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종족주의' 저자들 얽힌 단체
위안부·강제동원 피해 부정하고
'소녀상 철거·수요집회 중단' 시위
흑석동 소녀상 돌로 찍어 훼손도
일 극우신문도 가세 "철거" 주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윤미향 논란’이 반대 진영의 ‘백래시’(진보적 변화에 대한 반발)를 넘어 극우세력의 조직적인 ‘역사 뒤집기’ 시도로 번지고 있다. 한국 사회 내부 갈등에 일본 쪽도 뛰어들어 전선이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윤미향 논란’의 한 축인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처리와 기부금 사업 등에 대한 의혹 제기는 보수언론과 미래통합당이 주도하고 있다. 논란의 다른 한 축인 ‘역사인식’과 관련해선 국내 극우단체와 일본 우익 세력이 제휴하는 모양새다.
역사 뒤집기의 선두에는 이름도 생소한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공대위)가 자리하고 있다. 공대위는 제1439회 수요시위 하루 전인 12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집회를 열어 “위안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30년째 헌신해온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와 이 단체 대표를 지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를 “아동학대죄, 청소년보호법 위반죄”로 고발했다. 정대협이 주도해온 수요집회가 “청소년들한테 성노예 개념을 주입해 정신적으로 학대했다”는 게 이들이 내건 고발 사유다.
공대위는 “감추고 싶고 치욕스러운 위안부 이력을 속속들이 까발려 모욕 준 정대협과 여가부(여성가족부)는 용서 못 할 인권 침해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1440회 수요시위 전날인 1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위안부상 반대 집회’를 겸한 이른바 ‘위안부 진실규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소녀상’이라 불리는 ‘평화비’를 일본식 비칭인 ‘위안부상’이라 부른다. 두 집회의 사회를 본 정광제 공대위 사무총장은 이승만학당의 이사다. 이승만학당은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을 주도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교장이다. 두 책에 필자로 참여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19년 12월2일 열린 공대위 창립 회견에서 단체 연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승만학당-낙성대경제연구소-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가 인적으로 연결돼 있는 셈이다.
이영훈·이우연 등이 이른바 ‘학문’의 영역에서 일본군 위안부·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공격한다면, 정광제 등은 이른바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소녀상과 ‘강제동원노동자상’(용산역 앞)을 ‘반일동상’이라 폄훼·공격하며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영훈씨는 두 책에서 ‘전시 성노예제’이자 ‘반인도 국가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일본군위안소는 후방의 공창제에 비해 고노동, 고수익, 고위험의 시장”이라고 주장해 피해자 단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제1440회 수요시위가 열린 20일 아침엔 이들의 ‘말로 하는 혐오운동’이 물리적 폭력으로 비화했다. 20대 남성 ㄱ씨가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의 얼굴을 돌로 찍어 훼손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일본 언론도 논란에 뛰어들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날 한국 신문의 ‘사설’에 해당하는 2면 ‘주장’에서 “반일집회를 그만두고 (소녀)상 철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반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상’을 조속히 철거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2015년 12월28일 합의 이후 일본 쪽의 ‘소녀상 철거’ 주장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 역사에 밝은 한 원로 인사는 “보수야당, 보수언론, 극우단체, 일본 쪽이 소녀상 철거, 수요집회 중단, 정의기억연대 무력화 등을 목표로 연대 공격하는 모양새”라고 짚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해온 청소년 조직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이태희 전국대표는 이날 수요집회에서 “이 집회를 왜곡·폄훼하는 세력이 있지만 꿋꿋하게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제훈 박윤경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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