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그럴듯하게 ‘저널리즘의 혁신’을 외쳤던 언론의 상당수는 돈을 받고 정부부처 홍보기사를 썼다. 알려진 홍보기사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미디어오늘은 올해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배재정 의원실을 통해 드러난 16개 정부부처 언론홍보내역을 확인해 금액이 명시된 홍보기사 130건을 정리했다. 130건은 2014년 고용노동부 자료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자료가 주를 이뤘는데, 16개 정부부처가 발주한 홍보기사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기사는 건 당 100만원부터 많게는 건 당 수천만 원까지 버젓이 거래됐다. 생소한 군소매체부터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유명언론사까지 기사를 거래했다. 홍보기사를 짐작할 수 없는 독자 입장에선 사기를 당한 것과 같다. 언론의 충격적 기사 거래 실태는 한겨레·시사인·미디어오늘·기자협회보 등 소수 언론사를 통해서만 공개됐다. 이 사건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보도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부처 홍보기사가 대다수 언론사에서 하나의 수익모델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농촌진흥청·채널A 언론홍보계약서에 따르면 정부부처인 농촌진흥청은 갑, 언론사인 채널A는 을로 등장한다. 채널A는 농촌진흥청 R&D 우수성 및 농가 맛 집 등 성과확산을 위한 기획보도를 해주는 대가로 1500만원(부가세 포함)을 받았다. 채널A는 정부부처 홍보기관이 아니지만 세금을 받고 홍보를 해준 셈이다. 국민들은 세금으로 생산된 정부부처 홍보기사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로 착각하고 정부부처가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혹세무민이다.
농촌진흥청과 각 언론사간 계약서 제5조 ‘책임 및 보안’ 조항에는 △을은 기획연재의 품질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져야 하고 △을은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민원이 발생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여기서 ‘품질’은 갑이 원하는 기사 방향을 뜻한다. 정부부처를 얼마만큼 홍보해내느냐가 품질의 ‘절대조건’이다. 민원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취재당사자들이 싫어할 내용을 기사에 담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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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과 언론사 간 홍보계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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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는 계약기간, 기사 횟수, 게재 지면, 지면 크기, 보도 주제까지 결정하고 있었다. 예컨대 YTN은 △리포트4, 단신6 △농촌진흥사업 우수성과 △2015년 6월(1개월간)이란 농촌진흥청 지침에 따라 보도에 나섰다. 계약금은 ‘홍보기사 게재 후 을이 청구하면 갑이 5일내 지급 한다’고 명시돼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부부처를 일방홍보 할 수밖에 없는 계약관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언론사가 돈을 받은 대상이 언론이 비판해야 할 정부부처란 사실이었다. 정부부처가 세금을 매개로 언론과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상황은 윤리차원의 문제를 넘어 정부정책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언론 스스로의 책임에 눈감고 공론장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일종의 정권 재창출용으로 쓰는 것으로 그 문제가 간단치 않다. 2014년 고용노동부 돈을 받고 쓴 홍보기사를 보면 “노동양극화 풀려면 대기업노조 과보호 깨야”(한국경제), “양보 안하는 강성노조가 일자리 막아”(매일경제)처럼 반노동적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하고 ‘쉬운 해고’로 요약되는 정부정책을 홍보하며 사실상 준 정부기관 노릇을 자임하기도 했다.
언론은 스스로 정부부처의 국면전환 도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세계일보는 지난 10월 장명진 방사청장의 인터뷰를 담았다. 제목은 “비리 발생 땐 청장부터 책임지는 관리체계를 만들겠다”였다. 통영함 납품비리 파문으로 불거진 방산비리와 한국형전투기 기술이전 논란으로 방위사업청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나 서울 ADEX행사로 방사청이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보도였다. 방사청은 해당 기사에 3300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나온다.
조선일보는 4월10일자 “밭 직불금, 서류 한 장 만 내면 바로 탄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부터 19개 정부 기관과 함께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농업경영체 관련 정보를 모아 통합 DB를 구축했다”고 홍보하고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4600만원을 받았다. 평범한 스트레이트 기사처럼 보였지만 세금이 투입됐고, 비판보도를 할 수 없는 구조적 조건에서 탄생한 기사다. 문제는 이 같은 유형의 기사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라는 사실이다.
이는 정부부처의 홍보평가방식에서 기인한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한 정부부처 홍보평가 보도부문 대응계획문건에 따르면 각 부처는 정량적 절대평가로 방송·신문·인터넷 보도 실적을 제출하고 있다. 보도는 반드시 긍정보도여야 한다. 정부업무평가 시행계획 중 홍보 항목은 2014년 ±5점이었으나 올해부터 20점으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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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평가 상황에서 정부부처는 경쟁적으로 보도실적을 내야하고, 노골적으로 기사를 청탁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인포마스터 등 홍보대행사 간 턴키계약을 통해 홍보실적을 올리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광고나 보도자료 같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 대신 비공개적인 광고형 기사로 정부정책을 찬성하게 만드는 것은 상식적인 홍보라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언론계 전반의 성찰과 사회적 비판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홍보기사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외교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 통계청 등 12곳은 올해 홍보대행사와 300억 원 대의 신규 계약을 맺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여 곳의 홍보대행사와 62억 원 가량의 홍보용역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전년대비 증가한 금액이었다.
홍보기사가 적발돼도 이렇다 할 제재 수단이 없는 점도 문제다. 배재정 의원 등 국회의원 16명은 정부가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언론사 지면이나 방송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홍보를 금지하는 ‘정부기관 등의 광고에 관한 법률안’을 2013년 발의했으나 감감 무소식이다. 기사 말미에 협찬 여부라도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5년 언론의 화두는 ‘혁신’이었다. 하지만 언론사의 수익창출방식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혁신’은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