 풀 핵심 키로 언론은 한상률을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한상률은 그때 해외도피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모든 사건들이 종료된 뒤, 조용히 입국하여 그림로비 사건으로만 기소되었다가 무죄를 받음으로 법적 소추를 피했습니다.
또 MBC PD수첩을 통해 세상에 고발된 일명 부산 스폰서 검사 사건은 전국이 떠들썩하게 시끄러웠습니다. 검찰은 이 폭로 때문에 떡검 색검 등의 이름까지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론된 검사 누구도 검찰 자체감사, 특검수사까지 거쳤지만 실질적 형벌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을 구속한 검찰은 곽 교육감이 교육감 후보가 되기 위해 경쟁자인 박명기 교수를 사퇴시키고 그 대가로 2억 원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검찰이 주장하는 2억 원 제공 및 수수행위는 제공한 측이나 수수한 측이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이 금전 거래가 교육감 후보직과 관련된 거래냐 순수한 도움 주고받기냐의 법률적 싸움만 남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곽 교육감을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받아들였습니다. 이미 돈거래를 쌍방이 인정하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검찰과 법원의 속내를 기소장을 보지 않아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법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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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왼쪽)과 이국철 SLS그룹 회장(오른쪽) ⓒ시사저널 |
자 그럼 이제 신재민과 이국철 건을 보겠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언론 기사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을 폭로한 이국철 회장은 자신의 회사가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요로에 상당한 로비를 한 것 같습니다. 그 과정 중에 금전거래가 있었던 것인지는 보지 않아서 모르죠. 다만 이 회장은 그렇다고 주장하고 거론된 인사들은 “모른다”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형국입니다. 이에 대한 결과는 검찰이 알려주겠지요.
어쨌든, 앞서 거론했지만 이 사건은 제가 보기에도 이미 청와대 사정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이나 정부 공직기강 감찰팀 관련자까지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은 매우 큽니다. 그리고 이미 검찰에도 통보되었을 개연성도 있습니다.
현재 각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사 가능성이 있다’라든지 ‘이미 상당 부분 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이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국철 회장은 자신의 사무실에 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 형식을 취하면서까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폭로하고 있을까요? 바로 앞서 제가 은밀하게 지적한 우리 검찰의 소추시스템 때문일 겁니다.
우리나라는 검찰이나 경찰 말고도 수사권한은 다양한 기관이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은 노동부 조사관이 사법경찰리의 권한을 갖고 수사합니다. 또 식약청 조사관은 식품위생에 관한 사법경찰리의 조사권한이 있습니다. 산림청 조사관은 산림훼손에 관하여, 환경부 조사관은 환경폐기물 불법투기 등 환경훼손에 관하여, 관세청 조사관은 밀수 등 관세법 위반자에 대하여, 국정원은 간첩이나 국익훼손 공안관련자에 대하여, 등등 여러 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조사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형벌권으로 소추하기 위해서는 기소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즉 검찰은 국가형벌권을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라는 것이죠. 결국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의 대상이 되는 누구도 검찰의 기소권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기소독점권, 앞서 제가 거론했으나 기소권을 책임진 검찰은 기소 후 유죄판결을 받아내는데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연인에게 법 조항을 적용, 죄가 있으니 죄를 줘야 한다고 자신들이 기소했으면 당연히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야하고 무죄를 받았으면 죄가 있다고 기소한 검사는 자연인을 무고한 죄로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검찰이나 법원은 무죄판결 후 검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무리한 기소도 남발되고 억지 기소도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보복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여론에 밀려 기소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기소한 건에 대해서는 공소유지에 공들이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당연히 이런 사건들은 무죄판결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검사마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검사마음’은 검사 개개인의 마음이 아닙니다. ‘검사동일체의 원리’이라는 해괴한 원리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방 소도시 지검 산하 지청의 초임 말단검사가 기소한 사건의 기소 의견이라도 검찰총수인 검찰총장의 기소 의견과 같다는 원리가 바로 검사동일체의 원리입니다.
3심제가 확립된 사법부는 지방 말단 지원의 단독 판사가 내린 판결을 2심인 지법 합의부나 고등법원에서 3명의 판사가 다시 재판하여 뒤집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건이 대법원으로 상고 되었을 시 대법관도 양심과 법에 따라 판결을 각각 합니다.
하지만 기소권자인 검찰은 최초 기소 검사가 유죄로 기소한 내용을 검사 동일체의 원리에 따라 3심 내내 다른 검사가 공소유지를 담당하더라도 기소 검사가 제시한 법 원리대로 재판에 임합니다. 이것이 ‘검사마음’이라는 것인데 그러니 ‘검사마음’은 곧 검찰총장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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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대 검찰총장 ⓒ연합뉴스 |
자, 지금 이국철 회장은 추측건대 요로에 상당한 진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진정은 묵살되었고 회사는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므로 이 회장은 자신이 잘 나갈 때 도움을 줬던 고위직들에게 ‘좀 살려달라’고 읍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 말기에 가깝습니다. 특히 친정권 인사의 비리가 터지면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시기입니다. 하여, 모두들 꽁무니를 뺐겠지요. 참다못한 이 회장은 언론에 터뜨리기로 작정했고 결국 터뜨렸습니다.
이미 요로에 진정이 되어 검찰도 상당 부분 알고 있었겠으나 상부 눈치만 살피다가 이국철에게 뒤통수를 맞은 겁니다. 검찰만이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아마도 신재민은 아마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하나로 꼬리를 잘라야 하니까요.
곽영욱과 한만호라는 고리로 한명숙을 2년 동안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수사하고 기소하고 재판을 이끌었던 특수부 검찰, 이미 핵심 행위들을 피고인들이 인정하고 있음에도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곽노현을 구속한 검찰, 우리는 이제 이국철 입으로 거론한 신재민 이하 현 정권 실세들의 검찰 처리를 지켜보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최종 결과를 놓고 이 나라가 대통령이 늘 말한 공정사회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화씨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