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출의 기후 리터러시] 탄소국경세 쓰나미 오는데 너무나 조용한 한국
[오기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4월 21일 당선인 신분으로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제1고로(용광로) 앞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탄소국경세가 적용될 경우 한국 철강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
ⓒ 유성호 |
지난 1월 23일 <동아일보>는 '계산법도 몰라요, EU 탄소배출 신고 1주 앞 기업들 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탄소배출량을 분기별로 신고해야 하고, 신고를 안 하면 1톤당 10~50유로의 과징금이 부과되는데 국내 기업들의 준비가 미흡하다는 요지였다.
이 기사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공식 해명했다. 신고 안 한 배출량에 대한 과징금은 유럽연합 내의 수입업자들에게 부과되고, 한국 수출기업에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연합 수입 업체가 과징금을 맞으니 신고 안 한 한국 기업들은 안심하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유럽연합 수입 업체들은 이 정도로 준비 안 된 한국 기업들과는 거래를 중단할 것이다. 정부 말대로 했다가 수출 기업들은 날벼락을 맞을 것이다. 기업들이 한국 정부를 믿고 탄소국경세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동안 공짜였던 온실가스에 돈을 지불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2026년 1월 1일부터 유럽연합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전기 등 6대 품목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한다. 2023년 10월부터 내년 12월까지의 이행 기간에는 수출업체들이 분기별로 해당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를 보고해야 한다. 현재 6대 품목에서 시작하지만 2030년에는 플라스틱,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전 품목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대기업인 포스코가 위기인데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어떨까? 2023년 10월 '중소기업중앙회'가 300개 기업을 조사했는데, 그중 78.3%가 탄소국경세를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 올해 들어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나아졌을까? 7월 31일 탄소국경세 3차보고를 앞두고 필자는 'B' 회계법인의 ESG 센터장을 지낸 분과 만났다. 강판을 수출하는 우리나라 'S' 기업이 유럽연합에 제출할 보고서를 그 회계법인에 의뢰했다고 한다. S 기업은 유럽연합 수입 업체의 갑작스런 탄소국경세 보고서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센터장은 한국의 현재 컨설팅 역량으로 유럽연합 기준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걱정했다. 현재 한국은 중소기업들의 준비만이 아니라 탄소국경세를 지원할 전문 역량과 인프라도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글로벌 로펌 '루스 라보리스'(Lus Laboris)는 홈페이지를 통해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1만 8000개이고, 그중 1만 6000개가 탄소국경세 대응에 취약한 중소기업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영업이익을 넘는 탄소국경세를 지불하지 못해 생산을 중단해야할 중소기업들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자고 나면 수십 개, 수백 개 기업들이 문을 닫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탄소국경세가 코앞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조용하다. 지난 4월 3일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탄소국경세 대응을 보면 지침서 배포, 설명회 매달 1회, 전화 상담 691건, 컨설팅 지원 171개사 정도다. 해당 기업은 1만 8000개인데 컨설팅 실적은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4개 정부 기관들 전화 상담을 합쳐 겨우 하루에 8건이 되지 않는다. 탄소국경세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도 없고, 해당 기업들을 적극 견인할 대책도 없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정부 대표들은 유럽연합에 방문해 고위급 면담 3차례를 하고, 한국 기업들을 차별하지 말아 달라는 입장문(立場文)을 4번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위급 면담과 입장문에 대한 의미 있는 진전과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이렇게 조용해도 될까? 유럽연합과 다른 나라들의 정책은 더 구체화되고 있는데 말이다.
▲ 지난 6월 17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가운데)이 벨기에 브뤼셀의 당사에서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듣고 환호하고 있다. |
ⓒ AP/연합뉴스 |
지난 7월 18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재선되었다. 이날 주목할 점은 폰데어라이엔이 연설한 정책 목표인데, 유럽연합 산업 경쟁력을 강력한 탈탄소 정책으로 확보하고 이를 추진할 수입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유력한 수단이 탄소국경세다.
2023년 8월 미국 의회를 지원하는 비영리기구인 '기후리더십위원회'(CLO)가 제출한 보고서 〈미국-유럽연합 철강 무역 동맹의 기회〉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세를 실행할 경우 미국은 25~30%, 유럽연합은 50~55% 해외의 철강 수입을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철강 산업 가치는 35~45% 상승하고, 유럽연합은 2배 이상 상승한다고 했다. 매년 철강으로도 100억 달러(약 13조 8000억 원) 이상의 국경세 수입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것은 철강만이 아니라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올 1월에 미국 상원 '환경과 공공사업위원회'는 미국판 탄소국경세인 '프루브 잇 액트'(The Prove It Act)를 통과시켰다. 철강, 정유, 배터리, 플라스틱, 종이 등 17개 품목이 탄소국경세 대상이고, 한국도 해당 국가에 포함되어 있다. 조만간 미국 정부는 한국 수출 제품에 포함된 온실가스 데이터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판 탄소국경세는 2026년 1월까지 조사를 하고 그 후 시행 예정이다.
탄소세, 한국에 내지 않았으니 유럽연합에 내라
2021년 7월과 2022년 9월 산업계를 대표해 전국경제인연합(현 한국경제인협회)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로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면제국에 한국을 포함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탄소국경세가 역외 차별을 금지하는 자유무역규범을 위반할 수 있고, 한국도 유럽연합과 유사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도 이런 이유를 들어 산업계와 함께 탄소국경세 면제를 요청했다. 올해 6월 25일 한국 정부 대표들이 유럽연합을 방문했을 때도 역외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경세를 운영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고 한다.
한국이 주장하듯이 탄소국경세가 역외차별로 자유무역규범을 위반하고 있을까? 2022년 7월 한국 기획재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발간된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정책 보고서는 유럽연합과 미국의 탄소국경세가 자유무역규범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유럽연합과 유사하지 않다는 것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한국은 '자유무역' 교리를 인용하고 싶어 한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지금 온실가스에 집중해야 함에도 유럽연합과의 협상에 의존하면서 대응 시간을 놓치고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동 보고서에서 한국이 탄소국경세 방어를 못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첫째, 탄소거래가격이 너무 낮고, 둘째, 철강 산업 등 고탄소 기업들에 대한 100% 무상 탄소 할당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달리 한국의 고탄소 수출 기업은 공짜 탄소 특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7월 30일 현재 유럽연합 탄소 가격은 1톤당 67.8유로(약 10만 2000원)이고, 한국은 6.61달러(약 9100원)다. 가격 차이가 11배다. 탄소국경세는 이 탄소 가격 차이에 기초해서 국경세를 부과한다.
포스코가 한국이 아닌 유럽연합에 국경세 1조 원을 내는 것을 막고 싶은가? 그러려면 한국의 탄소거래가격과 유상할당을 유럽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기업들도 탈탄소 대열에 동참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탈탄소 전환의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다. 탄소국경세 대응, 그동안의 성과 없는 협상이 아니라 공짜 탄소부터 없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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