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M&A 불법 아니지만 불공정거래 다수 수반” 주장
주가조작세력 표적되기도…최근 5년간 재범률 41% 넘어
“美보다 약한 처벌, 재범 꺾기 역부족…의무공개매수 도입해야”
[헤럴드경제=유혜림·신동윤 기자] 코스닥 상장사 ‘셀피글로벌’에 투자한 윤정엽 씨는 명함을 2개 갖고 다닌다. 본업 명함 말고 올해 새로 만든 명함에는 ‘셀피글로벌 주주조합의 대표 조합원’이라는 직책명이 적혀 있다. 현재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받고 있는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해 3월 778원을 끝으로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거래정지 후 1년여가 흘렀지만 현 경영진들이 거래재개를 위해 제대로 노력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 지난 4월 윤 씨를 포함한 주주들이 하나둘 모여 조합을 결성했다.
최근 3개월 간 50명의 조합원들은 이름과 주소만 있는 주주명부 하나만 들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수많은 주주들이 회사 주소로 해놓거나 이사를 가버려서 문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일도 허다했다. 이들이 문앞에 붙이고 온 안내문은 이렇다. “○○○ 주주님, 코스닥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주주조합이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회사 정상화를 위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방문하였으나 부재중이어서 메모를 남깁니다.” 이렇게 모은 주주들의 지분율은 14.71%에서 어느덧 22.99%까지 늘었다. 회사를 살리겠다고 ‘개미’가 최대주주가 된 기막힌 첫 사례다.
윤정엽 주주조합 대표는 “다른 조합원들도 퇴근 이후, 주말을 동안 일상을 포기하고 조합원을 모으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의 근본적 배경에 무자본 M&A을 악용한 주가 조작 세력의 개입과 이들의 배임·횡령 등의 부정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거래 재개하겠다고 뛰는 우리에게 ‘밸류업’은 남 얘기”라며 “무자본 M&A를 악용하는 세력부터 근절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토로했다. 하지만 셀피글로벌 측은 “주가부양 작전을 펼친 적도, 자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잠적한 사실 역시 없다”며 주주와 회사 간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주가조작꾼들이 활개치는 ‘무자본M&A’=사실 주주들이 문제 삼는 ‘무자본M&A’는 그 자체가 불법인 건 아니다. 그럼에도 개미들을 울리는 무자본 M&A 폐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다수의 불공정거래를 수반한 ‘함정’들이 숨어 있다는 데 있다. 자기 자본 거의 없이 고금리 단기 사채로 인수 자금을 마련하다보니 허위공시로 주가를 띄워 단기 시세 차익을 챙기려고 하고, 실패하면 횡령을 시도해 차입금을 갚으려는 등 매년 폐해가 반복되는 식이다.
특히 이를 일삼는 작전 세력은 테마주 열기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사업을 가장하다 적발된 불공정거래 7건 중 3건은 작전 세력의 경영권 인수 과정 또는 인수 직후에 불공정거래 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계 제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 돌연 코로나 치료제 개발 사업을 추진하거나 유통업체가 2차전지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0년 이전에는 바이오 사업이, 코로나 팬데믹(2020~2021년)에는 마스크·진단키트 사업이, 지난해엔 2차전지·초전도체 등이 단골 메뉴로 악용됐다.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금감원 회계부정 사례 분석을 살펴보면, 작전 세력은 사채업자에게서 자금을 끌어와 상장사를 인수한 뒤 전환사채(CB)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횡령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대여금 등을 허위 계상하는 수법을 주로 쓰고 있었다. 허울뿐인 기업에 과도한 투자를 하거나, 페이퍼 컴퍼니 지분을 말도 안 되는 값에 사들이곤 했다.
▶“재미 본 세력 또 손 댄다…재범률 40%”=무자본 M&A 관련 불공정거래는 재범률도 높아 개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주로 주가가 낮고 거래량이 적은 관리종목 등 불공정거래가 용이한 코스닥 기업이 이들의 표적이 됐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2020년부터 2024년 5월까지 무자본 M&A 불공정거래 적발 현황’에 따르면 총 143명 중 59명(41.3%)은 과거에도 같은 행위로 적발된 전력이 있었다.
상장폐지 과정에 정통한 한 시장 관계자는 “무자본 M&A 세력들은 어떤 곳이 표적으로 좋을지 등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있을 정도로 자기들끼리 교류도 활발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 인수자는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불공정거래 등 범죄자가 다수”라며 “실제 인수자가 자신의 범죄 전력을 숨기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페이퍼컴퍼니 또는 속칭 바지사장이 인수하는것으로 가장해 배후에서 불공정거래를 주도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수사도 쉽지 않다. 검찰이 강제 수사에 나서면 이미 증거를 인멸하고 해외로 도주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한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려 이른바 ‘치고 빠지는’ 범죄인 만큼 증거를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다. 무자본 M&A 상장사의 횡령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경영진에 제기된 횡령배임액 자체는 인정이 될 수 있겠지만, 혐의를 받는 개인별로 따져봤을 때 ‘이 사람이 얼마큼 횡령한 거냐’는 식으로 논점을 흐뜨려트리면 사실상 실형을 선고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의무공개매수제도 要”=작전 세력이 반복 범행에 나서는 건 금전적 이득이 엄청난 반면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많다. 지난해 7월 라임자산운용 자금을 활용해 코스닥 상장사 ‘에스모’를 무자본 M&A방식으로 인수하고 주가를 조작한 전직 대표에 대해 징역 5년과 벌금 3억원이 확정됐다. 그가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해 주가를 띄우고 2018년 보유 주식을 라임운용 펀드에 팔아 챙긴 부당이득만 무려 ‘577억원’에 달한다. 당시 증권가에선 “이렇게 처벌이 약하니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올해 강화된 자본시장법도 여전히 해외보다 처벌 수위가 약하다고 지적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형사처벌과 별개로 불공정거래로 검찰 수사가 끝난 사람에게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정준혁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과징금 2배 징수 등 개정 내용이 시장에 정착된지 얼마 됐지만, 미국은 형사 처벌 수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천문학적인 벌금도 부과하는 식으로 엄단한다. 한국의 재범률을 꺾기까지 너무도 부족한 수준”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무자본M&A 범죄의 억제 효과를 위해선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무공개매수제는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을 취득할 때 일정 지분율 이상을 반드시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정부는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취득해 대주주가 되는 경우, ‘50%+1주’를 추가로 주식을 매입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인수인에 대한 지나친 부담증가로 인한 M&A 거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2대 국회에선 강훈식 민주당 의원이 의무공개매수제도 제의 물량을 10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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