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의원, 교육청 감사에 적발된 1146곳 실명 공개
명품백·성인용품 구매하고 별도 계좌에 적립금 쌓아놓기도
명품백·성인용품 구매하고 별도 계좌에 적립금 쌓아놓기도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정부에서 준다는 누리과정 지원금, 우리는 구경도 못하고 곧바로 유치원으로 따박따박 들어가는데 여기에 교육비라고 별도로 25만원씩 내고, 방과후 영어수업비, 통학차량 이용료, 급식비까지 달달이 50만원 가까이 현금으로 냈어요. 그런데 회계감사도 안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서울 강동구 학부모)
"명단 공개되자마자 유치원 엄마들 다들 난리가 났죠. 유치원에 항의하니까 강당에 학부모 모아 놓고 설명하겠다 해서 오늘 회사도 휴가 내고 기다렸는데, 그마저 취소됐다네요. 원장이 병원에 입원하셨대요."(경기도 동탄 학부모)
전국의 비리 유치원 명단과 그 내용이 공개되면서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공개된 자료가 전수 조사가 아닌 일부 유치원을 선별해 감사한 결과이고, 그마저 감사 결과에 불복해 처분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소송이 진행중인 곳은 제외된 만큼 더 많은 유치원에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시민들도 공분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 비리 혐의가 적발된 유치원 1146곳의 실명과 비위 사실이 담긴 파일을 공개했다.
적발된 유치원들의 비리는 수법도 제각각이었다. 일례로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는 무려 3년간 개인 승용차 렌트비를 '승용차 사용료' 명목으로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원장 개인의 차량 기름 값과 수리비, 아파트 관리비까지 낸 경우도 있었다.
교비로 명품 핸드백을 사거나 심지어 성인용품점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종교시설에 헌금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유치원에서는 교직원 복지 적립금 명목으로 설립자 개인 계좌에 1억1800여만원을 부당하게 적립한 사실도 적발됐다.
박 의원은 "교육부가 지난 7월20일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기로 해놓고도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직접 명단을 공개한다. 공개된 사립유치원 비리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비리 유치원 명단에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 학부모는 "평소 원비를 더 내는 만큼 아이들에게 훨씬 우수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더니, 결국 시설적립금이라는 명목으로 차명계좌에 돈을 빼돌리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탄식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급식비를 더 받았다고 해도 단순 착오나 실수라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될 일인데, 유치원 측이 다짜고짜 억울하다, 모함이다, 정 못 믿으시면 (아이) 그만 보내시라 협박까지 하는데 기가 막혔다"며 "이런 유치원을 계속 다녀야 하는건지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이미 자녀가 유치원을 졸업했다는 한 학부모는 "십년 전에도 사립에선 돈을 빼돌린다, 기업형으로 유치원 몇 곳씩 운영하는 원장도 있다는 등 말이 많았지만 그래서 문 닫았다는 유치원은 보지 못했다"며 "설마설마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는데 적극 찬성한다"고 일갈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유치원 비리와 관련된 청원이 수십 건 이어지고 있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한 시민은 '비리 유치원 처벌 강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유치원에 지원하는 금액 줄이고 비리로 벌어들인 금액 전액 토해내고 그 원장들은 자격 박탈해야 된다"며 "믿고 맡길 유치원이 없는 현실에 눈물이 난다"고 호소했다. 하루 밤 사이 1700명 이상이 이 청원에 동의했다.
앞서 지난 5일 박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토론회'에 난입해 행사를 가로막았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유치원 단체들은 이번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