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전 비서관의 청와대 위세가 비서실장을 넘어섰으며, 특히 이재만은 국책은행과 기업 인사, 안봉근은 검-경 인사까지 수시로 관여했던 증언이 나왔다.
27일 JTBC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은 "안봉근은 엄청난 실세였다. 겉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방 들고 다니는 정도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모든 일은 안봉근을 통해야 하니 당연히 권력이 세질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A씨는 안봉근이 자기 뜻대로 안 될 때 "VIP한테 다 일러 삘기다. 느그 도대체 몇 대를 두드리 맞아야 정신 차리는가 보자"고 호통을 쳤다고 말했다.
정권 초인 2013년 6월, 윤창중 전 대변인의 방미 수행 중 '성추행' 의혹 사건 2~3주 뒤쯤 안봉근 측근으로 꼽히는 B 비서관이 K 수석과 언쟁을 하다 공무원 출입증을 집어던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B 비서관은 구수한 사투리로 "느그들끼리 다 해 묵으라"며 흥분한 상태로 막말을 쏟아냈다. 상급자인 K 수석은 황당하다는 듯 눈만 끔벅거리며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고 한다. 이후 허태열 비서실장도 보고받았지만 징계 등 사후 조치는 없었다.
또 안봉근은 C 경무관을 치안감으로 승진시키는 동시에 사회안전비서관으로 데려오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동이 걸렸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C 경무관을 검증한 결과 여러 비위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안봉근은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두고 보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 경고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2달 뒤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지고,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전 행정관과 상급자인 조응천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쫓겨난다.
또다른 전직 청와대 관계자 D씨에 따르면, 3인방은 모두 비서관이지만 위세는 비서실장과 맞먹었다. D씨는 "3인방에게 감히 비서관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호성과 안봉근은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특히 이재만 비서관은 호칭 앞에 '총무'를 빼먹으면 들은 척도 안 했다"고 증언했다.
예우도 과도했다. D씨는 "청와대 내 유선전화는 발신자의 직급에 따라 벨소리가 다르다. 수석급 이상이 전화하면 사이렌처럼 요란하게 울리는데, 3인방이 전화하면 수석 벨소리가 울렸다"고 전했다. 이어 "비서관에게는 아반테급 소형 차량이 제공되는데, 이들 3인방은 SM5급 중형 차량을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이를 묵인할 뿐 문제 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고리 3인방이 벌벌 떨었던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정윤회와 최순실'이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전까지는 정윤회가 비선 실세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2007년 대선 캠프 경호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VIP와 통화를 하려면 누구든지 안봉근을 통해야만 했다. 그런데 정윤회 전화가 오면 안봉근이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위계 구조는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8년부터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에도 정호성 전 비서관이 후보 연설문을 만들면, 정윤회와 최순실을 거쳐 연설문이 완성됐다. 이 관계자는 “정이나 최가 대통령 선거 나가지 말라고 하면, 그 말까지 따를 듯한 분위기였다”고 주장했다.
JTBC는 의문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 “세월호 사고 당일 보고를 받고도 묵살한 정호성, 대통령 7시간의 비밀을 지키고 있는 안봉근, 주세제 구입 책임자 이재만이 세월호 7시간의 또 다른 키”라고 지적했다.
JTBC는 또한 구속자가 정호성 한명뿐임을 지적하며 “문고리 3인방 중 2명을 풀어 줌으로써 후일을 도모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7일 JTBC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은 "안봉근은 엄청난 실세였다. 겉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방 들고 다니는 정도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모든 일은 안봉근을 통해야 하니 당연히 권력이 세질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A씨는 안봉근이 자기 뜻대로 안 될 때 "VIP한테 다 일러 삘기다. 느그 도대체 몇 대를 두드리 맞아야 정신 차리는가 보자"고 호통을 쳤다고 말했다.
정권 초인 2013년 6월, 윤창중 전 대변인의 방미 수행 중 '성추행' 의혹 사건 2~3주 뒤쯤 안봉근 측근으로 꼽히는 B 비서관이 K 수석과 언쟁을 하다 공무원 출입증을 집어던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B 비서관은 구수한 사투리로 "느그들끼리 다 해 묵으라"며 흥분한 상태로 막말을 쏟아냈다. 상급자인 K 수석은 황당하다는 듯 눈만 끔벅거리며 아무런 대꾸를 못했다고 한다. 이후 허태열 비서실장도 보고받았지만 징계 등 사후 조치는 없었다.
또 안봉근은 C 경무관을 치안감으로 승진시키는 동시에 사회안전비서관으로 데려오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동이 걸렸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C 경무관을 검증한 결과 여러 비위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안봉근은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두고 보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 경고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2달 뒤 '정윤회 문건 파동'이 터지고,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전 행정관과 상급자인 조응천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쫓겨난다.
또다른 전직 청와대 관계자 D씨에 따르면, 3인방은 모두 비서관이지만 위세는 비서실장과 맞먹었다. D씨는 "3인방에게 감히 비서관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정호성과 안봉근은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특히 이재만 비서관은 호칭 앞에 '총무'를 빼먹으면 들은 척도 안 했다"고 증언했다.
예우도 과도했다. D씨는 "청와대 내 유선전화는 발신자의 직급에 따라 벨소리가 다르다. 수석급 이상이 전화하면 사이렌처럼 요란하게 울리는데, 3인방이 전화하면 수석 벨소리가 울렸다"고 전했다. 이어 "비서관에게는 아반테급 소형 차량이 제공되는데, 이들 3인방은 SM5급 중형 차량을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이를 묵인할 뿐 문제 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고리 3인방이 벌벌 떨었던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정윤회와 최순실'이다.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전까지는 정윤회가 비선 실세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2007년 대선 캠프 경호팀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VIP와 통화를 하려면 누구든지 안봉근을 통해야만 했다. 그런데 정윤회 전화가 오면 안봉근이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위계 구조는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8년부터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에도 정호성 전 비서관이 후보 연설문을 만들면, 정윤회와 최순실을 거쳐 연설문이 완성됐다. 이 관계자는 “정이나 최가 대통령 선거 나가지 말라고 하면, 그 말까지 따를 듯한 분위기였다”고 주장했다.
JTBC는 의문의 '세월호 7시간'과 관련, “세월호 사고 당일 보고를 받고도 묵살한 정호성, 대통령 7시간의 비밀을 지키고 있는 안봉근, 주세제 구입 책임자 이재만이 세월호 7시간의 또 다른 키”라고 지적했다.
JTBC는 또한 구속자가 정호성 한명뿐임을 지적하며 “문고리 3인방 중 2명을 풀어 줌으로써 후일을 도모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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