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닷컴> 누리집 화면 캡처. 본 사이트는 폐쇄됐지만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돼 서브 페이지들은 아직 접속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의 민간 여론조작 조직 ‘알파팀’을 이끌었던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가 2012년 대선을 3개월여 앞둔 2012년 9월부터 국정원의 지시로 <
언론닷컴>(http://unron.com)이라는 기사 창고형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인 2016년 6월까지 운영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보수담론 SNS 전파용 ‘미디어 플랫폼’
<언론닷컴>에서 기명 필자로 활동했던 주요 보수 논객들. 왼쪽부터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 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강규형 KBS 이사,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조우석 KBS 이사,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차기환 KBS 이사,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원책 변호사.
김 대표가 운영한 <언론닷컴>은 ‘대한민국 오피니언 리더가 모여 자유롭게 글을 올리고 SNS로 이를 정확히 전파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실험’을 기치로 내걸고 보수 논객 70여 명의 글을 모아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시키던 우파들의 ‘미디어 실험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여러 언론매체와 여론이 난립한 현실에서, 보다 정확하고 명료한 주장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결성됐다’는 창간 취지를 밝히며 4년간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이와 관련해 알파팀 멤버이자 김 대표에게 <언론닷컴>의 홍보 담당자로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았던 ㄱ씨는 최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언론닷컴>은)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우파 논객 양성, 여론 호도, 보수담론 아카이빙 등 복합적 목적을 갖고 추진됐던 프로젝트”라며 “언론닷컴에 보수 성향의 글을 모아두고 블로그, 카카오톡, 페이스북 같은 SNS 전파용 숙주로 쓰려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21>이 접촉한 한 국정원 관계자도 <언론닷컴>에 대해 “2012년 대선 전후에 (국정원이) 워낙 많은 일을 벌여 정확히 어느 부서의 누가 수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국정원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좌파를 속칭 전멸시키는 작업은 단순히 한 부서나 몇 가지 주제로는 안 되고 국정원 능력을 총동원해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론닷컴>이 만들어지던 2012년 무렵 “수집국 박원동 정보국장 산하에 종합팀을 두고 인터넷 언론을 진두지휘한 사실이 있긴 하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은 박 전 정보국장 산하에 최소 2명 이상으로 구성된 ‘인터넷팀’을 두고 인터넷 언론에 대한 보고서 등을 작성하며 인터넷 여론 동향 파악과 사찰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중심이 돼 <언론닷컴> 등 인터넷 언론을 창간하는 작업을 벌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국정원 관계자는 “변희재 등 인터넷 언론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보수 인사들에게 별도의 담당관을 두어 지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주도한 여론조작 프로젝트인 <언론닷컴>에는 모두 76명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담론을 적극 생산하는 사람의 수가 한정돼 있음을 고려할 때, 사실상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을 총망라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갑제·변희재 등 보수 논객 76명 총망라
알파팀을 이끌었던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는 국정원의 지시로 <언론닷컴>을 만들고 전직 알파팀 멤버였던 ㄱ씨에게 합류를 제안했다. <언론닷컴>의 운영에 의아함을 느낀 ㄱ씨는 합류하지 않았다. ㄱ씨와 김 대표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를 재구성했다. <한겨레21>은 김 대표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언론닷컴>에 기명 필진으로 이름과 사진을 올린 이들로 보수 논객의 상징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을 비롯해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의 이름이 확인된다. 이어 우익 논객으로 이름난 소설가 복거일씨, 뉴라이트 정치학자인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자유통일포럼 대표 정창인씨,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 전원책 변호사 등도 이름을 걸었다. 또 KBS·MBC 등 공영방송 이사인 강규형 명지대 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조우석 문화평론가, 차기환 변호사 등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물론 <언론닷컴>에 글을 썼던 이들 모두가 국정원의 개입 여부를 사전에 인지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홍보 담당자로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은 ㄱ씨는 “직접적으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으론 다 알았을 것”이라는 개인적 견해를 밝히며 “김성욱 대표가 모두 섭외한 것은 아니다. 분야별로 필진을 취합하는 다리 역할을 한 인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닷컴>의 운영 원칙은 철저한 실명제였다. 이 사이트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실명으로 기고”해야 하며, “게재된 모든 글에 대한 저작권 등 모든 권한과 책임은 필자에게 있으며, 언론닷컴은 이를 블로그와 SNS를 통해 전파하기만 한다”는 원칙 아래 운영됐다. 그 밖에 ‘필자-편집자-운영위원회’라는 운영 체제를 갖추었다는 설명이 있지만, 필자 명단 외에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돼 있지 않았다. 이 대목을 의아하게 여긴 ㄱ씨가 김성욱 대표에게 “<언론닷컴>을 어디서 운영하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나라 뒤집어지는 것 보고 싶으면 국정원에서 운영한다고 말하라”며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국정원이 김 대표를 내세워 추진한 <언론닷컴> 프로젝트가 눈길을 끄는 것은, 국정원의 여론 공작이 그동안 알려진 대로 이미 생산된 콘텐츠에 댓글을 달거나 기사 추천을 하는 등 ‘음지’ 차원의 활동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ㄱ씨의 증언이 맞다면, 국정원은 김 대표 등 대리인을 내세워 우파 논객을 한데 묶고 이들이 쓴 글을 SNS로 확산시키려 하는 등 적극적인 ‘콘텐츠 기획자’ 같은 면모를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국정원이 블랙리스트 연예인 등과 관련해 일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한 적도 있었지만,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 우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의 ‘짤방’(이미지)이 대부분이었다. <언론닷컴>은 국정원의 기획과 지시 아래 김성욱 대표 등 ‘외곽팀장’이 보수 논객을 총망라해 보수담론의 확산과 정부 정책의 해설·논평을 진행한 첫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파 논객들은 <언론닷컴>에 주로 어떤 글을 남겼을까. <한겨레21>은 보수 논객 70여 명이 4년에 걸쳐 <언론닷컴>에 올린 글을 분석해봤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시기에 따라 어떤 이슈에 관심을 가졌고, 이들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은 2012년 2월27일부터 2016년 5월3일까지 <언론닷컴>에 올라온 글 3300여 개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3144개의 글을 ‘빅데이터’로 삼아 구체적인 분석에 나섰다.
2012년 대선 기간 게시글 급증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언론닷컴>의 게시글은 2012년 9월부터 급증해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의 박빙 승부가 이뤄지던 2012년 12월 정점을 찍었다. 이후 서서히 글이 줄어들었다가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의 비선 실세 논란이 불거지자 다시 폭증했다.
글의 주제는 2012년 대선의 주요 후보이던 ‘박근혜’와 ‘문재인’과 관련된 것이 가장 많았고 북한 정권, 북한 핵, 규제개혁, 통일 대박론, 철도노조 파업 대처 등 보수 정책에 대한 글도 많았다. 이를 통해 <언론닷컴>이 1차적으로 2012년 12월 대선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후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거나 박근혜 정권의 정책을 선전하며 정권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분석은
‘친노-종북’ ‘박근혜-개혁’ 편파적 짝짓기 기사 참조)
<언론닷컴>의 활동은 국정원의 여론 공작이 ‘여론을 모아, SNS로 전파하는’ 미디어 실험을 할 정도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여론 공작이 ‘아고라-포털 댓글-트위터’ 등 연성 전략에 집중됐다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여론 공작은 ‘직접 콘텐츠 생산-SNS 유통’으로 초점을 바꾸는 경성 전략으로 전환된 셈이다. <언론닷컴>의 활동도 그에 맞춰 철저히 ‘보수 콘텐츠 생산과 집약, 그리고 SNS 확산’이라는 목적에 맞춰 충실하게 기획·운영됐다. 미디어 플랫폼에 최적화하기 위해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됐고, 새로 생산한 글과 다른 미디어에 썼던 글을 모아 필요할 때마다 뉴스로 가공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를 관통하는 특정 시기와 선거를 앞두고 글이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 것은 누군가의 지시나 기획 속에 글이 작성됐음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인터넷 보수 우파의 활동에 관여해온 한 관계자는 <언론닷컴>이 “일종의 허브, 기사 창고용 언론사 형태였다”며 “<언론닷컴>에 글을 올려 ‘헤비 뉴스 링커’(팔로어 수 등이 많아 온라인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인물) 등의 블로그에 옮겨지면 이 게시글이 뉴스란 이름으로 각종 카페와 산악회, 동창회, 교회 관련 SNS로 퍼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근혜 정부 이후 국정원이 보수 시민사회 인사들을 동원해 여론에 개입했다는 것은 우파 단체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조직의 내부 변화 측면에서 보면, 2008년 12월 ‘알파팀’을 만들어 대국민 여론 공작전을 처음 시도한 국정원은 이후 심리전단 확대와 민간 외곽팀 48개 증원 등의 조처를 편다. 이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닷컴>을 통해 본격적으로 ‘양지를 지향’하며 보수 인사를 총동원한 콘텐츠 생산 전략을 펴는 단계까지 성장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박근혜 국정원’ 수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됐고, 국정원이 진행한 여러 불법행위가 세상에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그 직전인 2016년 6월 <언론닷컴> 사이트는 갑자기 폐쇄된다.
현재, 국정원의 여러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뤄진 문제에 한정돼 있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부의 유산’을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의 행적에 문제는 없었을까. 국정원이 <언론닷컴> 운영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고, 필진에게 어떤 보상을 주었는지까지 수사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글 김완 기자
데이터분석 변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