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규모 축소.. 여당 추천위원 전원 사의표명" 지시도
조윤선 "정부 도와주고 너무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 주문
조윤선 "정부 도와주고 너무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 주문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 및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인사들과 장·차관이 지난 25일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특조위의 직제와 예산을 축소하거나 위원회 내부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게 하고, 당시 문제가 됐던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하게 하는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피고인 대부분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무죄 판결을 받아 유족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하지만 유죄 인정 부분은 이후 재판에서 추가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225쪽 분량의 1심 판결문에는 이들이 특조위 활동 방해를 위해 내린 지시와 실행에 옮긴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 조윤선 질책에 해수부 공무원들 대응문건 작성
판결문을 보면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015년 1월 19일 서울 플라자호텔 회의실에서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과 해수부 공무원, 특조위 여당추천위원 내정자들,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였던 김재원 의원 등과 특조위의 조직과 예산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조 전 수석은 특조위 여당추천위원들에게 "앞으로 역할을 좀 해주셔야겠다, 정부의 입장을 좀 도와주고 너무 정부를 힘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윤 전 차관과 해수부 공무원들에게는 "해수부에서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후 해수부 공무원들은 '세월호 특별조사위 설립준비 추진 경위 및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2015년 1월 20일께 작성된 이 문건의 최종 버전에는 특조위 설립준비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내용과 특조위에 파견되는 해수부 공무원 인원을 2배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 전 수석이 지적한 내용이 반영된 셈이다.
조 전 수석 측은 재판에서 "이러한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고, 문건을 작성·수정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윤 전 차관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이 회의에 참석해 질책하는 상황에서, 해수부 공무원들로서는 이를 '청와대의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조 전 수석이 가졌던 정무수석으로서의 지위나 정부 조직의 특성 등에 비춰 조 전 수석 본인도 이들이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하거나 이를 자신에게 보고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수부 공무원의 진술과 당시 업무 내용이 적힌 수첩을 토대로 윤 전 차관의 공모 혐의도 유죄로 봤다.
조 전 수석·김영석 전 해수부 장관·윤 전 차관은 2015년 1월 하순께 특조위가 편성한 직제·예산안을 대폭 축소하기로 공모하기도 했다.
조 전 수석 등은 이를 해수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참사 유가족과 야당·언론 등의 비난이 따를 것을 우려해 마치 특조위 내부에서도 직제·예산안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기획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조 전 수석은 플라자호텔 회의 직후 윤 전 차관과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위원회 직제·예산이 과다하게 추진되지 못하도록 해수부에서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련의 대응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내용을 전달받은 김 전 장관은 해수부 공무원에게 "청와대의 지시대로 방향을 잡아서 하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후 해수부는 정원 65명·예산 129억원으로 절반가량 줄어든 '해수부 기안'을 작성했고, 2015년 5월 11일에는 결국 해수부 기안을 바탕으로 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공포됐다.
피고인들은 직제·예산안 초안 작성은 해수부의 고유 권한이라거나 특조위 부위원장이 먼저 요구해 실행한 일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특조위 설립준비단의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위에 대해 "특조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업무의 독립성·객관성을 보장하는 세월호 진상규명법의 취지상 현저하게 부당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 보안 철저한 메신저 통해 '위원회 일일 동향파악' 지시
해수부는 특조위에 파견된 공무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특조위 내부정보를 수집하고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윤 전 차관은 2015년 1월 14일과 16일 정무수석실 회의와 19일 플라자호텔 회의 등에서 조 전 수석으로부터 위원회 관련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무렵 안 전 수석은 윤 전 차관에게 "보안성이 뛰어난 바이버(온라인 메신저)를 활용해 보라"고 조언했고 이에 윤 전 차관은 하급 공무원에게 지시해 특조위 파견 공무원들이 포함된 바이버 채팅방을 만들게 했다.
이후 윤 전 차관은 2015년 2월 2일부터 2016년 7월 22일까지 이들로부터 일일 상황보고 등 문서를 보고받았다.
재판부는 "위원회의 동향을 파악한다는 명목하에 파 공무원들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며 "이는 수단적·방법적 측면에서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애초에 동향파악을 지시했던 조 전 수석은 불법 행위가 있었음을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 "'대통령의 7시간' 행적조사 막아라"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5년 10월 30일 자신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위원회가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 안건으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해수부에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전달받은 김 전 장관과 윤 전 차관은 해수부 공무원들에게 해당 안건이 의결되지 않도록 대응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작성된 '위원회 관련 현안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특조위 여당추천위원들이 의결 과정상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필요 시 전원 사퇴 의사를 표명한다', '여당 위원들이 비정상적·편향적 운영을 비판하는 성명서 발표',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 등 방안이 담겼다.
이같은 혐의에 이 전 실장은 전임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처럼 국정 전반을 일일이 지시·감독하는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취임 때부터 이미 '문고리 3인방' 등이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면서 독자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이었다고 소명했다.
또 "2015년 4월 발생한 '성완종 리스트' 사건 등으로 대통령의 신임을 잃은 상황이었고, 따라서 대통령의 행적조사를 막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까지 감수할 만한 이유나 동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수석과 김 전 장관, 윤 전 차관도 모두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이 전 실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가지는 지위와 역할, 장악력 등을 고려할 때 해당 문건의 작성과 보고에 대해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과 김 전 장관, 윤 전 차관의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었다고 보고 이들의 공모관계를 인정해 유죄로 봤다. 다만 안 전 수석은 사후에 보고만 받은 것으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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