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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8, 2011

MB 아들과 청와대, 왜 내곡동 땅 사들였나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에 퇴임한 이후 거처할 사저를 서울 내곡동에 짓고 있는 정황이 < 시사저널 > 취재 과정에서 처음 포착되었다. 토지와 건물을 구입한 주체는 이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 청와대이다. 이에 따라 평범한 직장인인 시형씨가 17억원대에 이르는 부동산 매입 자금을 어떻게 구했는지 그 출처와 함께 이대통령이 논현동 사택을 두고 내곡동에 사저를 신축하려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대통령실이 공동 매입한 서울 내곡동 땅. ⓒ이종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서울시립어린이병원 인근에는 '홍씨 마을'이 있다. 과거 홍씨 집성촌이었던 까닭에 이렇게 불린다. 기자가 이 마을을 방문한 지난 10월4일 오후. 야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전형적인 주택 단지로 골목길은 비교적 한산했으며,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고즈넉한 주택가였다.

그런데 1년5개월 후 이 고요한 마을에 '특별한 주민'이 이사를 올 듯하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대통령이 2013년 2월 퇴임한 이후 거처할 사저(私邸)가 현재 이곳에 지어지고 있는 정황이 < 시사저널 > 취재 과정에서 단독으로 확인되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네 명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퇴임 후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지 살았던 본래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 서울을 떠나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이대통령 역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직전 대통령 경호 시설 건립 부지 매입비' 항목으로 올해 예산 40억원을 배정받았다. '논현동 사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경호 시설 위치는 통상 현직 대통령이 소유한 사저(논현동 집)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호 부지 매입 예산을 소진해야 할 올해가 불과 석 달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 대통령실은 이대통령의 논현동 사저 주변 부동산을 전혀 매입하지 않았다. 대신 그 40억원의 예산이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었다. 대통령실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토지와 건물 등을 40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이같은 사실은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은 여전히 '이명박 사저'가 논현동 자택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이대통령은 사저를 논현동에서 내곡동으로 비밀스럽게 옮기려고 하는 것일까.

이대통령의 이른바 '내곡동 사저'가 들어서는 곳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20-17번지 일대의 여덟 필지이다. 그 지번을 보면 △내곡동 20-17번지(대지 5백28㎡) △20-30번지(대지 62㎡) △20-36번지(전(田)2백59㎡) 등 세 필지는 '20-17번지 외 2필지' 한 덩어리로 묶여 있으며, 이 땅과 맞붙은 △6-90번지(전 2㎡) △19번지(전 1백79㎡) △20-2번지(전 16㎡) △20-15번지(전 5백6㎡) △30-8번지(전 8백26㎡)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여덟 필지의 토지 면적은 모두 2천3백78㎡(약 7백20평)이다.

주택 건물은 이미 철거된 상태

문제는 이 토지 가운데 한 덩어리로 묶여 있는 '내곡동 20-17번지 외 2필지'의 소유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17번지 외 2필지'에는 지하 1층(85.51㎡), 지상 2층(1층: 1백10.78㎡, 2층: 70.76㎡) 규모의 연와조 나무 기와와 아스팔트 슁글 지붕으로 만들어진 단독 주택이 있다.

그런데 이 주택을 이대통령의 장남인 시형씨(34)가 5월13일 10억1천7백75만원에 매입했다. 이 땅의 지분 일부도 함께 매입했다. 시형씨가 이 건물과 일부 토지 지분을 매입한 지 12일이 지난 5월25일 대통령실은 이 땅의 나머지 지분 등 앞서 언급한 여덟 필지의 토지를 40억원에 모두 매입했다. 즉 시형씨가 건물과 일부 지분을 먼저 매입하고, 바로 뒤이어 대통령실에서 주변의 나머지 토지를 매입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형씨가 매입했던, 1985년에 지어진 2층 단독 주택 건물은 현재 철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자가 10월4일 이곳을 방문했을 때 '20-17 외 2필지' 내에 있는 것으로 등기부에 등재되었던 시형씨 소유의 건물은 이미 없었다. 주택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철거된 폐건축 자재도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대통령 사저를 다시 짓기 위해 시형씨 소유의 오래된 건물을 허문 것으로 보인다.





이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예정지로 추측되고 있는 내곡동 20-17번지 외 2필지 현장. 터 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전영기
그곳에는 현재 터 파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기자가 방문했던 날에는 공사를 하지 않았다. 공사 관계자뿐 아니라 그 누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주목되는 점은 '20-17 외 2필지' 토지를 대통령실과 시형씨가 현재 공동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번지(5백28㎡, 1백60평) 토지의 경우 시형씨가 5백28분의 3백30, 대통령실이 5백28분의 1백98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형씨가 8분의 5(100평), 대통령실이 8분의 3(60평)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등기부등본에는 이땅을 얼마에 사고팔았는지 알 수 있는 '거래가액'이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에 개별 공시지가로 추산해보았다.

2011년 1월1일 현재 이 지번의 개별 공시 지가는 ㎡당 1백94만원이다. 따라서 시형씨로서는 약 6억4천여 만원 정도의 매입비가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 이대통령이나 김윤옥 여사 명의가 아닐까.

20-30번지(62㎡, 19평)의 경우에도, 시형씨가 62분의 36(11평), 대통령실이 62분의 26(8평)의 지분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거래 가액'에 따르면, 시형씨는 5월13일 이 땅의 지분 62분의 36을 2천2백만원에 매입했다. 20-36번지(2백59㎡, 79평)에서도 비슷했다. 시형씨는 2백59분의 97(30평), 대통령실은 2백59분의 1백62(49평)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의 '거래가액' 에 따르면, 시형씨가 5월13일에 8천25만원에 매입했다. 이로써 시형씨가 '20-17외 2필지' 토지 일부를 매입한 비용은 모두 7억4천2백25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렇게 산정했을 경우, 시형씨는 '20-17외 2필지' 내에 있는 건물(10억1천7백75만원)과 토지 일부(7억4천2백25만원)를 매입하는데 모두 17억6천여 만원 정도를 투자한 셈이다. 따라서 '내곡동 사저' 부지는 시형씨(17억6천20만원)와 대통령실(40억원)이 모두 57억6천여 만원 정도를 '갹출'해서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크게 세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시형씨의 17억원대에 달하는 부동산 매입 자금의 출처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또 시형씨 소유의 토지를 대통령실과 공동으로 소유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대통령의 사저가 '논현동'에서 '내곡동'으로 은밀하게 바뀐 사유 등에 의문 부호가 찍힌다.

이대통령은 지난 3월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서울 논현동 자택을 포함해 모두 54억9천6백59만원을 신고했다. 하지만 장남인 시형씨는 '독립 생계 유지'를 사유로 고지를 거부했다. 시형씨는 지난 2007년 3천6백50여 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이후 2010년까지 3년째 고지를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3천만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던 시형씨는 무슨 돈으로 거액인 17억원대에 달하는 부동산을 매입했던 것일까. 시형씨는 5월13일 내곡동 부동산을 매입했고, 한 달 후인 6월15일 어머니 김윤옥 여사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29-13번지(대지 3백49.6㎡)를 담보로 농협중앙회 청와대지점에서 7억2천만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내곡동 부동산 매입 자금의 일부를 김윤옥 여사의 부동산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으로 충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가 매입한 주택 건물의 정문 ⓒ전영기
만약 그렇다 해도 나머지 10억원 이상을 어디에서 마련했느냐는 점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다스에서 경영기획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시형씨의 입장을 듣고자 10월7일 회사에 전화를 걸었으나, 회사 관계자는 "(시형씨는) 현재 국내 출장 중이다. (기자가) 직접 통화하기는 힘들다. 나중에 다시 회사로 연락해라"라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김윤옥 여사 땅을 담보로 대출받은 것과 관련해 물어볼 것이 있으니, 이시형 팀장에게 연락 부탁한다고 전달해달라'라고 했으며, 회사 관계자는 "그렇게 전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두 번째 의문은 시형씨와 대통령실이 '20-17 외 2필지' 토지를 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대통령이 퇴임 후 이용할 사저라면 이대통령이나 김윤옥 여사의 명의로 매입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내곡동 사저'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대통령의 사저인데 대통령의 아들 명의로 매입한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식이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퇴임 후의 사저를 매입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가족이 대통령실, 즉 국가와 이를 공유한 사례는 전혀 없었다. 누가 보아도 오해할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직 대통령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저의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보아도 대통령 부부가 아닌 다른 가족 등이 사저를 매입한 전례는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서울 연희동 95-4, 95-5)는 1988년 2월 퇴임할 때 전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 명의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연희동 108-17)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서울 상도동 7-6) 역시 퇴임 당시 자신들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서울 동교동 178-1)은 이희호 여사 명의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0-6)는 2006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1억9천4백55만원에 매입했으며, 퇴임 후인 2008년 7월 권양숙 여사에게 지분 2분의 1을 증여할 때까지 계속 노 전 대통령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대통령이 자신이나 김윤옥 여사가 아닌 장남을 통해 사저 부지의 일부를 매입한 까닭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경호 시설 부지 매입 예산과 일치한 까닭은?

마지막으로 '논현동 사저'를 계획하고 경호 시설 부지 매입 예산을 받았던 대통령실이 그동안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내곡동으로 '급선회'했느냐는 점도 미스터리이다. 대통령실이 올해 경호 시설 부지 매입 예산으로 배정 받은 40억원이 공교롭게도 < 시사저널 > 확인 결과, 대통령실이 지난 5월25일 서울 내곡동 20-17번지 일대 여덟 필지를 사들인비용 40억원과 액수가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대통령실이 당초 책정했던 예산 70억원이 40억원으로 삭감되면서 '어쩔 수 없이'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내곡동으로의 이전이 불가피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0월7일 전화 통화에서 기자가 '사저 추진 계획'에 대해 묻자 "논현동 자택 인근에 올해 안으로 경호 시설 부지를 매입하려고 추진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기자가 "혹시 논현동이 아닌 다른 곳에 사저가 만들어질 수도 있느냐"라고 묻자 이 관계자는 "다른 곳은 아닌 것으로 안다"라고만 답변했다.

< 시사저널 > 은 이대통령의 논현동 자택을 둘러싸고 있는 인근 부동산 지번 열 한 곳을 확인해본 결과, 대통령실에서 10월7일 현재까지 경호 시설용으로 매입한 부지는 없었다.

'내곡동 사저' 경호 시설 부지 매입비, 노무현의 '15배'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의 경호 시설 부지 매입 예산 40억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의그것과 비교했을 때 무려 15배에 달한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 시설 부지 매입비는 2억5천9백만원이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저가 들어섰고, 이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 지역이기 때문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같은 서울에 사저가 위치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 경호 시설 부지 매입비가 9억5천만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경호 시설 부지 매입비가 7억8천만원인 점을 감안해도 각각 4.2배, 5배나 많은 셈이다.

지난해 12월, 이와 관련해 "전직 대통령들보다 너무 과다한 것이 아니냐"라는 논란이 일자, 당시 대통령실은 해명 자료를 통해 "경호 시설 위치는 통상 현직 대통령이 소유한 사저(논현동)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향후 이 시설은 국유 재산으로 관리되므로 사저와는 무관하다"라고 밝혔다. 국회 운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10월5일 기자와 만나 "청와대로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가 논현동에서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는 듣지를 못했다"라고 말했다.

기존 논현동 자택의 경우 사저는 3백10평이고 경호 시설 부지는 2백평으로 예상되었다. 전체가 5백10평이 되는 셈이다. 반면 < 시사저널 > 이 확인한 '내곡동 사저'의 경우에는 총 7백20평으로 면적이 훨씬 더 넓어진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예산 편성 당시 논현동을 기준으로 하기는 했지만, 이왕에 책정된 40억원의 예산을 가지고 땅이 좀 더 넓은 곳을 물색하다 보니 내곡동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지영 기자 / young@sisapress.com

스티스 잡스 인물사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2005년)



입양으로 시작 된 인생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24~2011.10.5)는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보수적인 미국인 집안이었던 생모 조앤 심슨의 가족은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고, 결국 조앤 심슨은 미혼모의 신분으로 잡스를 낳은 후 입양을 선택했다. 심슨은 잡스의 새 부모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부부를 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변호사 부부가 잡스를 입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잡스 대신 여자아이를 택했고, 잡스는 대기자 명단에 있던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돌아갔다. 심슨은 폴 잡스가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고 클라라 잡스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입양 서류에 서명하길 거부했고, 잡스 부부에게 “스티브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입양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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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캘리포니아는 급격한 변화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넘어온 사이키델릭 음악과 신비주의가 크게 유행했다. 이 두 가지 문화는 잡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잡스는 비틀즈의 팬이자 자유주의의 신봉자였다. 이는 잡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 복장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에서 해고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를 설립하고 픽사를 인수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워즈니악과의 만남, 애플 창업, 그리고 좌절       
고등학교 졸업 후 잡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칼리지(Reed Collrge)에 의학 및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입학했다. 하지만 리드칼리지의 등록금이 너무 비쌌던 탓에 한 학기밖에 다닐 수 없었다. 친구의 집 바닥에서 잠을 자고 콜라병을 판 돈과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생활 속에서도 그는 청강을 통해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이 때 그가 들었던 서예 수업은 나중에 매킨토시의 서체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잡스는 몇 년 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1950.8.11~)과 홈브루컴퓨터클럽(Homebrew Computer Club)에 가입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다. 곧이어 워즈니악과 협력해 잡스 부모의 차고 안에서 애플을 설립하고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을 내놓았다. 이후 후속작인 ‘애플Ⅱ’가 뜻밖의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잡스와 애플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몇 차례 부진을 겪었고 잡스가 30살이 되던 해 애플의 이사회는 그를 해고했다.



맥월드의 기조연설은 애플의 신제품과 함께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출처: (CC)Acaben at Wikipedia.org>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모습. <출처: (CC)Joi Ito at wikipedia.org>




애플에 돌아와 세계 최고의 IT 기업가로    
몇 달간 공황상태에 빠졌던 잡스는 넥스트를 다시 설립하고 픽사를 인수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이후 픽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디즈니에 인수됐다. 조지 루카스로부터 1,000만 달러에 인수한 픽사를 디즈니에 74억 달러에 팔았으니 실로 대단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로렌 파월과 연인이 되었고 1991년 결혼하게 된다. 잡스와 파월 사이에는 1남 2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사실 오래 전 잡스에게는 여자친구 사이에서 낳은 리사라는 딸이 또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리사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불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양육비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나중에야 자신이 리사의 아버지임을 깨달은 잡스는 미안함의 의미로 새 컴퓨터에 딸 이름을 붙여 내놓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첫 마우스 기반 컴퓨터 ‘리사 컴퓨터’다.

1996년, 애플은 넥스트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잡스는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다. 복귀 후 그는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한 해만에 4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그가 내놓은 제품은 연달아 성공했고 애플은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우뚝 올라서게 된다. IT사에 남은 그의 화려한 업적은 아래와 같다.




IT사에 길이 남을 그의 업적


 
애플I

1976년 출시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중 하나인 애플I은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의 합작품이자 애플의 처녀작이다. 200대 가량이 소량 생산되어 지방 소매점에서 팔린 탓에 큰 파급력은 없었지만, 오늘날의 애플이 있게 한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애플Ⅱ

애플I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라면, 애플Ⅱ는 최초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다. 1977년 출시된 애플Ⅱ는 컬러 그래픽 구현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로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애플Ⅱ는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휩쓸며 가장 인기있는 컴퓨터로 자리잡았다.



 
매킨토시

1984년 등장한 매킨토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애플의 광고 공세에 힘입어 꽤 쏠쏠하게 팔렸다. 특히 그래픽 분야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매킨토시의 후속작은 높은 가격과 부족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판매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아이맥

스티브 잡스의 성공신화는 아이맥에서 출발했다. 1998년 출시된 아이맥은 매킨토시의 일체형 버전으로, 혁신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색으로 인기를 끌었다. 아이맥은 1998년 한 해 동안 80만 대 가량 팔리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적자를 면치 못하던 애플은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아이팟

애플은 휴대용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잡스가 내놓은 아이팟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후 잡스는 아이팟 미니, 아이팟 나노 등 후속작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MP3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했다. 아이팟이 성공했기에 아이폰이 등장할 수 있었다.



 
아이폰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쉬운 인터페이스와 파격적인 디자인은 전세계 휴대폰 사용자들을 매료시켰고, 이후 출시된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튠즈앱스토어도 아이폰의 성공에 힘을 보탰다.



 
아이패드

2010년 등장한 태블릿 PC, 아이패드 역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애플은 1년만에 무려 1,900만 대의 아이패드를 팔아치웠고, 전 세계 곳곳에서 아이패드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다른 제조사들도 잇따라 태블릿 PC를 내놓았지만 아이패드에 비해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혁신의 아이콘' 떠나다

하지만 사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병마가 찾아왔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했다.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도 받았다. 점차 건강이 악화되자 2011년 결국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같은 해 10월 5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 주요 연보 

스티브 잡스 주요 연보
연도주요
1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출생, 같은 해 잡스 부부에게 입양
21976년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 설립
31977년개인용 컴퓨터 애플Ⅱ 출시
41978년전 여자친구 사이에서 딸 리사 출생
51983년마우스로 작동되는 컴퓨터 리사 컴퓨터 출시
61984년매킨토시 출시
71985년이사회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남
81985년넥스트 설립
91986년루카스필름으로부터 1,000만 달러에 픽사 인수
101991년로렌 포월과 결혼
111995년[토이스토리] 개봉
121996년애플에 넥스트 매각
131997년애플 최고경영자로 복귀
141998년아이맥 출시, 애플 흑자 전환
152001년아이팟 출시
162004년디즈니에 픽사 매각
172004년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
182007년아이폰 발표
192009년간이식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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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011년10월 5일, 사망

나경원-박원순 재산 비교해보니…

박원순 ‘희망정치’ 항해, 닻 올렸다

박원순 ‘희망정치’ 항해, 닻 올렸다 무소속 후보로 서울시장 후보등록… “민주당과 함께 혁신과 통합”
(미디어오늘 / 허완 / 2011-10-07)

박원순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서울 시장에 출마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박원순 후보는 7일 오전 안국동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희망과 변화의 새로운 문을 열겠다는 굳센 마음으로 서울시장 후보에 등록했다”며 “시민이 만든 야권통합단일후보 박원순은 10월 27일 다시 새로운 서울의 아침을 열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무소속 후보 출마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박 후보는 “그간 민주당 입당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많은 말씀을 들었다”면서 “민주당이 새로운 변화와 통합의 길을 열 것이고 저는 그 길에 함께 서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 후보가 준비된 기자회견문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허완 기자

박 후보는 “박원순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이 시민들의 변화 요구를 반영해 만든 공동 후보”라며 “박원순은 아주 작은 디딤돌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 후보 측은 기자회견 5분 전에 배포한 기자회견문 제목을 <박원순 야권통합 단일후보 기자회견문>이라고 달았다.
박 후보는 “무소속 후보가 불리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 후보는 “(시민과 함께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선거 전략”이라며 “누군가는 다른 꿈을 꾸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 안국동에 차려진 박 후보의 선거사무소 창문에 시민들이 붙여놓은 응원 문구가 눈에 띈다. ⓒ허완 기자

박 후보는 구체적인 공약은 언제쯤 발표할 것이냐는 질문에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기본적인 공약은 (작업이) 마무리 됐다”면서 “기대하셔도 좋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또 선거 이후 민주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는 어떤 일이든 정략적인 발상으로 접근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도 “혁신과 통합이라는 과제를 민주당을 중심으로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저는 함께할 것”이라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민주당의 전폭적 지지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이냐는 질문에 박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후보를 내지 못한 데 대해 많은 분들이 큰 아쉬움과 좌절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손학규 대표께서도 저를 민주당의 후보라고 해주셨고 서울시 의회 의장님과 운영위원장님 등이 만장일치로 저를 지지해주셨다”고 답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민주당원들의 “닫힌 마음”과 “아픈 상처”도 자연스레 아물 것이라는 것이다.
▲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식 출마 기자회견장에서 취재진들이 박 후보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허완 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등록이 오늘로 마감되는 가운데, 6일 후보등록을 마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 간의 ‘본격 대결’이 남은 20일 동안 펼쳐지게 됐다.
다음은 박 후보가 발표한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박원순 야권통합 단일후보 기자회견문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오늘 새로운 시대의 문을 두드립니다. 박원순은 분노와 좌절의 문 뒤에 숨은 희망과 변화의 새로운 문을 열겠다는 굳센 마음으로 서울시장 후보에 등록했습니다. 시민이 만든 야권통합단일후보 박원순은 10월 27일 다시 새로운 서울의 아침을 열겠습니다.
박원순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이 시민들의 변화 요구를 반영해 만든 공동 후보입니다. 야권통합단일후보는 연합과 연대라는 틀을 소중히 하고 발전시키라는 요구와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서울을 만들라는 시민의 요구를 동시에 가진 후보입니다.
그간 민주당 입당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민주당 입당 문제에 대해 대승적으로 생각해주신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원 여러분께 부끄럽지 않은 후보가 되겠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민주당이 새로운 변화와 통합의 길을 열 것이고 저는 그 길에 함께 서서 갈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당의 길이고 박원순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 길에서 박원순은 아주 작은 디딤돌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변화를 바라는 서울 시민이 가라는 길, 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소속 후보가 불리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당 후보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선거운동원 숫자, 등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연락사무소, 정당 광고 사용 불가 등 불리한 조항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선거전문가들은 박빙의 승부에서 이로 인해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고 원칙 때문에 손해를 본다면 봐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한나라당에는 없는, 하나부터 열까지 시민과 함께한다는 원칙입니다. 그것이 저의 유일한 선거 전략입니다. 제 앞에는, 뒤에는 변화를 원하는 시민이 있습니다.
박원순은 ‘좋은 시장 학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려 왔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꿈을 꾸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다른 꿈을 키워야 합니다.
준비된 시장이 서울의 희망을 만듭니다.
박원순은 천만 서울시민과 함께 반드시 새로운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768

도가니’ 교육감, 교과부 고위간부로 버젓이 근무

도가니’ 교육감, 교과부 고위간부로 버젓이 근무
전교조 “은폐했던 주역”…민노 “이주호, 즉각해임하라”
박수현 기자 | newsface21@gmail.com 11.10.06 16:12 | 최종 수정시간 11.10.06 16:16
 
‘인화학교 사태’ 당시 은폐‧방조 의혹을 받았던 광주시교육감이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의 고위직 간부로 버젓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05년 발생했던 인화학교 성폭력 사태가 영화 ‘도가니’의 흥행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5일 성명서를 통해 “인화학교 사태 중심에 있던 당시 광주시교육감 A씨가 현재 교과부 고위직”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안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준 적이 없고 오히려 철저하게 방조했다”며 “성폭력 사건을 인지한 후에도 사법당국과 경찰만 바라보고 있을 뿐 관리감독 관청의 책임자로서 책임 있는 조치를 한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전교조는 당시 광주교육청이 “‘성폭력 사건은 경찰에서 처리할 일이고 그 결과가 나오면 그때 판단하겠다’는 입장으로 상황을 덮으려 했다”며 “특히 법의 심판을 받거나 법망을 피해간 성폭력 관련자들을 버젓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할 수 있도록 방조한 점은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교조는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고위직에 특채한 교과부도 문제”라며 “교과부는 A씨를 즉각 해임하고 A씨는 인화학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6일 “교과부가 이런 인물을 학교교육지원본부장에, 그것도 특채를 했다고 하니 너무도 개탄스러운 일이다”고 비난했다.

우위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A교육감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또 한번의 가해이며,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와 즉각 해임을 요구했다.

인화학교에서 자행되었던 끔찍한 성범죄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당시 교육감이 교과부 고위직에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트위터상에 “한국 사회의 아이러니”, “맨날 그 나물에 그 밥”, “통일방해 현인택, 인권유린 현병철, 문화타락 유인촌, 방송침묵 최시중, 그리고 안순일은 장애학교대책을 망치는구나...”, “사건 당시에는 보수 교육감이었어요”등 질타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4위' 스페인마저 신용등급 강등

'유럽 4위' 스페인마저 신용등급 강등

피치, 이탈리아와 함께 강등, 벨기에-포르투갈 등도 주의대상

2011-10-08 06:46:30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7일(현지시간) 유럽 경제 4위국 스페인과 3위국인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각각 두 단계와 한 단계 낮췄다.

피치는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두 단계,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은 AA-에서 A+로 한단계 강등했다. 향후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매겨 연말연초께 추가 강등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피치는 스페인의 신용등급 강등 이유로 느린 성장과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를 들었다. 스페인 은행들의 자본재구성을 위해서는 300억유로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과 노동부문 등의 개혁조치가 부족한 점 등도 강등 이유로 꼽았다.

이탈리아에 대해선 대규모 공공 부문 부채와 낮은 성장률, 재정난 해결과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한 정치적 복잡성 등을 들었다. 특히 "이탈리아 정부가 유로존 위기 전이를 막는 데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며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무능을 꼬집었다.

이탈리아에 대해선 다른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S&P가 최근 신용 등급을 낮춘 바 있어 시장에 별다른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스페인에 대해선 유럽 재정위기후 첫 신용등급 강등이어서 잠시 멈칫하는가 싶던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확산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피치는 또다른 재정위기국인 포르투갈에 대해선 현행 등급 'BBB-'를 유지하면서도 향후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매겨 향후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앞서 S&P도 이번 주초 포르투갈 국가신용등급 `BBB-', '부정적' 등급 전망을 각각 유지한 바 있다.

한편 또다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벨기에의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했다.

무디스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Aa1' 등급인 벨기에의 자국 및 외화표시 국채 등급을 하향조정 가능성이 있는 검토 대상에 놓았다"고 밝혔다. 최근 벨기에는 프랑스와의 합자은행인 덱시아 은행이 과도한 그리스 국채 보유로 파산 위기에 직념, 벨기에와 프랑스 정부는 이 은행에 지급보증을 서기로 긴급 결정했다.

유럽은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되자 은행들에 대한 무한정 지원을 약속해 일단 발등의 불을 껐으나, 유럽 주요국가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흔들리면서 시장이 다시 불안감에 싸여가는 양상이다.

실제로 이날 미국 주가는 스페인·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미국 고용지표 호조 소식에도 불구하고 사흘간의 상승행진을 마치고 하락마감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20.21포인트(0.18%) 내려간 11,103.12로 거래를 끝냈다. S&P 500 지수는 9.51포인트(0.82%) 떨어진 1,155.46을, 나스닥 종합지수는 27.47포인트(1.10%) 하락한 2,479.35를 각각 기록했다.
박태견 기자

달라도 너무 다른 서울시장 후보들

달라도 너무 다른 서울시장 후보들(서프라이즈 / 아이엠피터 / 2011-10-08)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나경원 후보의 선거대책위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선대위에는 홍준표, 황우여 대표와 정몽준 의원 등 한나라당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나경원 후보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 서울시당 이종구 위원장은 ‘서울 시민들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고’라며 나 후보를 치켜세웠는데, 과연 그녀가 시민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까요?

나경원 후보 선대위 발대식 10분 전에 명동 재개발로 용역에 의해 폭력과 강제 철거를 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명동 세입자 대책위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2011 서울시장 후보자에게 명동 재개발지역의 평화를 묻는다’라는 공개 질의서를 통해 앞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명동 재개발지역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묻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나경원 후보를 만났을까요?

당연히 나경원 후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들도 그전에 명동 중구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나경원 의원을 수차례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바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한겨레] 명동 철거민, 나경원 의원실 4번이나 찾아갔지만…
이후에 여론의 비난이 거세자 면담도 했고 전화 통화를 통해 보좌관이 공개질의서를 받기로 사전에 연락돼서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지난 후에 보좌관이 와서 ‘의원님이 급한 일….’ 하면서 공개질의서만 받고 이들을 서둘러 돌려보냈습니다.

나경원 후보는 ‘저희는 시민 속으로 더욱 낮게 소박하게’라고 부르짖으면서 시민을 향해 다가서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말과 다르게 그녀를 만나러 간 시민들은 그 흔한 물 한잔은커녕 앉아 보지도 못하고 쫓기듯 나와야만 했습니다.
너무 바빠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역구민도 만나지 못했던 나 후보는 발대식이 끝나고 무엇을 했을까요?

나경원 후보는 경차를 이용하여 이번 서울시장 선거운동을 하는 ‘그린카’ 홍보를 위한 사진 촬영을 기자들 앞에서 취했습니다. 경차 마티즈 앞에서 사진도 찍고, 앉아서도 찍고….
기존 선거용 유세 트럭을 이용할 때보다 선거비용을 8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고 에너지 절약과 환경운동 실천 등을 통해 소박하고 공명정대한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과연 이 차를 타고 다녔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알다시피 홍보용 사진과 실제 사진과 차이가 나는 일은 나 후보에게는 다반사입니다. 그녀는 ‘그린카’ 캠페인용 사진 촬영을 하고 그 다음 날 유유히 카니발 리무진을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나경원 후보 측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 경우에는 선거용 홍보물이 부착된 차량을 탈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선거운동 기간도 아닌데 제 글이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을까요?

10월4일이면 선거운동 기간도 선거 후보자 등록 마감도 안 된 시기입니다. 그런데 서울시 선관위에서 저를 후보자 비방죄 등의 명목을 통해 글을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습니다. 실제 선거운동 기간은 10월 13일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선거운동 기간에는 선거에 관련된 글을 올리지 않을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후보자 등록마감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자 비방죄를 적용하니, 선관위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법을 적용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나경원 후보 관련 글은 베스트 박탈과 리스트 누락이 전개되고 있으니, 혹시 트위터에서 RT하셔도 못 읽을 수 있습니다. 블로그 절대주소로 RT 하셔야 합니다.>
만약, 박원순 후보에게 명동 세입자들이 찾아갔다면 어땠을까요?

똑같은 질의서를 명동세입자 대책위에서는 박원순 후보 캠프에도 전달했습니다. 박원순 후보 캠프에서는 자리에 앉아 이들의 질의서를 검토했고, 이들이 왜 찾아왔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 꼼꼼하고 오랜 시간 충분히 경청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에는 분명히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비방과 비판은 엄연히 다릅니다. 어떤 규제와 술수를 써서 자신의 잘못을 막으려고 해도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무엇이 상식과 원칙에 맞고 바른길인지 시민들은 알 수가 있습니다.
시민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겠다는 후보에게 서민들이 가봤자 엘리베이터 복도 앞에서 기다렸다가 서둘러 쫓겨나듯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후보도 그럴진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어떨까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아이엠피터

Friday, October 7, 2011

“작은 진실을 넘어선 더 큰 진실이 있다고 믿습니다”

“작은 진실을 넘어선 더 큰 진실이 있다고 믿습니다”촛불시민들께 드리는 곽노현 교육감의 옥중메시지

부족한 사람에게 넘치는 성원 고맙습니다. 과분한 성원입니다. 사람의 선의는 외롭지만, 서울교육 혁신을 향한 갈망은 외롭지 않습니다.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정련의 과정이요, 정금의 시간입니다. 성경식 표현으로 슬픔을 축제와 춤이 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눈물이 노래가 될 것입니다.
구속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 갑니다. 제 몸은 가둬도 제 작은 진실과 선의는 가둘 수 없습니다. 제 영혼과 정신도 가두지 못합니다. 지금도 제정신은 가을 햇살처럼 투명하고 따사롭습니다. 슬픔과 분노, 원망과 자기 연민 없이 평상심으로 0.76평 좁은 방에서의 불편한 생활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번 사태의 전 과정에서 저는 불법적이거나 파렴치한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치사하고 비열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조사를 받을 때는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강박증이라고 할 만큼 제가 아는 진실에 충실했습니다.
저는 지금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가 워낙 일관성과 정합성의 바탕 위에서 규범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정황과 맥락만 떠올리면 어떤 생각과 판단으로 어떤 언행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 며칠 두툼한 검찰조서를 읽으면서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시시콜콜한 세부까지 기억의 세계로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서울교육을 위하는 길이라는 일념으로 수행하듯 매달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자리에 계신 분들은 곽노현 개인의 작은 선의를 넘어선 더 큰 선의를 믿는 선한 분들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선의가 가능함을 믿는 분들일 겁니다.
곽노현 개인도 작은 진실을 넘어선 더 큰 진실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주 강정마을의 강우일 주교님이나 85호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씨 등이 모두 우리 사회의 더 큰 진실을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분들일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모두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갈망을 지닌 분들입니다. 한 달 넘게 서울교육혁신은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서울교육 개혁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연대와 선의, 환대, 그리고 우정의 힘으로 다시금 힘찬 도약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족한 저에게 신뢰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물론 서울교육가족들에게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작은 선의나마 외롭지 않게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개인의 작은 진실이나마 외롭지 않게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2011년 10월 5일
여러분의 교육감 곽 노 현

잡스 쫓아낸 스컬리 “그는 최고의 CEO”

신지호 ‘음주토론’ 눈반쯤 감긴 사진 ‘화제’

신지호 ‘음주토론’ 눈반쯤 감긴 사진 ‘화제’
“백토 최고 사진…신열사, 딱 이랬음” 알티쇄도
민일성 기자 | newsface21@gmail.com 11.10.07 16:08 | 최종 수정시간 11.10.07 17:24
 
나경원 후보 캠프 대변인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음주방송’을 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트위터에는 신 의원의 반쯤 눈을 감고 있는 ‘캡처사진들’이 급확산되고 있다.

7일 자정부터 진행된 MBC ‘100분토론’은 여야 서울시장 후보가 확정된 후 처음 열리는 지상파 생방송 공개 토론 자리로 한나라당에서 신지호, 권영진 의원이, 민주당과 야권에서 최재천 전 의원, 송호창‧박원순 선대위 대변인이 참석했다.

그런데 신지호 의원이 방송 내내 횡설수설하고 혀가 풀린 발언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전개하는 등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더 나아가 상대편 패널이 말을 하는 중간에 눈을 자꾸 껌벅거리며 피곤해 하는 듯한 모습이 TV 화면에 포착됐다. 이 때문에 트위터와 인터넷에서는 “술에 취한 것 아니냐”, “설마 술먹고 토론회 나온 것 아니냐”, “정말 볼수록 계속 심증이 굳어지고 있어요, 술먹고 토론 들어온 거야”는 의혹 멘션이 이어졌었다.

보다못한 트위터러들은 당시 신 의원의 모습을 캡처한 사진을 올렸고 7일 오전 신 의원이 ‘음주방송’을 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경악하며 해당사진을 ‘무한알티’ 하고 있는 것이다.

ⓒ 트위터 코리아 화면캡처

ⓒ 트위터 코리아 화면캡처

6,7일 사이 트위터러들은 “오늘 백토 최고의 사진ㅋㅋㅋ”, “백토 시청 중, 신지호 뉴라이트 논리가 저러니 캐 발릴 수밖에. 저 사람이 나경원 대변인? 알만하군요”, “이 인간 한잔 하셨나”, “딱 취한의 모습”, “6일 캡처된 신지호 열사 사진 두장...정말 딱 이랬음”, “뉴라이트계 한나라당 신지호 폭탄주 백토 스샷! 어제 백토 보면서 캡쳐하는데 어쩐지 이상하다 했음, 캡쳐할 때마다 이런 상태, 역시나 한나라당답습니다. 도봉(갑) 구민 여러분 내년에 알죠?” 등의 반응을 보이며 ‘사진알티’를 이어갔다.

“솔직히 이건 멍청한 사람도 캡쳐신공으로 눈풀린 사진 뽑을 수 있음”, “신지호의 방송을 보았지만 좀 악의적 편집 같네요” 등의 반론도 제기됐지만 신 의원의 오만한 ‘횡설수설 음주토론’에 대한 분노 공감 때문인지 알티(추천)가 쏟아졌다.

한편 신 의원은 폭탄주 8~10잔을 마시고 방송했던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음주를 해서 실수를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면서 “그런 것을 갖고 (민주당에서) 비열하게 하게 하면 안 된다”고 되레 역공을 해 비난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네티즌수사대는 신 의원이 2년전 시민들의 음주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은 범죄예방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며 강력 처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인터뷰 기사를 찾아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