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년 전 '무상급식 반대' 오세훈 전 시장과 맞섰던 그 사람, 곽노현
[윤근혁, 이희훈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8월 21일 오전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3일 후인 24일 실시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무릎을 꿇고 있다. |
ⓒ 남소연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1년 8월 21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기자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 실시 사흘을 앞두고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기 위해 시장 직을 내건 것이다.
3일 뒤인 같은 해 8월 24일, 이 주민투표는 참여율 저조로 무산됐다. 오세훈 당시 시장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다.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
ⓒ 이희훈 |
곽 전 교육감은 2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2011년 오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을 떠올리며 "그가 아이들 무상급식이라는 정당한 시대정신과 싸우려고 돌진하는 돈키호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오 시장의 무리한 행동의 이유를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를 오로지 대선주자로서 자신의 선명성을 위해 부각시키기 위해 이념적, 정치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 후, 2021년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나선 오 전 시장은 "초중고 무상급식은 (이미) 뿌리를 내린 것이라 재고할 필요가 없고, 유치원만 무상급식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유초중고 무상급식에 대해 모두 찬성하는 모습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곽 전 교육감은 "아이 양육과 교육 분야에서는 원칙적으로 보편복지가 맞다고 인정해야지 여전히 10년 전 자신의 입장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치원까지 무상급식 확대를 주장하는 건 인기영합형 정치인이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짚었다.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지낸 곽 전 교육감은 교육감에서 물러난 뒤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을 맡아 민주시민교육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2017년 10월부터는 '내놔라 내파일' 상임대표를 맡아 국가정보원이 불법으로 만든 존안 자료 요구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 단체 소속 인사들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존안자료 중에 현재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자에게 보고한 문서가 나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시절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을 지냈다. 이에 대해 곽 전 교육감은 "권력을 가졌을 때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다"면서 박 후보의 자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곽 전 교육감과 인터뷰는 이날 낮 12시부터 서울 마포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
ⓒ 이희훈 |
- 최근 서울시의회 조례선정위원장을 맡아 '서울시의회 30년, 서울시민의 삶을 바꾼 10대 대표 조례'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무상급식 조례가 포함돼 있던데.
"10대 조례 중에는 친환경 무상급식조례,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조례가 들어가 있다. 이걸 보고 누구는 '위원장 찬스를 쓴 게 아니냐'고 보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12명의 위원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공정하게 뽑았다. 친환경 무상급식조례는 서울시청 기자단도 1순위로 꼽을 정도로 대표적인 서울시의회의 '대장 조례'다. 앞으로 서울시민들을 상대로 대장 조례를 뽑는 투표를 진행할 예정인데 비슷한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한다."
- 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가 대장 조례가 될 거라고 예상하나.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이번 조례 선정에는 3가지 기준이 있었다. 시대 변화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내용이 선도적인지, 효과가 크고 파급력이 있었는지가 그것이다. 이런 기준에 비춰볼 때 전체 805개 심사대상 조례 가운데 무상급식 조례는 대장 조례로 손색이 없다. 100만 서울 학생과 150만 학부모 등 모두 250만 명의 서울시민이 직접 혜택을 받는다. 생애 전 시기로 보면 1000만 명 시민 모두가 혜택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조례는 '아이들에게 눈칫밥 먹이지 말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보편복지 논쟁을 일으키며 복지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친환경과 결합시킨 것도 시의적절했다. 단일 정책의제로 2010년 지방선거 결과를 좌우하기도 했다. 무상급식에 찬성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싹쓸이하지 않았나."
- '초등학교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일 사흘을 앞둔 2011년 8월 21일,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이 투표 성사를 위해 시장 직을 걸면서 울기도 했다. 당시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
"울먹거리는 것을 보며 얼마나 다급하면 저럴까 싶으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쇼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시장 직을 걸었을 때 무조건 시장 직을 잃겠구나 싶었다. 불과 1년 전에 0.6%p 차이로 가까스로 상대 후보(한명숙)를 이긴 시장이 정당한 시대정신에 맞섰으니 다른 도리가 없을 걸로 봤다. 돈키호테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정당한 시대정신과 무모하게 싸우는 돈키호테 말이다."
- 당시 오 시장이 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놓고 시장 직까지 걸었다고 보나.
"스스로 대선주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선명성을 내세우기 위해 그랬을 거다. '보편복지시대를 막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게 본인의 대선가도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던 게 아닐까. 당시 이명박 정권은 부자증세에 반대하고 감세를 실현했다. 이들이 볼 때는 보편복지 언어도단이었을 것이다. 이는 아이들 복지를 교육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이념적, 정치적으로만 접근한 것에 불과하다."
- 10년 전 오 시장은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면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복지가 파탄난다'고 주장했다. 전면 무상급식을 했더니 파탄이 났나?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지금 봐라. 무상급식만이 아니라 무상돌봄 등으로 보편복지가 오히려 확대됐다. 그렇다고 가난한 집 아이들에 대한 맞춤형 혜택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저출산시대에 아이들에 대한 보편복지를 외면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최소한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차등대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 돌봄과 학교 교육에서 보편복지가 당연한 이유다. 당시에 오 시장의 재정파탄 주장은 과잉 단순화된 거짓말 공격이었다."
- 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나.
"보편복지 한두 가지를 더 도입한다고 선별복지 재원이 확 줄어들진 않는다.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국가재정에서 복지재정의 총액이나 비중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복지의 비중은 철저하게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 당시 오 시장은 MB정권의 '감세공약과 부자증세 반대'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사실조차 외면했다. 그냥 이념적으로 반대했고 그래서 치도곤을 맞은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반대전선의 맨 앞에 그가 있었다."
- 오 후보는 지난해(2020년) 3월 YTN에 출연해 '2011년 무상급식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선별급식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 후보의 이런 발언은 시민의 수준을 우습게 아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무상급식과 선별급식을 대비시키는 건 정직하지 못하다. 유상급식과 무상급식을 대비시키든가, 보편급식과 선별급식을 대비시켜야 맞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 후보가 박근혜 정권이 도입한 보편복지형 누리과정이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당론 채택을 주장한 보편복지형 기본소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 이랬던 오 전 시장이 최근 서울시장 후보로 등록한 뒤엔 '초중고 무상급식은 이미 뿌리 내린 것이라 재고할 필요가 없다. 유치원만 빼놓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태도를 180도 바꿨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에는 서울시장 직을 걸고 극렬 반대한 정책을 10년 만에 더 확대해서 유치원에도 적용하겠다? 물론 친환경 무상급식을 다시 선별방식으로 축소하는 복고투쟁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10년 전에도 대선을 의식해서 시대정신을 못 읽고 스스로 돈키호테가 되더니 지금도 내년 대선을 의식해 원칙을 저버리고 인기에 영합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편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소신은 변함이 없지만 양육과 교육 분야에서는 원칙적으로 보편복지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입장을 수정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
ⓒ 이희훈 |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수신처로 한 2건의 4대강 관련문건과 박형준 정무수석을 수신처로 한 14건의 노조파괴 관련문건이 공개됐다. 4대강 관련문건 하나는 '홍보기획관'의 요청으로 작성된 사실이 그 문서에 아예 적혀 있다. 둘째, 청와대와 국정원의 문건전달체계상 국정원의 존안 자료 등은 관련수석에게 직접 전달된다고 국정원장이 국회정보위에서 답변했다. 부하 직원이 받아서 난 모른다고 발뺌할 수 없다. 셋째, 보기에 따라서는 이게 제일 중요할 수 있는데 박 후보는 JTBC가 2017년 8월 10일 방송한 <썰전>에서 본인 입으로 '국정원에서 국내 관련 정보는 늘 받았지만, 이건(댓글부대는) 제가 진짜 몰랐던 일'이라고 실토까지 했다. 나는 당시 유시민씨의 질문에 답하는 박 후보의 이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는데, 요즘 박 후보가 당시 자인한 걸 뒷받침하는 국정원 문서가 계속 나오는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 그럼에도 박 후보는 여전히 완강하게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다.
"박형준 후보가 청와대 재직시절 받아본 것으로 명시된 국정원 국내관련 정보가 어떤 건지 이미 문서로 드러났다. 여야 국회의원 비리정보, 4대강 반대 단체 탄압공작, 노조파업 파괴공작, 민주노총 분열획책 등이다. 그가 이걸 '늘 받아봤지만' 아무 문제의식이 없었던 걸 보면 권력에 취해 양심과 양식이 마비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잡아떼기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선택적 기억상실증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권력을 가졌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그릇과 됨됨이는 물론 말과 글의 진정성을 알 수 있다. 후보로는 완주하겠지만 설령 당선돼도 사법판단이 기다리고 있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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