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증시가 미국 경제의 하반기 경기침체 우려에 동조해 급락세에 빠진 가운데 뒤늦게 개장한 월요일 뉴욕증시도 하락세를 피하진 못했다. 패닉셀에 빠진 투자자들은 개장초 장세를 뒤집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다우존스 지수는 1000포인트(2.6%) 이상 급락했고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그보다 더 낙폭을 키워 3.7%를 하루 만에 잃어버렸다. 다우와 S&P 500(-3%) 지수는 2022년 9월 이후 가장 큰 하루 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아시아증시처럼 하루만에 두자릿수 폭락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번 동요가 어느 선에서 진정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지수는 전거래일보다 1033.99포인트(2.6%) 하락한 38,703.27을 기록했다. S&P 500 지수도 160.23포인트(3%) 내린 5186.33에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은 576.08포인트(3.43%) 떨어져 지수는 16,200.08에 마감했다.
증시는 이날 아시아 증시의 폭락 속에 흥분한 투자자들의 동요를 막지 못했다. 지난 금요일에 나온 실망스러운 7월 일자리 보고서 이후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가 각국 증시를 뒤덮으면서 심리적인 투매 현상이 벌어졌다. 이날 엔비디아는 6.36% 급락한 주당 100.45달러로 간신히 마지노선을 지켰다. 애플도 4.82%나 빠지면서 주요 주주였던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의 이탈 후유증을 노출했다. 테슬라가 4.23%, 슈퍼마이크로컴퓨터도 2.53% 빠졌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업황의 확장을, 그 이하이면 위축세를 나타낸다. 지난 7월 ISM이 발표한 제조업 PMI는 46.8로 예상을 하회하면서 큰 위축세를 보였는데, 미국 경제에서 그보다 비중이 큰 서비스업은 여전히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6월 ISM 서비스업 지수는 50을 하회했다. 1년 반 사이에 ISM 서비스업 지수가 50을 밑돈 경우는 2번 밖에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과 달리 지난 7월에도 ISM 서비스업 지수가 50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경기 침체 우려가 극도로 커질 수 있었지만 다행히 서비스업이 최후의 보루가 된 것이다.
이날 제레미 시겔 워튼 스쿨(펜실베니아주립대 상경대학) 명예교수는 CNBC에 출연해 "연방준비제도(Fed)는 당장 75bp 금리를 긴급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겔 교수는 "9월 회의에서는 추가로 75bp 인하를 지시해야 할 것"이라며 "이건 최소한의 수준이고 현재 기준금리는 3.5~4% 사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기준금리가 23년만에 최고 수준인 5.25~5.50%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보다 최소 150bp는 금리가 낮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즈덤트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맡고 있는 시겔 교수는 "인플레이션 하락은 연준 목표인 2%를 기준으로 90% 달성됐지만 그 사이에 실업률이 이미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4.2%를 넘어섰다"며 "그러나 기준금리는 전혀 수정되지 않았고 그건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오스틴 굴스비는 중앙은행이 긴급 금리인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경제가 악화하면 연준은 방침을 수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긴급 금리인하 조치가 증시를 더욱 패닉에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하락은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의 심리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 중앙은행이 비상조치에 나설 경우 그런 심리를 더욱 조장할 거란 예상이다.
미 증시는 사실 7월 초까지 누적 내재된 과매수의 문제로 언제든 무너질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3대 지수는 한 달 전까지 미국 연착륙 낙관론과 AI(인공지능)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해왔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증시호조와 국내총생산(GDP) 상승세를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2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5.25~5.50%의 고금리를 1년 넘게 기준금리로 유지해오면서 인하조치를 거부해왔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연초부터 3%대로 떨어졌는데도 중앙은행장은 "좀 더 확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석 달 내내 되풀이 하면서 5%대 중반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고강도 긴축 조치를 변경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FOMC결과로 연준이 지나치게 예상에 부합하는 금리인하 시그널을 준 것이 첫번째 문제로 지적된다. 차라리 연말까지 버티겠다던 기존 입장을 유지했더라면 이 정도의 우려는 나오지 않았을 거란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정작 7~8월 금리는 동결하면서도 한달 반이나 남은 9월 중순(13일) 예정의 인하 계획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버티던 연준도 실업률 상승에 무너졌다"는 프레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심상찮다는 의심이 확산되던 시기에 나온 노동부의 7월 일자리 보고서는 불난 집에 휘발유를 끼얹은 격이 됐다. 비농업 고용이 11만명대로 예상치의 60% 수준에 그치면서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당일에 보도된 미국 반도체 대표기업 인텔의 1만 5000명 구조조정 계획 발표도 빅테크들의 대량해고 가능성을 염려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기침을 시작하자 아시아엔 폐병이 도졌다. 때마침 일본은행이 16년 만에 금리인상을 단행(0~0.1%→0.25%)하면서 이른바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일본의 저리자금을 세계 곳곳의 고금리에 투자해 오던 투자자들이 자산을 팔아 돈을 자국으로 다시 가져올 거란 예상이 불거진 것이다.
거시적 환경변화에 노출된 일본증시는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가 닥치자 지난 월요일 하루만에 12.4% 폭락하면서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대 하락폭을 나타냈다. 급격한 엔고로 수출비중이 높은 자국 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투매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개장한 한국 코스피도 8.77%, 코스닥도 11.3% 급락하면서 외국인 투자자 이탈 행렬을 막지 못했다.
한국 폐장이후 7시간 늦게 월요일 개장한 뉴욕증시도 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월가에선 영원한 구루로 불리는 워렌 버핏의 이전 행태가 다시 조명됐다. 그가 이끄는 버크셔 헤서웨이가 증시의 과매수 상태에 대비해 상반기 내내 꾸준히 주식을 팔아 사상최대인 2769억 달러(약 383조원)의 현금을 보유 중이란 소식이 새삼 부각된 것이다. 특히 버핏은 지난 2분기에 애플 보유지분을 절반 가량 매각하면서 시장이 과신하던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의 대표주마저 외면하는 차가운 모습을 보여줬다. 투자자들은 버핏이 전세계 시가총액 1위 주식을 절반이나 팔아버렸다는데서 매도세의 명분을 얻었다.
설상가상 올해 초부터 불거지던 하반기 경기침체의 우려에도 AI 랠리를 이끌던 엔비디아마저 악재를 보탰다. 슈퍼 AI칩으로 불리던 하반기 신제품 블랙웰이 설계결함으로 출시가 연기될 거란 보도가 나온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날 주당 100달러의 벽이 깨지면서 고점대비 주가하락폭이 한달 만에 30% 안팎에 달하게 됐다. 상반기 액면분할 주가로는 주당 1000달러가 깨진 것인데, 일각에서는 올해 2분기 이후 저점인 760달러대(액분 후 76달러)까지 단기적으로 급락할 거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날 빅테크 가운데 하나인 구글에도 악재가 터졌다. 미국 연방법원은 구글의 검색 및 텍스트 광고가 두 가지 시장 영역에서 불법적인 독점을 이뤘다고 판결했다. 이날 연방법원은 지난 2020년에 정부가 제기한 이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구글의 패소를 판결했다. 법원은 "구글이 강력한 진입 장벽과 지배력을 유지하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일반 검색 시장에서 점유율을 유지했다"며 "구글은 독점을 불법화하는 셔먼법 제2조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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