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지난 9월7일 한 대학 특강에서 “최근 일부 정치인이 ‘정예 강군을 만들겠다’며 주장하는 모병제는 부잣집 애는 군대에 가는 사람이 없는데, 없는 집 자식만 군대에 가라는 것”이라며 “(모병제 주장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말 말이 안 되는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다음날 모병제를 주장한 당사자인 남경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추구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며 “그런 정책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유승민 의원의) 규정은 오만”이라 반박하고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군대는 ‘없는 집의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세간의 인식에 부합하는 유 의원의 주장은 사실인가? 둘째,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없는 집 애들이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 왜 정의가 아닌가?
충남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 연병장. 퇴소식에서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가족들. <한겨레> 자료사진
베트남전쟁이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던 1967년, 전쟁 반대 여론이 고개를 들던 미국 대학가는 미국 징병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해 시카고대학이 모병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학술대회를 최초로 개최한 것이 계기가 돼 모병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다. 같은 해 미국 하원의원 5명이 ‘징병제를 종결하는 방법’(How to End the Draft : The Case for an All Volunteer Army)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5년이라는 모병제 전환 기한까지 제시했다. 이에 존슨 대통령은 병역제도 논의를 위해 국가자문위원회와 입법 자문위원회를 설립해 대안을 모색했다. 두 위원회의 건의를 토대로 존슨 대통령은 모병제는 원칙적으로 맞지만 비용과 실행 과정의 어려움으로 입법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당시에도 모병제를 실시하면 계층 차별이 확산된다는 유승민 의원과 같은 주장은 여러 곳에서 제기되었다.
게이츠위원회, 만장일치로 모병제 찬성
그러나 후임 닉슨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징병제에 따라 입대한 장병들이 베트남전쟁 말기로 갈수록 탈영, 마약, 인종차별, 사기저하, 하극상과 같은 각종 군 기강 문란으로 무너지는 조짐을 보이면서 군 지휘관들조차 징병제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징병제 이래로 병사들의 임금은 민간 부문 노동자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고 군 조직의 효율성도 저하되자 군과 민간의 징병제에 대한 거부감도 극에 달했다. 징병 카드(draft card)를 불태우며 시위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일상화하면서 이제는 군이 국가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짐이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그러나 여전히 의회를 비롯한 여론주도층은 징병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징병제 폐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면 패배할 것이 확실시되자, 1969년에 닉슨 대통령은 토머스 게이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게이츠 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위원회는 모병제 찬성 5명, 반대 5명, 중립적 인사 5명으로 균형을 맞추면서 1년 정도 검토를 진행했다. 1970년 2월에 제출된 게이츠 보고서는 미국 병역제도의 해법은 모병제라는 점을 확신하고 국방비와 군대 규모에 대한 재평가와 아울러 모병제 도입을 만장일치로 건의하게 된다. 여기에 육군부가 웨스트모얼랜드 총장의 지휘 아래 연구팀을 가동하여 모병제로의 전환 프로그램 연구에 착수하면서 정교한 전환 프로그램이 구상된다. 이를 토대로 1971년 1월에 닉슨 대통령이 일반 교서를 통해 징병제 폐지를 발표한다. 이후 법안 제출과 의회 설득의 기나긴 과정이 이어진다. 이때 새뮤얼 어빈 상원의원이 한 발언은 지금의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의 모병제 반대 의원들의 발언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청년들은 용의가 없는 이상 아무도 군대에 가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또한 행정부가 청년들에게 1973년 7월까지 (모병제 도입)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데 앞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이상 청년들은 군에 입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매우 불안정한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러므로 징병제는 연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케네디 상원의원 역시 유사한 발언을 한다. “모병제가 우리 사회의 가치와 부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빈곤층은 기술의 부족, 교육의 부족 혹은 사회가 그들에게 부과한 다른 종류의 불공평으로 인하여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 우리 대신 군대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점이 더욱더 불공평하며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반론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행정부의 의회 설득 노력과 여론 조성 작업 끝에 1971년 9월 상원에서 징병제 폐지 법안이 통과된다. 미국의 모병제 도입은 대성공이었다. 베트남전쟁의 악몽은 새로 구성된 직업 군대에 의해 비로소 변화와 혁신이라는 출구를 찾게 된다. 베트남전쟁 이후 새로 구성된 미군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까지 240만명의 병력을 유지하면서 세계 최강의 전문 집단으로 거듭나고 1991년 제1차 이라크전쟁에서 비로소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게 된다. 사회 하위 계층이 주로 군대의 병사로 입대한다는 주장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위계층이라 하더라도 군에서의 복무는 직업성을 부여받게 되어 징병으로 입대한 과거의 미군 병사들보다 그 효율성이 월등히 높았다. 지금의 한국군을 보면 5명 중 4명이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세계 최고의 엘리트 병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런 직업성을 부여받지 못해 세계에서 가장 수동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만 수행하는 수동적 집단으로 운용되고 있다.
보수 징병론자들의 자기비하
그런데 우리 사회의 징병제 지지론자들은 지금 미국의 모병제를 실패한 제도로 낙인찍는다. 이라크 및 아프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군이 처한 모병 어려움이 그 근거다. 이라크전쟁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2006년, 미 국방부는 사면을 대가로 1만7000명의 범죄자를 입대시켰다. 또한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조건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모병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18살이 되는 고등학생을 재학 중에 군에 입대시키는 조처로 부족한 병력을 채우려고 했다. 이로 인해 미군의 하부구조는 하위계층으로 채워진 반면 미 국회의원 자녀 중 군 입대자는 거의 사라졌으며, 하버드 등 유수한 대학 재학생도 군에 입대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불가능하다.
병사뿐만 아니라 장교도 마찬가지다. 대위에서 소령까지 초급간부의 경우 3000명이 부족하여 진급 경쟁이라는 말이 아예 사라질 정도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웨스트포인트(미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된 장교조차 소령 계급을 마치기 이전에 58%가 군복을 벗고 전역했다는 사실이다. 레이건 시대 240만명이던 미군 병력은 140만명으로 축소되었으나 이제 이마저도 충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꼴이다. 이런 미군의 상황을 볼 때 한국에서 모병제 도입은 군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미국의 모병제 실패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는 믿음은 정당한가? 미국에서 모병이 실패한 이라크전쟁 후기 상황은 베트남전쟁 당시와 매우 유사하다. 먼저 전쟁의 목적도 불분명하고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사라졌다. 정당하고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한다는 국가의 도덕적 권위도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징병제이건 모병제이건 그 제도의 종류와 관계없이 예외 없이 군 하부구조는 위기에 처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전쟁 그 자체가 문제이지, 미군의 실패를 모병제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논리 비약이 아닐까? 방향을 상실한 군대는 장교건 병사건 그 핵심 기반이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데서 징병제와 모병제의 차이는 사실상 없다. 결국 징병제 지지론자들의 전제, 즉 군대는 청년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이고 사회적 약자만 그 책임을 질 것이라는 가정은 군대를 더럽고, 위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존재라는 부정적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혐의를 피해갈 수 없다. 이 점이 이제껏 안보를 중시하고 군대를 신성시하는 보수세력의 주장에서 드러나는 가장 이율배반적인 대목이다.
지금 한국군의 실상을 보면, 베트남전쟁 말기 미군이 처한 위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간 3000명이 자살 우려자 수용소라고 할 수 있는 ‘그린 캠프’에 입소하고 그와 같은 수의 병사들은 사고 예방을 위한 ‘비전 캠프’에 입소한다. 그렇게 하고도 4000명은 현역 부적격자로 판명되어 군에서 조기에 제대한다. 항상 1만명 정도의 병력이 군의 사고를 유발하는 시한폭탄이 되어 사실상 격리된다는 이야기다. 지휘관들은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하여 병사들에 대한 생활기록부 작성, 상담, 인성검사를 수시로 실시하고 밤늦은 시각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병사들을 감시해야 한다. 부모들의 우려를 고려하여 중대마다 지휘관, 부모, 병사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밴드를 운영해야 하며 부모의 질문에 의무적으로 답변을 댓글로 올려야 한다. 이등병 월급 15만원, 병장 월급 20만원의 한국군 병사들은 아무런 자율성이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인격의 가치가 매우 낮다. 이는 일선 전투원들의 생명가치를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져 각종 의료사고나 군기사고를 낳는다.
그나마 겨우 유지되고 있는 한국군은 급격한 인구절벽의 시대를 맞이하여 현재 87%인 징병대상자의 현역 입영률을 2022년경이면 9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이때쯤이면 정신 및 심리 이상자, 신체허약자, 고아, 혼혈아까지 전부 입대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는 일선 부대가 조직 유지조차 문제가 되는 속칭 ‘관리형 군대’로 완전히 전락할지도 모른다. 지금 일선의 지휘관들은 자신이 마치 보육원의 보모와 다를 바 없다고 하소연한다.
중요한 건 정의로운 전쟁 수행 의지
한국의 모병제 도입 논의는 지금 군대가 위기에 처했다는 상황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핵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현대전에서 “내 진지는 내가 지킨다”는 무조건적 충성과 전투의지, 재래식 전쟁의 관점으로 어떻게 안보가 유지될까? 병사들에게 창의성이 아니라 농업적 근면성과 기계적인 업무만을 요구하는 군대가 과연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유달리 습관화되어 있는 평등의 관점 때문에 징병제 유지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가 높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자녀 시대에 인구가 충분하던 과거 산업사회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급격히 바뀐다는 데 있고, 이제는 이를 앞서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적 변곡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1가구 1자녀 시대이고 사람의 목숨 값이 과거처럼 저렴하지도 않다. 인력자원을 공짜로 무제한 공급하던 과거 징병제의 토대는 이미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을 선두로 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대다수 국가가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모병제로 전환했거나 전환하는 중이다. 이들 나라들이 모병제에 수반되는 비용의 증가와 사회적 약자들이 군대에 집결된다는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병제로 전환해야 하는 시대적 추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전환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롭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국가가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이 점이 전제되지 않고 무조건 충성, 무조건 전투만 외치며 병사들을 윽박지르는 군대라면 징병제건 모병제건 성공할 수 없다. 걸핏하면 통제하고 감시하고 지시만 하는 한국의 군사관료주의와 이를 떠받치는 한국의 징병제가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