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하면서 준장 진급할 때만큼 기분 좋았던 적은 없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더라.”
한 예비역 장군이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했을 때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군 장교들에게 장군이라는 계급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장군을 바라보는 군 안팎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장교들이라면 누구나 스타(★)가 되는 꿈을 꾼다. 장교로서 가장 높은 계급인 장군이 되는 것은 자신이 속한 군이 필요로 하는 경험을 모두 갖춘 것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장군은 국방개혁의 대상이기도 한다. 노무현정부 국방개혁 2020 시절부터 장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담해졌다. “군 병력은 감축되는데 장군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정부가 국방개혁 2.0을 통해 장군 정원 감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이같은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군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진급 및 보직 경쟁 격화, 전투병과와 비전투병과 간 갈등 심화 등의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軍 일각 “밀어붙이기식 장군 감축은 위험”
국방부는 외부전문가가 참여한 ‘장군 정원 조정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장군 규모에 대한 검증작업을 하고 있다. 대체로 80~100명의 장군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박근혜정부 당시 추진됐던 장군 감축보다 더 큰 규모다. 군 관계자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내 장군 직위를 감축하고,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 본부 조직을 슬림화하며, 비전투부대 직위를 조정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장군 규모를 확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의 장군 정원은 1960년 240여명에서 1979년 440여명으로 늘어났다가 1986년 380여명으로 줄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경비 소요 증가 등에 따라 440여명으로 다시 늘어났으나 이명박, 박근혜정부 국방개혁 추진과정에서 430여명으로 감소했다.
군 내부적으로는 장군 정원 감축 자체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휴전선 일대 작전을 전담하는 육군 1,3 야전군사령부가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되고, 일부 군단과 사단 개편작업이 진행되면서 장군 정원 감소는 예견된 상황이었다. 인구 절벽 시대를 맞아 총병력이 50만명으로 감소하는 상황도 고려됐다. 지난해 12월 장군 인사에서 준장 정원을 최초 계획보다 7명 줄인 것도 장군단 감축을 위한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장군 100명을 줄여라”는 식의 장군 정원 감축은 위험하다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계급과 직위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은 우리 군보다 장군 정원은 적지만 대장은 각 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각 지역에 파견된 통합군사령관과 전략사령관, 합동특수전사령관 등을 합치면 우리 군보다 많다. 유사시 미국 본토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육해공군이 함께 작전을 펼치는 미군의 특성을 고려했다는 평가다.
비전투분야 장군급 지휘관 직위를 조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불만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기간 군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인사법 24조에 의해 군에서 22년, 중령으로 4년 이상 근무한 장교는 전역 보류자를 제외하면 대령 진급대상자다. 하지만 육해공군은 전투병과 장교 대비 비전투병과 장교의 진급시기를 최대 2년 늦추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인사, 병기, 정훈, 법무, 시설 등 비전투분야 장군급 지휘관 직위를 조정하고 비전투분야 현역을 전투분야로 전환 배치하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수십년 동안 쌓아온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투분야와 비전투분야 장교 간의 갈등을 키우고 군의 화합을 저해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군 소식통은 “국방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싸워 이기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라며 “전장 임무 수행이나 작전 등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장군 감축은 전투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군단 감축 이후가 더 문제다
“장군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 대령들 간 진급 경쟁과 갈등이 심해지고, 중령들은 ‘어떤 대령에게 줄을 설까’ 눈치를 볼 것이다.” 한 예비역이 장군단 감축의 부작용에 대해 남긴 말이다.
군에서 대령은 장군으로 진급하는 마지막 단계로 장군 진급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대령 중 장군이 되는 사람은 매우 적다. 2015년 육군 대령→준장 진급 대상자 803명 중 진급한 사람은 58명으로 전체의 7% 수준에 그쳤다. 장군 숫자가 100명 가까이 줄어든다면, 장군 진급이 가능한 대령들은 지금보다 더 줄어든다. ‘장군 진급 열차’를 타기 위한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과열된 진급 경쟁은 ‘꿀보직’을 얻기 위한 보직 경쟁으로 이어진다. 국방부는 군 인사가 발표될때마다 “능력과 성품을 기준으로 선발한다”고 하지만 ‘스타 등용문’이라 불리는 보직을 거치거나 군 수뇌부와 가까운 거리에서 일한 사람이 장군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장군 진급 인사 관련 자료 10년치(2007~2016)를 종합 분석한 결과 대령→준장 진급률이 50%가 넘는 보직은 21개였다. 가장 진급률이 높았던 보직인 합참 해외파병과장은 10명 중 8명이 진급했다. 군수사령부 계획운영과장과 3군사령부 작전과장도 10명 중 7명이 진급했다. 국방부 미국정책과장과 인사기획관리과장, 육군본부 군수운영/재난관리과장과 동원기획과장, 합참 화력과장과 합동작전과장 등도 스타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준장→소장 진급 과정에서는 3군사령부 작전처장, 2작전사령부 작전처장,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처장, 합참 작전처장 등 작전 관련 보직을 거친 사람이 쉽게 진급했다. 이들 보직 중 90% 이상을 육군이 차지했다.
이는 보직을 이용한 줄세우기, 이너 서클 형성을 가능케 하는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다. 대령 보직인사는 철저한 심사와 검증과정을 거치는 준장 진급과 달리 상대적으로 간소한 편이며 외부의 관심도 낮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밀어주고 끌어주기’ ‘사관학교 출신 보직 대물림’ 등이 쉽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이 분석한 군 보직 관련 자료를 보면 이같은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직으로 꼽히는 합참 화력과장은 2011~2016년 육사 41~46기가 차례로 보직을 맡았다. 이외에도 합참 해외파병과장, 3군사령부 작전과장, 국방부 미국정책과장, 육군본부 정책기획과장, 1군사령부 계획편성과장 등 준장 진급률이 높은 대령 ‘꿀보직’은 육사 출신이 독식했다.
육군 기준으로 볼 때, 장군이 되려면 전투병과 출신으로 작전 관련 보직을 맡다가 대령 진급 후 수도권(국방부, 합참, 한미연합사 등)이나 육군본부에 근무하면서 잠재적 심사위원들에게 눈도장을 받는 것이 쉬운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우수한 능력을 가진 영관급 장교들이 연대 작전과장 같은 힘든 보직을 기피하고 국방부, 계룡대, 한미연합사를 비롯한 정책부서 근무를 선호한다 해도 말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장군의 수를 줄이고 군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는 국방개혁 2.0의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장군 정원을 감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장군은 군 조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해있다. 장군에 대한 조치는 영관급, 위관급 간부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군 인사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전제로 장군 감축을 검토하지 않으면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장군 진급 시기마다 투서와 음해, 로비 시도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풍토에 실망한 젊은 인재들이 군문을 등지고 떠나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계급에 관계없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는 인식을 장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과 직위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방편일 뿐, 군복을 입고 있으면 군과 정부가 자신을 인정하고 명예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군 인사제도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과 군인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국방개혁 2.0을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는 국방부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