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사이버 사찰에서 테러방지법까지. 박근혜 정부는 “내 개인정보가 언제 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시대였다. 재벌과의 정경유착이 개인정보 규제완화를 통한 ‘창조경제’로 이어지는 정황도 있다. 박근혜 정부 5대 정보인권 적폐를 소개한다.
1. 텔레그램 대란 부른 ‘카톡 사이버사찰’
2014년은 ‘카카오톡 사찰’로 발칵 뒤집힌 해였다. 경찰이 정진우 노동당 당시 부대표의 카카오톡에 감청영장을 청구해 2300여명의 대화명과 전화번호 등까지 싹쓸이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특정인에 대한 영장을 받으면 단체방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적인 대화내용까지 유출됐다.
논란은 해외메신저 텔레그램 망명 현상으로 이어졌고, 당시 이석우 카카오 대표는 “감청영장 협조 거부”를 선언했다. 그동안 검찰이 감청영장으로 청구할 수 있는 범위로 보기 모호한 카카오톡을 대상으로 ‘실시간 감청’이 아닌 ‘서버에 저장된 과거 대화를 받아오는 방식’으로 편법적으로 집행했기에 저항할 수 있었다. 도중 카카오가 번복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카카오톡 감청영장으로 얻은 증거는 효력이 없다”고 판결함에 따라 카카오는 감청영장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카카오에 대한 보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 대표가 ‘감청영장 협조거부’를 선언한 직후 “다음카카오 동향” “이석우 대표, 실시간 감청 불가, 대응” 등 그를 언급하는 메모가 많았다. 2014년 11월14일에는 “개인정보보호 개인비리 온라인뱅킹 대행” 등 카카오의 약점을 언급하는 메모가 쓰였고 공교롭게도 이 대표는 직후 ‘카카오가 아동음란물 유통을 방치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2. 국정원, 민간인 해킹프로그램 사찰 정황
2015년 7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불법 감청 프로그램을 구매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탈리아 해킹팀이 ‘해킹’을 당해 거래 자료가 담긴 이메일이 유출됐고 고객 중 국정원이 있었던 것이다. 국정원이 구입한 RCS(Remote Control System)는 악성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에 침투해 파일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빼가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조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때 담당자인 국정원 임모 과장은 “DELETE키로 자료를 삭제했다”는 유서를 남긴 채 마티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입법부가 국정원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탓에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국정원은 “국내용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미심쩍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유출된 이탈리아 해킹팀 자료에서 “국정원이 SK텔레콤의 3개의 안드로이드 폰을 성공적으로 해킹했다”는 내용이 있다. 국정원은 “해당 핸드폰은 실험용”이라고 밝혔지만 유출된 메일에서 국정원은 ‘실험용’이 아닌 ‘실제 타깃’이라고 표현했다.
국정원은 ‘카카오톡 해킹 기술 진전 상황’을 문의하고 국내 보안업체인 안랩의 V3 관련 분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또, ‘서울대 공과대학 동창회 명부’라는 한글 제목의 워드 파일을 해킹팀에 보내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했으며 ‘미디어오늘 조현우 기자’라는 이름을 사칭해 ‘천안함 1번 어뢰 부식 사진관련 문의사항’을 담은 한글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해왔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
3. 세월호 유가족까지, 통신자료 무더기 수집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정보·수사기관의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조회가 속속 드러났다. 법 개정으로 이용자가 요구하면 통신3사가 수사기관에 제공해온 통신자료 조회가 가능하게 되자 평소 수사당국이 국민의 통신자료(이름,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를 무더기로 수집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상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언론인, 세월호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국민 전체였다. 미디어오늘에서만 기자 6명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제공됐으며, 그 중에는 국정원도 있었다.
국정원은 국정교과서 반대에 앞장선 유기홍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통신자료를 들여다봤는데 공교롭게도 유기홍 의원이 국정화 비밀TF팀을 폭로한 다음 날 통신자료가 제공돼 ‘사찰 의혹’이 번지기도 했다.
시민사회는 “국민의 통신자료를 조회하려면 최소한 영장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수사당국은 전기통신사업법상 “(수사기관이) 정보수집을 위해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가)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은 정보수집의 사유로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통신자료 수집은 허용되지 않는다.
4. 필리버스터 저항에도 테러방지법 제정
이처럼 국정원의 권력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데 자유한국당은 프랑스 파리 테러를 빌미로 국정원에 ‘날개’를 달아주는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였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대테러 컨트롤타워가 돼 ‘테러위험인물’을 지정하고 이들에 대해 출입국, 금융거래, 통신이용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시도했지만 결국 법은 통과됐다.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24일 10시간20여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문제는 악용가능성이다. 국정원이 ‘정적’을 잡기 위해 권력을 동원해온 정황이 잇따라 발견된 상황에서 민중총궐기나 노동자대회 등 집회에 참가하거나 집회 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까지도 ‘테러위험인물’로 분류할 수 있다. 테러방지법은 ‘테러위험인물’로 “테러예비, 음모, 선전, 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라고 폭 넓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인 지난해 상반기, 수사기관의 감청집행건수는 2407건으로 2015년 하반기에 비해 83.2%나 증가했다.
5. ‘규제프리존법’도 전경련 미르재단 입금 대가?
최순실과 전국경제인연합회, 창조경제의 연결고리가 또 하나 있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규제프리존특별법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각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해당 지역에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내용이다. LG생활건강이 위치한 충청북도에는 화장품 관련 광고, 포장 등에 대한 규제완화를 하는 식이다. 강원도에는 개인정보 리스트에서 일부 내역을 모자이크하듯 지우는 ‘비식별화’조치만 하면 다시 개인정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음에도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현대자동차, LG, 대한항공 등 대기업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전경련은 미르재단에 입금을 완료한 뒤 한달만에 보고서를 내고 “규제청정구역(규제프리존법)을 통과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재단 입금의 대가성 여부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입금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만 규제프리존법을 12차례나 언급했다. 지난해 8월9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연설 때는 “규제프리존법이 논의조차 안 된다”며 국회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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