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190명의 계엄 해제 요구로 2시간30분만에 끝난 윤석열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한국사회에 큰 충격과 함께 여러 의문을 던지고 있다.
군사독재를 시민의 힘으로 누르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45년 전 전두환 신군부가 마지막이었던 비상계엄 선포를 맞닥뜨린 현실은 시민들에게 ‘초현실’로 다가왔다. 박정희 유신체제 당시 계엄 포고령과 유사하게 “영장 없이 체포·구금·처단한다”는 박안수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1호까지 나오자 충격은 빠르게 분노로 바뀌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 가결 뒤 서서히 안정을 찾으면서,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을 즉각 내란죄로 처벌하고 탄핵해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하다. 당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4일 새벽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윤 대통령 탄핵 논의를 위한 조율에 들어갔다.
정치권에서는 “미치광이”(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비이성적인 정치적 자폭 행위로 본다. 당장 3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끝난 비상계엄을 윤 대통령이 왜, 누구와 상의해서, 구체적 준비 없이 갑자기 선포했는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긴급 담화 소식은 3일 밤 9시50분께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에게 알려졌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심야 긴급 담화가 예정돼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담화 내용은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 예산 감액안 단독 처리 등에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밤 10시25분께 시작한 긴급 담화는 한국방송(KBS)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의 윤 대통령은 국회를 겨냥해 “망국의 원흉”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 “괴물” 등 정상적 판단에 근거한 언행으로 보기 어려운 담화문을 읽어내려 갔고, 밤 10시28분께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제77조)은 계엄 선포 요건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포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전시·사변·국가비상사태·공공 안녕질서 유지 등 헌법이 정한 요건을 단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다. 군병력을 동원해 대응할 상황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헌법은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 역시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엄사령부는 계엄 해제 요구 절차를 밟는 국회에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일부 공수부대원은 창문을 깨고 국회에 난입하기도 했다.
계엄법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급 장교 중에서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연합뉴스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 국무회의를 열었다고 4일 새벽 보도했지만, 구체적 참석자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국무회의는 과반 출석으로 열리고,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게 돼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알려지자 여야 국회의원들은 계엄 해제 요구를 위해 국회로 빠르게 집결했다. 이 과정에서 박안수 계엄사령관은 포고령 1호를 통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하고 처단한다”고 했다.
국회 주변이 군과 경찰에 의해 봉쇄되기 시작했고, 공수부대원이 국회에 투입됐다.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막기 위해, 계엄 포고령 위반을 들어 국회의원들을 체포·구금할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됐다.
앞서 박근혜 탄핵 심판을 앞두고 국군기무사령부는 비상계엄 계획을 세웠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의결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찬성)를 미달시키기 위해 야당 국회의원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구금하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4일 새벽 우원식 국회의장이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공수부대원이 국회 본관 창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며 당직자와 보좌진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국회의원 체포·구금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회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시민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새벽 1시께 국회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재석 190명, 찬성 190명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국회 본관에 진입했던 군 병력은 본관 밖으로 이동했다.
국회는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등으로 탄핵소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헌법학자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군사반란에 준해 체포하고 탄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른바 ‘충암파’를 동원한 친위 군사반란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 위반이 분명한 비상계엄 선포에는 군과 경찰 등이 동원됐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로 핵심 측근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 역시 탄핵 및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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