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신문, PC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 뉴스를 보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대중은 여전히 뉴스에 목마르다. 다만 그들이 뉴스를 보는 장소가 달라졌을 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4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를 보면 전통적인 뉴스 플랫폼 이용률이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이동형 인터넷을 이용한 뉴스 소비는 홀로 증가세였다. 즉, 사람들은 점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이 변해가니, 공급자들도 변화를 시작했다. 모바일에서 강세를 보였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들은 새로운 뉴스서비스를 출시했다. PC 시대를 양분했던 네이버와 다음도 모바일 맞춤형 콘텐츠 플랫폼을 출시했다. 그 중심엔 뉴스가 있다. 모바일 시대에 돌입하면서 사람들은 누워서도, 화장실에서도 뉴스를 본다. 하지만 정작 뉴스 생산자인 언론은 생존의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종이 신문과 방송뉴스에서 PC기반의 인터넷으로, 그리고 모바일로 뉴스 소비패턴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리고 모바일 이주민들을 붙잡으려는 콘텐츠 플랫폼들 사이의, 언론 사이의, 플랫폼과 언론 사이의 소리 없는 전쟁은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플랫폼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모바일 시장의 패권 전쟁, 그 상황을 2주 간 연재한다.<편집자 주>
트위터도 지난 10월부터 모멘트(Moments)라는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트위터 유저들이 어느 정도 팔로워가 쌓이기 까지 정보를 받아보기 어려우니, 아예 트위터에서 뉴스를 골라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하자는 취지다. 다만 뉴스의 제‧가공을 제휴 언론에게 맡기는 페이스북과는 달리 트위터는 내부 담당자가 직접 큐레이션을 한다. 국내 포털도 모바일 시대에 맞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1일 제휴 언론사들을 초청해 1boon 서비스 출시 계획을 알렸다. 다양한 형식으로 1분 만에 소비할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목표다. 피키캐스트와 비슷한 개념인데, 카카오의 특성을 살려 SNS는 물론 카카오톡과 연결하고, 소셜커머스 플랫폼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네이버 역시 지난달 17일 ‘네이버 커넥트 2015’ 행사를 열고 모바일 서비스 강화 계획을 밝혔다. 네이버는 대신 ‘검색’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용자의 위치나 정보, 아울러 현 검색의 트렌드 까지 반영한 맞춤형 검색 서비스를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단말기, 플랫폼 업체들도 뉴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애플은 지난 9월부터 ‘애플뉴스’ 앱을 기본 탑재하기 시작했으며 앱을 일일이 열지 않고도 검색창에서 바로 뉴스를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은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어와 함께 ‘업데이(Upday)’ 뉴스 큐레이션 앱을 제작했다. 구글 역시 트위터와 함께 AMP(Accelerated Mobile Page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로딩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시스템이다. 11월 까지 4500여개 콘텐츠 제공 업체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 중심 플랫폼 구축의 핵심은 속도다. 구글의 AMP는 콘텐츠 내용을 미리 캐싱해 모바일 단말기에서 지연 없이 이용자가 해당 페이지에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도 마찬가지의 개념이다. 페이스북 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가 월 1600만명에 이르는데, 이중 1500만명이 모바일 이용자들이다. 따라서 인스턴트 아티클은 PC에서 작동하지 않고 모바일 이용자만 겨냥한다. 인스턴트 아티클 제휴사 페이지에서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의 페이지로 넘어가던 것이 페이스북 내부 링크로 넘어간다. 이렇게 해서 걸리는 시간은 채 1초가 안된다. 만약 사진이 많은 기사라면 언론사 페이지로 넘어가는 로딩속도는 최대 8초까지 걸린다. 페이스북이나 전문가들은 모바일 시대 대중들은 3초 이상의 로딩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게다가 별도 창도 뜨지 않으니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편의가 크게 개선된 셈이다. 김동현 민중의소리 뉴미디어 팀장은 “2016년은 구글과 페이스북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이유로 내세운 것도 역시 ‘속도’다. 김 팀장은 “인스턴트 아티클은 0.8초 만에 열린다. 들어오는 유입자들을 잡아두려면 2초안에 열려야한다”며 “이용자들은 0.8초를 경험하고 나면 몇 초를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다. 새롭게 출시되는 모바일 플랫폼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용자 중심이다. 웹도 마찬가지지만 SNS를 중심으로 한 많은 모바일 플랫폼이 이용자들에게 맞춤형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관계망을 기반으로 지인들이 큐레이션하는 뉴스를 볼 수 있고, 구글은 이용자의 인터넷 활동을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언론이 각 닷컴 페이지를 통해, 또는 포털이 뉴스 편집을 통해 자의적으로 제공하는 뉴스에 대한 불만은 끊이지 않고, 검색을 통해 제공되는 뉴스에는 ‘낚시질’이 빈번하다. 이런 혼탁해진 언론환경에 지친 이용자들은 SNS를 통해 친구들이 제공하는 맞춤형 뉴스를 소비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2014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SNS를 통한 뉴스 이용률은 2011년에 비해 세 배나 늘었다. 카카오의 루빅스도 ‘이용자 맞춤’이 핵심이다. 미디어다음의 뉴스 큐레이션에 대한 공급자와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아예 모바일에서 이용자 뉴스 소비습관에 맞춰 다음 첫 화면 뉴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도 PC가 아닌 모바일에서만 작동한다. PC는 사용자가 여럿일 수 있지만, 모바일은 보다 철저하게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보다 쉬운 뉴스’를 향한 움직임도 이어진다. 뉴욕타임즈의 스노우폴, 피키캐스트 등은 텍스트보다 영상과 이미지로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 피키캐스트의 경우 국내에서 10~20대를 중심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카카오의 1boon뉴스도 자체 CMS 툴을 개발해 콘텐츠 제공자가 쉽게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유통시킨다는 계획이다.
현 상황을 대략 정리하면, 모바일시대에 최적화된 SNS가 강자로 떠오르면서 PC시대 강자로 군림한 포털이나 구글 같은 검색엔진 등이 수성에 나서는 모양새다.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은 이용자들이 페이스북을 통한 뉴스 소비에 길들여진 상황에서 내놓는 공세적 플랫폼이다. 이왕 보는 뉴스, 더욱 빠르게 이용자들이 링크로 넘어가게 만들어 소비자들의 발을 붙잡아두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코리아는 14일 5주년 설명회에서 “SBS와 시범서비스를 하고 있고, 내년에는 대부분의 언론에 확대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아이폰에서만 적용되고 몇 개 언론사만 시범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다수 언론이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공급할 경우, 뉴스 소비 환경이 훨씬 쾌적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페이스북이 언론사들의 PV(Page View)를 빼앗아오는 대신 보상에도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이는 만큼 언론사들도 적극적으로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은 언론사가 직접 광고를 수주할 경우 100% 이익을 제공하기로 했고, 페이스북이 영업으로 수주한 광고도 언론사에 30%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이니, 뉴스 서비스에 있어 포털, 검색엔진들은 수세적으로 보인다. 구글 AMP도 색다른 시도라기 보다는 속도향상 정도에 초점을 맞췄고 네이버 포스트나 V앱, 카카오의 1boon뉴스는 피키캐스트나 아프리카TV 등과 큰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페이스북을 이용한 뉴스소비의 증가세는 좀처럼 막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은 “사람들은 SNS 쪽에서 뉴스를 많이 보는데, 로딩속도가 빨라진다고 구글로 몰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느린 로딩속도 등 구글을 통해 했던 불쾌한 경험을 일정부분 해소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구글이 뉴스에 신경 쓰는 것은 공세적 전략 보단 수비를 위한 방어 전략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검색 전문 사이트 서치엔진랜드 창업자 대니 설리반도 “구글과 트위터는 언론사 등이 페이스북에서 특화된 어떤 것을 만들면서 자신들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값 올라가는 뉴스, 몸값 떨어지는 언론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SNS든 포털이든, 단말기 업체든 모두 뉴스 콘텐츠를 잡으려 시도한다는 점이다. 결국 이용자를 붙잡아두는데 뉴스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김익현 소장은 11월 신문과 방송 기고를 통해 “그동안 뉴스는 언론사들에겐 제구실 못하는 자식과 비슷했다. 돈을 벌어오는 상품으로 어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모바일과 소셜 시대가 되면서 갑자기 인기 상품으로 부상했다. 직접 돈을 버는 재주는 없지만, 사람들을 모으는 덴 다른 어떤 콘텐츠보다 매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뉴스는 매력적인 콘텐츠다. 하지만 언론은 매력적인 유통마켓이 아니다. 포털과 SNS에는 온갖 종류의 기사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넘쳐흐르는데, 언론사 닷컴의 페이지는 이용자에게 관심 있는 뉴스를 뽑아서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언론은 포털에 기생해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가 됐고, 모바일 시대가 열려도 이는 크게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각 언론이 추진했던 유료화 사업이 사실상 대부분 중단된 것도 독자들이 굳이 관심사가 아닌 뉴스서비스에 돈을 지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진순 한국경제 차장(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은 “언론사는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의 관계 속에서 이용자 파악도 미흡하고 신뢰도도 떨어져있다”며 “모바일 생태계에서는 자생하기 어려운 경쟁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스턴트 아티클의 합류는 문제의 수준을 넘어 무조건 합류할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이들(플랫폼)과 생산적인 제휴 모델을 만들어가면서 내부적으로 독자를 파악하고 독자와의 관계 수준을 끌어올리는 시간을 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모바일 시대가 열려도 언론이 할 일은 현재로선 제한적이다. 페이스북, 포털 등 여러 플랫폼에서 빠른 로딩속도와 디자인을 위해 뉴스를 다시 가두리 양식장에 넣고 있는데, 정작 콘텐츠 생산자인 언론이 할 수 있는 것은 전재료를 조금 더 달라고 조르는 것뿐이다. 언론의 독자생존은, 모바일 시대에도 어려운 것일까? |
Saturday, December 26, 2015
뉴스 가두리 양식장, 이제 네이버에서 페이스북으로 ‘모바일 퍼스트’ 시대 뉴스 생존 전략 ① 뉴스 달라는 데 많지만 수익 전망은 암울… 플랫폼 다양화, 독자 충성도는 오히려 급락
표창원 기자회견 "정치 안 하겠다는 말 거둘것"(입장전문)
표창원 기자회견
[TV리포트=김명석 기자]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새정치연합 입당 소감을 밝혔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다. 외부 인재 영입 1호다. 표창원 전 교수는 27일 오전 11시 20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입당 이유를 전했다.
새정치연합은 표창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총선 외부 인재 영입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표창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입당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표창원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표창원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기에 인사드립니다. 우선, 그동안 제게 보내주신 관심과 염려, 격려와 당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신 말씀들 다 담고 깊이 생각한 뒤,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1.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 경찰관, 교수 그리고 방송인과 작가로 ‘정의’를 말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제, 그 주장과 방안들을 법과 제도로 만들어 내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범죄와 수사기관의 불법행위, 그리고 권력적 부패와 비리를 ‘정의의 적들’로 규정하고 비판해 왔습니다. 이제, ‘정치’를 통해 실제로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 ‘완전한 정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만큼의 정의’는 제대로 된 국가의 필수조건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의가 무너져’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절 정치에 직접 나서게 했습니다. 한 번 제 모든 것을 바쳐 도전해 보겠습니다.
2. 정치를 통해 ‘안전’을 확보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 ‘범죄와 안전문제 전문가’로 연구와 강의, 정책자문 등의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사이 숱한 강력사건과 학교폭력, 안전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분들을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방어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과 노인, 어린이, 장애우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나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학교 폭력, 그리고 세월호 참사 같은 말도 안되는 ‘인재’는 막아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나쁜 정치와 권력이 방치해 온 ‘안전’, 말로만 떠들어 온 ‘안전’을 실제로 확보해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 해 보겠습니다.
3. 정치를 통해 ‘어린이, 청소년에게 꿈과 행복’을 찾아 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 일탈 청소년들과 아동학대 피해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문제의 근원에 도사린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답답하고 가슴아팠습니다. 부모의 가난과 실패 등 불우한 환경에 처하면 아예 “꿈꿀 희망조차 박탈하는” 차갑고 잔인한 우리 사회, 돈이 없으면 공부, 운동, 예술 그 어떤 분야에서도 소질을 발견하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 조차 주지 않는 우리 사회의 냉정한 벽 앞에서 좌절하고 분노와 불만에 가득 차 일탈과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꿈과 행복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법과 제도, 정책, 그리고 사회적 역량의 결집과 조율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4. 정치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 지난 2012년 대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여론조작 범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 직업도 포기했고,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할 정도로 글을 쓰고, 10만명 그리고 2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정조사 청원을 하고,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하고 거리 강연과 집회 시위 참가 등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전체적 진실’과 ‘구체적인 사실들의 상당부분’은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현재의 권력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은 물론, 사법부까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남은 ‘진실’의 발견은 오직 정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얼마나 많은 장애와 어려움과 고통을 마주치게 되더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 내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 소위 ‘적폐’가 집약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희생자와 생존자, 그리고 가족 여러분의 마음을 제 가슴에 늘 간직하며, 정치를 통해, 진실 규명 작업에 끝까지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습니다.
5. 정치를 통해 ‘아름답고 멋진 대한민국’을 찾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숱한 외세의 침략에도 굳건히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켜온 나라, 기나긴 일제의 폭압과 침탈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해 온 의지와 근성의 나라, 비인간적인 공산 전체주의 북한의 남침과 적화 야욕앞에서 온 몸 던져 자유를 지켜낸 국민, 전쟁의 참화를 딛고 산업화의 기적을 일궈 낸 국민, 군사독재의 폭정을 끝장낸 자랑스런 시민혁명, 그 엄혹한 환경에서도 민주주의를 일궈낸 멋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랑해 왔습니다. 그 대한민국이, 국민이, 분열하고 고통받고 아파합니다. 헌법이 유린되고, 자유가 짓밟히고, 독재와 폭압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국제사회의 걱정과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소망하셨습니다. 문화와 예술이 융성하고, 빈부와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 우리가 잘 살게 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이읏 나라들이 우리를 따라 아름다워지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 말입니다. ‘Ugly Korea’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세계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우리 국민 여러분께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6. 신인,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참신하고 깨끗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국민이 모를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십니다.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 국민, 자유, 안보, 민주, 복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계산하고, 음모와 술수를 꾀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노회한 정치인들의 진면목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쌓아 놓은 진입장벽과 기득권 카르텔의 힘이 너무 강해 어쩌지 못해 분노하고 계십니다. 정치는 그런 사람들, 특별한 소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세와 마음으로, 동료 시민들과 함께, 그 목소리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가능한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활발한 소통을 하겠습니다. 언제든, 저도 기성 정치인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면 깨우쳐 주십시오. 깨우치지 못하면, 더 추한 모습 보이기 전에 퇴출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마 그 전에 스스로 물러날 것입니다.
7.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함’을 함께 갖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뉴스를 보며 부러워 하는 미국의 오바마, 캐나다의 트뤼도, 독일의 메르켈, 영국의 카메론.. 그리고 그들과 격론을 벌이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야당 정치인들을 보며 ‘남의 나라’ 정치를 부러워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축구의 박지성과 손흥민, 야구의 박찬호와 류현진, 추신수, 발레의 강수진.. 다양한 분야의 한국 대표들은 세계의 존중과 선망,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정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억지와 비논리, 무식과 몰양심이 아닌 상식과 합리, 논리와 분석, 치밀한 준비와 노력의 결과물인 ‘신사의 품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단호하고 결연하며, 불의 앞에선 결코 타협이나 물러섬이 없는 ‘전사의 용맹함’을 보여드리겠습니다.
8. 강하고 유능한 야당, 집권이 준비된 수권 정당의 모습을 갖추는데 기여하겠습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경제와 민생을 파탄시키는 새누리당이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데 대해 국민 탓을 하면 안됩니다. 국민은 언제나 옳으십니다. 국민의 선택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야당의 잘못이 큽니다. “그래도 새누리가 더 믿음직스럽다”는 국민이 다수인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지금 극단적인 분열과 내분에 휩싸인 ‘사상 최악의 야당’에 들어갑니다. 제가 모르는 야당 정치인들 끼리의 감정과 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을 것입니다. 그건 당신들끼리 푸시기 바랍니다. 흔들리는 나라와 아파하는 국민 앞에서, 그런 사치를 누리는 당신들 끼리의 다툼에 말려들거나 끼어들 생각 없습니다. 야당의 역할은 너무도 막중합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유능한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정권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 정부와 정권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께 드려야 합니다. 결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줄 압니다. 국민과 당원, 지지자들의 뜻과 마음을 따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함께라면,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9. 그동안 전 여러 차례 “정치를 하지 않겠다” 말해 왔습니다. 이제 그 말을 거두겠습니다.
제가 “약속을 어겼다” 생각하시고 불쾌하시거나 불편하신 분이 계시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제게 정치를 함께 하자며 연락주시고 제안해 주셨던 안철수, 김한길 전 대표, 천정배 의원, 정의당 관계자 여러분,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 여러 선배 정치인 여러분께 무례한 거절과 무응대 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당시에는 정말 정치를 할 뜻이 없었고, 제 본연의 자리를 지키기로 결심을 했었기 때문에 단호한 거절 의사를 밝혔었습니다. 당시에는 문재인 의원의 요청에도 같은 단호한 거절을 했었습니다. 이번에 함께 하자는 문재인 대표의 요청에 응하게 된 것은 와해되고 분열하는 제1 야당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고, 전과 달리 이번엔 부족한 제 힘이라도 보태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며칠 사이에 온라인 입당을 하신 수만 명의 시민 분들과 같은 마음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 제 정치 참여를 반대하시는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우선, 조만간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방송을 통해 더이상 여러분을 만나뵐 수 없게 될 듯 합니다. 저도 무척 아쉽고 아쉬워 하실 시청자와 제작진께 사과드립니다. 정치에 발 담그지 않길, 때묻지 않길, 치우치지 않고 바른 말, 정의의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하셨던 분들께도 사과드립니다. 여러분께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12월 27일
표창원 드림.
김명석 기자 km
'국토 70%가 세슘오염', 일본이 외면한 연구결과 [원전재앙은 막자 ⑧] 아직도 '진행 중'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자력이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어요. 한국에 이틀 정도만 피난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사능 때문에 30년 정도는 못 돌아간다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죠."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최유희(21, 국내 유학 중)씨의 삶을 바꿔놨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씨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10km로 떨어진 후쿠시마현 토미오카 마치(읍)의 2층 주택에 살고 있었다. 지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최씨는 학교에 있다가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되자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집이 무너진 상태라 그날 밤은 모두 차에서 자야 했어요."
다음 날인 3월 12일 오전 5시께,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으니 대피하라'는 마을 방송을 듣고 할머니와 남동생을 포함한 최씨 가족 5명은 황급히 동네를 떠나야 했다. 새벽에 갑자기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 꼭 필요한 이불, 수건, 오래 먹을 수 있는 김 등 최소한의 것만 챙겼다.
도로가 지진으로 무너져 이동하기 힘들었지만 '무조건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차를 몰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피난길에 나서는 바람에 고속도로가 모두 꽉 막혔고 우회로를 찾느라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들은 집에서 200km 남짓 떨어진 도쿄에 도착했다. 원전 10km 이내 거주민들에게 제공된 대피소에 들어간 게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최씨의 어머니는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또다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여권을 발급받고 3월 말쯤 가족 모두 한국에 왔다. 서울의 이모집에 갔다가 일본 정부가 피난민들을 위해 지원해준 부산의 한 호텔에 머물던 가족들은 그해 4월 초 일본으로 돌아갔다. 후쿠시마현과 자매도시인 사이타마현 스기코 지역의 피난민 아파트에 묵게 됐던 첫날을 최씨는 생생하게 떠올린다.
"아파트를 추첨으로 배정하는 방식이라 못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처음 아파트에 들어갔던 날이 지금도 기억나요. 우리 가족이 너무 가진 게 없다는 걸 그때서야 느꼈죠."
지진 지대에 세운 원전을 덮친 쓰나미
동일본 대지진은 진도 9.0의 강진으로, 일본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일본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메이지 시대(1868~1912) 이후 최대이자, 1900년 이후 지구상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규모였다.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난 후 일본에서는 지진지대인 도호쿠(東北) 지역에 원전을 지어선 안 된다는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등 에너지·건설업계는 '일본 원전은 기술적으로 완벽하니 지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원전 증설을 강행했다.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사고는 이제 '안전(安全)의 일본'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렸고, 후쿠시마 지역과 일본 전역은 물론 전세계에 해양과 대기, 농수산물 오염 등을 통한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당시 후쿠시마현 해변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 지진 충격과 함께 15미터 높이의 쓰나미(지진해일)가 닥치자 전력이 모두 끊겼다. 비상 발전기까지 물에 잠기면서 원자로의 냉각시스템이 정지됐다. 냉각수로 핵분열 과정의 뜨거운 열을 식혀주지 못하게 되자 원자로 속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났다.
이어 핵연료봉의 피복재인 지르코늄이 섞여 녹아내린 물질이 쓰나미로 차오른 물과 반응하면서 많은 양의 수소가 발생, 발전소의 지붕이 폭발했다. 가동되고 있던 1호기, 2호기, 3호기는 물론 가동 중단 상태였던 4호기의 사용후핵폐기물 저장고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거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사고 발생 당시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정남구(47) <한겨레> 경제부장이 쓴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2012)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사고 직후 '수소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긴 했지만 원자로 내부 손상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해 12월 도쿄전력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가장 먼저 폭발이 일어난 1호기의 경우 핵연료봉을 감싼 압력용기가 모두 녹아내렸다.
또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의 바닥 콘크리트까지 녹아내려 방사성 물질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차이나 신드롬' 직전에서 멈춘 상황이었다. 2, 3호기의 경우도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뒤 압력용기 바닥에 쌓여 콘크리트 벽을 침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은 후쿠시마 사고의 국제원자력사고등급을 가장 높은 단계인 '레벨 7'로 최종 규정했다. 이 등급은 '방사성 물질의 중대한 외부 방출로 인한 대형사고'를 뜻하는 것으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구소련 정부의 정보 은폐로 정확한 공식기록이 없으나 유엔(UN) 등 국제기구와 환경단체들은 9300명에서 9만 명가량이 숨지고 구소련과 유럽 전역에서 800만 명 이상이 방사선 피폭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쉬쉬하고 속이는 정부, 불안한 국민
"개인적으로는 사고가 난 후 제가 있던 도쿄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을 먼저 피난시켰고, (본사에서 온) 취재팀을 돌려보낸 후 저도 최악의 경우 지하실로라도 피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정남구 <한겨레> 경제부장)
정 부장은 사고 이후 2년가량 일본에 더 머무르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30km 떨어진 지역을 여러 번 취재했다고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접근 가능한 지역은 후쿠시마 원전 바로 아래 이와키시와 인구가 많았던 고리야마시 부근이었는데, 방사능 수치를 계산해서 24시간 동안 머물렀다가 빠져나왔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대피구역 바깥에 살던 사람들도 피난을 가서 이들 지역은 당시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일본 정부가 정보를 바로 제공하지 않아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외신기자들도 (서로) 만날 시간이 별로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보를 교환할 수 없었습니다. (피난) 주민들은 긴급 물자를 제때 공급받지 못했고, 지역의 방사능 수치 정보도 없어서 어디로 피난 가야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습니다."
사고의 공포를 애써 잊으려 하는 사람들
"원전이 폭발한 지 3년. 많은 시민들은 애써 그날의 공포를 잊고 싶어 합니다.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개봉한 이홍기(55) 감독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 제작진은 내레이션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이 영화는 사고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주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나눠준 먹거리와 각지에서 보내온 모포, 옷가지 등 생필품에 의지해 컨테이너로 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불안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영향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측정 수치를 믿을 수 없다며 직접 마을과 집안 곳곳에 방사선 측정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일본 미야기현 시로이시에 사는 하세가와 치하루씨는 영화에서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라며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실을 말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성 물질이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 응답자의 35%가 '매우 걱정한다', 42%가 '다소 걱정한다'고 답했다. 지난 2012년 2월 한국에 온 오카 에리코(28, 동국대 식품산업관리3)씨도 방사능 영향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고 당시 일본 나고야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원전 폭발로 누출된 방사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전 사고로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도 아직 원전을 줄이지 않는 정부의 대처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데다가, 건강 피해가 대개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방사성 물질의 속성상 일상에서 쉽게 경각심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오카씨도 "사고 직후에는 생선을 먹을 때나 비가 내릴 때마다 걱정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소비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라고 밝혔다.
후쿠시마를 떠났던 최유희씨 가족들도 2013년에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최씨의 아버지는 정부 지원을 받아 후쿠시마현에서 방사능 제염(오염제거) 사업을 하고 있다. 최씨는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방사능 검사를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라며 "어느 정도 위험한 수준인지 아직까지 잘 느끼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일본 땅 방사능 오염 심각' 지적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해 12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지도를 게재했다. 일본 국토의 70%가 세슘에 오염됐음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세슘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고 핵분열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세슘에 오염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으면 인체 내에서 방사선 피폭이 일어날 수 있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55) 교수는 저서 <한국 탈핵>에서 "세슘은 오염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약 30년이고, 반감기가 열 번 지나야 독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오염에서 벗어나려면 3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라면서 "이는 일본인들이 300년 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농산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적어놨다. 후쿠시마산 쌀의 경우 2012년과 2013년 생산된 물량은 폐기처분됐고, 지난 1월 처음으로 정부 기준치인 1킬로그램(kg)당 100베크렐(Bq) 미만의 오염도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66) 교수는 저서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2012) <원자력의 거짓말>(2012) 등을 통해 일본 내외에서 후쿠시마 사고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탈핵의 결단이 필요함을 설파해왔다. 지난해 그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국회에서 강연하고, 뉴스에도 출연해 한국이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원전 사고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사고의 실상을 은폐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언론을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아직 누출되고 있는데) 최근 정부나 언론에서 방사능 누출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또 이번 사고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어떤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이 가진 권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오히려 원전을 재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짓거나 기술을 수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최유희(21, 국내 유학 중)씨의 삶을 바꿔놨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씨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10km로 떨어진 후쿠시마현 토미오카 마치(읍)의 2층 주택에 살고 있었다. 지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최씨는 학교에 있다가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되자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집이 무너진 상태라 그날 밤은 모두 차에서 자야 했어요."
▲ 방사능 제거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최유희 씨와 가족들이 살던 집. | |
ⓒ 취재원 제공 |
다음 날인 3월 12일 오전 5시께,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으니 대피하라'는 마을 방송을 듣고 할머니와 남동생을 포함한 최씨 가족 5명은 황급히 동네를 떠나야 했다. 새벽에 갑자기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 꼭 필요한 이불, 수건, 오래 먹을 수 있는 김 등 최소한의 것만 챙겼다.
도로가 지진으로 무너져 이동하기 힘들었지만 '무조건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차를 몰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피난길에 나서는 바람에 고속도로가 모두 꽉 막혔고 우회로를 찾느라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들은 집에서 200km 남짓 떨어진 도쿄에 도착했다. 원전 10km 이내 거주민들에게 제공된 대피소에 들어간 게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를 보고 최씨의 어머니는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또다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여권을 발급받고 3월 말쯤 가족 모두 한국에 왔다. 서울의 이모집에 갔다가 일본 정부가 피난민들을 위해 지원해준 부산의 한 호텔에 머물던 가족들은 그해 4월 초 일본으로 돌아갔다. 후쿠시마현과 자매도시인 사이타마현 스기코 지역의 피난민 아파트에 묵게 됐던 첫날을 최씨는 생생하게 떠올린다.
"아파트를 추첨으로 배정하는 방식이라 못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처음 아파트에 들어갔던 날이 지금도 기억나요. 우리 가족이 너무 가진 게 없다는 걸 그때서야 느꼈죠."
지진 지대에 세운 원전을 덮친 쓰나미
동일본 대지진은 진도 9.0의 강진으로, 일본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했다. 일본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메이지 시대(1868~1912) 이후 최대이자, 1900년 이후 지구상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규모였다.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난 후 일본에서는 지진지대인 도호쿠(東北) 지역에 원전을 지어선 안 된다는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등 에너지·건설업계는 '일본 원전은 기술적으로 완벽하니 지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원전 증설을 강행했다.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사고는 이제 '안전(安全)의 일본'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렸고, 후쿠시마 지역과 일본 전역은 물론 전세계에 해양과 대기, 농수산물 오염 등을 통한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당시 후쿠시마현 해변에 위치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 지진 충격과 함께 15미터 높이의 쓰나미(지진해일)가 닥치자 전력이 모두 끊겼다. 비상 발전기까지 물에 잠기면서 원자로의 냉각시스템이 정지됐다. 냉각수로 핵분열 과정의 뜨거운 열을 식혀주지 못하게 되자 원자로 속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났다.
이어 핵연료봉의 피복재인 지르코늄이 섞여 녹아내린 물질이 쓰나미로 차오른 물과 반응하면서 많은 양의 수소가 발생, 발전소의 지붕이 폭발했다. 가동되고 있던 1호기, 2호기, 3호기는 물론 가동 중단 상태였던 4호기의 사용후핵폐기물 저장고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거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 쓰나미로 폐허가 된 토미오카 마치 지역(좌)과 기차역(우). | |
ⓒ 취재원 제공 |
사고 발생 당시 도쿄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정남구(47) <한겨레> 경제부장이 쓴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2012)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사고 직후 '수소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긴 했지만 원자로 내부 손상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해 12월 도쿄전력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가장 먼저 폭발이 일어난 1호기의 경우 핵연료봉을 감싼 압력용기가 모두 녹아내렸다.
또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의 바닥 콘크리트까지 녹아내려 방사성 물질이 땅을 뚫고 들어가는 '차이나 신드롬' 직전에서 멈춘 상황이었다. 2, 3호기의 경우도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뒤 압력용기 바닥에 쌓여 콘크리트 벽을 침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원자력안전보안원은 후쿠시마 사고의 국제원자력사고등급을 가장 높은 단계인 '레벨 7'로 최종 규정했다. 이 등급은 '방사성 물질의 중대한 외부 방출로 인한 대형사고'를 뜻하는 것으로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구소련 정부의 정보 은폐로 정확한 공식기록이 없으나 유엔(UN) 등 국제기구와 환경단체들은 9300명에서 9만 명가량이 숨지고 구소련과 유럽 전역에서 800만 명 이상이 방사선 피폭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쉬쉬하고 속이는 정부, 불안한 국민
"개인적으로는 사고가 난 후 제가 있던 도쿄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을 먼저 피난시켰고, (본사에서 온) 취재팀을 돌려보낸 후 저도 최악의 경우 지하실로라도 피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정남구 <한겨레> 경제부장)
정 부장은 사고 이후 2년가량 일본에 더 머무르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20km~30km 떨어진 지역을 여러 번 취재했다고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접근 가능한 지역은 후쿠시마 원전 바로 아래 이와키시와 인구가 많았던 고리야마시 부근이었는데, 방사능 수치를 계산해서 24시간 동안 머물렀다가 빠져나왔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대피구역 바깥에 살던 사람들도 피난을 가서 이들 지역은 당시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일본 정부가 정보를 바로 제공하지 않아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외신기자들도 (서로) 만날 시간이 별로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보를 교환할 수 없었습니다. (피난) 주민들은 긴급 물자를 제때 공급받지 못했고, 지역의 방사능 수치 정보도 없어서 어디로 피난 가야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했습니다."
사고의 공포를 애써 잊으려 하는 사람들
"원전이 폭발한 지 3년. 많은 시민들은 애써 그날의 공포를 잊고 싶어 합니다. 차라리 그게 마음 편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국내에서 개봉한 이홍기(55) 감독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 제작진은 내레이션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이 영화는 사고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주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나눠준 먹거리와 각지에서 보내온 모포, 옷가지 등 생필품에 의지해 컨테이너로 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불안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영향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측정 수치를 믿을 수 없다며 직접 마을과 집안 곳곳에 방사선 측정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일본 미야기현 시로이시에 사는 하세가와 치하루씨는 영화에서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라며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진실을 말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성 물질이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 응답자의 35%가 '매우 걱정한다', 42%가 '다소 걱정한다'고 답했다. 지난 2012년 2월 한국에 온 오카 에리코(28, 동국대 식품산업관리3)씨도 방사능 영향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사고 당시 일본 나고야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원전 폭발로 누출된 방사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전 사고로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도 아직 원전을 줄이지 않는 정부의 대처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데다가, 건강 피해가 대개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방사성 물질의 속성상 일상에서 쉽게 경각심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오카씨도 "사고 직후에는 생선을 먹을 때나 비가 내릴 때마다 걱정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소비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라고 밝혔다.
후쿠시마를 떠났던 최유희씨 가족들도 2013년에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갔고, 최씨의 아버지는 정부 지원을 받아 후쿠시마현에서 방사능 제염(오염제거) 사업을 하고 있다. 최씨는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방사능 검사를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라며 "어느 정도 위험한 수준인지 아직까지 잘 느끼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일본 땅 방사능 오염 심각' 지적
▲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일본의 방사능 오염지도. | |
ⓒ PNAS 2011년 12월 vol.108 |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해 12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지도를 게재했다. 일본 국토의 70%가 세슘에 오염됐음을 보여주는 지도였다. 세슘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고 핵분열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세슘에 오염된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으면 인체 내에서 방사선 피폭이 일어날 수 있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55) 교수는 저서 <한국 탈핵>에서 "세슘은 오염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약 30년이고, 반감기가 열 번 지나야 독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오염에서 벗어나려면 3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라면서 "이는 일본인들이 300년 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농산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적어놨다. 후쿠시마산 쌀의 경우 2012년과 2013년 생산된 물량은 폐기처분됐고, 지난 1월 처음으로 정부 기준치인 1킬로그램(kg)당 100베크렐(Bq) 미만의 오염도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본의 반원전 운동가인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교수. 사진은 지난 2014년 1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주최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공존의 과제, 탈핵-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수습은 가능한가'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모습. | |
ⓒ 유성호 |
일본 교토대학교 원자로실험소 고이데 히로아키(66) 교수는 저서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2012) <원자력의 거짓말>(2012) 등을 통해 일본 내외에서 후쿠시마 사고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탈핵의 결단이 필요함을 설파해왔다. 지난해 그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국회에서 강연하고, 뉴스에도 출연해 한국이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비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원전 사고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고도 사고의 실상을 은폐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언론을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오염수가 아직 누출되고 있는데) 최근 정부나 언론에서 방사능 누출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또 이번 사고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어떤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이 가진 권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오히려 원전을 재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짓거나 기술을 수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단독] 새정치 새 당명 ‘TOP 5’는?…손혜원 “제가 전율 느낀 새 당명은 바로…”
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모집한 새로운 당명 중 ‘TOP 5’ 후보군을 추려 마지막 설문여론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심사단계에까지 오른 5개 새 당명안은 ‘희망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민주소나무당’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인 것으로 27일 전해졌다.
새정치연합 당 관계자는 “이날까지 5개 당명안을 추려 설문 조사를 했고, 1월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명 공모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손혜원 홍보위원장도 전날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현재 국민과 당원을 대상으로 조사 중이고, 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달부터 공개모집을 통해 접수한 당명안 총 3200개 후보 중에서 요건을 갖춘 2800여 개의 당명을 검토했다. 이어 1차 조사를 거쳐 122개안을 통과시켰고, 2차 심사를 통해 28개로 압축하는 작업을 했다. 최근엔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하는 3차 심사에서 최종 5개 당명안이 확정됐다.
5개 당명안은 ‘희망민주당’ ‘더불어민주당’ ‘민주소나무당’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 등이다. 이들은 모두 ‘민주’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을 다시 되찾는 의미가 강하다. ‘민주시민당’ ‘우리민주당’ 등도 유력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위원장은 “저는 애초에 ‘민주’를 넣고 싶지 않았지만 총 후보안 중 60%에 ‘민주’가 들어 있었다”며 “당 내부에서도 ‘민주’가 들어 있지 않은 후보안은 아무도 고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당의 새로운 당명에 반드시 ‘민주’가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앞서 밝혔던 “전율을 느낄만한 새 당명”도 소개했다.
손 위원장은 “예민한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전율을 느낀 당명은 ‘민주소나무(당)’”이라며 “‘민주’와 ‘소나무’가 만나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온갖 질곡을 겪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60년 된 ‘소나무’ 아닌가”라고 밝혔다. 그는 “이 당명의 제안자는 곧고 푸른 ‘소나무’ 같이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조만간 5개 당명안 중 1개를 최종 확정해 최고위원회와 당무위원회 등의 의결을 거친 뒤 1월 중 발표해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새정치연합 당 관계자는 “이날까지 5개 당명안을 추려 설문 조사를 했고, 1월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명 공모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손혜원 홍보위원장도 전날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통해 “현재 국민과 당원을 대상으로 조사 중이고, 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달부터 공개모집을 통해 접수한 당명안 총 3200개 후보 중에서 요건을 갖춘 2800여 개의 당명을 검토했다. 이어 1차 조사를 거쳐 122개안을 통과시켰고, 2차 심사를 통해 28개로 압축하는 작업을 했다. 최근엔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하는 3차 심사에서 최종 5개 당명안이 확정됐다.
그러면서 자신이 앞서 밝혔던 “전율을 느낄만한 새 당명”도 소개했다.
손 위원장은 “예민한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전율을 느낀 당명은 ‘민주소나무(당)’”이라며 “‘민주’와 ‘소나무’가 만나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온갖 질곡을 겪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60년 된 ‘소나무’ 아닌가”라고 밝혔다. 그는 “이 당명의 제안자는 곧고 푸른 ‘소나무’ 같이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몽구 나와라... 한남동 전세냈나?" 현대차 회장 집 앞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 [현장] 희망버스 참가자 보행권 막은 정몽구 자택 앞 남성들
▲ 정몽구 회장 자택 입구 길을 막고 선 사람들. 이들은 정몽구 회장 항의 방문을 온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보행을 저지했다. | |
ⓒ 조혜지 |
"알 거 없잖아요."
"경찰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의 집 골목 앞에 30여 명의 무리와 함께 선 이가 한 말이다. 26일 정 회장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총 세 단계의 저지벽에 가로 막혔다. 한 벽은 경찰 병력, 나머지 두 벽은 '경찰이 아닌' 사복 차림의 무리들이었다.
가로 막힌 이들은 오는 27일로 비정규직 투쟁 고공 농성 200일째를 맞는 기아차 사내 하청 최정명·한규협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에 희망버스에 오른 이들이다. 정몽구 회장 집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길 입구 인도에 모인 300여 명(경찰 추산 200명)의 참가자들은 "정몽구 나와라" "불법 파견 진짜 사장 정몽구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 중 일부는 "현대 기아차 = 불법파견" "박근혜 노동악법 = 평생비정규직 시대" 등이 적힌 스티커를 전봇대 등에 붙이기도 했다.
최정명·한규협씨는 모든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지난 6월 11일 서울 광장 옆 국가인권위원회 옛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랐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9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근로자 소송을 제기한 비정규직 모두가 불법파견 됐으므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4864명 중 465명 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을 뿐, 제대로 된 법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가로 막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 길 | |
ⓒ 조혜지 |
골목 입구부터 겹겹이 막혀... 희망버스 참가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
"집회, 행진이 아닙니다. 정몽구 회장을 만나 직접 묻고자 왔습니다. 왜 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습니까."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사전 집회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경찰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라면서 "흩어져서 최대한 (정몽구 회장의 집에) 가까이 가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 주변에 배치된 경찰 병력 300여 명은 사전 집회가 끝날 무렵 참가자들이 모인 인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참가자들의 보행을 저지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참가자들이 두 세 걸음을 떼자마자 다급히 "촘촘히 서" "행진 시작합니다"라고 외치며 길을 막았다. 경찰 병력에 가로막힌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시민 보행권 무슨 권리로 막나"라고 항의했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사전 집회 전 먼저 정 회장의 집으로 향하던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이 아닌 이'들에게 가로 막혔다. 이 무리는 골목 중앙과 정 회장의 집 바로 앞 골목 두 군데로 나뉘어 길을 지키고 섰다. 2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진입을 시도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기 위해 스크럼을 짜는 손에는 핫팩이 한 개씩 들려 있었다.
▲ 26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 횡단보도 앞에 배치된 경찰 병력 50여 명이 정 회장에게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고 있다. | |
ⓒ 조혜지 |
▲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를 막고 선 사람들. | |
ⓒ 조혜지 |
이들은 어깨에 "집회시위 과도소음 쾌적한 주거 환경 파괴한다"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있었다. 지난 9월 12일 희망버스 당시 정몽구 회장 앞을 지키고 섰던 30명의 현대·기아차 관계자들이 두르고 있던 띠와 같은 문구였다(관련 기사 : "쇠파이프 운운 김무성, 집안 단속이나 잘해라").
정몽구 회장의 집 입구를 지키고 선 30여 명의 무리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아니다, 집회 신고를 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집회를 신고한 단체의 이름이 뭐냐고 묻자 "확인이 안 된다, 회사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어떤 회사인지는 모른다"라고 답했다.
"여긴 그냥 도로잖아요. 정몽구 회장이 한남동 전체를 전세낸 것도 아니고, 개인 사유지도 아닌데 길을 막으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입니다."
도로 중앙에서 보행이 저지된 한 희망버스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무리를 향해 "왜 보행을 막느냐"고 소리치자 무리 중 한 사람은 귀를 막고 "아아아"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이따금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길을 열고 닫았다. 이 과정에서 차와 함께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희망버스 참가자를 붙잡아 고성이 오가는 등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 정몽구 회장 자택 앞 입구에서 한 사람이 길을 열어달라고 항의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 |
ⓒ 조혜지 |
무리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참가자의 얼굴을 찍는 행동을 하자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경찰에 신고해 용산구 내 지구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오후 3시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버스에 오르자 이들도 해산을 시작했다. 무리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B조는 여기 남아계시고, 일단 A조만 이동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일행에게 "A, B조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런 걸 왜 기억하나, 기억에서 지워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에게 "여기 몇 번째냐"라고 물었다. 기자가 처음 왔다고 하자 "그럼 내가 고참이다, 난 두 번째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동네 곳곳에 붙인 스티커들을 뜯어 쓰레기 봉투에 담은 뒤 "수고했습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등의 대화를 나누며 흩어졌다.
▲ 26일 정몽구 회장 자택 앞 곳곳에 배치된 사람들이 희망 버스 참가자들의 항의 방문 길을 막았다. 저지에 항의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말에 한 사람이 귀를 막고 뒤돌아선 모습. | |
ⓒ 조혜지 |
광고탑에 오른 두 노동자 "언론마저 외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것"
이날 정몽구 회장의 집을 찾은 장아무개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무리가 선 전봇대 옆에 항의 스티커를 붙였다. 그는 연말 연휴에 희망버스에 참가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사회가 잘못돼 가는데 가족과 연말을 보내는 게 중요하냐"라면서 "(최정명·한규협씨에게) 전날 통화해서 힘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고공 농성 200일이 다 돼가는데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인다, 어려운 요구가 아니라 정당한 법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불법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의 힘만으로는 맞서기 힘들다, 연말 연초 사랑하는 가족과 있어야 함에도 (투쟁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있는 두 사람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참가했다"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아직 고립돼 있습니다, 찾아와주세요).
한편, 70m위 광고탑에서 199일을 보낸 한규협씨와 최정명씨는 영하 8도에 가까운 한겨울 날씨 속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규협씨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어 옷을 여러 겹 입고 침낭에 핫팩을 넣어 잠을 잔다"라고 전했다. 발뒤꿈치는 동상에 걸린 상태다. 그는 "지난 25일 의사 두분이 진료를 하고 가셨는데 두 사람 다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들었다"라면서 "울화로 인한 가슴 답답함 때문에 약을 지어 보내주시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노조 조합원들은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지 못한 두 사람을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눈썰 매장을 가기도 했다. 한씨는 "지금 (투쟁) 6개월이 넘었지만 가족들이 담담하게 지지를 잘해줘 크게 마음 고생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테니 힘을 보태주시라, 싸움에 이겨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정몽구 회장 자택 인근 전봇대에 희망버스 참가자가 붙인 항의 방문 스티커 | |
ⓒ 조혜지 |
최정명씨는 "정말 할 것 다해봤다"라면서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직접적인 책임자 정몽구 회장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고공 농성에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법앞에 평등하다'는 가치가 (이뤄지는) 출발이 여기서부터였으면 좋겠다"라면서 "언론마저 노동자의 목소리와 몸부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심에 호소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표창원 새정치연합 입당 선언 “정치로 정의실현” “사상최악의 야당에 들어간다”…분당위기 극복에 힘 쏟겠다 의사 밝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0대 총선에 출마할 외부 인재를 영입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27일 그 1호 '외부 인재'가 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이날 오전 입당을 선언했다.
표 전 교수는 이날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겠다고 밝혔다.
표 전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입당의 변’을 통해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표 전 교수는 “경찰관, 교수, 방송인과 작가로 ‘정의’를 말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제 ‘정치’를 통해 실제로 바로잡아 보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의 러브콜에 거부의사를 밝힌 바 있던 표 전 교수는 이번엔 문재인 대표의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입당 결심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문 대표의 요청에 응한 이유는 와해되고 분열하는 제1야당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라며 “이번엔 부족한 제 힘이라도 보태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표 전 교수는 “지금 극단적인 분열과 내분에 휩싸인 ‘사상 최악의 야당’에 들어간다”며 “제가 모르는 야당 정치인들끼리의 감정과 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을 것”이라며 “그건 당신들끼리 푸시라”고 말했다. 이어 “야당의 역할은 너무도 막중하다. 강해져야 한다. 유능한 모습을 갖춰야 한다”며 “집권이 준비된 수권 정당의 모습을 갖추는 데 기여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정치에 발 담그지 않길, 때묻지 않길, 치우치지 않고 바른 말, 정의의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하셨던 분들께도 사과드린다”며 “미안한만큼 더 열심히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 연합뉴스. |
정치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표 전 교수는 “지난 2012년 대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여론 조작 범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 직업도 포기했고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할 정도로 글을 쓰고 국정조사 청원을 하고 거리 강연과 집회 시위 참가 등을 해왔다”며 “남은 ‘진실’의 발견은 오직 정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표 전 교수는 이외에도 입당 선언문을 통해 △아름답고 멋진 대한민국 △어린이, 청소년의 꿈과 행복 △안전 등을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돌려주고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함’을 함께 갖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연봉 20억 받을때 난 비참한 생활…죽기전 한 풀고 싶어" [단독인터뷰] '정수장학회 원소유자' 고 김지태씨 미망인 송혜영 씨
"(정수장학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제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제가 이사장을 관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요?" 지난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일관된 단호함을 보였다. 2005년, 2007년 두 차례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강제헌납"이라고 결론내렸음에도 이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장도 없이 끌려갔던 1962년의 기억
▲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곽상아 |
지난 14일은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 부일장학회가 강제로 국가에 헌납돼 정수장학회로 넘어간 지 벌써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1962년 송씨는 남편인 김지태씨가 일본에 가 있는 사이 김지태씨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한 인질용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달 반 가량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가슴 속에 피맺힌 한이 있다"는 송혜영씨는 50년 전 영장도 없이 새벽에 끌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에 갑자기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중앙정보부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가자'면서. 무슨 죄목인지도 모른 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에 끌려가야 했지요. 아침에 도착했었는데, 점심이 지나도록 굶기면서 그냥 기다리게 하더니 오후에는 형무소에 집어넣었어요. 제가 회장님(남편인 고 김지태 회장을 의미)과 독일여행에서 기념으로 사가지고 온 다이아반지와 카메라에 대해서 '밀수'라고 하면서…. 정말 기가 막혀서…. 그때 당시 장신구 하나 정도는 승낙됐기 때문에 저 역시 손에 낀 상태에서 (세관원에게 반지를) 보여주었고 그게 자동 신고되는 거였거든요.
이후에 제 재판이 시작됐고, 세관원도 재판에 불려왔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하겠어요? 당연히 '정상통과된 물건이고, 밀수가 아니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사람이 세관원 자리에서 해고되더군요. 그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참 그때는…기막히는 일이 많았지요. 제가 그때 감옥에서 한달 반 정도 있었어요. 회장님은 건강이 안좋아 일본에서 치료중이셨는데, (제가 인질로 잡혀있으니까) 귀국했고, 귀국하자마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요. 그후 저는 사흘만에 풀려났구요…."
박근혜가 연봉 20억 받는 사이, 돈 되는 것 다 팔아 생활비 충당
▲ 송혜영씨가 남편인 고 김지태씨가 남긴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
"절망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김 회장님이 '자발적으로 장학회를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예요. 회장님께서 장학회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강도질할 수 있는 건가요?
정수장학회는 지난 50년간 3만여명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었다고 하는데, 왜 남의 돈을 뺏어서 장학금 준다고 생색을 내는 걸까요? 부일장학회는 1년에 3000명씩 장학금을 주었고, 그걸 50년으로 환산하면 15만명이에요. 만약 부일장학회가 계속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근혜 의원의 사조직으로 전락해가는 사이, 장학회의 원 소유자였던 김지태씨의 미망인 송혜영씨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돈 되는 것은 모두 팔아서 생활비로 써야 했어요. 하도 생활이 힘들어서 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밀수죄'라고 했었던 다이아반지와 카메라도 다 팔아서 생활비로 썼어요. 그 물건들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형무소까지 갔었고 온갖 고초를 당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팔지 않으려 했었는데…생활이 곤란해서 팔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도 생활이 매우 힘들어요. 위수술, 뇌수술 등 큰 수술을 5번이나 해서 건강도 안좋은데 병원비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어서, 65세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지하철 표를 이용하면서 다닙니다. 그런데…저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연봉으로 20억 넘게 가져가지 않았나요? 이게 정상적인 것인가요?"
"박근혜 측이 정수장학회 털고간다"고? 정치적 쇼다
박근혜 의원 측이 대선을 앞두고 고 김지태씨 유족과 접촉하는 등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나, 송혜영씨는 이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의 보도"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의원 측에서 전혀 연락온 바가 없다"며 "박근혜 의원이 실제로 유족들과 논의한 것도 없으면서 마치 해결의지가 있는 것처럼 정치적 쇼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
"만약 우리와 접촉을 했다면 (대선출마를 선언할 때) 어떤 여지가 있었을 텐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서 새 시대를 열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해묵은 정수장학회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출마선언날 밝힌 내용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어요.
부디, 박근혜 의원이 저희 유족들의 뜻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재산을 강제로 헌납당한 이후, 저는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사는데…. 계속 이러는 것은 인간된 도리가 아니지 않아요?"
송혜영씨는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박근혜 의원 측 이사진은 전부 물러나고, 예전의 부일장학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씨는 지난 6일 차남 김영우씨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사과도 아니고,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강제퇴진이나 그런 게 아니다"라며 "유족들이 추천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이 장학회를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차남의 의견일 뿐 유족 전체의 뜻이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차남이 가족들과 동떨어진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다. (차남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차남 한 명의 말만 듣고 '유족의 뜻'이라고 보도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송씨는 "박근혜 의원이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이제 그만 정수장학회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으면 한다"며 "내가 죽기 전에는 반드시 부일장학회를 되찾아서, 남은 가족들끼리 '사회환원'이라는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송씨는 "박근혜 의원이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이제 그만 정수장학회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으면 한다"며 "내가 죽기 전에는 반드시 부일장학회를 되찾아서, 남은 가족들끼리 '사회환원'이라는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제 나이가 80을 넘겼습니다.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병 투성이인데…. 제가 굉장히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기 전에 한 좀 풀고가고 싶어요.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부일장학회를 되찾고자 얼마나 애쓰셨는지 몰라요. 죽어서라도 '영감, 생전에 그렇게 되찾고 싶어하던 부일장학회를 드디어 원상복귀시켰어요. 좋지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이요…. 아버지가 한 나쁜 짓을 딸이 바로잡는다면, 아버지도 살고 자기도 사는 길이 될 텐데 왜 저렇게 붙들고 있는 건지 정말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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