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의 그림마당
■김정은과 세계의 첫 대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라는 자극적 발언을 하자 북한의 전략군 대변인,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은 미국 괌 주변을 미사일로 포위 사격하겠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이 처음으로 세계와 맞닥뜨리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제 김정은과 트럼프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뢰 밭 위에서 탱고를 출 것이다.
북한 발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전쟁 불사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공갈일 수도 있다. 사실 지금 북한이 탄도미사일의 재진입 기술을 완비했는지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김정은의 속을 누가 알겠는가? 실제 행동 계획일지도 모른다. 그 경우 우리는 화성-12형 미사일이 정확하기를 빌어야 한다. 탄착점인 괌의 영해 밖이 아니라, 괌의 영해 안, 나아가 영토 안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세계가 긴장하고 일면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번 도발의 주체는 김정일이 아닌 김정은이다. 김정일도 1970년대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이래 무모한 도발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외부세계는 김정일의 도발 방식에 익숙해졌다. 도발의 수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일정 수위에 이르면 국면전환도 할 줄 알았다. 이에 반해 김정은의 도발 행태는 전혀 알 수 없다. 막연하게나마 그는 더 젊기 때문에 더 무모하고 더 충동적인 행동도 할 인물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어디까지 위기를 끌어올릴지, 어느 단계에서 회군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과거처럼 막연한 전쟁위협 발언을 한 것도 아니다. 일방적인 미사일 발사 계획을 상세하게 공표, 북한 스스로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다.
■과거의 공갈 협박과 다른 점
김정은은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미사일 사격을 철회하기 어렵게 해놓았다. 우선 북한 안팎에 미사일 사격을 공약을 했다. “력사적인 이번 괌도포위사격을 인민들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건부가 아닌, 일방적이고도 무조건적인 미사일 사격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와 같은 대치 국면이 지속되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포기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만일 공언과 달리 미사일 사격을 포기하면 향후 김정은의 협박카드는 잘 먹히지 않게 될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 사격을 포기할 명분을 미국이 제공하지 못하면 김정은도 어쩔 수 없이 미사일 발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북한이 정말 괌 사격한다면?
괌을 향해 미사일이 날라 오면 미국은 사드, 이지스함의 SM-3로 요격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괌 사격이 북한 미사일 기술 수준과 미국의 미사일 방어 능력을 겨루는 무대가 된다는 의미다. 만일 북한의 미사일 4기가 모두 요격되면 평소 효과를 의심받아왔던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은 재평가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 미사일이 사드를 뚫을 가능성이 0.0001%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요격에 성공하면, 성주의 사대 배치를 앞당기도록 압박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북한이 탄착점 좌표까지 제시했는데도 만의 하나 요격에 실패하면 미국은 고스란히 북한의 위협에 무방비 상태임을 드러내면서 치명상을 입는다. 안보상의 논란 뿐 아니라 정치적 논쟁을 촉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안보 무능이 도마에 오를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북한 미사일은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라는 트럼프 대북정책을 파괴할 것이다.
북한은 이 게임에서 미국처럼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이 미국의 요격망을 뚫고 미사일 사격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러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 역량을 과시하고 초강대국 미국을 무릎 꿇렸다는 내부 선전으로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대북 제제 강화와 압박 중심으로는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 한다며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위기 국면에서 전환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한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북한이 괌 사격에 실패한다 해도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그만이다.
■김정은만 미친 게 아니다, 트럼프는?
반면 미국은 요격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번 게임의 승자가 되기 어렵다. 요격에 성공하고, 비례성의 원칙에 맞게 북한의 도발에 맞서 보복 공격을 한다고 치자. 이 군사행동이 전쟁을 촉발시킬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보복 공격에 북한이 맞대응할 것에 대비해 한미연합군은 북한과 일전불사의 대비태세를 미리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첨예한 대치 상황에서는 우발적 사태, 작은 사건이 전쟁의 불을 당길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과연 지금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핵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무리 트럼프라도 전쟁에 돌입할지 상당히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것도 미국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북한이 원하는 시간, 북한이 원하는 장소에서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보복 공격을 하지 않으면 ‘미국 본토가 공격받는 것을 각오하고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까’ 하는 의구심에 불을 붙이게 된다. 그러면 미국의 의지도 의심받게 되고 동맹 보호 공약도 결정적으로 훼손된다. 물론 미국의 보복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론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탄착점이 영해 밖이므로 직접적인은 아니다. 게다가 북한은 “사격을 검토하고 있다” 거나 “우리는 미국의 언동을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의 반응 여하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두고 있다. 공을 미국에 넘긴 것이다. 그러나 공을 넘겨받은 미국은 트럼프를 믿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 등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트럼프에 대해 미국 안팎에서 그에게 핵 단추를 맡겨도 되는지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대응을 할지 알 수 없는 트럼프를 상대로 김정은이 모험을 할까? 트럼프의 충동적 성향을 억누를 만큼 김정은의 야수적 충동성이 더 크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과 트럼프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 상호 불신과 예측불가능성은 두 사람의 충동성을 억지하는 효과를 낸다. 둘 다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면 전쟁을 억지하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제공격이냐 예방전쟁이냐
대부분의 침략전쟁은 예방전쟁이다. 언젠가 공격해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먼저 침략해 전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을 두고 흔히 선제공격이라고 했지만 허버트 맥메스터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말한 예방전쟁 혹은 예방공격이 정확한 표현이다. 선제공격은 상대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응전하는 것으로 국제법상으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미국을 침략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전쟁이 임박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선제공격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괌 주변 공해 타격 공언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사격 일정표를 공개하고 영해 밖이 표적임을 밝히고, 실제 사격할지 의도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한 선제공격 명분으로 삼기는 쉽지 않다. 만일 선제공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북한이 괌 타격 공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도 김정일처럼 극적 전환할까?
공개적 자살 위협은 대개 상대를 위협하고 경고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자살할 테면 해 보라’는 부추김이 자살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괌 사격 위협도 ‘쏠 테면 쏴보라’라는 대응으로 일관하면 정말 어느 순간 꽝 하고 쏠 수 있다.
북한은 1993년 준전시 상태를 선언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며 북핵 위기를 촉발한 적이 있다. 그 때 북한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미국은 북한이 정말 전쟁 불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북핵협상이 펼쳐졌고, 1994년 북미 제네바 핵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1997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 회담도 북한의 잠수정 남한 침투 등 남북간 무력 충돌의 위기 끝에 성사된 것이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의 충격은 2.13 북핵 합의를 낳았다.
그렇다면 이번 정면 대결의 위기도 극적 전환의 계기로 이어질 수 있을까? 막다른 골목에서 맞부딪치면 서로 피하고자는 심리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과 미국간 회피 노력이 전개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과거 그런 사례가 많았다고 해서 이번에도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김정은, 트럼프 모두 ‘정상적’이지 않다.
특히 김정은이 문제다. 트럼프 주위에는 그래도 말릴 사람이 있지만, 김정은을 말릴 사람은 없다. 김정일처럼 반전시키는 노련함이 김정은에게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김정일이 자주 쓰던 방법, 즉 전쟁 운운하며 위협하다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는 방법을 김정은도 그저 흉내내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해서 위협을 무시하다가는 무슨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김정일이 세계를 상대로 협박할 때는 핵무기가 없을 때이지만 김정은은 지금 핵무기를 30여개쯤 확보하고 있을 수도 있다. 김정일 상대 하듯이 김정은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지금 북한은 남한은 물론 중국과도 대화 단절 상태다. 국면 전환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김정은은 미국에 보복의지가 있다고 믿으면 괌에 시선이 쏠린 사이 동해나 다른 공해를 목표로 사격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김정은이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숙고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긴장된 교착 국면을 끌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
■트럼프 정책의 실패, 대안은?
트럼프는 과거 미국이 실패한 정책을 단기간에 모두 반복했다. 중국에 의탁하기, 북한 압박하기, 그것도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면서 그랬다. 한 입으로 두말하고 여러 입으로 여러 말을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북한이 이런 트럼프 정부를 믿고 핵을 포기할까?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미국과 전쟁하는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최고 목표는 김정은 정권 유지다. 정권 붕괴와 변화의 길을 제발로 걸어갈 리 없다. 그럼 대안은 트럼프에 달렸다. 트럼프가 하기 나름이다. 트럼프가 빨리 자신의 대북정책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