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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8, 2017

[ 칼럼 ] ‘新친일파’의 등장..."일본의 돈에 혼을 파는 한국인이 있다"... "구한말 ‘일진회’의 절규를 잊지 말아야!"

"일본의 돈에 혼을 파는 한국인이 있다"
"구한말 ‘일진회’의 절규를 잊지 말아야!"


글 : 호사카 유지 교수 (세종대. 정치학)
구한말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당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친일단체라고 할 수 있는 ‘일진회’가 암약했다. 그런데 일진회 구성원 중에는 서재필이 만든 독립협회 인사들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독립협회와 민중들의 염원이었던 민회 설립운동을 테러로 무자비하게 파괴해 버린 고종 독재정권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없다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한 것은 ‘일본과의 연합을 통한 새로운 한국 만들기’였다.
당시 일본세력은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에게 “일본과 대한제국이 대등한 입장에 서서 합방하자”고 회유했고 일본의 어떤 학자는 새로운 나라를 ‘대동(大東)’이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일진회 회원들은 그런 일본 측 전략에 말려들어갔다. 일진회로 대표되는 일부 한국인들은 고종정권이 타도되고 일본과 한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합방한다면 좀 더 나은 나라에 살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대등한 ‘합방’이 아니라 일본이 대한제국을 속국으로 만드는 ‘병합’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에 분노한 일진회 회장 이용구는 억울한 나머지 분사했고, 많은 일진회 회원들이 일본인 회원들에게 거짓 주장의 책임을 지고 할복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진회의 잘못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정확한 비전이 결여된 데다, 새 국가 건설의 동기 자체가 일본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고 대한제국의 절망적인 상태를 너무 싫어한 데서 비롯됐다. 더불어 일본의 교활함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현상이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최근 일부 한국인 중에는 한국이 너무 싫어서 일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 일본정부나 일본우파들이 퍼뜨리는 논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한국에 갖다 퍼뜨린다. “독도는 일본영토일 수 있다”든지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이 없었다”든지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없었다”든지 하는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퍼뜨리는 한국인들이 일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일본 측 자금을 받으면서 조직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동기는 그냥 ‘한국이 싫고 일본이 좋다’는 감성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한국의 현실을 개선하기보다 일본 측 논리로 한국을 비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신 친일파’들이 한국사회를 침식하기 시작해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구한말 일본정부는 각국의 혁명운동을 지원해 일본에 우호적인 정권을 탄생시키려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고쿠류카이(黑龍會)’는 일본정부의 이런 정책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단체였다. 대한제국에 일진회를 탄생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후원한 우치다 료헤이는 고쿠류카이 간부였다. 현재 일본 내의 극우파 단체들은 지원기금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 극우파 단체들의 돈을 많이 받고 사실상 일본의 논리를 한국사회에 침투시키려는 일본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도 있다.
일본정부 차원에서도 일본에 우호적인 외국인들을 육성한다는 정책을 외교목적의 하나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나 단체가 자금지원을 해준다고 할 때 그 진의를 잘 파악해야 한다. 검은 동기가 있는 돈을 받는다면 결국은 포섭되기 마련이다. 적폐가 된 친일파 청산과 더불어 ‘신 친일파’를 잘 식별하고 일본의 우익세력이 한국인의 모습을 빌려 한국 자체를 침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완전히 새로운 적폐로 자리잡기 전에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하영 기자 p-hayoung@hanmail.net

노무현대통령 타살 지명수배 02 이병춘 청와대 경호처 경호과장

노무현대통령 타살 지명수배 02 이병춘 청와대 경호처 경호과장
Published on Jun 9, 2017
2012년 06월 29일 저는
[이명박씨와 05월 23일 노무현대통령 시해 사건 관련자에게 드립니다. 01]을 통해 특정 내용들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했기에 다음단계의 시해의문 추적 자료 글을 update 합니다.
노무현대통령 타살이
2009년 05월 23일 오전 만들어진 두 개의 프레임에 의해 자살로 돌변합니다.
그 거짓프레임 둘 중
이병춘경호관과 관련된 투신 목격 등의 허위 증언 부분은 이병춘씨가 주체가 아닌 관계로 지명수배 02 이병춘에는 기록하지 않을 것이며
지명수배 03호에서 자세히 설명될 것입니다.
지명수배 02에는 이명박 정부기관과 관련자들에게 요구했던 많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해의문 추적 자료 들은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 추적 Naver 카페와
통일소망 한겨레 블로그 등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결정적 증거자료들은
시해의문 추적 자료를 왜곡 조작을 할 수 없는
뉴스나 생방송 등의 상황이 만들어지면
직접 공개할 것입니다.
문재인대통령 정부 측에 제시한 저의 요구조건입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무현대통령 서거 관련 진실 자료를 우리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03. 공중파 방송 3사나 JTBC 뉴스 시간을 이용하여 발표할 수 있는 권한
- 천안함이나 세월호에서 알 수 있듯이 언론과 신도들에 의해 진실이 묻히고 거짓이 역사로 포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문재인씨가 관련되어 있는 부분이라도 공개시킬 수 있기 위해서 이 부분이 필요합니다.
05. 자연인으로서의 명이 다한 생명체입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면 Seoul에서 활동하는 동안 [통일소망] ID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명수배 02 이병춘경호관 자료 글은 아래 링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aspireu/2210255...
2012년 06월 29일 저는 [이명박씨와 05월 23일 노무현대통령 시해 사건 관련자에게 드립니다. 01]을 통해 특정 내용들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했기에 다음단계의 시해

檢, 이준서·이유미 남동생 구속영장 청구.."사안중대"(종합)

검찰 "혐의 인정" 이유 들어..내일 영장심사 예정
김성호·김인원 재소환 관심..'윗선' 수사 신호탄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채용 특혜 제보 조작 사건의 '공범' 혐의로 9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 2017.7.4/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주범 이유미씨(38·여)의 기소를 확정한 가운데 공범 혐의를 받는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과 이유미씨의 남동생 이모씨(37)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남부지검 공안부(부장검사 강정석)는 9일 오전 10시14분쯤 "혐의가 인정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의 공범 혐의를 받는 이 전 최고위원과 이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사전구속영장은 범죄 혐의가 확실하지만 체포하지 못한 피의자에 대해 영장 실질심사를 받도록 강제하거나 신병확보 없이 구속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7일 이씨와 이 전 최고위원의 대질신문을 끝으로 결국 두 사람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11일에 걸쳐 진행한 1차 조사를 마무리했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점과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다"며 조사를 마무리하고 이 전 최고위원의 범죄 혐의점에 대한 판단을 할 예정"이라고 전한 바 있다.
사전구속영장 청구는 검찰이 전체적인 조사내용 검토를 통해 이 전 최고위원과 이씨의 남동생이 제보조작에 적극 가담한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최고위원과 이씨의 남동생의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다음날인 10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사건으로 입건한 피의자는 총 5명이다. 지난 3일 검찰에 처음 소환된 이후 아직 검찰에 다시 출석하지 않은 김성호 전 국민의당 의원과 김인원 변호사 재소환 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제보조작에 개입한 윗선 수사를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dongchoi89@

노무현에 비수 꽂은 '논두렁 시계' 보도, 언론에도 책임 물어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지휘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2015년 2월 논두렁 시계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지휘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2015년 2월 논두렁 시계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진짜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이고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사건이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1962년 자신의 저서 '이미지: 미국 가짜 사건에 대한 안내(The Image : A Guide to Pseudo-events in America)'에서 이러한 유형의 사건을 '의사 사건'으로 명명했다. 

그런데 진짜보다 정교한 의사 사건이 지금 우리 사회에 범람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의사 사건을 자주 사용하고 언론은 이를 특종처럼 받아 유포하며 파급시키는데 주력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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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탐욕, 언론인 특종의식 가세한 의사 사건 '범람'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의사 사건들이 현실에 등장하는 예를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주 접한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 음성을 변조하여 마치 실제와 같은 상황으로 만들어 선거 기간 중 언론에 흘리는 사례는 지난 제19대 대선과정에서도 사용됐음이 선거 후 밝혀졌다.

정교하지 못한 의사 사건은 언젠가는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교한 의사 사건은 꽤 오래도록 사회를 어지럽히며 유효기간 또한 길다. 이러한 의사 사건이 범람한 이유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정치인 또는 공인들의 탐욕과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특종에 늘 목말라 있는 언론의 구조적 특성이 가세하기 때문이다. 

주로 정치인들이 이미지 관리와 권력획득·유지를 위해 곧잘 의사 사건을 만들어 언론에 유포하여 언론플레이를 하는 의사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워낙 정교한 의사사건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도 쉽게 현실 또는 진짜와 구분이 잘 되지 않아 결국 속는 것은 언론뿐 아니라 뉴스 이용자인 국민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의사 사건은 가짜뉴스와는 또 다르다. '아니면 말고 식'의 거짓 정보인 가짜뉴스는 주로 SNS를 통해 매우 즉흥적이며 파급력이 빠르고 치밀하지 못해 들통나기 쉬운 반면, 의사 사건은 매우 정교하고 사회적 이슈와 밀접한 연관성을 띠기 때문에 방송과 언론 등 주류언론에 의해 경쟁적으로 파급되는 특징이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가슴 아프게 했을 '논두렁 시계 보도', 의사 사건?

정권이 바뀌고 적폐청산이 사회적 어젠다로 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를 혼란과 갈등에 빠뜨리게 했던 과거의 의사 사건들이 하나둘 수면으로 부각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섬뜩할 정도다.

이 가운데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그건 바로 2009년 4월과 5월,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전 고인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후벼 팠을 사건과 언론의 경쟁적 보도가 있었다.

뜬금없는 회갑 시계가 논란거리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더니 회갑 시계가 급기야 억대 시계로 둔갑하여 결국에는 논두렁 시계로 변모하기까지 한 달여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과 보도가 실제보다 정교하게 꾸며진 의사 사건이라면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2015년 2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명품시계 논두렁 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해 이미 예견은 했었다.

그런데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에 이 문제가 거론되고 당시 보도를 다시 보면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리포트로 앞 다투어 보도했으니 웃음이 절로 난다. 

KBS 불붙이고, <조선일보> 기름 붓고, SBS 마무리... 논두렁 시계 

2009년 4월 22일 공영방송 KBS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회갑 선물로 부부가 억대 시계'라는 단독보도는 고 노 전 대통령의 억대 시계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이날 방송사는 리포트를 통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지난 2006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측에 고가의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며 "보석이 박혀있어 개당 가격이 1억 원에 달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위스 P사의 명품 시계였다"고 보도했다.

이틀 후인 4월 24일 <조선일보>는 '노 부부가 받았다는 1억짜리 '피아제' 시계 국내 매장에 5~6개 뿐... 문재인 "망신주자는 거냐"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SBS는 보름여만인 5월 13일 엄청난 특종인 양 대대적인 단독보도를 내보냈다.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라는 타이틀이 압권이다. 이 방송사는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자기 몰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지난해, 박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시계 두 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정했다.

이어 "비싼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집에 가서 물어보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답변을 피했다고 검찰은 밝혔다"고 덧붙였다. 단독보도를 한 언론사는 물론이고 거의 대부분 주류언론들은 마치 하이에나처럼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봉하마을 논두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있지도 않은 억대 시계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 후 열흘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당시 '논두렁 시계' 사건은 정권이 두 번 바뀐 지금에야 적폐청산 대상으로 등장했다. 그러자 검찰은 국정원에서 흘렸다고 하고 국정원은 검찰에 떠넘기는 형국이다. 

있지도 않은 사건을 진짜처럼 정교하게 만들어 흘렸다면 이는 청산되어야 할 적폐 중 적폐다. 이런 의사 사건을 특종인 양 덜컥 보도하는 언론사, 그리고 이를 경쟁적으로 부각한 주류언론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을 현혹하고 기망한 언론사들에게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울 교직원 '부정청탁·금품수수' 공익제보 의무화

서울교육청 공익제보조례 개정안 입법예고…운영위원에도 적용
'공익침해' 범위 확대…공익제보자 인사조처 요청 시 우선 배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유치원과 초·중·고교, 평생교육시설의 교사나 직원이 금품수수 등 다른 사람의 공익침해 행위를 알게 된 경우 반드시 제보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특별시교육청 공익제보 지원 및 보호에 관한 조례'(공익제보조례) 전부개정안을 오는 25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9일 밝혔다.
공익제보 조례 개정안에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교육감이 지도·감독하는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사립학교법인, 학교형태 평생교육시설에서 일하는 교직원 등은 직무를 수행하며 공익침해 행위를 알게 된 때는 바로 교육청에 제보하도록 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특히 개정안은 조례를 적용받는 대상에 '공무수행 사인(私人)'을 명시했다.
공무수행 사인은 직업이 공무원은 아니지만 법에 따라 설립된 위원회의 위원 등으로서 공적업무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학교운영위원도 위원 업무를 수행하다가 공익침해 행위를 알게 되면 교육청에 제보할 의무가 주어진다.
다만 제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벌을 받지는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익침해 행위를 알면 반드시 제보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이라면서도 "공익침해 행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바로잡을 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침묵했을 때 불이익을 주는 근거는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익제보 대상이 되는 공익침해 행위의 범위도 확대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상 부정청탁·금품수수와 '서울시교육청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행위 등도 포함했다.
기존에는 '교직원 등이 직무와 관련해 지위·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해 자신 또는 제3자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 '법령을 어겨 교육기관에 재산손해를 주는 행위',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 행위 등만 규정돼 있었다.
개정안에는 공익제보자 지원사항도 추가됐다.
공익제보자가 전보·전출·전입·파견근무 등 타당한 인사조처를 요청하면 교육감이 이를 먼저 고려하도록 했다.
또 공익제보자가 교육기관에 재산상 이익을 가져오거나 손실을 막았을 때, 공익을 증진한 경우 등에는 교육감 표창을 추천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와 함께 공익제보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에는 정부에 교육정책을 제안하면서 학교 비리를 제보해 공익신고자로 지정된 사립학교 교원을 공립학교에 특별채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손질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공익제보 조례 개정안은 다음 달 서울시의회에서 심의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공익제보를 활성화하고 제보자를 지원하자는 취지로, 쟁점이 될 만한 내용이 거의 없어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서울시교육청은 본다.
개정안은 의회에서 통과되면 곧바로 시행된다.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연합뉴스 자료사진]
jylee24@yna.co.kr

한겨레 주주총회에서 벌어진 수상한 의결

지난 18일 백범기념관 청암홀에서 열린 한겨레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을 미심쩍게하는 수상한 의결이 있었다. 재무제표 승인에 대한 의안심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겨레는 2016회계년도의 재무제표에 대한 외부감사에서 인덕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의견'을 받았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자회사 롤링스토리를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하였으나 "매각후 회수가능금액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감사증거를 입수할 수 없었고, 따라서 손상차손으로 수정이 필요한 금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정의견을 받은 것이다.
경영진 교체 과정에서 자회사 롤링스토리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것인가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이재훈 한겨레 우리사주조합장은 재무제표에 대한 의안심의에서 한정의견을 적정의견으로 변경가능할 수 있도록 수정안을 제안했다. 주총에 참가한 주주들도 대체로 수정안에 동의했다. 그러나 표결결과, 어처구니 없이 부결이 되었다.
정영무 전 대표가 국민주주로부터 위임받은 40여 만주와 정연순 민변회장이 위임받은 18만여 주가 수정안을 거부한 것이다. 우리사주조합 30만주와 주총회장에 참가한 주주들 7만주가 수정안에 동의했지만 정영무 전 대표와 정연순 민변회장이 위임받은 58만주와의 표대결에서 진 것이다. 주총장에 참석한 주주들이 반발했지만 수정안은 부결되고 재무제표에 대한 의안은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이로인해 한정의견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한정의견은 한겨레 창립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한겨레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기업평가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여  한겨레의 기업 이미지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이로인한 주주들과 독자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전 경영진은 수정안을 거부한 걸까?
이에 대해 송우달 전 경영총괄전무는 "북미, 유럽, 아시아 등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다보니 플랫폼 구축이나 번역비용 등의 문제로 비용이 발생하고 있으나 매출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영을 지속하자는 것이 현 경영진의 의견이고 따라서 손실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외부감사의 한정의견은 3월 2일에 확정되었고 주주총회는 3월 18일에 열렸다. 그 16일 동안 전 경영진이 외부감사의 한정의견을 수정하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한정의견을 적정의견으로 변경가능하게 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따른다. 제3의 회계법인에게 의뢰하고, 매각관련 자료 일체를 그 회계법인에 넘겨야 한다. 전 경영진은 그 전제조건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매각관련 자료를 넘긴다는 것은 롤링스토리의 대규모 적자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본금 전액을 잠식해야 손실로 반영하는 한겨레의 회계 관행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롤링스토리의 대규모 적자는 손익계산서에 반영되지 않았고 매도가능증권으로 자산으로 분류되어 있다. 매각관련 자료를 넘기게 되면 손실이 반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 경영진이 수정안에 동의했다면?
전 경영진이 수정안에 동의했다면 적정의견으로의 변경이 가능하겠지만 그 대신 대규모 적자를 내고 물러나는 무능한 경영진이었다는 꼬리표가 두고두고 뒤따를 것이다. 전 경영진은 이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전 경영진도 할 말은 있다. 2월의 대표 선거에서 전 경영진이 당선되었다면 경영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롤링스토리를 좀더 지원하여 흑자전환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런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외부감사의 한정의견 제시도 없었을 것이다.
향후 롤링스토리의 처리 방향은?
롤링스토리는 2014년에 전 경영진이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웹툰 에니메이션 영상물 제작 공급업체이다. 액면가의 15배수로 자본 참여할 정도로 미래가치를 높게 본 회사이다. 그러나 해외시장 진출 비용이 예상외로 컸고 번역비용과 개발비가 만만치 않아 2015회계년도 11억 적자에 이어 2016회계년도에도 13억의 적자를 기록했다.
송우달 전임 전무에 따르면 올해만 지원하면 이제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차기 경영진이 그 부담을 안고 10억 이상의 신규투자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기 경영진은 롤링 스토리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고 매각하여 손실을 확정하려 한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계속 끌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한정의견에 대한 책임 공방과 한겨레에 미치는 영향
경영진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마찰치고는 그 파괴력이 크다. 그로 인해 회사는 4월 2일자로 한정의견을 공시해야 하고, 금년도 영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해 보인다.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전 경영진은 자신들이 대표로 재선되었으면 일관성있게 롤링스토리를 지원하여 흑자로 전환될 거라고 항변하였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경영진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주주로서 여간 석연찮고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더구나 정영무 전 대표 등이 주주들로부터 58만주를 위임받을 때 한정의견과 관련된 중대한 의결이 있을 거라는 사전 고지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들 뜻대로 표결했다는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출범하는 차기 경영진이 어려움을 딛고, 롤링스토리 외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자회사들에 대한 현명하고 전략적인 처리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 및 편집: 이동구 에디터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환경연합 "한울 5호기 정지는 2등급 원전사고" "안전불감증 넘어서 직무유기 가깝다"

환경운동연합, 원자력안전연구소(준)는 7일 한울 5호기 원전 가동중단에 대해 "냉각재 펌프 4대 중 절반인 2대가 정지된 사고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생한 ‘부분유량상실사고(Partial Loss of coolant flow accident)’"라며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지난 5일 오후 6시 11분경 한울 5호기 원전이 정상가동 중 갑자기 중지되었다.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장은 '한울5호기가 7월 5일 오후 6시 11분경 원자로 보호신호에 의해 원자로가 정지되었다'고 밝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이어 "미국 원자력학회(ANS: American Nuclear Society)에서 분류하는 4등급 설계기준 사고 중 2등급 사고에 해당한다"며 사고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 40여년간 냉각재 펌프 관련 사건은 이번 건을 포함해 총 40건이 보고되었다. 보고된 사건들 중에서 냉각재 펌프 두 대가 멈춘 것은 지난 5월 28일 월성 1호기에서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 때 월성 1호기는 계획예방정비 중으로 출력 60%에서 발생한 것이라서 설계기준 2등급 사고로 분류하지 않는다"라며 "100% 정상출력 중에 냉각재 펌프 두 대가 멈춘 설계기준 2등급 사고는 보고된 것들 중에서 이번 한울원전 5호기 사고가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미국 쓰리마일 원전 사고는 2차측 급수 펌프 정비 소홀로 발생한 사고인데 이번은 그보다 심각한 1차측의 정비소홀로 발생한 것"이라며 "1차 냉각재는 원자로를 직접 식히는 역할이므로 관련 설비의 정비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냉각재 펌프가 만약에 순간적인 축파손 사고 등으로 인해 급정지(순간 고착)하게 되면 핵연료가 깨지고 원자력 내부 압력이 설계 기압의 110%(187기압)에 도달하기 직전 과압보호밸브가 열려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원자로 냉각재가 격납건물로 누출되는 4등급 설계기준 사고가 되는 것"이라며 "정상출력 운전 중 냉각재 유량의 급속한 감소는 핵연료봉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거듭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원자력공학과 3학년 원자로안전공학 교재에도 나와 있는 명백한 설계기준 2등급 사고를 한수원이 단순 원자로 정지로 보고한 것이나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관행화된 안전불감증을 넘어 직무유기에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Friday, July 7, 2017

투자하겠다며 잠자리 요구 .. 여성의 '지옥'이 된 혁신 천국

면접 뒤 "고용할지 작업걸지 .." 문자
신고한 피해자가 되레 회사 떠나
우버 추문 이후 성희롱 폭로 잇따라
경험 없고 소수인 여성 창업자 약점
권력·돈줄 쥔 벤처 투자자들 횡포
우수 인재 빠져나가면 생존 힘들어
추한 마초문화 바꿀 계기 될 수도
━ ‘성희롱밸리’가 된 실리콘밸리 #2014년 세라 쿤스트(31)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투자회사 500스타트업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을 봤다. 유명 벤처투자자인 데이브 매클루어가 공동창업한 회사다. 어느 날 새벽 3시 매클루어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을 고용해야 할지, 당신에게 작업을 걸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쿤스트는 메시지를 회사 관계자에게 언급했고, 이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유명 투자자인 저스틴 칼드벡은 2015년 여성 창업자 린지 메이어가 세운 회사에 개인 돈 2만5000달러(약 2890만원)를 투자했다. 이후 업무와 무관한 문자를 자주 보냈다.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느냐, 왜 그 남자친구를 만나느냐 같은 내용이었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여성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는 지난해 직속상관으로부터 ‘함께 섹스할 여성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내 메신저 대화를 캡처해 인사 부서에 신고했다. 성희롱은 분명하지만 처음 저지른 실수인 데다 우수 성과자이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그 부서에 남거나 선택할 수 있는데, 남을 경우 매니저가 낮은 고과를 줘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울러는 퇴사를 선택했다.
최근 뉴욕타임스·파이낸셜타임스 등 언론이 보도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계의 성희롱·성차별 사례다. 여성 창업가와 엔지니어들이 투자자나 직장 상사로부터 당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잇따라 폭로하면서 실리콘밸리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발단은 지난 2월 불거진 ‘우버 사태’였다. 우버를 퇴사한 수전 파울러는 개인 블로그에 ‘우버에서 보낸 매우, 매우 이상한 1년’이라는 글을 올려 우버의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폭로했다. 가죽점퍼에 관한 일화가 인상적이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가죽점퍼를 나눠줬는데, 여성 엔지니어들은 받지 못했다. 숫자가 적어 남성처럼 대량 구매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파울러를 성희롱한 직속상관은 상습범이었다. 다른 피해 여성들도 그를 인사 부서에 신고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처음 저지른 실수라고 인사 부서가 거짓말한 게 들통났다. 여론이 들끓자 우버는 법무장관을 역임한 거물급 변호사를 선임해 종합 감사를 맡겼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트래비스 캘러닉과 임원진의 부적절한 행동도 밝혀졌다. 캘러닉 일행은 한국 출장길에 단체로 룸살롱(karaoke-escort bar)에 가서 여종업원을 옆에 두고 유흥을 즐겼다고 한다. 동석한 여성 임원이 인사 부서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했다. 내부 감사 결과 성희롱·성차별 사건이 200여 건에 달했다. 캘러닉 CEO와 최측근은 사임했다. 회사는 조직 정비를 다짐했다. 내부 고발로 달라지는 모습에서 용기를 얻은 여성들이 실명으로 성희롱을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투자자 매클루어는 투자를 빌미로 여성 창업자 6명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복수의 여성은 투자자 칼드벡이 강제로 몸을 더듬거나 키스했다는 증언을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매클루어와 칼드벡은 사과하고 CEO에서 사퇴했다. ‘우버 효과’ 덕분이다.
성희롱·성차별은 비단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어느 산업,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실리콘밸리의 성희롱 폭로가 충격적인 건 첨단 기술과 미래지향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경쟁하는 스타트업이 전통 기업보다 더 후진적인 조직문화를 가졌다는 점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 진보를 이루겠다는 포부, 자유와 도전정신을 중시하는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여성 21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0%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다른 사람이 성차별받는 것을 목격했다는 응답은 90%였다. 응답자의 66%는 중요한 네트워킹 자리에서 소외된 적이 있다고 했다.
가장 참신해야 할 스타트업 업계에 성차별이 만연한 이유는 뭘까. 실리콘밸리에는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경험과 자본이 없는 예비 창업자들이 모여든다. 창업자들은 자기의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구현하기 위해 모든 걸 감내하려고 한다. 벤처투자자는 자본을 투입해 수익을 올리고자 한다. CNBC는 “돈과 권력을 쥔 나이 많은 남자들과 순진하고 젊은 창업자들 간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자금줄을 쥔 벤처투자자가 갑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뜻이다. 여성 창업자는 더 약자일 수밖에 없다. 정보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여성 창업가가 지난해 받은 투자금은 15억 달러지만 남성이 유치한 금액은 582억 달러다.
스타트업은 작고 민첩해 속도감 있는 게 장점이지만 성숙한 리더십과 조직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건 단점이다. 짧은 시간에 수익을 내라는 압박을 투자자들로부터 받기 때문에 기술개발과 사업 확장을 우선시한다. 자연히 인사 부서 같은 조직 구축은 등한시하기 일쑤다.
여성 임직원 숫자가 너무 적은 것도 마초 문화를 강화한다. 커리어 정보업체 페이스케일에 따르면 미국 기술기업 CEO의 여성 비중은 21%로 다른 산업(36%)보다 적다. 여성 고위직도 대부분은 비기술직인 인사·법무·재무 등에 포진해 있다. 젊은 남성 엔지니어들이 매니저급으로 수직 상승하며 마초 조직문화가 만들어진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회사 파트너 가운데 여성은 7%에 불과하다.
사무실에 공짜 음식과 공짜 술을 제공하고 오랜 시간 일하는 문화도 한몫한다. 회사 밖 개인 사생활이 거의 없고 회사에서 먹고 자고 일하다 보니 대학 남학생 사교 클럽(fraternity house)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브로그래머(Brogrammer·브라더+프로그래머)’ 문화가 왜곡되면서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피해 사례가 잇따라 폭로되면서 실리콘밸리 내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사 정보 포털인 링크드인의 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최근 품위서약 운동(#DecencyPledge)을 제안했다. 벤처투자자와 창업자의 관계를 직장 내 상사와 직원의 관계처럼 엄격히 규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튜브 CEO 수전 워츠치키는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하는 것이 조직문화 개선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조직문화를 세우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기본이다. 벤처투자자 밥 코셔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이 견고한 문화와 가치를 정립하지 않으면 경쟁사보다 빠르게 혁신하고 더 나은 인재를 유치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있다. 우수 인재가 이탈하고, 소비자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감수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CNBC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지, 이번에도 바람으로 끝날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고질적인 관행을 돌아볼 기회가 된 건 분명하다”고 전했다.
■[S BOX] “나는 못난 놈” 사과에 “그걸로는 부족” 추가 폭로
「벤처투자회사 500스타트업의 데이브 매클루어 창업자는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되자 실리콘밸리다운 방식으로 사과했다. 뉴욕타임스 보도 후 24시간 만인 지난 2일 오전 트위터에 짧은 두 문장을 남겼다. “나는 못난 놈이다. 사과한다(I’m a Creep. I’m Sorry).”
사과는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말레이시아의 창업가 셰릴 여는 2011년과 2014년 매클루어에게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추가로 폭로하며 “권력을 남용해 성적·신체적 접근을 시도한 투자자는 ‘못난 놈’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일갈했다. 매클루어는 이틀 뒤 다시 트위터를 통해 사퇴를 알렸다.
벤처투자회사 로어케이스캐피털의 크리스 사카는 사과를 잘못해 또 사과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보도 하루 전 선수를 쳤다.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성차별에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사과하지만, 그간 다양성을 위해 여성과 백인이 아닌 창업자에게도 두루 투자했다는 취지였다.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과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던 셈이다.
사카는 비난이 쏟아지자 이틀 뒤 사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해명을 다시 올렸다. 사카는 인스타그램·우버 등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해 억만장자가 된 벤처투자업계 거물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김어준의 파파이스#151] 한미정상회담 뒷담화(feat.김경수),양심수,위자료

[김어준의 파파이스#151] 한미정상회담 뒷담화(feat.김경수),
양심수,위자료
1.[파파이스 브리핑] 1:32
"문대통령과 꽃길"
2.국민 정청래 5:05
"안철수 정계은퇴 아니고 조퇴?"
3.김지윤 아산정책연구연 연구위원 18:42
"한미정상회담 총평"
4.이해영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 48:33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떨지마라!"
5.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07:26
"문대통령 오른발이 본 정상회담 "
6.민언련[종편때찌프로젝트] 01:44:45
"돌아온 그들, 이수희와 차명진"
7.김재연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 & 안소희 파주시의원 01:50:25
"박근혜가 가둔 양심수를 도와주세요"
8.곽상언 변호사 | 법무법인 인강 대표 2:17:31
"전기요금 부당이득반환 소송과 박근혜 위자료 청구 소송"
●〈한겨레TV〉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goo.gl/vYg2yI 1.[파파이스 브리핑] 1:32 "문대통령과 꽃길" 2.국민 정청래 5:05 "안철수 정계은퇴 아니고 조퇴?" 3.김지윤 아산정책연구연 연구위원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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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싸고 가장 최악인 전투기를 사는 한국"....평화운동가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말하는 은밀한 무기 거래의 내막

[한겨레21] <그림자 세계> 저자인 평화운동가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말하는 은밀한 무기 거래의 내막
“전세계에서 미국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특히 국방에서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는 나라가 3개국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한국의 차이를 꼽자면 한국만 민주주의국가다.”
지난 5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의외라고? 선택의 이유는 분명했다. 거기 ‘호갱’이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자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1100억달러(약 123조350억원) 규모의 미국 무기를 구매하고, 앞으로 10년간 3500억달러의 무기를 더 사겠다고 밝혔다. 미국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스롭 등은 이 한 건의 계약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무기 판매 기록을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야말로 기록적인, 미국 방산업체의 ‘영업왕’이다.
“한국의 무기 거래 양상 조사하고 싶다”
정용일 기자
이 거래는 정당하고, 또 상호적인 것일까. 글쎄, 국제 무기 거래는 부패의 온상이다. 세계 무역 거래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40%가 무기 거래에 몰려 있다. 사우디 왕가가 미국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긴다는 건 국제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우디의 실체를 고발한 책 <악마와의 동침>을 쓴 로버트 베어 전 미 중앙정보부(CIA) 국장은 사우디를 “21세기에 존재하는 9세기의 나라”라고 평한다. 사우디 왕가는 중동의 위협과 위험을 근거로 끊임없이 무기 보유량을 늘려왔다. 제값보다 비싸게 무기를 사들이고, 차액을 뒷돈으로 받아 챙긴다. 때때로 무기를 ‘블랙마켓’에 재판매한다.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막겠다며 들여온 무기가 어이없게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가는 ‘역류’(blowback) 현상이다. 무력 분쟁을 막겠다며 무기 보유량을 늘렸지만 그 무기가 오히려 무력 분쟁을 부채질하는 악순환. 막대한 무기 거래가 만들어내는 이 파괴적 질서에서 어쨌든 누군가는 천문학적 돈을 번다. 평화학에선 이들을 ‘전쟁 수혜자’라고 부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직 국회의원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다큐멘터리영화 <섀도 월드>(감독 존 그리몬프레즈, 94분, 2016) 상영회와 강연회를 위해 지난 6월14일 한국을 방문했다. 국내에선 다소 낮선 이름이지만, 그는 ‘은밀한 무기 거래에서 비롯되는 부정부패와 이에 영향받는 외교정책’을 추적한 저서 <그림자 세계: 국제 무기 거래의 내면>(The Shadow World: Inside the Global Arms Trade)을 통해 잘 알려진 평화운동가다.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뽑혔고, 2015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올해의 내부고발자’(Whistle-blowers of the Year)로 선정됐다.
현재 파인스타인은 영국 런던에 근거지를 둔 국제반부패단체 ‘코럽션 워치’(Corruption Watch)에서 활동하며 전세계에 국제 무기 거래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그는 6월1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중동의 무기고 역할을 하는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는 유럽 국가와 업체를 고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무기 거래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에도 관심이 많고 한국의 무기 거래 양상을 조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은 파인스타인에게 “만델라 대통령 시절 국회의원을 했던 1995년 이후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직접 온 것은 두 번째지만 꽤 오래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군비 지출국이고,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국제 방산업체로부터 집중적으로 무기를 구매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가 국제 무기 거래의 부패를 추적할 때마다 한국은 자주 직간접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그의 관심을 모은 건 ‘와일드캣’이라고 불리는 해상 헬기와 ‘F35’였다. 와일드캣은 전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방산 기업으로 뽑히는 ‘핀 메카니카 레오나르도’의 자회사인 ‘아우구스타 웨스트랜드사’에서 만들었고, F35는 사드(THAAD)를 만든 록히드마틴사의 차세대 전투기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와일드캣을 도입하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F35 전투기 선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발간한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비리들이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적은 대표적 방산 비리 사례다.
유착 없이 설명 안 되는 무기 거래
파인스타인은 와일드캣과 F35 도입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와일드캣의 경우 “한국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필요한 기능이 전혀 없는 전투기”라며 “북한의 잠수정을 관찰하는 목적이라면 최소 2시간 이상 상공 체류가 가능해야 하는데, 와일드캣은 최대 39분밖에 상공에 못 머문다. 샀어도 안 되고 사는 걸 고려할 필요도 없는 기종이 도입된 것은 최윤희 합참의장의 유죄판결에서도 드러났듯 오로지 부패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의 재판에서도 와일드캣을 도입할 때 “기기를 시험하고 평가하는 정상적인 과정이 뇌물을 쓴 이들에 의해 가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 부패는 아이러니하게 “무기를 더 구매해야 하는 이유”로 이어졌다. “원래 한국은 북한 잠수함을 관찰할 헬기 1대가 필요했지만, 와일드캣의 상공 체류 시간이 짧다보니 2대를 사게 됐다”며 한국의 와일드캣 구매를 “무기 거래가 국가 안보를 위한 선택이 아닌 뇌물 때문에 구매한 대표적인 경우”로 꼽았다. 이르면 내년 한국에 들어올 F35에 대해서도 “가장 비싸고 가장 최악인 전투기”라며 “한국이 F35를 산 이유는 안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압력 때문일 것”으로 규정했다. 구체적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무기 거래의 특성상 바로 밝혀지지 않고 진실이 규명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라며 “그 문제를 추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록히드마틴은 세계 최대 군수업체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불투명한 기업이다. 그는 이 회사를 “가장 부패한 기업”이라고 칭했다. 그런데 한국은 유독 록히드마틴의 무기를 선호한다. 이에 대해 파인스타인은 “유착 없이는 설명이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록히드마틴은 보통 “받아야 할 무기의 값이 100이라고 하면 150을 얘기한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무기 값이 형성되면 100을 넘은 금액은 리베이트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이는 국제 무기 거래에서 록히드마틴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방식”이라고 파인스타인은 단언했다. 이 돈은 당연히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라면 국회나 시민사회가 이 비용 지출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견제해야 옳다. 한국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예컨대, 옛 새누리당 국방위원들이 국방부 장관(당시 김관진), 방위사업청장(당시 이용걸) 등에게 F35 구매를 사실상 종용했던 2013년 9월3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 야당 의원은 전원 불참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주도적으로 여론몰이를 하며 원래 도입하기로 했던 F15SE가 아닌 F35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과정에 야당이 없었고, 독립적 전문가들의 검토도 없었고, 시민은 물론 기자들의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민주주의국가 중 유일한 미국의 ‘호갱님’
파인스타인은 한국 사회의 이런 과정이 “무기 거래의 부패를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저해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간 한국 사회는 무기 거래 정보 접근권이 허용되지 않았고, 국회의원들조차 이 문제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을 택했다. 미국 방산업체의 기록적인 무기 영업왕 트럼프 대통령의 ‘상술’을 잘 방어할 수 있을까. 무기 거래를 둘러싼 내막은 즉각 공개될 수도 있고, 훗날 드러날 수도 있다. 파인스타인은 국제 무기상 사이에 “미국 정부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백악관이 워싱턴DC에 미치는 영향력과 비슷한 수준이란 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은 지구에 존재하는 민주주의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의 ‘호갱님’으로 남은 국가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진짜 문제는 미국 핵이다!

['전쟁 국가' 미국] 북핵 해결을 원한다면 미국 핵의 실체를 보라
2015년 11월 이후 중단됐던 ''전쟁국가' 미국' 연재를 재개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핵무기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볼 계획입니다. 핵은 인류의 생존에 대한 최대 위협이며, 북한 핵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발표했습니다. 2006년 이후 다섯 번의 핵 실험과 이번 ICBM 성공으로 북한은 사실상 세계에서 9번째로 핵보유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미국 핵 외교의 명백한 파탄을 의미합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북핵 불용'을 수없이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북한의 핵 보유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와 2005년 9.19성명 등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숱한 노력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근본 원인을 도외시 했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의 체제 안전입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이며, 우리식으로 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확립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 적대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즉 북한의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 한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사력으로 북한 핵을 무력화 하려는 시도는 공멸을 불러올 뿐입니다. 

지난 70여 년간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고 다른 나라들의 핵무기는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라는 이중기준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이 증언하듯이 '모든 핵무기는 절대 악'이며 '핵무기와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양식 있는 세계 시민들의 보편적 결론입니다. 

특히 미국 핵무기는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입니다. 미국이 핵무기를, 핵에 의한 위협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로의 핵무기 확산은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 보유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북핵의 뿌리는 미국 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며 핵무기를 초석으로 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적으로 직시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비판을 바랍니다. 편집자. (☞ <'전쟁 국가' 미국> 지난 연재 보러 가기)

▲ 2010년 림팩 훈련에 참가한 미군 함정들. ⓒnavy.mil

핵무기와 함께 시작된 전후

2차 대전은 핵무기라는 유산을 인류에 남겼다. 핵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당초 원자폭탄의 개발은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에 대해 사용됐다. 

미국의 원폭 투하는 군사적 필요 때문이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군사적 패배는 명약관화 했다. 게다가 미국의 무차별 공중폭격으로 이미 도쿄 등 64개 도시가 초토화됐다. 이런 상태에서 단 두 방의 원폭으로 수십만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진정한 속내는 또 다른 승전국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였다.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이 앞으로 만들어 나갈 세계 질서를 따르라는 엄포였다. 이후 핵무기는 미 대외정책의 핵심 초석이 된다. 

가장 강력한 재래식 폭탄보다 무려 1500배 이상 파괴력이 큰 원폭을 손에 넣은 미국은 완전히 새로운 자신감을 갖게 된다. 트루먼 등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원폭은 포커판의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같은 존재였다. 어떤 패도 누를 수 있는 절대 반지, 만능의 보검이었다. 원폭은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목표는 세계를 미국 주도의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어내는 것이었다.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 복원, 즉 세계 전체를 미국의 투자 및 수출시장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이 각각 유럽대륙,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자신의 배타적 경제권으로 만들려 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자신의 생활권(Lebenslaum)으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쟁 직후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했고, 여기에 절대무기인 핵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두 핵심 지역인 독일과 일본은 물론 소련까지도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체제에 통합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소련이 지향한 것은 세계 공산혁명이 아니라 일국사회주의 건설이었다. 주로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치른 소련의 경제는 완전히 망가졌다. 게다가 핵무기를 독점한 미국을 상대로 세계 공산혁명을 시도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소련은 미국을 따라갈 수 없었다. 

소련의 재건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안전보장과 경제 재건이 그것이다. 안보를 위해서는 독일을 중립화하고 폴란드 등 동유럽을 소련의 통제권 아래 두어야 했다. 독일은 1,2차 대전에서 소련을 침공한 최대 안보 위협이었으며 폴란드 등 동유럽은 역사적으로 독일 등 외부세력의 침공 경로였기 때문이다.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독일로부터 전쟁 배상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의 전후 목표는 충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 회담에서 독일의 전쟁 배상 규모를 200억 달러로 하며 그 중 절반을 소련에 할당할 것에 합의했고,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의 대일본 참전을 절실히 원했던 미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양보였다. 

미 대외정책의 핵심 초석이 된 핵무기

그러나 미국이 원폭을 가지면서 미소 협력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미국은 핵무기의 위력으로 미국의 의지를 소련은 물론 세계에 관철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는 소련을 배제한 채 일본을 단독 점령했고, 유럽에서도 독일의 대소련 전쟁 배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독일의 분단을 밀어붙였다. 냉전의 시작이다.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는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시작된 것이다. 

▲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미국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이다. ⓒ위키피디아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있었던 것도 원폭 덕택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은 일본과 함께 자본주의 복원이라는 미국 전후 구상의 핵심지역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곳이었다. 핵무기가 없었다면 미국은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래식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설령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한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격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국은 지상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냉전이 핵무기경쟁 등 극단적 군사 대결 상황으로 치닫는(냉전의 군사화) 결정적 계기였다. 1950년 4월 미 국가안보회의는 NSC-68을 통해 소련이 군사력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의 대대적인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두 달 후 발생한 북한의 남침은 소련의 세계 정복 야욕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고, 미국의 국방비는 단숨에 3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전쟁으로 본격화된 미국의 대대적 군비 확장 및 군사적 일방주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으로 패전국 일본과 서독의 재무장도 추진됐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증강됐고 소련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다. 미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초래했다. 소련의 개입과 반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베트남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한 제네바 합의(1954년)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군사개입에 나선 것이다. 

소련은 미국과의 피 말리는 군비 경쟁 끝에 1991년 스스로 무너졌다. 군비 경쟁의 핵심은 핵무기였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 학자 유르겐 브룬은 냉전에 대해 "소련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고의적 군비경쟁"이라고 말했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핵무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례로 부시 행정부는 2002년 핵태세보고서(NPR)를 통해 러시아, 중국,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등 7개 국가에 대해서는 핵 선제공격(First Strike)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 나라는 미국의 잠재적 적국(러시아, 중국)이거나 미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들이다. 

이 가운데 이라크 후세인과 리비아 가다피는 이미 미국에 의해 제거됐고, 시리아에서는 2011년 이후 내전이 진행 중이다. 이란과는 핵 협상이 타결됐으나 트럼프 이후 합의가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2006년 이후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으며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2002년 부시 행정부는 요격미사일금지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이란과 북한의 핵위협을 이유로) 동유럽과 동아시아에 미사일 방어망 건설을 밀어붙였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겹치면서 러시아, 중국과의 군사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자국의 핵 군사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4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했다는 이유로 그해 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 9월 향후 30년간 무려 1조 달러를 미국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북한 등 불량국가와 테러 세력에 의한 핵위협에 대비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진정한 속내는 러시아, 중국 등 잠재적 적국에 대한 핵 군사력의 우위 유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핵무기는 미 대외 정책의 핵심 초석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핵은 나쁘고 미국 핵은 좋다?

최근 들어 북한의 핵 개발이 세계 평화의 최대 위협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과연 그런가? 미국 핵은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고, 북한 핵은 평화를 해치는 나쁜 것인가? 핵무기는 미국에게 무엇인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핵무기가 있음으로 해서 세계는 평화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인류 절멸의 위기에 처했는가?

미국의 주류 정치인과 제도권 학자들은 미국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며 북한, 이란과 같은 무책임하고 무모한 세력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핵무기로 인해 2차 대전 이후 세계가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반면 비판적 지식인과 시민들, 평화운동가들은 미국에게 핵무기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망치(hammer)이며,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무기를 개발했고, 유일하게 핵무기를 사용한 국가로서 이후 핵무기를 앞세운 압도적 군사력으로 세계에 대해 미국의 의지를 강요하고 관철시켜 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고 핵무기를 앞세운 군사주의를 계속하는 한, 이에 저항하려는 국가와 세력들의 핵무기 보유 시도는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 위협 세력이라는 말이다. 

북한 핵이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북한의 핵 위협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주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미국의 주류 정치인, 제도권 학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북한 핵문제가 제기된 후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의 대(對)북핵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대 초 이후 30년 가까이 '북핵 불용'을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북핵 보유였다.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에 대한 미국 언론의 반응은 지난 60여 년간 미국의 핵정책이 불러온 결과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미국의 핵위협을 받아온 국가다.

'북핵 불용'이라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미국의 말과 행동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은 아닌가? 이런 의문들에 대해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70여 년간 핵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핵무기를 어떻게 활용해 왔고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를 알아야 한다.

▲ 지난 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오른쪽 아래 검은색 옷)이 '화성 14형'(오른쪽 위)을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관계자들과 기뻐하고 있다. ⓒ노동신문

핵 억제인가, 핵 테러인가

'핵무기'는 2차 대전 후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초석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말해오고 있다.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진두지휘했던 존 포스터 덜레스는 1953년 국무장관 취임 직후 "유사 이래 우월한 문명은 언제나 보다 효과적인 무기를 개발해냄으로써 저급한 문명에 대한 우위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3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원자탄, 그리고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현재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군사 공약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지난 2005년 채택된 미국의 합동핵작전교리(doctrine for joint nuclear operation)는 "분명히 말하건대 핵무기는 앞으로 50년간 미 군사력의 초석으로 건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정치가, 군인, 외교관들은 핵무기가 미 대외정책의 초석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평화'를 내세운다. 지난 70여 년간 핵무기가 세계 평화를 유지해온 근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억제 이론(deterrence theory)'이다. 

한마디로 말해 핵무기가 강대국 간의 (핵)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핵전쟁이 초래할 무시무시한 인명 피해를 감당할 수 없기에 강대국은 전쟁을 피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유식한 말을 쓰자면 '상호 확증 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20세기 전반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1억 명이었던 데 비해 (핵시대가 도래한) 20세기 후반의 전사자는 2000만 명에 불과(?)했다는 통계 수치를 제시한다. 핵무기가 평화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나아가 핵무기가 냉전 시대의 '긴 평화(long peace)'를 가져왔다며 이를 국제정치에서의 '핵혁명(nuclear 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핵이 국제정치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 정부와 전략가, 국제정치학자 등에 의해 널리 유포돼 왔다. 대다수 미국인은 물론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이를 신봉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는 "억제 이론의 핵심적 측면은 이제 (현실로) 잘 정립돼 있다. 어떤 종류의 '핵전쟁'도 불가능하다는 점(infeasibility)이 매우 잘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최소한 그렇다고 기대해 보자)."고 말할 정도다. 

케네스 월츠라는 또 다른 저명 학자는 이란의 핵무장이 중동 정세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스라엘 핵무기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여 년간 핵의 역사는 억제 이론이 부분적 진실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리하여 전체적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핵공격 이후 1949년 8월 소련의 핵실험 때까지, 즉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을 동안 핵무기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있지도 않은 소련의 핵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핵 공격이 전쟁 종결을 앞당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위 군 장성들이 핵공격에 반대했다는 사실, 전쟁 조기 종결을 위한 다른 대안들이 있었다는 사실, 일본 핵 공격의 1차적 목적은 소련 등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 등이 이미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냉전 시대가 '긴 평화'였다는 허구

냉전 시대의 '긴 평화'라는 것도 지극히 서방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냉전의 주요 무대였던 유럽에서 미국/서유럽 대 소련/동유럽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종의 평화 상태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30년에 걸친 국제전이 벌어졌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은 핵무기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었기에 한국전쟁에 개입했고 베트남전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핵 위협과 핵 공갈을 했다. 6.25 발발 직후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공격 계획을 세웠으며, 1950년 11월 중공군에 패퇴했을 때는 실제 핵 공격을 하려 했고, 휴전 협상 과정에서도 핵 위협을 했다. 

1954년 프랑스군이 베트남군에 패배했을 당시 미국은 프랑스에 전술 핵무기 공격을 제안했다가 프랑스의 거부로 무산됐다. 1969년 닉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 대해 조기 휴전 협상을 강요하기 위해 핵무기를 탑재한 B-52 폭격기 등을 출격시키기도 했다. 이른바 '광인 이론(madman theory)'에 따른 핵 공갈이다. '나는 실제 핵 공격을 강행할 수도 있는 미친놈이니까 알아서 기어라'는 협박이다.

▲ 1965년 미군 헬기가 남베트남의 베트공 기지를 공격하고 있다.ⓒAP=연합뉴스

뿐만 아니다. 1946년 이란 북부에 주둔해 있던 소련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핵 위협을 시작으로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 1958년 이라크의 사회주의 정권 수립,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등 중동지역에서도 미국은 수시로 핵 위협을 동원했다. 석유자원의 보고인 중동지역에 대한 소련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냉전 시대의 긴 평화란 미국, 유럽, 소련에만 해당되는 지극히 국지적인 현상이었다.

그 긴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였는가. 아니다. 우선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다. 당시 케네디를 비롯한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실제 핵 전쟁이 일어날 확률을 30~50%로 봤다고 한다.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40여년 뒤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행운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사태 당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면 핵 전쟁이 벌어질 뻔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우선 베를린 위기가 한창이던 1961년, 미국은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 계획을 세웠다. 소련의 핵무력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백악관에서 핵 전쟁 분석가로 일했던 다니엘 엘스버그에 따르면 실제 핵공격이 단행됐을 경우 사망자는 6억 명으로 추산됐다. 엘스버그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미국이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보다 100배나 되는 참극을 계획했다고 개탄했다. 당시 미 군부는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를 말린 것은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1983년 11월에도 미.소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그해 3월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매도했다. 또한 '별들의 전쟁', 즉 전략방위구상(SDI)이라는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천명하는 등 대대적인 핵전력 증강에 나섰다. 

그해 10월에는 소련 영공에서 대한항공(KAL) 007편이 소련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등 미소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유럽에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에이블 아처(Able Archer, 유능한 궁수)'라는, 소련에 대한 모의 핵 공격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호전적 태도에 극도로 긴장했던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고 한다. 미국에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소련 레이더에는 미국의 핵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으로 비쳐졌고 핵 전쟁 매뉴얼에 따르면 소련은 대응 공격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당시 레이더 책임을 맡았던 소련 관리가 매뉴얼을 무시함으로써 핵 전쟁을 회피할 수 있었다. 훗날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0년대 전반이야말로 미소 핵 대결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이것이 평화인가. 인류 전체를 몇 번이고 몰살할 수 있는 핵 전력으로 무장한 채 대치하고 있는 불안한 휴전 상태일 뿐이다. 결코 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은 언제나 핵 우위를 추구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냉전 시대를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이 대등한 핵 전력으로 무장한 채 팽팽하게 대립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두 핵 강국의 대치'라는 사실은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왜냐하면 1970년대 전반까지 미국의 핵전력이 소련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이다. 

특히 1960년대 중반까지 소련은 미국의 핵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1961년 미 군부가 소련에 대한 전면 핵 공격을 주장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 소련의 핵 전력이 미국과 대등해지기 전에 싹을 잘라내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독립연구자 가레스 포터에 따르면 1955년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격차는 45대 1이었다. 1965년에는 9대 1로 그 격차가 좁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 우위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근대 국가간 체제가 성립된 이후 최대 군사 강국과 2위 군사 강국 간의 군사력 격차가 이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1954년 프랑스의 패배로 사실상 끝이 난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압도적 군사적 우위 때문이라는 게 포터의 주장이다. 미 핵전력의 압도적 우위에 기가 질린 소련과 중국이 계속 미국에 양보를 했고, 이에 따른 행동의 자유에 도취된 미국은 남베트남에 반공 친미 정권을 세울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 후 20년에 걸친 야만의 전쟁이었고 미국의 치욕적 패배였다. 

억제 이론에 따르면 핵 보유국 간의 전쟁은 불가능하다. 핵 전쟁의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인명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핵의 역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960년대까지 미국은 압도적 핵 우위를 바탕으로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소련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켜 왔다. 어느 한 쪽이 압도적 핵 우위를 누리고 있고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상대방도 알고 있다면 굴복과 양보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것이 1945년 이후 20여 년간 미소 관계의 진실이다. 

1962년 흐루쇼프가 미국의 턱밑, 쿠바에 비밀리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압도적 핵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미국은 핵 전력의 압도적 우위 외에도 독일과 이탈리아, 터키 등 소련의 주변에 핵무기를 배치해놓은 반면 소련은 자국 영토 외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해외 기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루쇼프의 시도는 실패했고 2년 후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후 소련은 대대적인 핵 군비 증강에 나섰고 1970년대 중반에 비로소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소의 핵탄두는 한때 무려 7만 개 가까이에 이르렀다. 

핵무기가 단지 상대방의 핵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면 인류 전체를 몇 십 번 죽이고도 남을 핵탄두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핵 우위를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키겠다는 야망', 이것 외에는 핵 군비경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핵 군비경쟁의 주도자는 언제나 미국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핵군비 경쟁은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한 것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생활과 복지에 쓰여야 할 소중한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1961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이임사에서 고백한 군산복합체가 바로 그것이다. 끝없는 군비 경쟁 끝에 소련은 제풀에 쓰러졌고 미국은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군사국가로 변모했다. 막대한 자원을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부은 결과 미국의 민생은 피폐해졌고, 민주주의마저 위협당하기에 이르렀다.

미 내무장관을 역임한 스튜어트 우달은 현재 미국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핵무기 경쟁, 그리고 그 실상의 은폐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핵무기 경쟁과 그 실상의 은폐는 미국 정부가 거짓 현실을 근거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이는 정의를 왜곡했다. 또한 미국의 도덕성을 망가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