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진행 중인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수사가 정치권으로부터 외풍을 맞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출국금지 조치를 연장해왔다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적반하장’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공수처가 수사기밀 흘린다면 매우 심각한 범죄이며 민주주의 흔드는 선거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실도 전날 이 전 장관 논란을 공수처-정당-언론이 벌인 정치 공작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공수처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출국금지해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여당 원내대표와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공수처와 야당, 언론이 공조해 이 전 장관 관련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정부·여당의 이러한 ‘반격’이 이 전 장관 관련 논란을 ‘출국금지 해제’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건의 본질은 이 전 장관이 출국한 사실보다 대통령실·국방부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되는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한 대통령실의 판단에 있기 때문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실도 연루된 사건에서 공범 격에 있는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런 핵심 피의자는 출국금지 조치 여하를 떠나 대사로 임명하면 안 된다”라며 “그간 공정과 법치주의를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미루어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검찰에서도 정부의 대처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한 부장검사는 “같은 검사로서 이 전 장관 출국이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정부가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하는 바람에 여러 의혹이 제기될만한 상황을 만들었다”라고 했다. 다른 부장검사는 “물론 출국금지 이의신청이 안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수사기관도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게 된다”면서도 “다만 대상이 핵심 피의자일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긴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은 필요에 따라 수사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피의자·피고인을 상대로 출국금지를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했다.
일례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김 전 차관 출국금지 등 사건으로 2021년 1월 무렵 출국금지가 된 후 3년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출금 상태”라며 “출국금지 필요성이 소멸된 것으로 보임에도 계속 연장하는 검찰을 보면 (중략) 재판 받는 저에 대한 조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대통령실은 공수처 ‘수사지연’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 역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공수처 지휘부는 지난 1월 중순부터 2달가량 공백 상태다. 대통령실은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로부터 최종 후보 2인을 받아놓고도 ‘인사검증 단계가 언제 끝날 지 모른다’면서 최종 후보자 지명을 미루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추천위가 올린 후보 2명 모두 여당에서 추천한 인물들”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실에서 보름이 넘도록 후보자 지명을 안 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공수처 사안을 뒷전으로 해두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이 전 장관)를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에 임명한 잘못된 인사에 대해 인정하고 철회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정치공작 운운하는 대통령실을 강력히 규탄한다”라며 “공수처의 출국금지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해제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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