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명예졸업장 받고 ‘중용’ 강의하는 도올예수, 유교 가치와 융합 가능…자기부정이 핵심 진보 확실하게 흥행 시키지 않으면 위기 못 풀어 도올 김용옥(63)이 신학대로 돌아왔다. 도올은 오는 17일 경기도 오산 한신대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고, 졸업생들을 위해 기조연설을 한다. 그가 한신대에 입학한 지 44년만이다. 고려대 생물학과 2학년을 마친 청년 도올은 1967년 한신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장공 김재준 목사와 문익환 목사, 이우정 교수, 소흥렬 교수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폭포수 같은 강의 세례를 통해 엄청난 자극을 받은 뒤 기독교인들이 가기를 꺼리고 알기조차 두려워하기 십상인 ‘인문주의 길’을 걷기 위해 고려대 철학과로 진학했다. 고대 생물학과 2학년→한신대 1학년→고대 철학과 그는 미리 공개한 ‘졸업식 기조 연설문’에서 인문주의를 회복해 ‘더불어 가는 실천지성’이 되고, 큰 관용을 가진 인물이 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또 “무신론자라고 해서 그 모두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방종한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 나름대로 경건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훌륭한 하나님의 경배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에 대한 관용까지 가질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울 수유리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공자의 <중용>을 강의한다. 하지만 수강 인원 30명의 절반 수준인 16명만이 수강신청을 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강생 한 명이 백만 명을 건강한 관용의 시민으로 계도할 수 있고, 흥행이 되는 매력있는 목회자를 만들어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비판발언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가 검찰의 ‘무혐의 각하’로 혐의를 벗고 ‘공부’만 해온 그를 지난 7일 서울 동숭동 서재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신대에 간 것은 ”실은 목사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1시간30분의 짧지만 집중적인 인터뷰 뒤 도올은 타이베이 유학시절 익힌 중국요리를 직접 해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계속 다녔다면 순복음교회만한 교회 만들었을 것 -일부 기독교인들로부터 ‘길 잃은 양이다’, ‘못 돌아온 탕자다’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명문 신학대 졸업식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은 소감은. “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은 있다. 귀소란 말은 아니고, 젊은 날의 로맨스로 돌아가 마치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해 청운의 꿈을 시작하는 새출발의 느낌이다. -한신대가 첫 대학이었는가. “고려대 생물과를 2년까지 다니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67년 한신대에 입학했다. 당시 수석으로 입학했다. -1학년을 마치고 고려대 철학과로 갔는데, 계속 했으면 대형교회 목사가 되지 않았을까. “여의도순복음교회만한 교회를 만들었겠지.” -그런 바람을 일으켰을법한데, 감성이나 영성보다는 이성이나 지성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목사의 길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인가. “신학대 갈 때 집에선 목사가 되려면 가지마라고 했는데, 나는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에 간다고 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건 고려대건 문과계열에선 서양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한신대는 거의 모든 교수가 프린스턴대를 비롯한 유명한 서양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이었다. 한신대에 가보니 다른 세상이더라. 그들은 개화기를 통해 길러진 분들이다. 일반대학보다 수준이 높았다. 1년 동안 접한 새로운 지식의 양과 자극이 내가 도저히 목사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술 먹고 여자기숙사에 가서 땡깡 놓았는데 사감은 빙그레 -왜 목사를 해선 안 되겠다는 데 이르렀다는 것인가. “당시 한신대에선 철학개론을 소흥렬 교수가, 국사는 연대 홍이섭 교수가, 동양사를 장공 김재준 목사가. 구약학개론은 문익환 목사가, 신약학개론 이우정 교수가 가르쳤다. 이런 기라성 같은 교수들의 말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 가운데도 소흥렬 선생 강의에서 가장 큰 자극을 받았다. 그는 ‘젊어서는 무전제의 사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신학은 전제가 너무 확실해서 네가 놀기엔 부적절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말 한 마디에 목사와는 다른 학문의 길을 걷게 됐다.” -소흥렬 교수가 어떻게 학생의 성향을 파악했는가. “서로가 많이 교감했다. 소 선생님이 과제를 주자, 내 일기를 드리며 ‘이게 납니다’라고 제출했다. 일기 레포트를 받아든 소 선생님이 그것을 읽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당시의 도올은 격렬한 시절이었다. 말썽도 많이 피웠다.” -어떤 말썽을 피웠나. “술 먹고 여자기숙사에 가서 땡깡도 놓았다.” -여자기숙사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었나. “구체적으로 가면 안 되고(웃음). 이우정 선생이 사감이었는데, 나왔다. 남자가 술 먹고 여자기숙사에 들어간 건 퇴학감이었다. 그런데도 굉장히 기독교적인 말씀을 나에게 해줬는데 감동이 깊었다. 구체적인 말씀을 기억은 못한다. 웃으면서 코믹하게 쳐다보고 인자하게 말했다. 그렇게 여유들이 많았다. 한신대는 거대한 패밀리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인문학적 바탕 갖춘 매력적 인간 만들어 부흥 잘 되는 목사로 -한신대에서 한 학기 강의를 맡아 <중용>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 간 한국 기독교가 이성과 지성과 합리를 도외시하는 것을 비판해왔는데, 민중신학의 탄생지인 한신대에서 삶의 실천적 측면이 강한 <논어>가 아니라 내면성을 일깨우는 <중용>을 택한 것은 한국교회와 타협한 것인가.
“타협은 있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선언을 할 것이다. 서로의 신앙의 영역은 토론의 대상으로 삼지 말자고. 신학생들은 기독교 광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선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목사이기 전에 위대한 인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상식적인 교양의 깊이를 갖추어, 무엇보다 매력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매사에 매력적이고 아주 상식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관용할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런 것을 일차적으로 부담없이, 신앙의 전제 없이 가르치겠다. 신앙을 터치하는 게 아니라, 매력적인 인간을 만들어줌으로써 목회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다. 부흥이 잘되는 목사를 만들어주겠다. 그들에게 인문학적인 바탕이 갖춰지면 가능하다. 내가 배울 때 김재준 목사 같은 분은 한학자였다. 간도에 명동학교를 세운 김약연이라는 분도 맹자를 만독했다고 했다. 뭔가 깊이 있는 인문학을 회복해야 한다. 신앙은 내 차원이 아니다. 그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중용이 33장밖에 안 되는데, 그것만 외워도 훌륭한 목사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 풍토가 바뀔 것이다. 그들이 신학을 아무리 해도 안 바뀌는데, 이렇게 학문을 하면 바뀐다. 결론적으로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흐름이 흥행이 잘 되어야 한다. 종교계에서도 진보적인 목사님 교회는 초라하게 몇 명 놓고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야 한다.” 기독교장로회에 빨대를 꽂아주겠다 -요즘은 진보도 후지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보수교회들을 욕하지만 그들이 신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데 비해 한신대의 모태인 기독교장로회가 예수교장로회 쪽에 비해 뒤처진 것은 시대와 신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탓도 있는 것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감으로써 그들의 관념에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적 교회가 흥행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도 수가 우리나라에서 더 늘어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형교회 목사들도 기독교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기독교인 수를 늘리려면 기독교인이 아닌 외부의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들의 언어만 사용해 대형할인마트들이 구멍가게와 재래시장 소비자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소형교회 신자들만 빨대로 빨아들이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빨대를 나는 기장(기독교장로회)에 꽂아주겠다. 신자들이 지나치게 보수 쪽 교회로만 가서 폐해가 너무 많다. 진보 쪽으로 흡수해야 한다. 소통의 벽을 넓혀가면 흥행을 할 수 있다. 진보의 흥행을 확실하게 시키지 않으면 지금 이 위험한 사태를 풀어갈 길이 없다.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문제를 풀어갈 길이 없다.”
-졸업식 연설문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이 아니라 글로벌서번트쉽(세계적 섬김)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선교열정은 세계 최강이다. 지금까지 기독교 선교를 주도해온 나라는 하나같이 식민지를 가진 제국주의 국가들이었다. 피식민의 아픔을 겪은 우리나라만이 세계 각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민족을 보듬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섬기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데, 우리 기독교는 기존 제국주의보다 더 제국주의적 선교방식만을 주창해 세계 여러 곳에서 문제를 낳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신대는 ‘글로칼’(글로벌 로칼리티)를 앞세운다. 외국에 선교를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과 소통하고, 국제 공동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해외선교보다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올바른 자성의식과 반성의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급선무다. 기독교가 한민족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 민족의 바른 앞날을 선도해가야 되기 때문에 남북문제나 여러 문제에서 보수적 이념적 성향에서 탈피하고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전태일사건을 보고 예수사건이라고 말한 뜻 -어떤 목사들은 21세기 한국인들을 2000년 나사렛이나 예루살렘으로 데려가려 하고, 또 다른 목사들은 3~4세기 로마의 성서의 울타리 속으로 데려가려 한다. 연설문에 보면 한신대 재학시절 ‘나의 더 큰 뜻이 네가 걷고 있는 이 길에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돼 있는데, 예수를 지금 이곳으로 초대하는 현재적이고 현장적인 느낌이 드는데 그런가.
“종교적 사건은 고정된 역사적 시점의 사건이 아니다. 종교는 시간성을 초월한다. 그것은 영원한 인간의 삶의 지평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기독교가 형성되었던 그 당시의 사건의 의미가 오늘날 한국의 우리 삶의 지평 속에서 일어나야 된다. 2000년 전의 예수와 오늘의 삶의 지평에서 일어난 예수는 동일한 예수라는 것이다. 안병무 선생이 전태일 사건을 보고, 이건 청계천 사건이 아니고, 예수 사건이라고 했다. 자기 몸을 십자가에 던지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고, 독일에서 공부한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것이 민중신학의 출발이다. 뭇사람의 삶의 사건에서 예수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민중신학이라고 소외받은 자, 못사는 사람들의 신학만이 아니다. 예수 사건의 의미가 현대 사회에서 축복받아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예수님은 축복은커녕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대부분은 교회 가서 잘 살게 해달라고 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기독교 사건의 핵심은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희생정신이다. 그것을 구현하지 못하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삶 안에서 예수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는데 도올 선생님 안에서도 예수가 꿈틀대는가.
“(침묵)어려서부터 엄마, 부모님에게 받은 신앙의 기저가 내 감정에 침투돼 있다. 어려서 신앙체험은 평생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철저히 인문정신으로 해석해왔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나만큼 맹렬하게 부정적인 포격을 던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기독교의 병폐적 측면에 대한 것이지 기독교의 본질을 건드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한국에서 기독교인이 절반인데, 내가 배타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어떤 방향으로 우리 민족이 가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뿐이다.”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유교가 완전히 변질되면 인류의 비극 -평생 학문의 길을 걸어온 철학자가 목사가 되려는 신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신앙과 학문, 영성과 지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가. 보수 기독교인들은 관념적으로 얘기하지만 지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원주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원주의를 인정치 않거나 합리성이 결여되면 한 종교 내부나 자기 마을 안에선 착하디 착한 사람이 다른 종교와 만날 때 야만인으로 바뀐다. 열렬한 기독교인과 열렬한 무슬림이 만날 때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신앙과 상식을 조화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리하게 종교적 신념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충돌을 우리 힘으로 완화시키기엔 너무 큰 문제다. 내면에서 근본의 합치점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교리 중심으로 종교를 봐서는 안된다. 한신대는 최소한 그런 원칙이 있는 것 같다. 항상 성서로 돌아가자면 교리는 배척되는 것이다. 신학대에서 교리주의를 배척하자는 것은 가능하다. 한 종교 내에서 교파들끼리 싸우는 것부터 극복하면서 이 종교를 통해 구현하려는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 뭐냐 이런 것을 찾아나가다 보면 많은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중에서 충격적인 합치적인 도움을 준 것이 도마복음서나 큐복음서다. 그런 것들에서 비춰지는 예수는 우리가 아는 예수와 달리 유교적 가치와 중용의 천리와 융합이 될 수 있다. 21세기의 과제는 기독교와 유교의 문제다. G2는 미국과 중국인데, 미국은 철저히 기독교고, 중국은 철저히 유교다. 기독교와 유교는 서로의 상충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대결장이다. 이슬람, 유대교는 기독교 유형에 속한다.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유교가 완전히 변질되면 인류의 비극이다. 유교를 바탕에 깔면서 기독교의 문제를 재건해야 한다. 유교가 가진 약점도 많다. 기독교는 다양한 신학이 발전돼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 문제는 다양한 신학을 포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다양한 신학이 발전돼 있다. 보수 교단이 그것을 못하게 한다. 한신대에서부터 그런 금기가 깨져 나가면, 다른 신학대도 왜 우리가 그런 전제 속에서 공부해야 하느냐고, 다른 신학도 수용하게 해달라고 변화할 수 있다. 그렇게 한시대가 지나면 변할 수 있다.” 수강신청한 16명은 확신범…예수 12제자보다 4명이나 많다 -그러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 도올 강의 수강생이 16명밖에 안된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밖에선 구름처럼 인파가 몰리는 강의에 대해 16명밖에 수강신청을 안 한 것은 한신대생들조차 도올 선생 사상은 위험해서 그에 물들면 이단으로 몰려 내 인생이 고달파질 수 있다는 편견을 가진 때문에 명강을 경청할 기회조차 스스로 포기한 것 아니겠는가.
“분석을 들어보니, 한신대 신학대학원은 본교 출신은 2년, 타교 출신은 3년을 공부하는데 본교 출신은 리버럴한데 반해 타대학 출신은 대형교회에서 은혜 받고 온 이들로 상당한 거룩주의가 있다고 한다. 모집인원 30명은 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16명은 수강신청을 하자마자 올라왔다. 이들은 주저 없이 신청한 확신범들이다. 그 이후로 한 명도 더 추가가 없었다. 그래도 예수 12제자보다 4명이나 더 많다. 그러니까 굉장히 많은 숫자다.”
-앞으로 도강생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우선 서울시내에 있어서 집에서 가깝고, 내가 옛날 공부했던 그 자리여서 감회가 깊다.” -이번 강의를 통해 수백만 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한 학기 강의만으로 그렇게 되겠는가.
“(한신대)채수일 총장님이 내년에 석좌교수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 한신대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다. 내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지만 신학대 강의만은 개인적인 사정을 희생해서라도 협조하려고 한다. 학생들에게 많은 건 줄 수 없어도 상징적인 것을 해주면 몇 년만 지속해도 임팩트는 굉장히 클 수 있다. 기장이라는 교단이 지원이 되고 있기 때문에 임팩트가 클 수 있다. 그러면 타교단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는 고교와 대학 때 영락교회를 상당히 나갔다. 한경직 목사님 설교가 좋아서였다. 그때 한 목사님 설교는 영성도 있었지만 인문학적으로 뛰어난 설교였다. 예장(예수교장로회)이 보수적인 것만이 아니다. 예장도 많은 것을 포섭하면서 변할 수 있다. 감리교도 보수적이지만 상당히 진보적인 것이 같이 있다. 서울신학대도 그렇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이런 흐름을 융합해나갈 수 있다면 좋은 기독교 흐름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 민족의 기독교이니.” 목사들이 누구나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 -한국 기독교 제2의 부흥사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 한국 기독교가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가 교통이 안 되는 게 문제인데, 기독교와 세상을 소통시키면 진짜 부흥이 될 것 아닌가.
“한국 기독교를 부흥시킨다는 개념보다, 역사의 장으로 개방되어짐으로써 특수한 담으로 구분되는 기독교가 아니라 우리 민족 역사의 열린 장으로 나오는 기독교가 되면 그게 진정한 기독교가 아닐까 생각하는 거다.”
-지난 30~40년간 한국 교회의 최대 슬로건은 부흥과 성장이었다. 그런데 성장과 부흥이 잘되고 정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대형교회들이 최근 소망교회의 폭력사태를 비롯해 온갖 싸움과 비리로 한국 기독교를 욕먹이고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인가.
“기독교가 현실적 이권과 너무 결탁돼 있는 게 문제다. 대개 보면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야 장사도 잘된다든가, 법률사무소도 교회를 배경으로 해야 된다든가 하면서 현실적인 이권과 신앙이 결탁되어 최고의 권력과도 얽혀있다. 정치권력과 종교가 유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한국기독교의 패망으로 이어진다. 그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재미를 볼지 모르지만 한국기독교 전반의 부정적 함수로 작용한다.
기독교인들이 너무 미래를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고, 유럽의 젊은이들은 교회를 나가는 이들이 없다시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신앙이 강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에서 선택이다. 기독교가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불리하게 급회전할 수 있는데 마치 중세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사회 체제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옛날 원시사회에서 사회제식이나 종교제식이 구분이 안 되고 하나였다. 명절을 쇠는데 나 혼자 쇤다는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기 마음이다. 그러나 교회 목사들이 누구나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게 존 듀이가 말한 ‘커먼 페이스’(공동 신앙)다. 전혀 강요성을 가질 수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교회를 다녀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멘탈리티 속에서 살고 있다. 최고 권력과 결탁되는 느낌을 주는 종교는 패망한다. 패망함수를 부흥함수로 착각하지 마라.” 너무 얻으려고만 하고, 버리는 예수님 말씀 못 들어 -도올 선생님도 늙어가는지 이번 연설문에선 기독교의 사랑과 관용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신앙으로 깊어지면 사랑과 관용이 넘치는 것으로 보지만 그런데 왜 세상의 폭력과 전쟁의 상당수가 종교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종교성만 있지 인문성과 상식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인가.
“종교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은 피상적이다. 기독교는 사랑이고, 불교는 자비고, 공자는 인이라고 통속적으로만 말하면 안 된다. 나는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종교의 지혜의 본질이라는 것은 자기부정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무아다. 예수에 있어서도 철저한 십자가, 무소유, 철저하게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유교도 어떤 의미에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자기 인식이고, 평범성에 대한 재발견이다. 극기복례고. 중용이라는 게 일상성이고, 평범한 데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데서 구하려고 하지 말라.
아까도 당신은 삶에서 예수를 느끼냐는 대답을 하기 위해선 내 인생에서 얼마나 나를 부정하고, 내가 얻은 학식과 명예와 지위와 돈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실제로도 버리는 삶을 살고 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 얻으려고만 하고, 버리는 예수님 말씀을 못 듣고 있다. 두드리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는 것도 다 얻는 얘기만 하는 것 아니냐. 반대 말씀도 많은데. 진정한 사랑은 자기 부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부정 없이 될 수가 없다. 1차적으로 특히 요새 같이 기본적인 삶의 여건이 마련돼 있을수록 평범함으로 돌아가고, 일상적인 자기에게 돌아가, 자기에게 주어진 혜택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훈련이 진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미동맹에 얽매여 민족 주도권 뺏기는 건 광란 -가장 큰 기득권은 자기 목숨인데, 요즘은 소 돼지는 생매장시키지만 자기 목숨은 심장, 간, 신장 갈아 끼워서라도 100살 넘어서까지 버릴 수 없다는 이들이 많다. 도올 선생님과 내가 70~80년 뒤에도 자기 기득권을 못 버린 채 몸도 제대로 못 가눈 채 어기적 어기적 거리면서 만나는 사태야말로 인류의 비극 아닌가.
“난 그래서 ‘오래 살아서 나의 있는 힘을 다해 사명을 다 한다’는 것을 최근 내 사전에서 빼버렸다. 오래 살면 안 되겠다. 주어지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다가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건강한 윤리를 가지고 이 나라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젊은이들에 대한 본질적인 배려와 고민이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한다.”
-대형 보수교회 목사들 사이에서 우리나라에선 아직 시술이 불법인 줄기세포 시술을 중국, 일본 가서 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는데, 천국을 그토록 열망하는 설교를 하는 분들이 내보이는 말과 가장 다른 양태를 보이는 것이 현실 아닌가.
“하늘나라에 빨리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오래 살려고만 하는지….”
-작년에 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고발됐다가 각하된 일 겪으며 느낀 것은.
“4대강 팔 돈이 있다면, 그것을 동해안 철도나 시베리아 철도를 놓건 핫산 지역을 개발하든 북방지역에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돈들이 4대강에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이 아름답게 살 나라를 우리가 헌신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한이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합세해서 새로 부상하는 중국과 조화로운 관계를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남북이 분열되는 관계로 중국과 관계를 가져가고 있다. 북에 중국 군대가 주둔하는 사태까지 유도했다. 민족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죄악이 될 것이다. 기독교가 남북문제에 아주 본질적인 화해 함수가 되지 못하면 이민족의 종교로서 자격을 상실한다. 우리 민족의 미래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대소관계라든가 대중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한미공조를 더 견고하게 할 수 있다는 역설적 논리를 터득하지 못하면 정치인 자격이 없는 새끼들이다.
한국 전쟁 이래로 이 지구상에서 이렇게 로얄하게(충성스럽게) 미국과 관계를 가져온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두터운 한미공조의 역사적 베이스를 가진 민족이 그것을 자산으로 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지, 거기에 얽매여 그것을 희생시키면서 민족의 이니셔티브(주도권)까지 빼앗기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과도 거리가 먼 바리새인들의 광란이 불과한 것이다.” 문명 중심,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요즘 주로 집중하는 것은
=주로 번역을 해왔는데, 최근 도마복음 한글역주가 문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가 됐고, 효경 한글역주는 우수 학술도서가 됐다. 학자는 공부를 해야 된다. 내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고 있는 것 같다. 공부를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내 나이가 조금 들면서 비로소 공부를 시작해볼 욕심이 나는 것 같다. 지금부터 나는 정말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독서를 하고, 동아시아 새롭게 부상하는 질서에 대해서 어떻게 철학적으로 정리해서 루소나 로크가 근세정신을 만들었듯이 동아시아의 21세기 정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문명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는 전환기다. 중국이 천안문에 대형 공자상을 세운 것은 미국주도의 기독교문명에 대항해 유교적 가치를 내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G2(세계 양대 강국, 미국과 중국)의 사상 문명이 대립하겠지만,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문명과 유교, 불교, 전통 한울님 사상이 조화시킨 경험이 있는 한국이 양대 문명의 조화에 기여할 수는 없을까.
“도마복음 한글역주를 쓸 수 있는 것도 내 안에서 융합이 안 돼있으면 쓸 수 없었다. 중국인은 쓸 수 없다. 앞으로 중국이 공산주의를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면서, 포기해서도 안 되겠지만, 글로벌 리더쉽을 가지고 가려면 지금 유교와 기독교의 융합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정치체제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주의의 조화라든가, 이런 모든 문제가 21세기에 중국의 과제이면서 인류의 과제다. 우리나라는 이런 과제에 대해 먼저 실험을 거친, 문명으로서 중국에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일본은 과거에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질러 도덕성이 없다. 우리는 항일운동을 함께 해왔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중국 가서 교회당이나 지으려고 해 중국공산당의 경계심만 부추기고 있다. 작년에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120명이 왔을 때, 내가 강연을 했다. 그 강연문이 중국의 <문화종횡>이라는 잡지에 나왔다. 중국의 미래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고 인류의 미래라는 제목이었다. 지금 나로서는 중국이 인류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전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관심사다. 19세기 유럽문명이 20세기 미국 문명으로 간 전환보다는 미국 문명이 21세기 중국문명으로 가는 전환에서 뭔가 본질적으로 다른 요소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19세기 산업혁명을 넘겨받아 20세기 미국은 효율을 높였지만, 우리는 효율보다는 역으로 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것이 중국의 21세기 과제다. 거기서 우리가 제시할 것이 많다.” 중국에 연예의 한류만이 아니라 사상의 한류 필요 -중국도 천박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욕망과 패권주의적 오만이 날로 극성해져 현재까지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문명의 전환이 인류에겐 희망을 줄 것으로 보이지 않지 않은가.
“중국의 경우는 의회민주주의를 기초한 체제가 아니고, 공산당 전정을 중심으로 한 체제인데, 공산당 전정의 체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인치(人治)다. 위대한 인간, 도덕적 인간들이 배출되어서 리더쉽을 가져간다면 민주주의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중국이 서구적 민주주의를 곧바로 도입하면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뭔가 새로운, 리더쉽이 정신만 차리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역사의 방향을 올바로 가져가면, 서구적 모델이 아닌 다른 모델을 인류에게 제시하리라는 희망을 나는 아직은 버리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별로 없다. 미국처럼 자국민 선거로만 하면 외국인들이 뭘 할 수 있느냐. 중국은 우리가 역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천안함 사태나 안겨주니, 중국인들이 너무 깔보게 만드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 정치의 부재다. 역사적 경험을 살려서 중국과 합작할 일들이 많은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도시모델을 어떻게 가져가고, 그린 공장을 중국이 어떻게 선도할 수 있게 일깨워줄 수도 있다.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것들이야말로 너희가 흥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각인 시키는 게 우리가 해야될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역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비극이다. 중국이 문화혁명 이후 지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내 세대에선 동서학문을 모두 공부한 내 스타일이 없어서 어필하는 환경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중국의 대륙을 대상으로 활동도 많이 할 것이다. 연예 한류만이 아니라 사상의 한류가 필요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한신대 졸업식 기조연설 전문 더불어 가는 실천지성을 위하여 결코 길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저의 지나온 삶의 시간 속에서 가장 흥분되고, 가장 젊은 로맨스가 피어오르고, 가장 이상을 향한 도약의 발디딤이 세차게 나의 몸을 격분시키는 이 순간, 나의 의식 속에는 수유리 산 129번지 솔밭 사이로, “임마누엘”이라는 이색적 문자 아래 펼쳐진 한신동산의 노오란 금잔디밭의 노스탈자가 아롱집니다. 그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고 계셨던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항일민족정신의 큰 요람이었던 북간도 용정 명동학교의 정맥을 이으신 문재린 목사님이었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학우들과 오손도손 청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지요.
7번 버스를 타고 수유리 입구 정거장에서 내려 기다랗게 뻗친 좁은 미루나무길을 걸어 들어오다 보면 화계사를 돌아 내려오는 맑간 시냇물이 나오고, 그 시냇물을 건너면 임마누엘 동산이 보였지요. 1967년 1월 7일, 나는 내 생애 처음 아주 멋쩍게 그곳을 들어섰습니다. 좀 두근거리기도 했지요. 입학원서를 사려구요. 그 임마누엘 하얀 2층 건물 입구에서 훤칠한 키에 두터운 흰 동정이 도드라뵈는 까만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주 인자한 분을 만났어요. 정말 환한 광채가 도는 아름다운, 해맑은 얼굴이었습니다. “입학하러 왔습니다. 원서는 어디서 사나요?”
그분은 나를 1층 교무실로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훗날 그토록 격렬하게 온몸을 불살라 행동으로 이 땅의 민주화에 헌신하신 문익환 목사님이시라는 사실을 저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큐우슈우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제의 인체실험대상이 되어 꽃다운 28세의 나이로 순국한, 명동학교 동창생 윤동주의 별 헤는 밤들이 문 목사님의 아스라한 동경, 이 땅의 의로움에로의 소명이 되었을까요? 몇 년 전 백양사에서 지선스님을 뵈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연대 앞 사거리에서 최루탄이 계속 터지는 자옥한 최루연기 속에서 지독한 스님 수행생활을 거친 본인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자리를 뜨려는데, 문 목사님은 태연히 서 계시며 빙그레 웃으시더랍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은총이 쏟아지는 것 같소.” 저는 문 목사님께 구약학개론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때 “공동번역”에 열중하고 계셨는데, 정말 하루하루가 환희에 넘치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소녀 같은 마음과 얼굴을 하신 이우정 선생님으로부터 희랍어라는 문자를 처음 접했고, 신약학개론을 배웠습니다. 그때의 체험을 여기 다 말할 수 없겠지만, 저의 삶이 추구한 모든 가치의 저변을 형성해준 것은 한신대 귀뚜라미 우는 동산에서 밤늦게까지 속삭였던 정의와 초월의 담론이었습니다. 그 뜨거운 진실이 영원한 엘랑비탈이 되어 나를 비상(飛翔)케 했습니다.
아무리 나의 영혼이 대붕이 되어 구만리 장천을 소요(逍遙)해도 항상 나를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낭만은 하나님의 진노로써 독재정권의 불의와 대결하며 민중신학을 탄생시키고 진정한 에큐메니칼 정신의 개방성을 견지해나간 임마누엘 동산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약관의 나이에 제가 홀로 한신대에 입학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또 왜 한신대를 떠나야만 했는지, 사실 이러한 삶의 굴곡은 저 자신조차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질 못합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짐을 꾸려 어깨에 메고 기나긴 미루나무길을 다시 걸어나올 때 저에게 들려온 하나님의 소리를 저는 지금도 매우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나의 더 큰 뜻이 네가 걷고 있는 이 길에 있으리라!”
저는 그 뒤로 모든 종교인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철저한 인문주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인문주의는 최소한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나, 공리주의적 요구나, 실천이성적 요청이나, 개인의 체험적 울타리 속에 가두는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신비주의가 말하는 무(無)적인 모호한 개방성 속에 하나님을 방치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절대적 타자의 떨림의 신비를 감득하면서 존재의의를 발견하는 엄숙주의를 견지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인간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인간을 하나님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저는 전적인 타자(the Wholly Other)를 오직 내 몸 안에서 발견해왔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절대적으로 타자화하면서 나를 순화시키고 나의 주체를 심화시키는 신독(愼獨)의 탐색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천국은 결코 드러나고 나타난 데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은밀하고 미세한 데 있었습니다. 은밀한 것처럼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인(知人)은 곧 지천(知天)입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우주만물에 대하여 경외감을 느끼고 조화로운 교섭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외로운 신독의 여정을 의아스럽게 바라보는 많은 자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하는 모교 한신대학교는 저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것이 비록 형식상 명예졸업장이기는 하지만 저로서는 입학한 지 44년만에 받는 소중한 진짜 졸업장입니다. 저는 실상 44년 동안 한신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동안 한국신학대학도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주요분야를 포섭하는 훌륭한 종합대학인 한신대학교로 성장하였습니다.
한시도 저는 임마누엘동산에서 꾸었던 청춘의 꿈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무수하게 많은 졸업논문을 썼습니다. 단언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결코 “길 잃은 양”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는 금의환향을 하지도 않습니다. 저에게는 어설픈 타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외로운 인문학의 여정을 포섭하기로 결단한 한신대학교의 채수일 총장님, 그리고 신학대학원 강성영 원장님 이하 한신대학교의 모든 교수님, 그리고 이 결단을 환영해준 한신대학교 학생회 여러분, 그리고 대학생 동학 여러분, 그리고 교단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목회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는 봄학기부터 저의 청춘의 꿈이 담겼던 수유리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중용의 신학”이라는 전공과목 한 강좌를 가르칩니다. 어려서 천안 씨알 농장을 왔다갔다하곤 했던 저를 그토록 귀여워 해주시던 함석헌 선생께서 ‘노자’를 강의하시던 바로 그곳에서, 저는 철학적으로 가장 진보된 유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중용’을 강의합니다. 그런데 수강계획표를 컴퓨터에 작성해 올리자마자 16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30명 제한인데 16명이 수강을 신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리 기다려도 한 명도 더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서 가장 적은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가장 많은 학생이 듣는 행복한 강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보다도 네 사람이나 많은 학생이 자발적인 결단에 의하여 제 과목을 신청했다고 하는 사실은 한국기독교가 아직도 건강한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겸손한 자세로 임할 것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모든 진리를 전할 것입니다. 파송시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전대도, 배낭도, 신발도, 지팡이도, 속옷도 없는 가난하고 벗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전할 것입니다. 저는 타인의 내면적 신앙의 형태에 관한 충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떠한 내용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교정되어나가기만을 희망할 뿐입니다. 단지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목회적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강한 상식입니다. 제가 교육자로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종교인이기에 앞서, 그들을 매력적인 인간으로 성장시켜 주는 일입니다. 근세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적 근간을 마련한 죤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교회에는 진짜 교회가 있고 가짜 교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의 해답은 매우 명료합니다. 관용을 할 줄 아는 교회만이 진짜 교회이고, 관용을 할 줄 모르는 교회는 가짜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란 예수님의 말씀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율법적 가혹함이 아닌 관용이요, 이방인에 대한 증오가 아닌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신봉하는 에클레시아의 사람들이 관용을 모르고, 독선과 배타와 증오와 분열과 훼방과 시기만을 일삼는단 말입니까? 이것은 저 도올의 말이 아니라 서구 근세사상을 형성해간 모든 기독교사상가들의 호소입니다. 로크의 관용론이 의회와 정치권력을 분리시켰고, 명예혁명을 성립시켰고, 권리장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전쟁을 격발시켰고 미국의 헌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교회는 명예혁명 이전의 수준도 안 되는 조잡한 배타론의 포로가 되어있습니다. 로크가 말한 “관용”이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에 관한 관용입니다. 그리고 이 관용은 당시의 정치권력에 요구한 것이라기보다는 영국교회에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로크의 관용의 개념이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에 대한 관용까지도 포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은 유신론의 한 형태일 뿐이며, 근세 과학적 이신론(理神論)의 한 변형태일 뿐입니다. 무신론자라 해서 그 모두가 하나님을 저버리는 방종한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경건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는 훌륭한 하나님의 경배자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의 논변은 또다시 신학적 논쟁의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서의 해석이, 신·구약을 막론하고, “사건”으로서 우리의 현재적 다자인(Dasein)의 삶의 지평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민중신학의 논리를 확인하고자 할 뿐입니다. 한신대학교는 지금으로부터 71년 전 조선의 신자가 조선의 교회사역의 주체(主體)가 되어야지, 서양선교사 사역의 객체(客體)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민족주체주의적 자각 위에서 설립된 조선신학교로부터 출발한 대학(大學), 즉 큰 배움의 터전입니다. 조선신학교 개원의 이념적 지주였던 장공 김재준 목사님께 저는 제 인생 처음으로 “동양사”강의를 들었습니다. 저의 동양학적 탐색이 김재준 선생님의 강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참 기묘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죠. 저는 장공 선생님께서 민주화투쟁으로 캐나다에 망명하고 계실 동안에도 몇 번 찾아뵈었습니다. 귀국하시기 전 제가 미대륙에서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저에게 ‘관자’(管子) <권수>(權修)편에 나오는 구절을 매우 정갈하고 아름다운 서도 붓글씨로 써 주셨습니다. 一年之計, 莫如樹穀; �f댓携�,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일 년을 잘 살기 위해서는 곡식을 심는 것이 상책이고, 십 년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는 것이 상책이고, 종신토록 잘 살기 위해서는 꼭 사람을 심으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죠.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글귀를 써 주시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결국 한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하셨던 것 같습니다. 놀라운 형안입니다. 곡식은 하나를 심으면 하나를 얻지만, 나무는 하나를 심어 열을 얻고, 사람은 하나를 심어 백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저도 말씀드립니다. 과장함이 없이 첫 수강자 열여섯 명을 모두, 한 명당 백만 명을 건강한 관용의 시민으로 계도할 수 있는 목회자로서, 이 조선의 땅에 심겠습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더불어 가는 한신대학교의 실천지성이여! 당신은 무엇과 더불어 가고 있습니까? 나 도올은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이 민족의 미래와 더불어 가야 합니다. 종교가 하나의 민족을 위하여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교회가 처한 민족의 현실을 외면하고 글로발라이제이션이나 네오리버랄리즘을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요 무지요 타락이요 부패입니다. 글로발라이제이션의 보편주의를 말하면서 제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고, 제 민족의 타민족에게로의 종속을 정당화 시키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재차 불러일으키지 못해 안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신앙입니까? 어떻게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입니까? 현 남북 간의 긴장조성의 현실태는 우리 민족이 일으킨 일도 아니요, 민중의 바램도 아닙니다. 남북한의 소수 정치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이기적 권력의 유지를 위하여 조작해낸 불행한 정치산물일 뿐입니다. 그 산물에 대해 강대국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지요. 불행하게도 한국의 보수기독교는 남북화해의 최대걸림돌 노릇을 하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시대에도 예수를 비방하는 자들이 끄떡하면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정의로운 생각을 하는 자들을 향해 끄떡하면 “빨갱이”라고 외치는 것과 똑같지요. 그런데 나대는 “빨갱이 응징주의자”들의 대부분이 대형기독교교회의 목사·장로·권사·집사인듯한 인상을 주고있는 것 또한 무시 할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善待)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우리가 북한사람들이 어떠한 바보스러운 짓을 한다 해도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선대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용정신을 가지고 있지 아니 하다면 어찌 크리스챤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이까?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 마치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정치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결국 한국기독교의 최대의 자멸함수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제 외침은 예레미아의 비통한 애가보다 더 비통하게 메아리칠 것입니다. 히브리 예언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그 멸망을 넘어서는 희망을 말했습니다. 한신대학교는 글로발라이제이션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글로컬서번트십(glocal servantship)을 말합니다. 한민족의 로칼리티(locality)를 통하여 전 우주적 유니버살리티(universality)에 도달할 수 있는 인문학의 인재를 배양하는 것을 대학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대학(大學)은 소학(小學)이 아닙니다. 작은 배움이 아니라 큰 배움의 터전입니다. 대학은 결코 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성품적 인간을 양산하는 인재수급공장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의 유수대학들은 모두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성(efficacy)이라는 하나의 원칙에 따라 대학을 상업화시키고, 학부제를 만들고, 신자유주의의 터전으로 만들고, 진정한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의 인문정신을 추방시켜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외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제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오직 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너를 변화시켜라!” 한신대학교는 오늘날 한국에 만연하고 있는 대학의 풍조에 반드시 역행(逆行)해야 합니다. 학부제를 거부하고, 어학의 기초훈련을 강화하고, 선택과목보다는 필수과목을 중시하고, 자유보다는 자율의 덕성을,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윤리를, 그리고 이성을 포괄하는 심미적 감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품과 품격의 학풍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의 궁극적 목표는 기성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기성의 사회를 끊임없이 개혁해나갈 수 있는 혁명적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지식은 오로지 자기변혁과 사회변혁을 통해서만 자기화·생동화 될 수 있습니다. 엊그제 채수일 총장님을 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 대학교만이라도 A·B·C·D라는 식의 학점을 없앴으면 좋겠어요. 그 대신 그것을 진실한 교수님의 기술(description)로 바꾸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잘 정착되기만 한다면 결국 한신대학교의 특수성을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대학에서부터 등급적인 인간이해를 없애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위대한 발상입니까? 한신대학교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나긴 고난과 핍박의 시련을 통하여 다져진 상호이해와 협력의 전통이 강한 곳이라는 사실을 저는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수유리 한신동산의 본관건물을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장공 선생님의 매우 힘찬 글씨가 목각으로 걸려 있습니다. 慕義如飢渴 그런데 제가 아는 바로 이것은 중국고전에서 따온 문구는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6절의 말씀의 옛 한역 성서문구에서 따오신 말씀 같은데 그것을 그냥 한학자인 저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정의로움을 사모하기를 굶주린 듯, 목마른 듯 하라”라는 말씀이 됩니다. 아마도 장공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고 싶어하신 것은 이러한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를…”이라고 말씀하지도 아니 하셨고, “하나님의 정의를 사모하기를…”이라고 말씀하지도 아니 하셨습니다. 오직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사모하기를 굶주린 듯, 목마른 듯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본문의 “디카이오쉬네(dikaiosyne)”도 종말론적 함의를 뜻한다기보다는, 결국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정의로운 개인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석가들은 의견을 모읍니다. 개인의 정의로움과 사회의 정의로움이 일치될 때 비로소 천국의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뜻이지요.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도 결국 법정용어로서 하나님의 죄지은 인간에 대한 관용과 용서의 판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결국 사회정의 속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사회정의야말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입니다. 더불어 가는 한신의 실천지성 여러분! 정의로운 인간이 됩시다!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따위의 천박한 개념을 초월하여 이 세계를 개혁할 수 있는 힘을 기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실력을 배양해야만 합니다. 사회에서도 성공하는 큰 인물이 되시기를 본 졸업식의 강연자로서 오늘 저와 같이 학위모를 쓰는 학우 여러분의 앞날과 건강을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성공이 인류의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그것이 기장교단의 내실로 이어져 한국기독교를 개혁하는 동력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자아! 힘차게 노래부릅시다! 한민족 가슴과 인류의 역사 속에 신성한 하늘 뜻 심고 가꾸려 대학의 이상을 높이 들었다 학문과 자유와 정의를 위해 교육의 이념을 이루는 우리 만대에 빛나거라 지성의 요람 세계에 뻗어나라 한신대학교 2011년 2월 17일 11시, 한신대학교 채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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