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구상금 청구 소송 대응 안 해 패소
군사 독재 시절 ‘전기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전직 경찰 이근안(86)씨가 ‘김제 가족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에게 국가가 배상한 돈을 가해자로서 책임져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이세라 부장판사)는 국가가 이씨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는 구상금으로 33억6000여만원을 청구했는데, 이씨가 재판에 대응하지 않자 법원이 자백한 것으로 간주, 청구액 전액을 인정했다.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은 1982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 씨가 북한에 납치됐다가 돌아온 뒤 불거졌다. 최씨가 조카 최낙전·최낙교 씨를 포섭해 함께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았다. 이는 이씨 등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40여일 동안 고문을 자행해 받아낸 허위 자백에 근거한 것이다.
최낙교 씨는 검찰 조사 중 구치소에서 숨졌다. 최을호 씨는 사형, 최낙전 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최을호 씨의 사형은 1985년 10월 집행됐고 최낙전 씨는 9년간 복역하다가 석방된 뒤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재심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이를 통해 작성된 검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 신문 조서는 증거가 될 수 없다며 2017년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은 2018년 114억원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고, 정부는 이씨를 상대로 배상금 중 일부를 부담하라며 지난해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낸 함박도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유족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고, 역시 변론을 하지 않아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이근안은 1970년 순경으로 경찰로 입문한 그는 고문 혐의로 잠적할 때까지 대부분 대공 분야에 몸을 담았다. 고문 기술자로 불린 그는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6년 반제동맹 사건 관련 피의자를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88년 12월 24일부터는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를 받았다.
그는 12년째 검경의 수배를 피해 도피하다가 1999년 10월 28일 검찰에 자수했다. 3심까지 거친 끝에 2000년 9월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의 대법원판결을 받았다. 이근안은 이후 여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2006년 만기출소 했다. 2008년 목사가 됐으나 교단은 2011년 1월 그의 목사직을 박탈했다.
앞서 지난 2012년 12월 자서전인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이씨는 “세월이 지나 정치형태가 바뀌니까 내가 역적이 되고 이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 있다”며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 애국이 아니면 누가 열심히 목숨 내놓고 일했겠느냐”고 밝힌바 있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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