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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6, 2016

'적폐의 총아' 박근혜, 최선 다해 말아먹다,, '사실상 헌정 중단 사태'를 초래하다 .....박근혜 정권, '유신독재'만도 못한 사이비

[대담한 대담] 소장파 정치학자 김윤철-정한울-이관후 ① 진단
"사실상 박근혜 정부 4년간의 헌정 중단 사태가 밝혀진 사건." (이관후)

"국정과 부패 고리가 결탁해 있다는 점에서 역대 정권의 부정부패와 다른 헌정 중단." (정한울)

"'적폐의 총아(寵兒)' 박근혜, 유신독재만도 못한 '사이비 유신보수주의'."(김윤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민낯이 하루가 다르게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샤머니즘적 요소까지 등장하는 지난 4년간의 '국정농단'에 협조해 사익을 추구했던 소수의 인사를 제외하곤, 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헌정 중단' 사태가 명명백백히 드러난 그다음이다.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어떻게 결론 내릴 것이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게이트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이 한 축이며, 또 다른 한 축은 이번 일을 통해 드러나 '적폐'를 해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김병준 신임 총리를 지명했고,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 일선에서 물러날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내시'를 자처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당내의 거듭된 사퇴 촉구를 일축하며, "대통령을 떠날 수 없다"고 충정을 과시하고 있다. 구세력은 여전히 어떻게든 버티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많은 논의와 모색이 필요하다. <프레시안>이 젊은 정치학자 3명(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의 긴급 대담을 마련한 이유다.

대담은 지난 3일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전홍기혜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대담자 각각의 직함은 '박사'로 통칭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적폐의 총아' 박근혜, '사실상 헌정 중단 사태'를 초래하다

전홍기혜 : 세대와 지역 구분 없이 국민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정치적 격변기'다. 기자 생활을 통틀어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충격이다. 특히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개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까지 가담한 '공동정범'으로 확대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각자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이관후 : '사실상 헌정 중단 사태'가 밝혀진 사건이라고 본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이 위임받지도 않은 개인에 의해 비상식적으로 운영됐다. 전모가 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 달여 만에 '박근혜 정부 4년이 사실상 헌정 중단 사태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정한울 : 동의한다. 하지만 지난 4년을 볼 때 시스템의 단절을 의미하는 '중단'보다는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중단'이 더 맞는 것 같다.

어떤 정권이든 임기 말에는 부정부패가 발생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이번 사태는 국가 시스템 밖에 있는 혹은 현재 권력(대통령)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개인이 국정과 부정부패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국정과 부패 고리가 결탁해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충격적이다. 그래서 역대 정권의 부정부패와 다른 '헌정 중단'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김윤철 :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에서 '적폐(積弊)'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적폐'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지? 누가 담화문을 쓴 걸까?' 의아했는데, 드디어 비밀이 풀렸다. 대통령 스스로가 '적폐의 총아(寵兒)'였던 셈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해 '유신보수주의'라는 말을 했다. 이번 사태로 공사 구분 없이 사익(私益)을 추구하며 국정까지 농단한 유신보수주의 세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낡은 권력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낡은 세력이 최선을 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준 셈이다.

▲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이날 공개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는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정권, '유신독재'만도 못한 사이비 

정한울 : 유신보수주의는 '오래된 패러다임이나 사고방식'을 뜻할 텐데, 이번 사태는 훨씬 더 충격적이다. '유신독재(維新獨裁)'는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의 가치관을 가진 혹은, 비선(非先)이라도 경험이 있는 이들과 국정을 협의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퇴임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국정을 논의했다면 납득이 된다. 그런데 국정 경험도 없고 자격이 없는, 특히 사이비(似而非) 종교(샤머니즘)와 연관성이 있는 개인과 의견을 나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김윤철 : 유신독재만도 못한 '사이비 유신보수주의'다. 유신은 경제 발전을 최상의 가치로 한 '개발독재 이데올로기'라도 있었지만, 지금 이 사이비 유신보수주의는 약탈 국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권력이 국가를 통치하면서 사익 추구 성향만 추종하거나 샤머니즘에 의존한 결과다. 현재 박근혜 정권을 '무속 정권', '샤머니즘 정권'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관후 :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사>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라고 예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가 유신독재로 이어졌지만, 결국 '10.26사건'이라고 하는 비극적 결말로 끝났다. 35년 뒤 딸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유권자가 정치인 '박근혜'의 국정 철학을 보고 지지했다고 보긴 어렵다. 아버지의 유산이 투영된 결과물이며, 집권에 대한 보수 세력의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역사가 희화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유신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상실된 상태에서 타락한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에 기대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입시 부정과 재벌 탈세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래하는 천박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권력과 돈을 맞교환하는 추잡한 행태가 '권력 가진 놈이 돈 가진 놈과 그렇게 거래하는 거지' 하는 식으로 상식화됐다. 비극으로 끝난 유신보수주의가 희극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타락한 형태로 나타났는지 알 수 있다.  

대학가 시국선언,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분노  

전홍기혜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기존 게이트와 달리, 국정과 부패가 혼합되어 있다. 특히 '최순실'이라고 하는 비선이 국정을 주무르며 사익을 추구하고, 딸의 입신을 위해 입학 비리를 저지르고 승부를 조작했다. 세 사람 모두 학교에 몸담고 있는데, 20대 청년들의 분노는 어느 정도인가.  

▲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윤철 : 경희대 학생들이 지난 1일 시국선언을 마친 뒤, 대학가 최초로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희대에서 근무한 지 6년째인데, 정권 비판 시위는 처음 봤다. 세월호 참사 때도 학생들이 가두행진을 했지만, 그때는 추모회 성격이 강했다.

이번 사태로, 청년들이 권력과 직접 대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분노가 크다는 얘기다. 현 국면을 타파하는데, 이들이 새로운 에너지나 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민주화 세대 이후,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관후 :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20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1.6%로 조사됐다'(3일 자 리얼미터와 <매일경제>·MBN 여론조사 결과)고 하자, '도대체 누가 그렇게 지지하는 것이냐'며 따져 물었다. 그 수업 상황만 보면, 실제 지지율은 0%에 가깝다.(웃음)  

일명 '세월호 세대'라고 불리는 학생들은 지금 '알바 반 공부 반' 생활을 하며, 입학과 동시에 청년 실업을 걱정한다. 졸업 후 취직을 해도 60% 이상은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해 수업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학부모 대부분이 IMF 시절 구조조정을 당하면서도 '금 모으기 운동'에 자녀의 돌 반지를 낸 세대였다. 36명의 학생 중 돌 반지를 갖고 있는 학생이 1,2명에 불과했다. 당시 신용불량자와 실업자가 쏟아졌지만, 국가는 이들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상 방치했다.  

2%가 아닌, 사실상 0%에 가까운 20대 지지율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구의역 사건' 등 그동안 파편화된 사건만 경험했지만, 이번 사태로 '국가란 무엇이고, 대통령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국가운영 시스템은 과연 존재하는가?' '국가는 나에게 혹은 우리 가족에게 무엇을 해줬지?'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과 분노를 가지게 됐다.

정한울 : 대체적인 분위기에 공감한다. 다만, 지금 국면에서 김윤철 박사와 이관후 박사가 본 20대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현상에 비춰 20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4.13 총선에서 20대 투표율(58%)이 왜 올랐는지 정확한 이유를 아직 모른다.

언론에서는 '헬조선'의 반사 효과라고 하는데, 데이터를 분석하면 이 분석은 맞지 않는다. 언론 보도대로 라면 사회적 불만이 높고 경제적 형편이 좋은 않은 젊은 층이 적극적으로 투표했다는 것인데, 오히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높고 사회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지닌 젊은 층이 투표장에 많이 갔다.  

고대 학생들은 아직 시국선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학내 현상이 눈여겨볼 만 하다. 고대는 총학생회의 시국선언문 작성 과정과 내용의 문제로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이 탄핵당해 직무 정지 상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현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가 더 필요하다.

또 다른 차원에서 주목하는 것은 세대 내부의 동질성과 이질성이다. 노년층을 보면, 한국전쟁을 경험했고 다 같이 못 살았으며 대부분 교육을 못 받았다. 엄청난 동질성을 가진 세대다. 하지만 청년층, 즉 20대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이질성이 큰 세대다. 2009년 대학진학률이 80%까지 올라 전체적으로 학력 수준이 동질화됐지만, '지잡대'(지방 잡(雜) 대학)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문대 출신과의 격차가 커졌다. 알바로 생활비나 등록금을 충당한다고 하지만, 학생 상당수는 부모의 가정소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정소득에 따라 세대 내 상류층과 하류층이 분명하게 나뉜다. 몇몇 통계를 보면, 20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중간층이 적다.

이관후 : 20대 투표율 분석에, 헬조선 이후 나온 '탈(脫)조선'의 의미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적·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로열티(royalty)가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겠다'며 투표한다. 그런데 20대는 로열티 자체가 사라진 것 아닐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투표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한 사람들이 있다. 안산이나 반월공단의 투표율이 낮은 이유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선거에 참여해 헬조선을 바꿔야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계를 버리고 투표장으로 갈 만큼의 로열티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헬조선을 떠나겠다는 의미로, 탈조선이 생겼다. 더 이상 사회 체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흐름이 다수가 된다면, 기존 체제에 대한 반격으로 프랑스의 '68혁명'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해 있는 것 같다. 고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학생회에 대한 반발이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과 같은 집권세력에 반대하면서도 야권을 지지하지 않는 태도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 지난 10월 19일 총장 사퇴로, '이복절'을 맞은 이대생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사회 변역의 에너지가 모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삶의 저항'을 끌어안을 정당도, 표현할 언어도 없다 

김윤철 : 20대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반응을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민주화를 외치던 정치적 저항을 뛰어넘는 '삶의 저항'이 표출되고 있다. 그래서 과거 비장미(悲壯美) 대신 강렬한 페이소스(Pathos)와 패러독스(Paradox), 유머(humor)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상에나 마(馬)상에나'와 같은 피켓, '연설문은 순실접신 / 물대포는 캡사이신'이라고 쓴 대자보, '순실이 닭 키우기' 게임 앱 등 정치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언어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탈주'마저 봉쇄된, 취업과 연애와 결혼이 불가능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과연 이에 부응하는 정당 체제(이념과 가치)를 가지고 있나? 아니,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터져 나오고 있는 '삶의 저항'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의 '권력을 어떻게 잡을까?' 하는 정치 게임에만 몰두해 있다.

고대 시국선언 논란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총학생회 구성원들이 '반독재' '민주화'와 같은 1980년대 정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마음은 같아도 일반 학생 입장에서는 총학생회를 대표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전홍기혜 : 집권세력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막 터져 나오는데, 야권은 실질적인 주권 행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신임 국무총리를 내정하는 등 힘겨루기에서조차 밀리는 모습이다. 국민들은 이번 사태로 민심과 정치가 괴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또 하는 것 같다.  

김윤철 : 야권의 정치력도 문제지만, 정치적 결정과 삶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정치 지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어느 정권이 더 낡았는지 구별이 안 될 만큼 산업화와 민주화를 기반으로 한 동일 세대다. 민주화를 열망한 386세대조차 한 번은 MB를, 다른 한 번은 '박근혜'를 지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현재 정당은 이런 복합적인 심리를 끌어안을 능력이 없다.  

이관후 박사가 현 상황을 '68혁명'에 비교했는데, 국민들은 지금까지 정치를 주도한 사람들, 즉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쳐 다시 돌아온 올드보이(유신보수세력)에 대해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절대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대표하거나 탈조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집권세력이 툭하면 과거의 언어를 앞세우고 있지만, 2016년 현재의 민심을 반영한 언어가 아니다.  
▲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이관후 : 프랑스에서 1789년 5월 루이 16세가 국가 파산을 막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했을 때도 각 신분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그래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신분 구별의 기준이 됐다. 평민계층은 국민의회가 선언된 뒤에도 자신들이 쓰는 언어가 프랑스 민중의 언어라며, 일종의 '언어 게임'을 펼쳤다.  

현 집권세력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보기엔 핵심 문제에 대해 그들의 언어를 쓰느냐, 아니면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느냐를 기준으로 한 언어 게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87년 6.29선언 당시의 언어는 민심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 이슈는 호헌(護憲)이었고, 대중은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쳤다. 정치와 민심 사이에 큰 괴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사태 초기, 대통령은 개헌을 얘기했고 야권은 권력구조 개편을 말했다. 대중은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누군가는 진상규명을 주장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국정 공백 상태를 비판하는데, 정치권은 '다음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개헌을 하면 의원 내각제가 유리할까? 대통령 연임제가 유리할까?'라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홍기혜 : 그래서 발생한 촌극이 결과적으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야당이 요구했던 거국중립내각을 여당이 받았으나 대통령이 거부한 경우다. 민심과 정치가 괴리된 예가 단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다.  

김윤철 : 국민의 요구였던 '대통령 직선제'가 '87년 체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김대중·김영삼이라는 걸출한 정치지도자가 군사 정권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무기로 설정한 핵심 목표였다. 이에 국민적 총의가 모여 민주화의 중요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은 이 언어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삶의 언어, 저항의 언어가 아닌 '개헌' '4년 중임제' '내각제' 등 YS-DJ가 만든 지나간 언어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다.

2016년 대한민국은 시대와 정치를 주도했던 층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화 세대의 언어와 리더십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가슴을 울릴 수 없다. 이미 정치는 삶 곳곳에 자리해 있다. 현재 '박근혜 하야'로 모인 민심을 새로운 사회나 국가 설계라는 부분으로 끌고 가야 한다. 이는 YS-DJ처럼 시대와 민심을 읽고, 이를 정치적 언어로 바꾸는 능력을 갖춘 이가 없다는 뜻이다. 

▲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정한울 : 언어라는 것은 사람들이 보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나타내는 틀인데, 정치권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아니면, 변화한 현실을 안 보고 있거나, 능력마저 상실했거나….

대학진학률 80%가 말해주듯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반도 20대라고 하면, 바로 대학생을 떠올린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대학진학률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특히 대학 진학자의 성비가 남(南)에서 여(女)로 역전됐다. 그런데도 선거 공약은 대학 등록금이나 대졸자 취업 등에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가 대학 입학을 곧, '시민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대는 동질성보다 이질성이 큰 세대라고 했는데, 정치권은 사회적 약자 측면에서 대학을 가지 못해 심리적 박탈감에 빠진 청년층을 돌봐야 하는 것 아닐까? 젊은 남성의 여성 혐오, 일베의 진보 혐오 역시 정치권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있어 발생하는 문제는 아닐까? 민심과 정치의 괴리가 언어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권의 게으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치 게임'에 빠진 야당, 길을 잃다 

전홍기혜 :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면 대가가 돌아온다'는 사고가 과거 전 세대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미 저성장사회에 돌입한 대한민국에서 사회적·경제적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일명 '박정희 이데올로기'도 정치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김윤철 : 낡은 언어와 생각, 행동의 양태 때문이다. 동시에 정치의 목적이 새로운 사회나 국가의 건설이 아닌, 정략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정치 게임'이 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표의 관점에서 게임장 안에 들어온 유권자만 고민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저항하지 않을까? 진보는 왜 이렇게 실력이 없을까?'를 얘기하지만, 진보세력조차 게임장 안에서 '정치적 소비자'가 됐다. 정치공학이 더욱 강해진 이유다.  

정치공학이 발달하고 복잡해질수록 게임장 안은 룰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한다. 이런 현상이 쌓이고 쌓여 정치권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하는 단군 이래 발생한 초유의 사태에도 정치권은 민심을 사회 변혁적인 에너지로 끌고 가지 못한 채 더 무능해지고 있다.  

청년들이 광장에 나와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지만, 집회 소감을 물으면 '정권이 바뀌면 달라지는 게 있어요?'라고 되묻는다. 공허함이 자리한 것이다. 이를 채워줄 수 있는 비전이나 대안이 등장하지 않으면, 오는 12일 민중총궐기를 기점으로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이번 정국의 핵심은 청년 세대에게 있다. 박근혜 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다. 이들의 저항은 정권의 위기감을 가져올 것이다.  

이관후 : 광장에 나가 '이 나라, 야권이 책임지고 끌고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국민들이 선뜻 대답할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이 점에 대해서 전혀 깨닫는 바가 없다. 제1야당만이라도 집권 대안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자각으로 비전을 제시하며 나라를 끌고 가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말에 뭐 하나라도 터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정권 내내 몸을 사렸다. 4.13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이유가 대안 세력이어서가 아닌데 말이다. 지금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낡은 사람들, 즉 김종인 전 비대위원회 대표는 전두환 정권에서, 우상호 원내대표는 1987년에 활약한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이다. 이들이 그때와 다른 시각으로 현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을까? 아니다. 이들은 오로지 '어떻게 집권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야권 대선주자도 여러 명이고, 당도 두세 개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희망이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와 노욕의 정치', 더 은밀하게 더 위대하게?  

전홍기혜 : 여당에서는 국민들의 분노를 2008년 촛불집회와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시민들의 저항이 한 달이 지나면 사실상 수그러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문제를 푸는 방식은 정말 박근혜 대통령과 김병준 내정자와 한광옥 비서실장 등 야권의 옛 인물을 얼굴 마담으로 활용해 민심을 눌러보려는 노욕의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이관후 : 집권 세력의 상상력이 딱 여기까지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새누리당 내 다른 사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수습되겠지'라는 태도다. 야당이 제안한 거국내각제대로 국정운영을 한 들, 상상력에 큰 차이가 있을까?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집권 세력만 바꾸면, '재단에 돈 내. 그럼 세무조사 피하게 해줄게'와 같은 거래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의 실체가 바뀌어도 다른 방식으로 특권을 받는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 '정유라'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말을 타고 '달그락 훅' 대학에 들어갈 것이다. 오히려 '왜 이렇게 서툴게 했지?'라며 더 은밀하게 이뤄질지도 모른다.

김윤철 :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부조리를 저질렀다. 너무 열심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사익을 추구했다. 그렇다면, 야권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 맞서야 하는데, 아니다.  

이관후 : <조선일보>가 이번 사태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설을 보면 권력구조 개편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책임총리제를 한 뒤 검찰을 독립시키자'는 주장이다. <조선>의 문제 해결 방식을 집권 세력도 바란다고 본다. 여전히 같은 프레임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면, 그들은 개편한 권력을 가지고 여전히 온갖 이권을 행사할 것이다. 국민은 탈출도 못한 채 희망이 없는 삶을 계속 살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대담한 대담] 1편 '진단'에 이어, 2편 '해법'이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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