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국정원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가장 나쁜 선례'였다.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만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그 9년의 시간 동안 일어난 '적폐'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국정원 개혁을 얘기할 수는 없다. <오마이뉴스>는 국정원개혁발전위(13개)과 국정원감시네트워크(15개)가 선정한 국정원 적폐사건 목록 가운데 총 9개를 추려서 '어떤 사건'인지, '무엇'을 재조사해야 하는지를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말>
한국의 선거에는 '분단 특수성'이 작동한다. '북풍공작'이 대표적이다. 원래 북풍공작은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안전기획부(안기부)의 공작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오익제 편지사건'이나 '재미교포 윤홍준 베이징 기자회견', '충풍사건', '흑금성 사건' 등이 'DJ 낙선'을 목표로 한 '협의의 북풍공작'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보수적인 집권세력이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안보위기를 조장하고, 안보논리로 야당을 공격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시도를 모두 '북풍공작'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런 광의의 의미에서 보자면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북한 종업원 12명(아래 탈북 종업원)의 탈북 사실을 전격 발표한 것도 '북풍공작'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북풍공작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이 과반 의석(총 167석)을 차지하며 '여소야대'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북풍공작이 1997년에 이어 이번에도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선거용 기획탈북'이라는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틀 만에 류경식당→푸동공항→쿠알라룸푸르공항→인천공항
▲ 통일부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해 2016년 4월 7일 입국했다고 밝혔다.
ⓒ 통일부 제공
선거용 기획탈북 의혹의 출발지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에 위치한 '조선식당 류경'(아래 류경식당)'이다. 식당의 이름인 '류경'(柳京)은 평양의 별칭에서 따왔다. 옛날 평양에는 버드나무(柳)가 많아 '류경'(柳京)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닝보 외에도 심양·단둥·연길 등에서도 '류경'이라는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북한식당이 있다.
닝보는 상하이와 항저우에서 자동차로 2시간 안팎 거리에 있고, 상하이에 이어 중국의 제2의 항구인 닝보항이 있는 항구도시다. 그런 입지조건 때문에 닝보는 '제2의 푸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만을 건국한 장제스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직영이나 합작 등의 형태로 해외식당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닝보의 류경식당은 '조선식당 류경'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소유주나 경영자가 모두 중국인(닝보 출신)이었다. 직영 형태의 해외식당이 아니라 인력(여성 종업원)만을 공급하는 합작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 층을 쓰는 류경식당에는 총 21명의 북한 사람들이 근무했다. 남성 지배인과 부지배인 2명, 여성 종업원 19명이 상주한 것이다. 지배인과 부지배인은 여권 관리 등 여성 종업원들을 관리·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여성 종업원들은 홀에서 서빙했고, 점심과 저녁 때 각 30분씩 무대에 올라 공연도 열었다. '봉사무역 접대원'으로 불리는 이들이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소속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5일 1명의 남성 지배인과 12명의 여성 종업원들이 상해 푸동공항으로 급하게 이동했다. 이들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날 식당 뒷문에 도착한 소형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는 주장도 있고, 택시를 타고 순차적으로 이동했다는 주장도 있다.
상해 푸동공항으로 이동한 이들은 다음날(4월 6일) 새벽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의 안가에 머물다가 저녁 때 다시 쿠알라룸푸르공항으로 이동했다. 중무장한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들을 공항까지 호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한한공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4월 7일).
이들이 입국한 다음날인 4월 8일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북한 해외식당에서 근무하는 남자 지배인 1명과 여자 종업원 12명 등 13명이 집단 탈출해 7일 서울에 도착했다"라고 발표했다. "북한식당 이용 자제 계도 등 한국의 독자적 대북제재가 집단탈북으로 이어졌다"라는 '정치적 의미'가 곁들여졌다. 게다가 이들이 입국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까지 제공됐다. 20대 총선일(4월 13일)을 고작 닷새 앞둔 때였다.
'기획탈북 의혹'을 자초한 몇 가지 이유
하지만 불분명한 탈북 동기, 이틀 만의 입국, 입국 다음날 탈북 사실 전격 발표, 입국 사진 제공 등은 '기획입북 의혹'을 자초했다. "박근혜 정부가 '북풍'을 일으켜 여당에 유리한 선거국면을 만들기 위한 기획탈북이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쪽도 "국정원이 식당 지배인을 매수해 종업원들을 유인해 납치극을 벌였다"라고 비난했다.
먼저 탈북 동기다. 통일부는 당시 "해외에서 생활하며 한국 TV와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실상과 북한 체제 선전의 허구성을 알게 돼 최근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문제가 있거나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경우 탈북해왔다는 경험칙에 어긋나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지배인 허아무개씨에게 '돈문제'가 생기자 허씨가 식당을 중국에서 말레이시아로 옮긴다고 종업원들을 속여 탈북시켰다는 시각이 있다. 허씨가 중국인 사장에게 150만 위안(한화 2억6500만 원)의 빚을 졌다는 증언이나 북한으로 돌아간 나머지 7명의 종업원들이 "말레이시아로 가는 줄 알았다"라고 증언한 것 등이 이러한 시각을 일부 뒷받침한다.
신속한 입국 과정도 의혹투성이다. 탈북민들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보호요청, 합동심문조사, 입국을 위한 서류 준비 등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이 류경식당을 떠나 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정원이 정부 당국과 협의해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탈북민들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입국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난해 8월 18일 지배인 허아무개씨를 접견했던 채희준(민변 통일위원장) 변호사는 "해외 탈북민이 한국에 가겠다고 하면 북한 사람이 맞는지, 진짜 한국행을 원하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등 현지에서 4주간 조사하는 절차를 밟는다"라며 "그런데 식당을 떠난 지 이틀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국정원에 연락한 지배인은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종업원들을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데리고 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탈북 종업원 12명과의 변호인 접견을 시도해왔던 장경욱(민변 '북 해외식당종업원 기획탈북의혹사건 대응 TF 팀장) 변호사는 "국정원이 허씨에게 비행기값으로 1000만 원을 줬다는 진술이 나왔고, 사전에 말레이시아 당국의 협조를 구해서 중무장한 경찰들의 호위를 받은 것 등을 감안하면 사전에 허씨와 국정원이 기획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입국하기 두 달 전에 '한국행'이 결정됐다는 얘기도 있다. 채희준 변호사는 "허씨가 '한국 드라마를 본 것이 문제돼 송환될 것 같아서 두 달 전 토론을 벌여 전부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당일 7명의 종업원이 갑자기 안 가겠다고 해서 그들만 남았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허씨가 진술한 대로 탈북 종업원들이 두 달 전에 한국행을 논의했다면 국정원이 이들의 입국을 준비할 시간은 있었던 셈이다. 다만 한국 드라마 시청 때문에 본국으로 송환될 것이 두려워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허씨의 진술은 상당히 허술해 보인다.
탈북 종업원들의 입국 사실을 전격 발표하고, 입국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까지 제공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통일부가 2000년 이후 탈북민의 신분과 탈북 경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공개 원칙'을 스스로 어긴 것이다. 그동안에는 탈북민이 김씨 일가 등 로열 패밀리거나 고위급 인사일 경우에만 탈북 사실과 신분 등을 공개해왔다.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였던 이한영씨나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지난해 입국한 북한 종업원들은 해외식당에서 근무해온 종업원들이다. 통일부는 "북한의 해외식당에 파견되는 직원들은 대체로 중산층에 속하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지만, 이들은 로열패밀리나 고위급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배인 허씨조차 "입국 사실을 공개할 줄 몰랐다"라고 언론에 토로한 바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29일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정보기관의 기획탈북이었다"라고 지적하자 서 후보자도 "어떤 연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빠른 시간에 언론에 공개됐다는 점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다"라고 답변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무엇' 때문에 탈북 종업원들의 입국사실을 서둘러 발표해야 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특히 복수의 정부 당국 관계자들로부터 "집단 탈북 공개 브리핑은 청와대의 지시로 갑작스럽게 하게 됐다"라는 증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청와대 지시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 당시 통일부는 "북쪽에 남은 가족의 신변이 위험해지고, 탈북 사실을 비공개로 해온 전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다"라며 집단 탈북 공개를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원에 입소하지 않고 보호센터에서 바로 사회 진출?
▲ 경찰청이 지난 8월 25일 서울 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
ⓒ 민변 제공
그런데 무엇보다 탈북 종업원들이 입국한 이후에 벌어진 '특별관리'가 기획탈북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통상 탈북민이 입국하면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아래 보호센터, 옛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70일(위장 탈북이나 간첩 혐의 등이 있을 경우 최장 180일) 동안 합동신문을 받은 뒤 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 입소해 12주 동안 정착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온다. 이후 하나원에서 나온 탈북민들의 신변관리 업무는 통일부와 경찰로 넘어간다.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은 하나원에 입소하지 않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바로 보호센터에서 나와 올 3월 대학에 특례입학했다(이것조차도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 당국이 밝힌 대로 탈북 종업원들이 사회에 나왔다면 대체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데도 이들의 행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배인 허씨조차 지난해 5월 하순부터 종업원들과 완전 분리됐다. 이들과 접촉한 곳은 국정원(보호센터)이 거의 유일하다.
채희준 변호사는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나와 사회에 배출되면 보통 탈북민 네트워크를 통해 행적 등이 확인된다"라며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의 경우 지금까지도 행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회에서 격리돼 있다"라고 말했다.
민변이 지난해 5월부터 지배인 허씨를 제외한 탈북 종업원 12명과의 변호인 접견을 여러 차례 신청했지만 국정원은 이를 거부했다. 박영식 보호센터 인권보호관은 지난해 5월 탈북 종업원 12명을 면담한 직후 "모두 민변과 접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라며 "종업원들은 특히 '우리를 잊어 달라'고 한다"라고 전한 바 있다.
장경욱 변호사는 "지난 7월 6일 보호센터장을 만나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다'며 종업원 접견을 요구했고, 센터장도 '접견을 주선하겠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국 접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 등 정부 당국은) '자진탈북이 확인되면 북의 가족이 위태로워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총선 전에는 집단 탈북을 발표했나?"라고 꼬집었다.
또한 민변은 지난해 5월 북한쪽 가족들의 위임을 받아 법원에 인신구제를 신청했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심문기일을 1주일 연기하면서까지 여성 종업원 12명이 모두 법정에 나올 수 있도록 하라는 출석명령 소환장을 국정원에 보냈지만 종업원들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국정원은 "탈북 종업원들의 보호결정이 해제돼 경찰과 통일부가 이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청에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이에 경찰청 보안국은 지난 8월 25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에서 ▲ "작년 8월 보호센터를 퇴소했고" ▲ "희망하는 지역에 거주지를 배정받아 개별적으로 거주하고 있고" ▲ "전화통화, 서신교환, 대면방문 등 외부와의 접촉 및 왕래도 자유롭다"라고 답변했다.
경찰청이 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보서에 따르면, 탈북 종업원 12명은 "신변이 노출되는 것이 싫다", "다른 탈북민처럼 조용하게 살게 해 달라", "신변이 노출되다 보면 제가 이 나라에서 살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탈북 종업원 모두가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통일부 고위인사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
경찰청은 자신들이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사실조회 회보서에 "경찰에서는 2016년 8월 사회배출 이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및 동법 시행령'에 의거하여 일반 탈북민과 동일한 신변보호를 실시하고 있다"라고 적시해놓았다.
보호센터쪽도 "탈북 종업원들이 지난해 8월 퇴소해서 국정원은 손을 뗐다"라며 "통일부에서 이들을 일반 탈북민들과 똑같이 관리하고 있고, 경찰이 신변관리를 위해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 (보호센터 등 국정원은 탈북 종업원 신변관리에서) 주도권이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 국정원 민원담당관이 지난 7월께 채희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 민변 제공
국정원 민원담당관도 지난 7월께 채희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보호센터는 신변보호 경찰관을 통해 집단 귀순 북한식당 종업원들이 변호사님들과 면담할 의사가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확인했다"라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변보호 경찰관으로부터 종업원들이 한 명도 예외없이 변호사님들과의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국정원이 아닌 통일부와 경찰에서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호결정이 해제돼 경찰과 통일부에서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고 있다"라는 국정원의 주장과 전혀 다른 증언이 나왔다. 통일부의 고위인사가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장경욱·채희준 등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지난 7월 28일 정승훈 통일부 공동체기반조성국장(현 정세분석국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국장은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에서 보호를 결정한 특별보호대상이어서 통일부에서는 이들의 교육과 주택만 지원했다"라며 "특별보호대상으로 지정되면 별도의 해제절차가 없다"라고 말했다.
당시 면담에 참석했던 장경욱 변호사는 "당시 정 국장이 '무슨 일반보호냐, 국정원이 특별보호하고 있다, 국정원이 통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라고, 채희준 변호사는 "정 국장이 '국정원이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해놓고 있어서 우리도 맘대로 접촉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6월 통일부의 한 관계자도 "집단탈북이란 특성, 북한의 선전 공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변보호를 위해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제8조에 의해서 국정원장이 6개월 동안 보호를 결정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 ①항에 따르면, 통일부장관이 협의회의 심의를 통해 탈북자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국정원장이 보호여부를 결정한 뒤 통일부장관에게 통보한다는 것이다.
정 국장의 발언에 따르면 탈북 종업원들은 국정원의 특별보호대상이다. 즉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가'급 경호대상으로 분류돼 밀착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경욱 변호사는 "그로 인해 여종업원들은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신분이 급상승했다"라고 꼬집었다.
시행령 제14조에는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범위'를 ▲ 형법(내란), 군형법(반란), 국가보안법에 따른 죄를 범하였거나 범할 목적으로 있다가 전향 의사를 표시한 사람 ▲ 북한의 노동당 등에서 북한체제 수호를 위하여 적극 활동한 사람 ▲ 첨단과학에 첩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탈북 종업원들이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범위'에 해당하는지, 국정원으로부터 특별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3명의 집단탈북'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들에게 '특별한 무엇'을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경찰에 지난 1년간 탈북 종업원들을 관리해왔음을 증명하는 신변보호 담당관의 업무일지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국정원 특별관리'를 뒷받침한다. 장경욱·채희준 변호사 등이 지난 8월 24일 이재열 경찰청 보안국장을 만났을 때 이 국장은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관리하면서 작성한 자료도 없고, 신변보호 담당관의 보고도 없었고, (국정원 등으로부터) 어떠한 면담 신청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채희준 변호사는 "형식적으로는 경찰이 탈북 종업원들의 신변을 보호·관리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장소만 보호센터에서 모처로 바뀌었을 뿐 국정원이 실질적으로 계속 보호·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채 변호사는 "탈북민들이 하나원을 나오면 이들을 관리하는 주무부서는 국정원에서 통일부로 바뀌고, 통일부가 경찰이나 지자체에 요청해 이들의 신변을 보호한다"라며 "그런데 (국정원이 이들을 특별보호대상에 지정해놓고 있어서) 통일부가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1명이라도 자진탈북 아니라면 북으로 돌려보내야"
채희준 변호사는 "북의 가족들이 딸들의 신변과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어렵게 우리에게 위임장을 보내줬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은 기를 쓰고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라며 "이것도 이들이 들어올 때부터 문제가 있었음을 반증한다"라고 지적했다.
채 변호사는 "식당에서 서빙하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종업원들이 '국가안전보장'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라며 "종업원들은 지배인의 지시를 받아 일하는 사람이지 자율성을 갖고 일하는 책임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채 변호사는 "종업원 12명 가운데 1명이라도 자진해서 탈북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확인해서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라며 "그 1명에게 나머지 11명을 위해 희생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통일문제 전문가인 A씨도 "탈북 종업원들 중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라고 말했고, 여권 인사인 B씨도 "몇 명은 한국행을 원했지만 12명을 다 데리고 온 데에는 공작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의심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총선 전에 당당하게 공개했으면 계속 공개 원칙으로 가야지 북가족, 신변 위협 등을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라며 "자진해서 집단 귀순했다고 한다면 왜 이제까지 기자회견 한번 안하나? 그 전에 기자회견했던 귀순자들은 북에 가족이 없었나?"라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 외에 누구도 이들을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진해서 탈북한 것인지, 타의에 의해 납치된 것인지, 지난해 8월에 보호센터에서 출소했는지, 올 3월에 대학에 입학했는지 등을 알 수 없다"라며 "이제라도 탈북 종업원들을 제대로 조사하고, 공개하고, 검증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개혁발전위에 의견서를 냈지만 답변이 없다"라며 "(국정원개혁발전위가 국정원을) 확실히 장악하기 힘든 구도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획탈북 의혹이 '국정원 적폐 목록'에 오르지 않는 이유
국정원개혁발전위 산하 적폐청산TF가 작성한 '국정원 적폐 청산 목록'에 기획탈북 의혹 사건은 없다. 북한 종업원 집단 입국이 국정원에 의한 기획탈북으로 확인될 경우 이것이 남북관계과 국정원의 존폐 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여권 인사 B씨는 "확실한 공작으로 확인되면 국정원 문을 닫으라는 해야 할 사안이어서 목록에 들어가기 어렵다"라며 "설령 사실이라도 해도 묻고 가야 할 사안이다, 이것은 개별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B씨는 "서훈 국정원장에게 확인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억류할 때와는 다르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됐기 때문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다"라며 "북한으로 돌려보낼 경우 우리가 국가의 책임을 버리게 되고, (돌려보내야 한다면) 역망명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B씨는 "(탈북 종업원 문제를) 남북적십자회담 카드로 쓰기도 어렵다"라며 "북한이 핵 이외에 쓸 카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이것을 카드로 쓰다가 얼버무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에서 두세 번 의사를 묻고 확인했는데, 탈북 종업원들이 공개석상이나 또는 제한된 공개석상에 나와서 자기들 의사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채희준 변호사는 "탈북 종업원들의 진실이 꼭 확인될 것이다"라며 "감춘다고 해도 밝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9일 자유한국당의 강남 장외집회에 대해 "오늘 장외집회에 나선 자유한국당의 모습에서 국정농단 세력을 지키려던 ‘태극기집회’가 연상됐다"고 힐난했다.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말하며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의 의원들은 ‘김장겸 지킴이’를 위해 MBC, KBS 노조원들을 ‘좌파’로 낙인찍었고, 국력을 하나로 모아야할 엄중한 안보현실을 국민 ‘편 가르기’에 이용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특히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 대해 "공영방송 관련 민주당 문건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핵무장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을 제안했다"며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위한 방송개혁을 막아서고, 서명운동을 통해 국민을 핵 공포로 몰아넣겠다는 선언"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자유한국당은 북핵 위기 앞에서 국민 불안을 조성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안보위기 앞에서 국민 편 가르기에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며 "자유한국당이 지금 지켜야 할 것은 김장겸 MBC 사장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다. 자유한국당이 있어야 할 곳은 국회 밖이 아니라 국회 안"이라며 즉각적 정기국회 복귀를 촉구했다.
법원이 8일 새벽 이른바 '민간인 댓글 부대'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용의자들에 대한 구속 영장을 무더기로 기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과 법원 사이에 날선 공방이 오가는 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이 용의자 중 한 명은 증거를 인멸하다가 적발되어 구속 영장이 청구됐는데도 이것이 기각되는 등,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분분합니다. 우선 법원 내에 사법개혁을 앞두고 지금 적폐청산을 추진하는 세력에게 '물먹이기'를 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매우 당연한 추론입니다. 아직 양승태가 임명한 세력들이 그대로 법원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번 사안을 규정짓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이명박과 그 추종 세력들의 힘이 아직 법원 내에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루는 사건의 최종 칼끝은 이명박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코너로 몰리고는 있어도, 주진우 기자 등이 언급한 대로 이명박의 힘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법원 내에서도 실세로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유가 무엇이 됐든, 지금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도록 만든 오민석 영장 담당부장판사는 우병우에 대한 영장도 기각한 바 있는 판사입니다. 우병우의 후배이기도 하지요. 법적 판단은 물론 정치적 사안과는 별개라고는 하지만,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은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이 이 판사의 결정을 만들어냈는가 궁금한 것은 제 마음만은 아니겠지요. 지금 여론이 북핵 문제, 사드 문제에 맞춰져 있는 상황은 이 이상한 영장 기각에 쏟아질 수 있는 관심의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적폐 청산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이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보다 강력하게 사법개혁을 요구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그들 스스로가 적폐세력임을 인증하고 있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그들의 세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촛불을 들었던 그 수많은 시민들의 힘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내고 그들이 쌓아 온 적폐를 감추려는 세력들, 그들을 바꿔내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힘입니다. 촛불 혁명은 진행형입니다. 시애틀에서...
김장겸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MBC)본부 조합원들이 7일 오후 경영평가 결과 승인과 파업 긴급현안 보고, 김 사장의 이사회 출석 요청 안건을 다루기 위한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방문진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문화방송 전·현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혐의 등을 알고도 방치한 사실이 기록으로 드러났다. 문화방송 관리감독 기구로서 방송의 공공성·공정성을 실현할 책무가 있는 방문진의 직무유기가 도를 넘어선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방문진 이사회 공개 회의록과 비공개 속기록을 입수해 살펴보니, 방문진은 △“(최승호 피디, 박성제 기자는) 증거 없이 해고했다”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백종문 녹취록’ 사건 △경영진이 노조를 불법 사찰한 ‘트로이컷 사건’ 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소수 이사(옛 야권 추천) 3명(유기철·이완기·최강욱)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징계 안건을 올리면,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다수 이사(옛 여권 추천) 5명(권혁철·김광동·김원배·유의선·이인철)은 문제 사안을 축소하거나 ‘물타기’하면서 시간을 끄는 식이었다.
■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경영진 비호 2016년 1월25일 ‘백종문 녹취록’이 <한겨레> 등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그런데 방문진 이사회는 부당 해고 여부가 핵심인 해당 사건을 논의하면서 “(녹취록 가운데) 노조가 정치권의 숙주라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문제 아닌가. 이에 대해 규명하자”(김광동 이사)고 제안하거나, “(백종문 기획본부장 발언은) 술 마시고 헛소리한 것(에 불과하다)”(고영주 이사장), “소맥(소주와 맥주) 섞은 것 같은데”(이인철 이사)라고 언급했다. 방문진은 2016년 2월4일부터 6월7일까지 7차례 이 사안을 논의했으나, 최종적으로 ‘문제없음’ 결론을 냈다.
대법원이 ‘불법 사찰’이라고 한 사건에서도 경영진을 감쌌다. 2012년 파업 때 회사 쪽은 보안 강화를 명분으로 직원에게 ‘트로이컷’이란 프로그램을 배포했다. 그런데 트로이컷은 직원 전자우편과 메신저 대화 등을 관제 서버에 저장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노조가 낸 민형사 소송에서 안광한·김재철 전 사장 등 당시 경영진의 ‘불법 사찰’ 책임이 인정됐다.
그러나 방문진은 옛 야당 추천을 받은 소수 이사들이 올린 책임자 징계 안건을 지난해 6월3일부터 9월1일까지 5차례 논의해 ‘책임 없음’ 결론을 냈다. 고 이사장은 지난해 7월4일 이사회에서 “징계의 대상은 형사 결정 위주로 되어야 할 것”이라며 경영진이 아니라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자고 말한다. 이인철 이사도 지난해 9월1일 이사회에서 “우리가 위임한 경영진이면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며 안광한 당시 사장을 두둔했다.
■ 거수 표결로 ‘셀프 비호’까지 민감한 사안에서 토론 없이 거수 표결을 강행한 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셀프 비호’도 했다. 지난해 9월 고영주 이사장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명예훼손 민사소송 1심에서 3000만원 배상금 판결을 받자, 방문진 안팎에서 사퇴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소수 이사들은 ‘이사장 거취의 건’을 안건으로 올리고, 방문진 정관에 따라 안건 당사자인 고 이사장의 퇴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자신의 퇴장 여부를 “표결에 부치자”고 말하며 회의 주재를 강행했다.
특히 방문진은 문화방송 사장 선임과 임원 선임·재임 때 방송 공공성·공정성 훼손 및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있는 주요 책임자들을 모두 영전시켰다. 이 기간 백종문 기획본부장은 부사장으로, 최기화 보도국장은 기획본부장으로,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들은 모두 최근 고용노동부의 문화방송 대상 특별근로감독에서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포착돼 조사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방문진이 경영진의 부당노동행위 혐의 등을 묵인·방치·비호한 셈이다.
방문진은 1988년 문화방송의 독립성·공공성을 지키려고 특별법(방문진법)에 따라 설립된 공익법인이다. 하지만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정부·여당 추천 대 야당 추천 몫 비율이 6 대 3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문진 이사진이 자신을 추천해준 정치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느라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구현하도록 하는 이사회 본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이사진의 정부·여당 대 야당 추천 비율을 7 대 6으로 바꾸고, 특별다수제(3분의 2 이상이 찬성)를 도입하는 ‘언론장악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나치게 정파적인 현 방문진 성격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박준용 기자 trans@hani.co.kr
2008년 2월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표적이 된 것은 100만 촛불집회의 열기가 한 풀 꺾이던 그해 7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100일만에 10%대까지 떨어졌고, 6월19일 대국민사과를 발표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검찰은 7월 대통령기록물 반출과 관련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진들을 줄소환하는 동시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12월이 되자 검찰은 박 회장으로부터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친형 노건평 씨를 구속했고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조카 사위 등이 검찰에 잇따라 소환하며 노 전 대통령을 심리적 한계선까지 몰아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들는 노 전 대통령의 4월30일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터져나왔다.
그 첫 보도는 KBS였다. KBS는 2009년 4월22일 ‘회갑 선물로 부부가 억대 시계’라는 단독 리포트를 통해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측에 고가의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며 “보석이 박혀있어 개당 가격이 1억 원에 달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위스 P사의 명품 시계였다”라고 보도했다.
▲ 2009년 4월30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당시 문재인 변호사(현 대통령)는 “범죄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을 두고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회갑 선물로 받았다는 시계들은 수사중인 혐의와는 분명 무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검 수사기획관인 홍만표는 이에 대해 “노 대통령측이 기분나빴을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관련내용을 언론에 흘린 검찰 내부자를 색출하겠다”면서 오히려 명품 시계 보도를 검찰 차원에서 확증해주었다.
이틀뒤인 4월 24일 조선일보는 ‘盧부부가 받았다는 1억짜리 ‘피아제’ 시계, 국내 매장에 5~6개뿐…문재인 “망신주자는 거냐”’라는 기사를 통해 논란을 부채질하고 나선다.
이어 5월13일엔 SBS 단독보도로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열흘 전이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국정원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폭로 이후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2015년 2월25일 경향신문을 통해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가정보원”이라고 밝혔다.
이인규 씨의 폭로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대목은 ‘논두렁 시계’라는 표현이었다. 그에 따르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 여사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이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는 것이다.
이인규 씨는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정원 개입이 “(언론까지)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으며 나중에 때가 되면 밝힐 것”이라고도 했다.
경향신문은 이인규 씨의 이같은 증언과 함께, 2009년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있기 전 이인규 중수부장에게 사람을 보내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 기소하되 시계 얘기는 흘리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전달한 사실도 보도했다.
JTBC 시사프로그램인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2009년 4월22일 KBS의 명품시계 보도가 나오기 직전 국정원 쪽에서 이인규 중수부장을 찾아와 ‘사법외 처리’를 주문했다는 검찰 관계자의 증언을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폭로가 있기 전에도 국정원이 명품시계 보도의 진원지라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었다. 국정원 개입설을 적극적으로 제기한 것은 바로 검찰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중수부 폐지 등 책임론에 휩싸인 검찰 내에서 이른바 ‘나쁜 빨대’가 검찰 내부가 아닌 국정원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논두렁 시계’라는 네이밍 방식이나, 검찰 쪽 증언의 구체성에 비춰볼 때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수사과정에서 언론플레이를 벌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인규 중수부장이나 검찰 관계자들의 주장처럼 국정원이 일방적으로 사태를 주도했고 검찰은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에 “당혹스러웠다”는 내용은 신뢰하기 어렵다.
▲ 2009년 5월13일 SBS 8뉴스 리포트 갈무리
이인규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소환이 있기 한달여전인 3월20일 이례적으로 출입기자들에게 ‘점심식사 번개’를 제안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며 “내·외부 막론하고 수사는 끝까지 간다”고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암시를 주었다.
실제 4월에 접어들면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긴급체포됐고 노무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게된다.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나쁜 빨대’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명품시계 보도 이틀 전인 4월20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이런 수사 방식은 처음 봤다”며 “검찰이 매일 매일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로 이인규, 홍만표, 우병우 라인의 수사라인은 노 전 대통령을 흠집내기 위한 극심한 언론플레이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노무현 전 통령을 대상으로 한 언론플레이의 한 당사자였기 때문에, 국정원이 주도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책임회피용일 가능성이 있다.
‘논두렁’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SBS의 단독보도를 보면, 해당 기자는 “검찰이 밝혔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된 의혹처럼 적어도 국정원의 일개 정보관으로부터 들은 얘기라고 보긴 어렵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언론까지)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다“고 표현한 대목을 보더라도 검찰과 무관하게 국정원이 직접 언론사를 상대로 여론조작을 했다기 보다는, 검찰 수사라인을 통해 국정원의 개입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당시 보도를 냈던 SBS 기자는 미디어오늘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국정원감시네트워크)은 “이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한 피의사실 공표죄로 2009년에 (검찰 수사라인을)조사해야 했다”며 “만일 검찰 주장대로 국정원이 언론플레이를 주도했다고 하더라도 보도내용을 부인하지 않고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를)방치한 검찰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용 사무처장은 “실체적으로 공표된 내용을 흘린 사람이 국정원이냐, 검찰이냐의 진실 공방이 지금 미궁에 빠져있는데, 당시 언론플레이에 부응했던 언론사나 관련자들이 사실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인신공격성 반박 "최근 영장판사 바뀌고 난 이후 잇단 영장기각 납득할 수 없어 법 이외 요소 있는지 의구심도"
법원"검찰 제정신 차릴 때" "수사 필요성 앞세운 영장 요구는 헌법·형사소송법 원칙 어긋나 판사 비난은 도 넘은 행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법원의 연이은 구속영장청구 기각을 원색적인 말로 공개 비난하고 나섰다. 영장기각 사유를 반박하기보다 사실상 사법부를 적폐세력으로 모는 듯한 거친 표현을 동원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영장기각 판사가 법 외의 다른 요인을 고려하는 듯하다는 식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했다. 대검찰청과 사전 협의되지 않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사진)의 단독 행동이라는 점도 충격파를 키우고 있다.
○영장기각 판사에 대한 노골적 비난
서울중앙지검은 8일 오전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영장기각 등과 관련된 입장’이라는 이례적인 반박자료를 내고 법원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앞서 이날 새벽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퇴직자 모임 전·현직 간부의 구속영장 두 건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취업 비리 관련 KAI 임원에 대한 영장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3차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불만을 제기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던지 서울중앙지검 명의의 공개성명서를 낸 것이다.
입장문에서 검찰은 “지난 2월 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이후 우병우·정유라·이영선·국정원 댓글 관련자·KAI 관련자 등 주요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한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없이 기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판에 출석한 특별검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은 물론 통신영장, 계좌영장까지 기각해 공범 추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영장전담 판사들에 대한 문제 제기도 했다. 검찰은 “일련의 영장기각은 이전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매우 다른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이 의심스럽다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포함됐다.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검찰은 “굴하지 않고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현재의 사명을 수행하겠다”고 글을 마무리지었다.
○“법원을 적폐로 모는 정치적 행동”
검찰이 영장 판사들을 정면 ‘저격’한 데 대해 법원과 법조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또 다른 요소의 작용’이라는 표현은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과 도전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사건 수사를 영장전담 판사들이 막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상 법원을 적폐세력으로 모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검찰이 영장 결과를 두고 불만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이런 식의 노골적 비판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며 “사법부 신뢰 전체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현직 판사는 “‘또 다른 요소’를 언급하는 검찰을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며 “검찰이 제 정신을 차릴 때”라고 지적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법원은 이날 오후 형사공보관실 명의로 반박문을 발표했다. 법원은 “개별 사안에서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사유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수사의 필요성만을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며 “영장전담 법관이 바뀌어 구속영장 발부 여부나 결과가 달라졌다는 등의 서울중앙지검 측 발언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거나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검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매우 부적절하다”며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여론몰이로 법원을 압박하며 정치를 하고 있다는 취지다. 한 검찰 출신 대형 로펌 변호사는 “검찰이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반박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부실수사의 책임을 법원으로 떠넘기는 것”이라며 “수사 편의를 위해 구속을 밀어붙이는 행태 자체가 사라져야 할 적폐”라고 말했다.
KBS 기자가 낸 단독 보도는 KBS 전파를 타지 못하고 세상에 공개됐다. 2010~2012년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개입됐고 그 결과가 청와대에 매일 보고됐다는 전직 간부의 증언이 KBS 기자 취재 결과로 폭로됐다. 이 보도는 KBS 전파가 아닌, 유튜브 등을 거쳐서야 세상에 공개됐다.
입사 13년 차 KBS 국제부 소속 이재석 기자(39)는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도 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조작에 투입됐다는 의혹을 담아 추가 보도를 했다. 이번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서다. 파업 3일째를 맞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소속 기자들도 ‘파업뉴스’를 제작하고 유튜브를 통한 추가 보도를 이어갔다.
이 기자는 단독 보도가 KBS ‘뉴스9’ 첫 꼭지 뉴스로 나갔으면 했다. KBS 기자라면 당연한 바람이었다. 이 기자는 지난 9년 간 KBS 기사들이 날카로움을 잃고 초점 없이 흐려진 채 출고되거나 아예 출고조차 되지 못했던 일들을 지켜봐왔다. 이 기자는 제대로 보도가 안 될 수 있다는 냉소를 떨치지 못했고 결국 그렇게 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이재석 기자를 만나 KBS가 파업 중인 현 상황에서 군 댓글부대 단독 보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 '파업뉴스'로 보도된 박근혜 정부의 군 댓글공작 보도 영상 갈무리. 출처=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유튜브 페이지.
-단독 보도 반향이 큰데, 혹시 ‘파업뉴스’ 등을 통한 추가 보도 계획이 있나?
“개인적으로 추가 취재를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보도로 상황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게 사실이다. 보도 이후 후속 조치들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고 있다. 다만 실체적 진실에 어느 정도까지 접근하게 될지는 우리가 계속 감시해야 할 것 같다. 일단 지금은 파업에서 승리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파업뉴스’에서는 고대영 KBS 사장과 이사진 관련 다른 아이템 취재해야 할 것 같다. 댓글공작 사안은 제가 원래 해왔던 아이템이니까 조용히 제 개인 시간을 할애해 추가 취재 중이다.”
- 제보자이자 군 사이버사령부 530심리전단에서 댓글부대를 지휘한 김기현 전 과장 폭로 보도를 KBS 뉴스를 통해 보도하고 싶었을 것 같다.
“김 전 과장을 퇴임 이후 지난 7월에 만났더니 현직 때는 못했던 중요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국정원 관련 보도는 보통 익명 취재원을 통해 나오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왕이면 힘을 받기 위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실명 인터뷰를 하게 됐다. 제보자가 폭로를 결심한 만큼 KBS 메인뉴스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지금 보도국 수뇌부 가치관과 능력을 볼 때 제보자 폭로 내용이 매우 이상하게 변질돼 보도될 것 같다는 불안감도 공존했다. 하루에도 이 두 가지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 이재석 KBS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취재할 때부터 보도국장단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올 거라고 80%는 예상했다. 20%를 왜 예상 못했냐면, 지금 고대영 체제는 임기를 온전히 마치기 위해 논란을 만들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 20% 정도는 혹시 이들도 전향적으로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였다. 솔직히 참담함은 별로 없었다. 이게 지난 9년 간 KBS 보도국 일상에서 다반사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냥 또 이렇게 됐구나 하는 냉소와 환멸이 있다. 다만 선후배 기자들과 파업뉴스 형태로 신나게 취재해 풍성하게 보도했고, 청와대나 국방부에서도 반응이 있어서 보람은 있다.”
-특히 파업 국면에서 이 사안이 갖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제작거부에 들어간 초기에 이 사안이 터져서 구성원들이 더 분노한 건 사실이다. 사실 9년 간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해서 이번 에피소드가 유별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자 조합원들에게는 또 이런 일이 터졌구나 하는 환멸과 냉소를 준 건데 파업 동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 '파업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KBS새노조 조합원들. 약 20여명이 파업기간 중 함께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파업뉴스’에서 파업 기간 중 다룰 아이템은 어떤 내용인가?
“예를 들면 2011년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 있다. 지난 9년 간 KBS 저널리즘이 어떻게 망가졌는가는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시 보여주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도청 의혹 사건’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외에도 사장과 이사진 개개인 문제를 다루게 될 것 같다. 사내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되지 못했던 문제들을 꾸준히 뉴스 형태로 보도해 파업 참가 구성원 사기를 높이면서 사장과 이사진들을 최대한 압박하려고 한다.”
-파업 3일째인데 파업에 참가한 구성원들의 현재 분위기는 어떤가?
“사기는 매우 올라있다. 구성원들 개개인들의 사기가 올라와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번 싸움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파업을 통해 많은 이들이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정상화돼야 한다고들 한다. 정확히 파업을 통한 ‘정상화’ 작업은 어떤 것인가?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상화’라는 말은 쓰기가 참 애매하다. ‘정상화’라는 단어가 KBS 내에서는 정반대로 쓰였다. ‘KBS 기자협회 정상화를 위한 모임’이라는 정체불명의 모임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탄생했다. KBS 기자 사회에서 ‘정상화’라는 단어는 아주 입에 담기 짜증스러운 단어다. 저희 내부에서는 그래서 ‘재건’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기자사회만 국한시켜 얘기한다면 ‘재건’의 대상은 저널리즘이다. KBS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수신료를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인적·물적 재산이다. 그 어떤 언론사와 비교가 안 된다. 그 자원을 우리는 그동안 매우 소모적으로, 불합리하게 사용했고 심지어 보복인사도 이어졌다. KBS 저널리즘을 재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탐사보도국을 만드는 것이다. 팀 단위가 아니라 국 단위로 만들어 탐사보도를 할 수 있도록 기자 20~30명을 투입해야 한다. 회사 차원에서 압도적인 물량을 지원하면 여기에서 생산되는 보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KBS가 묵직하고 중량감 있는 탐사 의제를 우리 사회에 던질 수도 있지 않을까.”
-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한데?
“지금은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뉴스를 반복하고 있다. 방송 뉴스라 일반 시청자들에게 쉽게 전달해야 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독자들도 하루 종일 모바일 뉴스를 소비하는 것이 일상이다. 앞으로 사실관계를 단순 나열하고 사안의 겉만 전달하는 뉴스는 미래가 없다. 뉴스를 앞으로 어떻게 심층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요즘 선후배끼리 토론하고 있는데 아이디어들이 무궁무진하게 나오고 있다.”
▲ 이재석 KBS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9년 간 KBS가 인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사실상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를 해왔다는 비판이 많았다.
“MBC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측은 이른바 자기 코드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평기자와 부장을 막론하고 취재 일선에서 배제했다. 지난 9년 간 유능한 선배와 후배들, 동료들 모두 취재와 보도 기회를 잃었다. 윗사람 코드를 맞추고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 명단에 오른 사람들만 보직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짜 유능한 사람들이었나? 진보, 보수 정권 이런 문제를 떠나 그들은 그저 무능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KBS에 새로운 리더십이 생긴 후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 등의 구성원들과 함께 공존하며 새로운 저널리즘을 구축하고 재건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그들 중 일부도 이번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내부에서 꾸준히 싸워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힘이 부족했고 정치적 환경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아무리 싸워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동안 침묵했던 것도 아니고 납작 엎드려 있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더 늦기 전에 한 목소리로 일터에서 나와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정권 바뀌어도 사장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식의 형식적 논리는 동의할 수 없다. 사장이 KBS 저널리즘을 지금 제대로 구현하는지에 대한 질적인 판단이 우선이다. KBS 내부 구성원들도 그렇고 국민들, 시민단체들, 언론학 교수들도 공통적으로 고 사장을 두고 질적 판단을 내려주고 있지 않나.”
-KBS 내부만 놓고 보면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망가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젊은 세대들이 점점 TV 앞을 떠나는 외부 환경 변화도 KBS 영향력을 떨어지게 한 요인이 아닐까? ‘재건’이 가능한가?
“흐름이 변화하고 있어 과거 지상파 전성시대를 다시 구가하기 어려울 거란 지적에 동의한다. 다만 그동안 2040세대에 맞는 디지털 전략을 KBS가 철저히 수립하고 이행했던 것도 아니다.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할 충분한 자원들이 있다. 그동안 써먹지 않았을 뿐이다. 그동안 지난 9년 간 KBS 수뇌부는 그 많은 인력과 자원을 심하게 말하면 시궁창에 처박아 넣은 거다. 손석희 앵커가 말한 것처럼 저널리즘 본령에 충실하고 디지털 플랫폼이든 전파든 콘텐츠 그 자체 힘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고 저널리즘 재건을 위한 제도화 작업에 착수하면 빠른 시일 내에 KBS 신뢰도와 영향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건 절대 KBS 기자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KBS라는 국민 수신료를 기반으로 하는 물량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 사업장에서 파업하는데 이렇게 시민들이 응원해준 사례가 있었나. 사실 부끄럽기도 하다. (시민들의 지지를) 앞으로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 사장이 퇴진한 뒤 재건된 KBS에서 첫 아이템으로 발제하고 싶은 것이 있나?
“있다. 지금은 일단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해당 부서에 가야 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취재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지금 현 체제에서는 보도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전혀 없어 미룬 것도 있다. 큰 틀에서 KBS 보도를 두고 얘기한다면 투 트랙이다. 지난 9년 간 못했던 권력과 제도 감시 측면에서 방산비리, 자원외교 등의 문제를 짚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보도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