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대한민국을 들썩인 해킹의혹과 국정원 임 과장의 죽음을 보며 궁금해졌다. 국정원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걸까. 국정원은 예산과 조직은 국가안보사항이다.
채용과정부터 베일에 쌓여 있다. 어떤 사람을 뽑는지 몇 명을 뽑는지 면접질문과 시험문제 등 채용과정 전반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거의 유일한 통로는 국정원이 직접 운영하는 ‘채용상담’이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채용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서울 강남 모처에 있는 국정원 인재개발센터로 향했다. 상담을 예약한지 한 달 만에 날짜가 잡힐 정도로 인기가 많은 상담이었다. 연락은 문자로만 이루어졌다. 국정원 인재개발센터는 개인별로 상담날짜와 장소를 알려주는 문자를 보냈다.
5층 건물 높이의 빌딩에 자리 잡은 인재개발센터는 국정원답게 비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벨을 누르고 신원 확인을 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고, 핸드폰은 끄고 가방을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어둔 후에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격조 있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국정원 직원들이 기자를 포함한 국정원 지망생 4명을 맞이했다.
본격적인 채용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국정원 홍보영상을 틀어줬다. “약육강식에 무한경쟁의 시대, 힘의 원천은 정보”라는 내용으로 시작한 영상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걸음 앞에서 길을 내고 한걸음 뒤에서 국민을 지킨다”는 멘트로 마무리됐다.
▲ 국정원 채용정보사이트 갈무리. | ||
이어 지난 2006년 KBS 수요기획 <최초공개 국정원>을 편집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서울 외곽교정에서 신입요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발 맞춰 뛰는 모습, 훈련받는 모습이 나온다. 국정원 직원은 우리들에게 “이 영상을 보고 선배 국정원 요원들의 삶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느껴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국정원 채용담당 직원 외에도 교실 뒤편에는 또 다른 국정원 직원 한 명이 상담 내내 앉아 상담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입사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상’이다. 국정원 채용정보 사이트에는 국정원의 6가지 인재상이 정리돼 있다. 애국심, 헌신, 책임감, 전문지식, 정보감각, 보안의식이다.
국정원 직원이 우리에게 “다른 기업에 없는 인재상이 뭐죠?”라고 물었다. 답은 애국심이다. 그는 채용 전반에서 애국심, 나아가 애국심에 대한 지망생들의 고민의 깊이를 본다고 강조했다.
1차 서류심사에 해당하는 자기소개서부터 지망생들은 애국심과 사명감을 드러내야 한다. 국정원 시험을 치른 적 있는 A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자소서 문항은 성장과정과 입사동기, 살아오면서 겪은 힘들었던 일들, 단체생활에서 겪은 기억에 남는 일 등으로 평이했다. 다만 시중에 있는 국정원 합격가이드북 같은 책을 보면 애국심을 강조하라고 한다”며 “그래서 다른 기업 지원할 때 쓴 자기소개서랑 비슷하게 쓰고 애국심에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시험 경험자인 B씨는 “국정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있는데 그 학원에서 알려주는 것 중의 하나도 ‘국정원화’된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이다”라고 밝혔다.
2차 필기시험은 NIAT(국가정보적격성검사)와 한국사 논술이다. NIAT는 지난해부터 도입된 새로운 채용제도로 미지의 영역이다. 삼성 인재채용시험인 SSAT의 국정원 버전이다. 국정원 직원은 우리들에게 “삼성이나 LG나 우리나 인적성 내용은 비슷하다. 이는 영리함, 똑똑함, 합리성 등 이 정도 능력은 갖춰야 한다는 기본치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직원은 이어 “기본적인 똑똑함을 테스트하는 건 시중에 있는 다른 인적성검사 문제집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정원의 ‘인재상’에 관련된 부분은 어떠한 문제집으로도 준비할 수 없다”며 “고민하라”고 강조했다.
무슨 고민일까? 국정원 직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 우리가 해야 할 고민들을 알려줬다. 그는 “수많은 직업과 직장 중에 왜 하필 국정원인가”라며 “여러분 오늘 여기 오느라 핸드폰도 다 수거해가고 문도 잘 안 열어주고 불편했죠? 이건 여러분이 겪어야할 불편함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정원 직원이 되면 감수해야할 불편함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이 신혼여행을 가도 그 나라에선 방첩활동(간첩 잡는 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를 감수할 자신이 있나? 그 이유는 뭐냐? 또 이 불편함이 갖는 의미는 뭔가?”라고 물었다. 결론은 애국심이다. 그는 또한 “국가정보원법과 국가정보원직원법을 한 번 읽어보라. 국정원 직원이 뭐 하면 안 되는 지 알려주는 법들”이라며 “왜 국정원직원은 공무원법 외에 다른 법으로 규제를 받는지, 읽으면서 느껴보라”고 강조했다.
NIAT와 함께 1500자 분량의 논술시험도 봐야한다. 주제는 한국사다. 국정원 직원은 “한국사검정능력시험 준비하듯이 하면 피 본다”고 강조했다. 단순 지식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이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을 본다는 것.
▲ 2006년 KBS 수요기획 ‘최초공개 국가정보원’의 한 장면. | ||
논술시험에 대한 힌트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한 국정원 시험 유경험자들에게서 나왔다. B씨는 “6.25 전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나왔다”고 밝혔다. A씨는 “특별히 정치사상이나 성향을 검사한다는 느낌의 문항은 없었다”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의견 등을 물어봤는데 시험을 볼 때부터 논술을 치면 정치사상이나 성향이 당연히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국정원 시험 유경험자 C씨는 논술의 범위가 한국사로 한정되지 않았을 때 시험을 봤다. 그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역사의 종말’ 관련해 현실정치에 대해 묻는 문제가 나왔다. 논술의 경우 정치사상을 묻기 위해 내는 시험인 것 같다”며 “내가 보수주의적인 답변을 안 하고 중도적인 답변을 했는데, 그래서 떨어졌나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종말’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내용의 책이다.
그렇게 NIAT와 논술을 통과하면 체력검정과 인성검사를 치르고 통과한 이들은 면접을 본다. 국정원 직원은 “보통 1차, 2차로 나눠서 보는데 한 번에 볼 수도 있고 이틀 간 와야 할 수도 있고 매년 달라진다. 형태나 형식에 대해선 크게 궁금해 하지 마라”고 말했다. 변하지 않은 형식은 프리젠테이션이다. 앞에 나가서 설명하는 방식의 면접을 뜻한다.
면접에선 뭘 물어볼까. 국정원 직원은 “직무자질평가와 인성평가를 한다. 직무자질평가는 NIAT에서 검증한 것을 다시 검증하는 것이고, 인성평가는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검증하는 것”이라며 “애국심 검증은 인성이 될 수도 있지만 직무자질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애국심이다.
국정원 지망생들이 말하는 지원 동기는 단순한 애국심과는 차이가 있었다. C씨는 “스터디그룹도 하고 학원도 다녀봤는데 국정원 지망생들에게는 일종의 환상이 있다”고 말했다. C씨는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한 환상이다. 분명 명암이 있는데 국가기관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명’만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국정원 지망생들은 애국심이나 사명감이 좀 있는 것 같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며 “국정원 지망생들끼리는 서로 자기 이야기도 잘 안 해서 진짜 동기는 잘 모른다. 다만 나 같은 경우 국가를 위해 정보를 다루는 게 멋있게 느껴졌고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C씨는 또 다른 동기로 ‘권력욕’을 제시했다. C씨는 “우리나라는 엘리트주의와 출세지향주의가 심하다. 근데 역사를 보면 안보기관 출신들이 정부요직으로 많이 들어갔다”며 “어쩌면 이 길이 출세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고, 나도 그런 동기로 국정원 시험을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정보의 우위에 서서 정보를 독점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희열도 있다. 남들이 못 보는 걸 알게 되고, 이를 통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많은 국정원 지망생들이 애국심을 어떻게 강조해야할지 몰라서 학원에 다닌다. 국정원 입시학원은 종로, 노량진 등 몇 곳에 있다. 국정원 직원은 굳이 학원에 다닐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직원은 “우리는 예제나 기출문제를 공개 안 한다. 시중의 문제집이 맞다는 보장이 전혀 없고, 문제집 내용이 뭐고 교재를 누가 만든지도 우리는 모른다”며 “문제집 풀고 학원 가는 건 자유지만 현혹되지 마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원에 가야한다.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학원 중에는 국정원 전직 직원이 운영하는 학원도 있다. C씨는 “전직 직원이 원장으로 있으니 ‘조그만 정보라도 줄까’하는 기대에 지망생들이 많이 간다”며 “종합반에 다녔는데 4~5개월 수업 듣는데 200만원이 들었다. 그만큼 정보가 없다보니 학원비가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촬영한 국정원 로고. ⓒ연합뉴스 | ||
국정원 직원이 채용상담 내내 애국심 다음으로 강조한 것은 보안의식이었다. 면접까지 통과해도 신원조회를 거치는데, 그 신원조회 과정에서 검증하는 것 중 하나가 보안의식, 즉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보안을 잘 지키는 사람인지 등이다.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 지원단계에서부터 보안을 유지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님과 가족의 경우 의견을 교환해야 하니 말할 수 있으나 그 사실을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진 못하게 해야 한다”며 “순식간에 소문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괜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국정원 관련해 언론에 나오는 이슈들이 부정적인 것이 많아서 더 그렇다”며 “특히 친구들한테는 말 하면 안 된다. 들어와서 교육받으면 누구한테 말할지 말하지 말지 판단할 수 있으니 일단 알리지 마라”고 거듭 강조했다.
시험내용도 장소도 다 비밀이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이들이 필기시험 장소를 알아보기 위해 채용사이트에 접속하면 서류 합격사실과 시험장 위치 등을 발설하지 말라는 문구가 함께 뜬다.
특채(경력직)도 마찬가지다. 특채 시험을 경험한 D씨는 “특채는 공채보다 더 보안을 강조하는 게 심하다”고 말한다. D씨는 “어느 장소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버스를 대절해놨더라. 가만히 서 있는 데 검은 색 양복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귀에 대고 ‘오늘 시험 보러 오셨어요?’라고 물었다”며 “버스에 타면 국정원 직원들이 오늘 옆에 앉은 사람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시험봤다는 사실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떨어질까봐 시험장에서 말 한 마디 안 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은 채용상담을 마친 나에게 한 장의 서약서를 나눠줬다. 서약서에는 ‘여기서 들은 내용, 인원, 센터의 위치 등 지득한 사실을 인터넷 사이트, SNS, 트위터 상에 공개하지 마라’고 적혀 있다. 국정원 직원은 “특히 학원가서 이야기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서약서는 무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정원 지망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채용상담을 받은 사람들의 정보가 국정원 인재개발센터의 ‘인재DB'에 등록되기 때문이다. 서약을 어기면 채용에 실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기념품으로 받은 국정원 연필을 들고 인재개발센터를 빠져 나왔다. 국정원 지망생들은 이 연필을 받고 애국심을 다짐했을까. 인재개발센터를 나가기 직전까지도 면접과정을 지켜보던 국정원 직원의 눈은 끝까지 기자의 뒷모습을 향하고 있었다.
▲ 국정원 기념품 연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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