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리던 '검찰 개혁 촛불문화제'가 19일 여의도 국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퇴로 시민들이 외치던 '조국 수호' 구호는 사라졌지만, '검찰 개혁'의 요구는 계속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의 외침이 더해졌다.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건너편에서 '검찰 개혁 제10차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시민들은 한 손엔 촛불 또는 노란풍선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응답하라 국회', '설치하라 공수처'란 문구가 쓰인 손피켓을 힘차게 흔들며 검찰 개혁을 향한 열망을 표현했다.
이날 문화제 본무대 시작은 오후 6시였지만, 서초동 촛불문화제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은 일찍 현장을 찾았다. 오후 1시부터 집회 장소인 의사당대로 국회의사당 역 2,3번 출구 인근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집회 시작 무렵엔 서강대로 교차로 방향, 여의도 공원 방향 4차선 도로가 거의 찼다. 참가자들은 30~50대 시민들이 가장 많았고,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주최 측은 전 주와 마찬가지로 집회 참석 인원을 파악도 공개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10차 촛불은 서초동 촛불문화제의 '시즌 2'의 성격을 가진다. 시민연대 측은 12일을 끝으로 촛불문화제를 중단하기로 했으나, 14일 조 전 장관이 사퇴함에 따라 여의도 국회 앞으로 장소를 이동해 계속 촛불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최 측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에 상정된 공수처 설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의 상임위 심사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들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뜻을 전달하려고 다시 문화제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촛불 문화제 무대에 오른 연사들은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과 검찰 개혁의 절박성을 역설했다.
진성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2012년엔 자유한국당도 공수처 설치법을 발의했었다. 그런데 지금 공수처를 반대한다"라며, "독재 연장기구라서 반대한다고 한다. 야당 인사만 수사하면 그렇겠지만, 이게 대통령이 임명한 장·차관과 여당 인사도 다 수사하는데 어째서 독재 연장기구라는 것이냐"며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왜 공수처 설치하자고 하냐. 이제 '대한민국은 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고위공직자가 자신들의 권한과 지위를 남용해 부정부패 저지르는 것 끝장내고, 청렴 공화국으로 가기 위해 공수처를 설치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 전 부시장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오늘 오후 집회에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끝장을 봐야 한다고 했다"면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1차전은 우리가 패배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2차전은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최종 승부는 내년 총선이다. 1차전의 패배를 교훈삼아 공수처를 설치하고, 최종승부에서도 승리하자"고 말했다.
검찰 개혁 촉구 시국선언 교수·연구자 모임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은우근 광주대 교수는 "검찰은 괴물"이라면서, 이들의 대표적 잘못으로 '전관예우'와 '선택적 정의'를 꼽았다.
은 교수는 "검찰은 전관예우로 끼리끼리 해 먹고, 공권력을 사유했다. 또 선택적 정의로 검사들이 선택한 것만 정의로 만든다. 자신들의 범죄는 은폐하고, 미운 사람은 죽도록 팬다. 이것은 국민 모두를 위한 보편적 정의를 유린하는 강도짓"이라면서 "그래서 검찰 개혁은 마피아 몰아내기와 같다"고 주장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중인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우리가 근현대사에서 단 한번도 검찰을 정리한 적 없다. 그래서 이렇게 방자한 짓을 계속하는 것"이라면서, "민주화가 돼 군대, 안기부, 보안사, 경찰이 비운 자리를 검찰이 채웠다. 대표적 사건이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인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기춘이었고, 강기훈을 못살게 한 악질 검사가 곽상도다. 곽상도(현, 자유한국당 의원)가 누구냐? 문재인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고, 그 자녀분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검찰은 (권력의) 개다. 전에는 주인이 물라고 하면 물었는데, 지금은 자기들이 알아서 물고, 국민에게 으르렁 거리고 있다. 이런 개에겐 목줄과 입마개가 필요한데, 그게 문민 통제와 검찰 개혁, 공수처 설치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만드는 반헌법행위자열전에 검찰이 한 70명 있다. 이번 사태 겪으면서 20~30명 정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100명 해야할 것 같다. 우리가 나쁜 검찰을 잊지 말아야 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화제엔 서초동 촛불문화제와 마찬가지로 태극기 퍼포먼스가 진행돼 장엄함을 보여줬다. 시민들은 태극 문양이 그려진 손팻말을 머리 위로 들었고, 대형 태극기가 머리위로 지나갈 때는 이를 받아 뒤로 넘겨주며 태극기의 물결을 이뤘다.
문화제 주최 측은 퇴임식 없이 장관직을 마친 조 전 장관을 위해 '국민 퇴임식'도 진행했다. 문화제 무대에는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조 전 장관과 그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선물이 올라왔다. 몇몇 시민들의 편지가 낭독돼, 촛불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들은 현장에 나올 수 없는 조 전 장관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시민에게 '감사패'를 전하며, 그간 검찰 개혁을 위해 노력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다양한 문화 공연도 이어졌다. 전자음악밴드 E·O·S의 공연과 14인조 오케스트라 '원더스트링'의 공연이 진행됐다. 중간 중간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의 영상도 상영됐다. 집회 말미를 장식한 색소폰 연주자 박광식 씨의 연주는 늦은 시간까지 국회 앞을 지킨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날 문화제는 밤 10시 경 종료됐다. 시민들은 인근 여의도순복음교회 방향,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30여 분 간 행진을 진행한 후 해산했다.
시민연대 측은 다음주 토요일인 26일에도 여의도에서 '제11차 촛불문화제'를 연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 개혁 관련 법안의 상임위원회 심사기간이 끝나는 28일에는, 해당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1박 2일간 '제12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같은 시각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앞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 회원들로 구성된 '북유게 사람들' 주최로 '우리가 조국이다! 시민참여 문화제'가 열렸다. 이곳에 모인 시민들도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 등을 요구했다.
한편, 국회 앞 촛불 문화제 장소 건너편에는 자유연대 등 극우단체 들이 모여 맞불집회를 열고 '문재인 탄핵', '조국 구속'을 외쳤다. 이들의 구호 소리와 군가 등이 촛불 문화제 장소까지 들려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여의도에 97개 부대, 서초동에 10개 부대를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