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개 기업 미르에 486억 10월 26일 K스포츠에 12월 31일 동시입금
■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냈다면 두 재단에 입금일자까지 똑같을 수 없어
■ 전경련 움직일 수 있는 누군가가 모금액 입금날짜를 정해줬다는 결론
육영재단-한국문화재단’으로 톡톡히 재미 보시더니…퇴임 후 대비?
|
기부기업들 한날한시에 일사분란하게 동시 입금…‘이유는?’
본지의 ‘최순실 배후’의혹을 제기해 파장이 커졌던 미르ㆍK스포츠 게이트와 관련된 구체적 정황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지난 27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안 수석이 두 재단의 기금 출연 과정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압박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한 기업 관계자는 “안 수석이 전경련에 얘기해서 전경련에서 일괄적으로 기업들에 할당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미르재단의 관계자는 “이사장님, 사무총장님, 각급 팀장들까지 전부 차은택 단장 추천으로 들어온 건 맞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정권 실세로 추정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모금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런 가운데 <선데이저널>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의 입금내역이 담긴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르의 경우는 10월 26일에 기업들이 일시적으로 돈을 냈고, K스포츠재단에는 12월 31일과 1월 11일에 일시적으로 입금했다. 즉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면 약속한 듯이 한 날 한 시에 입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약속이나 한 듯 두 재단에 돈을 넣는 날짜까지 똑같았다. 배후 조종 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이처럼 두 재단의 모금 과정에 정권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고, 특히 그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최순실씨 관련 소문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선데이저널>이 한 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돈을 기부한 19개 기업은 약속이나 한 듯 날짜를 정해서 돈을 입금했다. 일단 미르의 경우 10월 26일 19개 기업이 돈을 모두 입금했다. K스포츠재단의 경우 날짜가 약간 분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12월 31일, 일부 기업은 1월 11일을 전후해 입금을 완료했다.
K스포츠재단에 돈을 가장 많은 돈을 낸 현대차의 경우 12월 31일 43억을 냈고, 삼성화재(29억)․에스원(10억)․이마트(3억 5000만원)․신세계(1억 5000만원)․SK종합화학(21억 50000만원)․부영주택(3억)․KT(7억)․CJ제일제당(5억)․아모레퍼시픽(1억)․LS(6억) 등이 같은 날에 돈을 입금했다.
이외에 삼성생명이 1월 11일 25억, 제일기획이 1월 12일 10억, LG그룹이 30억, SKT가 1월 8일 21억 5000만원, 한화생명이 12월 24일 각각 10억원을 입금했다. 날짜가 약간씩 다르지만 사실상 12월 31일을 전후해 입금을 완료한 것이다.
육영재단과 한국문화재단 이어 미르재단
19개 기업이 한 날 한 시에 8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선뜻 내놓은 것은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다. 결국 전경련을 움직일 수 있는 누군가가 모금액이나 모금 날짜를 정해줘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정권차원에서 모금을 독려해야만 가능한 두 재단의 재원은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한 포석이라는 주장에도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육영재단과 한국문화재단 등의 이사장을 오랜 기간 역임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시절이던 2012년 한국문화재단이 그의 정치활동을 측면지원하고 비선들의 활동 근거지라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선데이저널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의 입금내역이 담긴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르의 경우는 10월 26일에 기업들이 일시적으로 돈을 냈고, K스포츠재단에는 12월 31일과 1월 11일에 일시적으로 입금했다. 즉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면 약속한 듯이 한 날 한 시에 입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약속이나 한 듯 두 재단에 돈을 넣는 날짜까지 똑같았다. 배후 조종 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
한국문화재단이 논현동팀·삼성동팀·신사동팀 등으로 불린 박 대통령 대선캠프 비선조직의 모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실제 재단 해산 전까지 이사진 전원이 박 대통령 측근들로 꾸려졌었다. 박 대통령이 2002년 한나라당을 나와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할 때 탈당선언문을 쓴 장소도 한국문화재단 사무실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실세 보좌진들도 이 사무실에 자주 다녔다는 증언이 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의혹이 거세게 일자 대선을 반년 앞둔 2012년 6월 이사회 결의로 재단을 해산하며 논란을 털고 갔다. 보유자산 13억여원은 육영재단으로 넘겼다. 당시 재단 이사회 임원(이사 6·임원 2인)은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내정됐던 변환철 중앙대 교수, 김삼천 정수장학회 이사장, 김달웅 전 경북대 총장 등이다.
한국문화재단이 자산을 넘긴 육영재단은 1969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복지재단으로 역시 각종 잡음으로 시끄러웠다. 박 대통령이 1982년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지만 동생들과 경영권 다툼이 벌어져 1990년 박근령 씨가 이사장이 됐다. 한마디로 재단 전문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인데, 이 정부에서 다시금 재단법인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르재단, 각종 정부 사업도 특혜받아
본지 보도로 파장이 커진 미르재단 관련 의혹은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최대 이슈로 떠오르며 야당에서 각종 추가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문화체육관광부가 미르재단 설립 신청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직원을 서울로 출장까지 보내고, 접수 5시간 만에 초고속 설립 허가를 내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추가로 제기됐다.
그리고 접수 다음 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미르재단 현판식을 거행했으며 이사진까지 완벽하게 구성하는 등 각본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권 깎아내리기’ 의혹제기라며 오히려 감싸고돌았다.
또한 미르재단은 농림축산식품부 식품 개발원조(ODA) 사업인 ‘K-Meal’ 사업에 국비 출연을 받고 있는 공공기관을 밀어내고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 소속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농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가칭)K-Meal 사업 준비 T/F 구성계획’ 공문 등을 공개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 공문에 따르면, 당초 ‘K-Meal’ 사업은 한식 해외홍보와 ODA의 핵심 공공기관인 농식품부 산하 한식재단과 한국농어촌공사가 사업 추진 핵심기관으로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업 추진과정에서 이들 기관은 빠지고 미르재단이 포함됐다.
김 의원은 이러한 결정으로 ‘K-Meal’ 사업의 취지마저 흐트러졌다고 꼬집었다.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개도국 발전 및 식량난 해결을 돕고 한식도 함께 소개” 하는 사업으로 규정돼 있다. 또 “3개국(우간다·에티오피아·케냐) 농업부와 농식품분야 ODA에 대한 MOU 체결”을 구체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업 취지와 목적을 감안하면, 연간 130억 원의 국비출연을 받으면서 한식문화 홍보 사업을 맡고 있는 농식품부 산하 한식재단이 ‘K-Meal’ 사업을 추진하는 게 맞았다. 실제로 올해 2월 16일 공문으로 등록된 ‘K-Meal TF 구성계획’ 공문에서는 한식재단이 푸드트럭 메뉴구성과 책임셰프, 보조조리원 등 인력 섭외를 총괄하는 역할로 한식홍보반에 편재돼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과 달리 한식재단은 이 사업에서 빠진 상태다. 김 의원은 “한식재단으로부터 ‘코리아에이드 및 K-Meal 사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이 같은 사실은 aT가 작성한 K-Meal 세부추진계획과 농식품부가 지난 5월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수 장관임명은 사실상 보은인사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뒀던 ‘에꼴 페랑디’와 한식 연계 사업 등에 대해 “김재수 장관이 사장으로 있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예산과 인력이 상당히 들어갔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받지 않는 것은 이 때문 아니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사장에 불과했던 김재수 씨가 농식품부 장관이 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재수 장관은 현재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인물인데, 야당이 그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여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김 장관은 미르와 관련해서도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관부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뒀던 ‘에꼴 페랑디’와 한식 연계 사업 등에 대해 “김재수 장관이 사장으로 있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예산과 인력이 상당히 들어갔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받지 않는 것은 이 때문 아니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손혜원 의원에 따르면 프랑스 국립 요리학교인 에꼴 페랑디가 한국 언론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2013년 10월 28일이다. 삼성전자가 페랑디와 합작해 냉장고·와인셀러·빌트인 오븐 등 삼성 주방가전 제품으로 구성된 ‘삼성 키친 클래스’를 만들어 요리강의를 진행한다는 보도였다.
한 달여 후부터는 aT가 에꼴 페랑디와의 사업에 적극 나선다. aT는 2013년 11월19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에꼴 페랑디에서 한불 셰프 공동 한국식품 홍보행사를 열었다. aT는 같은 해 12월 유럽지사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프랑스 파리로 옮겼다.
aT는 또 2013년 12월14일 에꼴 페랑디에서 프랑스 쉐프들의 한식 경연대회를 열었다. 이듬해인 2014년 9월24일에는 역시 에꼴 페랑디에서 한국 식재료·요리 강좌를 개설할 때엔 aT 파리 지사가 주관이 됐으며 2015년 10월19일 ‘한불 미식의 밤’도 aT 주최로 에꼴 페랑디에서 열렸다.
aT와 에꼴 페랑디 사업은 2013년부터 시작이 됐다. aT 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0월부터 지난 8월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김재수 장관이 맡고 있었다.
손혜원 의원은 “2015년 10월25일 만들어진 미르재단의 첫 프로젝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에꼴 페랑디와의 사업인데 2013년부터 에꼴 페랑디와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가 되고 있었다”며 “삼성도 잠깐 등장하지만 aT 사장으로 김재수 장관이 있던 곳에서 모두 진행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