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행복 약속하더니 이제는 고난의 행군 한다고?
박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요즘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 불행하고, 불안하다. 정부 고위 관료들도 행복해 하는 것 같지 않다. 박대통령도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아예 정부의 주요 장관과 고위 관료들에게 ‘고난을 벗 삼아 가라’고 주문했다. 국민행복 시대를 이끄는 정부가 고난을 벗 삼겠다니 정말 국민들은 불안하고 불길해진다. 고난을 벗 삼는 자들이 어찌 행복을 알겠으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국민 행복 시대가 왜 고난의 시대로 변했는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 악의 무리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 박대통령
박대통령은 최근 사드,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 등의 현안과 관련해 의로운 일 대 불의한 일, 순수 세력 대 불순세력의 구도를 짜서 제시했다. 이 황당하고 유치한 대립 구도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문제는 박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인식, 정치 인식이다.
시민들은 누가 의롭고 순수한지 감별하는 일에 별로 관심 없다. 대신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에는 관심이 높다. 그렇다면 박대통령은 의로운 일, 순수, 애국주의를 내세울 게 아니라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도 박대통령이 그렇게 안하는데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정권이 순수하지만 무능하고, 의롭지만 국정 운영에 미숙하고 애국적이지만 일할 줄 몰라서 일까? 아니면 실상은 순수하지도 않으면서 무능하고, 불의하면서 미숙하고 애국적이지도 않으면서 서투른 것인가? 박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유치원이 아니다.
■ 사드 말고 국민 보호 방법 알려달라고?
박대통령은 사드 말고 국민 보호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다. 길게는 한국 전쟁 이후 60여년간,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을 강화해온 20년간 남한에 사드 없었는데 지금처럼 안보가 불안하지 않았다. 안보 불안은 박근혜 정부 들어 심화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전 정부가 어떻게 안보에 대처했는지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사드가 국민 보호방법이라는 박대통령의 전제 자체도 틀렸다. 사드는 수도권 방어를 못한다고 이미 국방부가 발표했다. 물론 그 외 지역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 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방법을 제시하고 나서 이 것 말고 국민 보호 방법 알려달라는 당당함은 박대통령 아니면 엄두도 못낼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국민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데 어떻게 막나? 사드 아니라 사드 할아버지로도 못 막는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사드가 국민을 보호할 것으로 믿고 있음을 고백했다. 박대통령은 정의의 사도인가, 사드교의 창시자인가?
국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박대통령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일 것이다. 바로 공격 의사를 제거하는 것이다. 쏘는 걸 막을 방법은 없지만, 쏘지 않게 할 방법은 있다. 위험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부엌에 식칼이 있다고 위험하다고 한다면 전국의 가정이 다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선의 방법, 유일한 방법은 북한이 무기로 남한을 공격할 의도를 갖지 않도록, 공격할 이유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 된다. 일찌감치 남북 대화하고 교류했어야 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북한을 자극하고 적대하고 대결 상태를 고조시켜 놓고 그 결과 김정은으로 하여금 공격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켜 놓고 이제 와서 사드 말고 다른 게 없다니!
■ 인간은 자기를 정당화하는 동물
남북간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고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를 주도하겠다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다 무너졌다. 남북단절을 넘어 남북은 미사일을 쏘고 첨단 방어미사일을 들여오는 등 군사적 긴장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중관계는 사드 배치로 갈등 관계로 접어들었다. 이건 박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들이다. 박대통령이 대북 정책, 대중 정책을 잘못한 결과이다. 동북아만 불안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한국 내부도 불안하게 만들고 내부 갈등까지 조장했다. 이걸 대통령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1957년 리온 페스팅어는 인지 부조화론을 제시한 바 있다. 자신의 선택, 결정과 다른 사실을 접하면 불편하기때문에 자기 정당화함으로써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한 실험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접했을 때는 뇌의 추론 영역이 거의 정지되었다. 반면 자신이 처리해야 할 정보들이 서로 조화가 되었을 때는 뇌의 정서회로가 환하게 밝아졌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집권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입지와 의견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받아들이면 반면, 불리한 정보는 거부하는 경향을 줄곧 드러냈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 자신이 쌓은 지식과 정보는 점차 왜곡된다.
뇌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뇌는 눈, 코, 입, 귀가 없다. 보고 냄새 맡고 맛 보 들을 수 없다. 다만 뇌는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해석을 한다. 인간 심리와 마찬가지로 뇌의 판단도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편한 쪽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사드,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대응도 그런 식이다. 자신의 정책과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 불순 세력의 음모, 괴담 때문이라고 믿는다. 지난 21일 박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회의 발언은 박대통령 역시 자기 정당화에 매우 능하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인 박대통령
최근 국정 혼란과 시민들의 불만이 모두 남 탓 이라는 박대통령의 대응은 사실 인간적으로 이해를 해 줄 구석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총체적 국정 난맥을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자기 정당화라도 해야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 다 남의 잘못이거나 오해 아니면, 음해 때문이다’ 라고 스스로 굳게 믿지 않으면 박대통령은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심리 작용이 반복되면 뇌도 그걸 사실인양 저장해 놓기 때문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박대통령, 정말 인간적이다.
■ 니스 테러에서 북한을 생각하는 박대통령의 개성 있는 상상력
박대통령은 니스 테러에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바 있듯이 북한 테러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스 테러는 이슬람국가 즉 IS추종자가 도심에서 묻지마 테러를 한 것이다. 요즘 안보 불안은 북한사람이 광화문 한 복판에서 알라신을 외치며 시민들 죽일까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요즘 박대통령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일까? 아무리 박대통령이라도 있을 법한 말을 해야지 되는 것 아닌가? 북한이 남한에 이슬람 과격 분자를 간첩으로 보내 트럭테러, 소총 난사 테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대통령 혼자 그런 걱정에 잠못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 자신에 대한 비난과 저항이 있음을 아는 대통령
흔히 박대통령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신은 항상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통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라고 발언함으로써 그게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물론 “비난이 무섭다고 피해가지 말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대결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지만 자신이 시민의 지지와 신뢰를 잃은 정책을 펴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정일, 김정은, 아사드로부터 배울 줄 아는 대통령
박대통령은 권력의 본질을 잘 알고 그 때문에 권력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박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강공, 역공세로 치고 나갔기 때문이다.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식의 대응은 정말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렵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이만이 할 수 있는 대응이다.
정권이 위기에 처하거나 강력한 세력의 도전에 직면했을 때 대처 방법을 단순화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하고 체제를 변화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체제에 변화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개선 및 적응의 방법은 권력의 주체가 변화를 수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럴 여건을 갖추지 않는 개선 및 적응은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 붕괴는 바로 시민들의 변화 욕구를 일정 부분 수용해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오판의 결과였다. 변화를 흡수할 여력이 없으면서도 상대에게 정치적 기회의 창을 조금이라도 열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 사회주의 체제 붕괴 과정이 잘 말해주고 있다.
만일 변화를 수용할 능력이 없다면, 정치적 기회의 창을 꽁꽁 닫아두어야 한다. 북한의 김정일은 “내게서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유명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변화하려고 하는 순간 무너진다는 것을 수십년간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을 하지 않았으면 소련도 무너지지 않고 고르바초프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 북한의 김정은도 어린 나이지만 권력 유지 방법을 잘 아는 것 같다. 시장화를 용인하면서도 정치권력은 더욱 틀어쥐고 있다.
박대통령 자신도 변화를 수용할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 유지 방법은 하나 눈 딱 감고 현재 동원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권력의 본질에 관한 한 김정일, 김정은, 고르바초프, 박근혜 모두 차이 없다. 권력은 사용하려는 의지, 수단이 있을 때 유지 된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군을 동원해서라도, 측근 총살을 통해서라도 유지하고자 하며 바로 그 때문에 권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1989년 천안문 시위 때 등소평이 탱크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한 적이 있다. 등소평은 당시 진압하려는 의지가 분명했고 동원 가능한 군대라는 수단도 있었다. 만일 군대가 나서지 않거나 등소평이 우물쭈물 했다면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중동 민주화의 차이도 어떤 측면에서 권력동원 의지와 능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일명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다. 권력은 한 달 만에 무너졌다. 이집트에서는 보름 만에 무너졌다. 리비아는 10개월만에 카다피 정권이 붕괴됐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내전까지 치루고 있지만 아직 건재하다. 겨우 보름 버티는 정권과 6년을 버티는 정권의 차이는 권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저항을 분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의 차이이다. 보름, 혹은 한달 만에 무너진 정권은 군이 중립을 지키고 집권자가 체제 유지에 대한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전투기까지 동원한 결과 10개월을 갔고, 아사드는 군대를 총동원해 아직 정권을 지키고 있다.
■ 권력 유지 방법을 아는 대통령
만일 박대통령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경질한다면 어떻게 될까? 권력의 한 축이 붕괴되면서 버틸 힘이 약해지게 되고 결국 박대통령은 계속 도전세력에게 양보와 타협책으로 연명해야 할지 모른다. 인기가 떨어지고, 국정 실패했다고 박대통령이 의기소침해져서 조금 양보하고 타협해서 부족한 인기를 보완하려고 한다면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박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일방통행 하다 난관에 직면하니 친서민이니 중도니 실용이니 하면서 타협하다 국정 중심을 잃었고 급기야는 친박계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말았다. 지금 비박근혜계가 당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걸 약점으로 알고치고 들어올텐데 그걸 막는 게 우선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박대통령의 손안에는 아직 검찰과 경찰, 국정원, 관료조직, 방송이 있다. 이걸 계속 틀어쥐고 가야 한다,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박대통령이 왜 이렇게 말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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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31610001&code=910203&nv=stand#csidxc04f5db0a91f42c850217a6a22e9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