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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21, 2024

“매출 한파에 성수동 ‘핫플’도 못 버텨” 자영업자들 절규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배달 수수료 모조리 올라 폐업 위기

"1만5000원어치 배달 주문 한 건을 받았다고 칩시다. 먼저 '쿠팡이츠'에 중개 이용료로 음식값의 9.8%와 배달비 2900원을 더해 총 4370원을 내야 해요. 거기에 신용카드 수수료 3%(450원)도 붙죠. 요즘 재료비는 판매 가격의 35% 선으로 상승했으니, 5250원가량이 재료비로 나갑니다. 이 비용들을 제하면 1만5000원에서 4930원이 남아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매달 가게 임차료와 수도요금·관리비 773만 원, 직원 7명 인건비로 2000만 원 이상, 배달앱(애플리케이션) 광고비 35만2000원도 들어가요. 대체 음식을 얼마나 많이 팔아야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외환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상황 더 나빠"

7월 15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 먹자골목이 저녁시간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임경진 기자]
7월 15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분식집에서 만난 사장 김모 씨(68)는 기자에게 가계부를 펼쳐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사업만 30년 넘게 하면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외환위기)도 겪었지만 지금처럼 복합적으로 여러 문제가 얽힌 적은 없었다"며 "어떻게든 매출을 늘리려고 했는데 이제 그냥 장사를 접는 게 낫겠다 싶다"고 애로 사항을 토로했다. 한때 점심시간에는 가게 밖까지 손님이 줄을 서는 '맛집'이었지만 김 씨는 이제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주간동아가 7월 12일과 15일 시청, 을지로, 성수, 신촌, 강남, 잠실 등 서울 강남북 주요 상권과 노원·도봉구 일대 골목상권을 직접 찾아 취재한 결과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51명은 극심한 영업난을 호소했다. "불경기로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여 매출이 급감한 가운데 재료비와 인건비, 배달수수료까지 치솟아 더는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절규다. 4중고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은 외환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한 개인·법인 사업자는 98만6487명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폐업 사유는 '사업 부진'(48만2183만 명)이 가장 많았다.

주요 상권에서 이틀간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 식당 모습을 지켜봤지만 손님 발길이 뜸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7월 15일 점심시간에 찾은 송파구 잠실동 한 고깃집에는 4인용 테이블 14개 중 1개에만 손님 2명이 앉아 있었다. 이 식당 사장인 50대 A 씨는 "손님들이 얇아진 지갑 탓에 외식을 줄였는지 10번 오던 단골손님이 5번만 온다. 매출이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해 70%에 그친다"고 말했다. 2022년 4월 즈음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한 매출이 반년가량 이어지다가 지금까지 쭉 하향 곡선이라는 게 A 씨의 설명이다. 재료비와 인건비 상승, 대출이자 부담까지 감안하면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지금 사정이 더 나쁘다고 했다. 같은 날 정오 서울시청 인근 지하상가의 한 라면집은 점심시간임에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40년 동안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신모 씨(79)는 "원래 점심은 물론, 오후에도 간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여태 장사하면서 이렇게 손님이 없는 것은 처음이다. 이제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핫플' 성수동, 매년 임대료 10% 인상에 폐업 속출

초복(7월 15일) 특수도 실종됐다. 초복을 맞은 노원구 공릉동의 삼계탕 가게들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의 한 '닭한마리' 가게는 최근 기존에 없던 직원 브레이크 타임이 생겼다. 매출이 지난해보다 20% 급감할 정도로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다. 식당 직원은 "일하다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이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복날에도 이렇다 할 매출 신장이 없자 가게 사장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안모 씨(60)는 초복을 맞아 아들과 함께 하루 연차를 내고 아내의 삼계탕 장사를 도우러 왔다. "예년 복날에는 삼계탕이 하루 1000그릇도 팔렸지만, 최근에는 600~700그릇 팔리는 데 그친다. 인건비와 재료비 모두 올라 사람을 새로 쓰기보다 가족이 돕는 게 낫다"는 게 안 씨의 설명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분식집 사장이 기자에게 음식 배달 건당 배달앱 중개 이용료와 배달비, 신용카드 수수료 등을 계산해 보여준 메모(왼쪽)와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 한 고깃집 정문에 붙은 ‘1주년 감사 이벤트 소주 3000원, 맥주 3000원 판매’ 안내문. [임경진 기자, 전혜빈 기자]
‌‘술손님'이 많아 매상이 높다는 저녁 장사도 여의치 않긴 마찬가지였다. 서울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 한 고깃집 정문에는 '1주년 감사 이벤트 소주 3000원, 맥주 3000원 판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현 시세보다 2000원 저렴한 값에 주류를 파는 판촉 행사로 매상이 올랐는지 묻자 가게 사장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매상에 별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고깃집은 저녁 술장사가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술값을 할인해도 저녁에 술을 시키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개업 직후보다 손님은 30%가량 줄고 식자재 값만 올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표적 대학가인 신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상인들은 술 한잔하는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저녁 풍경도 옛말이라고 전했다. 이곳에서 운영하던 음식점을 아들에게 물려줬다는 B 씨는 "내가 장사하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손님 수가 하늘과 땅 차이로 형편없이 줄었다"며 "예전에는 저녁 술장사가 잘 됐지만, 요즘 학생들은 주머니가 더 얇아졌는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7월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갈비골목’의 한 식당 건물이 폐점 후 헐려 있다. [윤채원 기자]
‌때아닌 매출 한파는 새로 떠오르는 번화가라고 예외가 아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핫플레이스'(핫플)의 경우 치솟는 임차료에 자영업자가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만연하고 있다. 7월 12일 찾은 성동구 성수동은 핫플로서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장사를 접으려는 자영업자가 많았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한 60대 C 씨는 "몇 달 전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숨지었다. 최근 4년간 매해 10%씩 오른 임차료를 견딜 수 없어서다. 가게 근처에서 함께 10년 넘게 장사하던 이웃 상인도 대부분 장사를 접었다. 성수동이 핫플로 뜨는 걸 지켜본 C 씨는 좀 더 버텨보려 했지만 매출이 제자리걸음이라 한계에 봉착했다고 한다. 성수동 상권의 터줏대감인 '갈비골목'도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아 지금은 모퉁이 한쪽에 갈빗집 3곳만 남아 있었다. 지난해 20년간 운영하던 갈빗집을 폐업했다는 임모 씨(64)는 "상가 주인이 바뀐 후 임차료를 450만 원에서 710만 원까지 올려 도저히 가게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근 자영업자들로부터 "가게 임차료가 월 220만 원에서 400만 원까지 올랐다"(성수동 국밥집 사장 60대 홍모 씨) 등 비슷한 하소연을 여럿 들을 수 있었다.

"‘◯리단길' 같은 이름 짓지 말고 임차료 줄여달라"

급감한 매출에 자영업자들은 업종을 바꾸는 등 궁여지책을 내고 있다. 서울지하철 6호선 태릉입구역에서 7호선 공릉역까지 이어지는 공릉로 일대 상권을 살펴보니, 상가 25곳 중 5곳에 배달 전문 소형 가게와 무인점포가 입점해 있었다. 임차료와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자영업자들이 가게 면적을 줄이거나 무인화하고 있는 것이다. 도봉구 쌍문동에서 찜닭 가게를 운영하다 최근 밀키트 전문점으로 전업한 60대 박모 씨는 "찜닭 판매로는 적자를 면치 못해 폐업까지 생각하다가 가게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반찬 밀키트를 팔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가게 규모와 직원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닭강정 가게 사장 D씨는 "지자체가 '◯리단길' 같은 이상한 이름을 지으면 괜히 임차료만 올라간다. 차라리 정부나 지자체가 임차료 부담을 줄일 방법이나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전혜빈 기자 heavin01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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