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미보 방문에 앞서 전송된 이·통장 동원 문자 의혹과 관련, 지역 의원보좌관이 같은 형식의 문자를 만들어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또 회장 명의로 동원 문자를 보낸 지역 농민은 5월 2일 서울역에서 열린 4대강 보 해체 저지 상경집회 참여 독려 문자도 회장 명의로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구미보 방문을 앞두고, 구미시 이·통장연합회 조모 회장이 이·통장들에게 전날 ‘단합된 모습으로 현수막을 준비하고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 협조를 구한다’는 문자를 발송한 사실이 드러났다. (…) 더욱 이상한 사실은 문자 발송 경위와 문자 내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문자 내용상 60대 중반 고령의 노인으로 보이는 연합회장이 휴대폰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특수문자에 장문의 안내문을 작성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 작성의 배후는 누구이며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5월 14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논평이다.
전날 황교안 대표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와 구미보를 방문해 ‘4대강 보 철거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등 ‘민생투어’ 행사를 가졌다. 의혹은 이틀 전 구미지역 이·통장연합회 대표가 이·통장들을 대상으로 동원 문자를 보낸 것이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민주당 중앙당과 지역 도당은 정당행사에 관조직을 동원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86조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 조항에 대한 정면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법 위반의 대가도 무겁다. 같은 법 255조에 따르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사안은 의혹 제기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동원 문자 “‘제3의 인물’ 윤모 총무가 발송”
구미시 총무과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실제 문자 발송자는 조모 이·통장연합회장이 아니라 연합회 사무국장이 회장 명의로 발송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제보받은 문자를 보면 실제 발송자는 따로 있었다. 조씨가 동시에 회장을 맡고 있는 선산읍 이장협의회 윤모 총무였다. 윤모 총무는 선산읍 원2리 이장이다. 구미시 조사에서 조 회장은 5월 11일 오전 8시쯤 해당 문자를 발송한 뒤 “문제가 된다”는 지적을 받고 당일 오후 문자 발송을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장협의회 윤씨가 조 회장 명의로 발송한 문자를 보면 5월 13일 오전 6시47분 발송한 것이다. 황교안 대표의 구미 방문 당일이다. 문자에는 ‘우리 이장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로 우리 지역 의원님들의 입장을 한 번 세워줍시다’라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민주당 경북도당 측은 “윤씨도 실제 작성자가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조직이 명의를 도용해 대량발송시스템으로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조 회장도 모르게 명의 도용이 있었다면 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도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황 대표의 구미보 방문 일주일 뒤인 지난 5월 20일 구미를 찾았다. 조 회장과 윤 총무는 기자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모내기철이라 바쁘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 모두 전화로 취재했다. 다음은 윤씨 집 앞에서 전화로 나눈 일문일답.
-조 회장 명의로 된 문자는 윤 총무 휴대폰으로 발송됐다. 이유가 뭔가.
“나는 이장협의회 총무다. 총무가 회장을 대리해 써서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몇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나.
“선산읍 이장협 소속 이장 26명에게 보냈다.”
-보낸 문구를 보면 휴대폰에서 입력할 수 없는 특수문자가 삽입되어 있다. 실제 보냈다면 어떻게 특수문자를 입력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달라.
“60대 중반 노인 어쩌고 하면서 비하하던데 나도 대학 다 나온 사람이다. 특수문자 입력방법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휴대폰으로 특수문자 입력이 불가능해 대량발송시스템 같은 것을 사용한 것 아닌가. 아니면 최소한 그렇게 받은 문자를 가져다 아래 내용만 입력한 것 아닌가.
“내가 직접 쓴 거 맞다. 취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기분 나쁘다.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
역시 이날 통화에서 조 회장은 “문자는 자신의 지시로 보낸 것”이라고 답했다.
-이·통장들에게 그런 문자를 보낸 것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
“무슨 선거냐. 지난 1월과 2월 구미보에서 물을 빼 농사를 짓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중앙에서 유력한 사람이 방문한다고 하니, 우리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해도 같은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내용을 본인이 쓴 것은 맞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보내라고 해서 보낸 거 아니겠느냐. 지금은 모내기철이라 바쁘다. 문자는 내 이름으로 보냈지만 나도 그 행사에 참여하진 않았다.”
■ 원본은 자유한국당 지역 당협이 작성 문자의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제3의 동원 문자를 확보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구미 방문’이라는 제목 옆에 별표(★)를 붙이거나 일시·장소 표시 옆에 손가락 표시(☞) 등 특수문자를 쓴 것은 동일했다. 그런데 발신일은 5월 12일 오전 10시42분이다. 지금까지 논란 과정에 등장하지 않았던 문자다. 발신인 휴대폰 번호의 소유주를 확인해봤다. 구미 지역구 의원인 장석춘 의원의 지역보좌관이었다. 지역보좌관 ㄱ씨의 말이다. “그 문자는 우리가 만들어 당협에서 당직자들, 시·도의원들에게 보내는 문자였다. 논란이 된 이·통장에게 보냈던 문자와는 무관하다.”
-이·통장에게 보낸 문자 발송일은 11일이었다. 동원 논란 이후 불거진 윤씨 문자는 13일이었고, ㄱ보좌관의 휴대폰으로 발송된 문자는 12일이다. 뒤에 덧붙여 있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되, 논란이 되었던 특수문자를 사용한 앞부분은 같다.
“언제 처음 보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당원이나 당직자들에게 보낸 문자다. 행사 3~4일 전에 1차로 보냈고, 그 후 2차, 3차로도 보냈다. 우리도 당직자들에게 인원 동원, 행사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구는 누가 만들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협에 저와 여직원을 포함해 3명 정도가 근무한다. 내가 여비서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다. 문구는 당협 사무실 PC로 만들었다.”
-논란이 되었던 이·통장 동원 문자는 당에서 만든 그 문구를 복사해 보낸 것이 아닌가.
“정리하자면 우리당 당원이나 당직자들에게 문자를 발송한 것이 맞고, 이·통장에게 문자를 보낸 적은 없다.”
“황교안 구미시 방문 안내 문자를 당협 PC를 써서 만들었다”는 장석춘 의원 지역보좌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서 “자신이 직접 특수문자를 입력해 만들었다”는 윤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취재과정에서 지난 5월 2일 자유한국당이 대거 참여해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4대강 보 해체 저지 1차 범국민투쟁대회’ 참가 독려 문자도 확보했다. 문자 발송일은 4월 29일. 역시 윤씨가 조 회장 명의로 이장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왜 그게 문제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 여기는 자유한국당 왕국이었기 때문이다. 통장이나 이장협의회와 같은 공조직을 정당 행사에 동원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적어도 여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상식이었으니까.”
구미농민회 김창섭 회장의 말이다. 그나마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구미·선산지역 선거역사상 최초로’ 민주당 시장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말단 공조직 동원이 문제가 된 것이다.
5월 14일 검찰에 이 사건을 고발한 민주당 경북도당은 5월 23일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말 4대강 보 서울 행사 동원 문자 등을 추가로 물어보기 위해 윤씨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