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과 매매가의 차이가 적은 점을 이용해 빌라 수백채를 사들인 다주택자가 보증금을 갖고 잠적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세입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하고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어보인다. 한동안 서울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500만원, 1000만원만 가져도 세입자를 낀 빌라 한채를 살 수 있는 갭투자가 성행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전셋값이 내리면서 앞으로 이런 피해가 계속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세입자 대책 있나
지난달 SBS 뉴스토리 '150채 집주인을 고소합니다' 방송 이후 서울 강서구 일대 빌라 세입자들의 피해 제보가 잇따랐다. 인터넷 커뮤니티 '뽐뿌'에는 지난 23일 서울 화곡동 전세 세입자 A씨가 집주인 이모씨를 고발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를 호소했다.
A씨에 따르면 이모씨는 올 초 잠적해 전세계약 기간이 만료된 세입자 수십명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이씨가 가진 집은 600채 이상으로 추정된다. 집주인이 잠적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세입자들을 포함할 경우 피해자가 수백명이 될 전망이다.
A씨는 "계약 당시 등기부등본에 문제가 없었지만 알고 보니 갭투자로 수백채를 돌려막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으로 대응할 방침이지만 사실상 이씨에게 전세금을 돌려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묵시적 갱신을 이용해 계속 거주하거나 남은 계약기간 동안 거주하다가 경매를 진행해 전세금을 회수하는 방법이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두가지 방법 다 허점이 있다. 전세자금 대출이 있는 묵시적 갱신의 경우 대출연장이 필요하므로 은행의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 경매는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빌라의 경우 감정가가 낮게 나와 일정 부분 손실이 예상된다.
이씨는 세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매매가격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업계약'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1억5000만원에 매매하고 등기부에 1억7000만원으로 기재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일부 세입자는 매매가격보다 더 높은 전세금을 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소개한 시세대로 계약한 만큼 중개자도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갭투자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의 일부 집주인은 돌려줄 전세금이 없으니 집을 인수해 소유권을 이전받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는 데다 집에 하자가 있거나 아파트 분양계획이 있는 신혼부부 등이 대다수라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전세금과 매매가의 차이가 적은 동네는 전세계약 시 매우 신중해야 하고 이미 피해를 입은 경우 경매를 진행해 집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수천만원의 손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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