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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23, 2011

안철수 바람에 무너진 ‘선거 여론조사’가

보수언론 입장에서 참 고약한 상황이다. 막강한 여론선도 기능을 무기로 ‘박근혜 대세론’을 떠받쳐 왔는데 ‘안철수 바람’ 한 방에 무너져 버렸다. 2012년 19대 총선은 물론 대통령선거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미를 봤던 ‘권언유착’의 고리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23일 연합뉴스와 ‘한국정치조사협회’가 발표한 다매체 여론조사 결과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정치조사협회는 12개 여론조사 기관 모임이다. 이들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지역 유권자 3700명을 대상으로 유선전화휴대폰, 온라인 등 통신수단별 다매체 동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국 정치 여론조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방안을 다 사용한 셈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범야권의 완승이었다. 박원순 변호사와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의 1대1 구도를 가정한 대결에서 모든 조사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순 변호사.
@CBS노컷뉴스
흥미로운 대목은 여론조사 방법에 따른 차이가 뚜렷하게 감지됐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여론조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집 전화 면접 여론조사이다. 쉽게 설명해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이들에게 여론조사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정치 견해를 묻는 방법이다.


문제는 KT 집전화가 있다고 해도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전화번호부에 등재하지 않은 이들이 있고, 집전화는 있지만 KT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LG 등 다른 회사 전화를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또 인터넷 전화도 마찬가지다.
더욱 문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집 전화 자체가 없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보편적인 여론을 확인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KT 전화번호부 등재 유권자들이 특정 정치성향(보수성향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을 경우 여론조사 결과 자체가 민심을 엉뚱하게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연합뉴스, 한국정치조사협회 여론조사 결과에서 중요한 관전포인트는 그 경향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성인 대부분은 집 전화는 없어도 휴대전화는 대부분 갖고 있다. 휴대전화 여론조사가 보다 폭넓은 민심을 확인하는 유용한 수단이란 평가도 이 때문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CBS노컷뉴스
 
 
 
 
 
 
 
 

휴대전호 조사는 법적 제도적 미비점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여론조사 수단은 아니지만 오히려 집 전화 여론조사보다 실제 민심을 더 반영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이번 여론조사가 곤혹스러운 이유는 휴대전화 면접조사, 휴대전화 자동응답전화 등 휴대전화 조사에서 박원순-나경원 후보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자동응답 방식의 경우 박원순 51.5%, 나경원 33.1%로 18.4% 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휴대전화 면접 방식의 경우 박원순 49.6%, 나경원 30.8%로 18.8% 포인트로 격차가 조금 더 벌어졌다. 둘 다 오차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이다.

반면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만 따로 집계한 결과를 보면 박원순 41.1%, 나경원 40.5%로 별 차이가 없었다. 주목할 대목은 그동안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한 방식이 바로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였다는 점이다.

언론이 각종 선거를 앞두고 쏟아내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우위를 보이고 심지어 20~30%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앞서는 데도 실제 선거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이 연패하는 이유도 ‘여론조사의 비밀’에 답이 있다.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 위주의 여론조사는 한마디로 한나라당에 유리한 여론조사로 실제 민심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휴대전화 여론조사가 보편적인 여론조사 방법으로 선택될 경우 한나라당은 지금보다 더 곤혹스러운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관전포인트는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정치 여론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도 그렇고, 올해 4월 재보궐 선거 때도 그렇고 보수언론이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나타났다.


  
동아일보 4월 22일자 4면.
웃지못할 사건은 지난 4월 재보선 직전에 발표된 동아일보 여론조사 관련 기사이다. 동아일보는 4월 22일자 4면에 강원도지사 선거와 관련한 민심의 흐름을 전하면서 <30대 표심, 보름 사이에 최문순에서 엄기영으로>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30대는 야권 지지성향이 강한 세대로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의 주 지지층이기도 했는데 그 표심이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 쪽으로 이동했다면 그 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 결과로 나타나야 앞뒤가 맞는 결과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여론조사 분석은 엉뚱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30대 표심은 최문순 후보가 엄기영 후보에 두 배 가량 지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자체 여론조사를 근거로 주장을 펼쳤지만 그 여론조사가 실제 바닥민심을 반영했는지, 여론조사 수치를 근거로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는지 따져볼 대목이다.

당시 강원도지사 선거는 보수언론 여론조사와는 정반대로 최문순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정치 여론조사’가 위험한 칼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제대로 된 여론을 전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여론 흐름을 이끌 경우 ‘여론조사 정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각종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정치’의 반사이익을 얻었다. 보수언론이 쏟아내는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민심과는 무관하게 한나라당의 안전판 구실을 했다. 사람들은 “주변에는 여당을 좋아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보기가 어려운데 여론조사는 다르게 나오니 내 주변만 이상한 건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여권 지지층 위주로 여론조사에 응답하고 야권 지지층은 아예 전화를 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것 역시 여론조사가 바닥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여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여권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 속에서도 여론조사 결과가 여권에 불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에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을 전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유리한 여론조사 제도로 조사해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다는 얘기는 바닥민심이 방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수언론 입장에서는 ‘선거 여론조사’가 두려울 지경이다.


  
동아일보 9월 22일자 사설.
그 때문일까. 동아일보가 ‘선거 여론조사’를 사설로 비판하고 나선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동안 ‘선거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조사 정치’에 영향을 줬던 언론이 갑자기 선거 여론조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참 어색한 장면 아닌가.


동아일보는 9월 22일자 <언론사 여론조사, 대상자 검증 부실 문제 있다>라는 사설에서 “언론사들의 선거 여론조사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언론은 여론조사를 하기 전에 대상자들의 국가관 행정능력 등을 분석한 뒤 객관적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언론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민주주의가 자칫 민의의 왜곡으로 본래의 취지를 잃고 표류하는 상황을 막아내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9월 22일자 사설에 담은 내용을 깊이 새겨서 과거 자신들의 선거 여론조사를 되돌아봤으면 한다. 어떤 언론의 ‘선거 여론조사’가 문제였는지 깨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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