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명진 스님이 소송을 통해 받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사찰 문건을 입수해 공개한다. 이 문건에 대한 분석은 물론 명진 스님 측 대응 등에 대한 기사도 이어질 예정이다. '명진 스님 X파일' 1편은 국정원과 조계종 사이의 유착 의혹을 다뤘다. [편집자말] |
▲ 28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한 신도들이 명진스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10.3.28 | |
ⓒ 남소연 |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불법 사찰한 '명진 스님 X파일'이 나왔다. 국정원은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직 박탈을 위해 미행과 감시 등 집요하게 사찰했다. 명진 스님의 불교계 퇴출 공작을 하면서 조계종 총무원과도 긴밀하게 협력했다는 그간의 의혹이 문건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원칙도 위배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불법 사찰 문건은 총 13건이다. 명진 스님이 국정원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정보비공개처분 취소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면서 지난해 12월에 나온 문건이다. 국정원이 명진 스님에게 공개한 30쪽 분량의 국정원 문서에는 2009년 11월 13일부터 2012년 3월 22일까지 사찰을 통해 수집한 정보가 담겨 있다.
명진 스님은 2017년에 '내놔라내파일 시민행동'을 통해 국정원을 상대로 사찰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요청을 했으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건이라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작년 9월 30건의 문건 중 13건에 대해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13건의 공개 문건에도 이름과 민감한 내용 등은 '비공개' 처리해서 삭제된 채 공개됐다.
국정원, 명진 스님 집요하게 불법 사찰하며 퇴출 공작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명진 봉은사 주지 최근 특이 동향 및 평가', '각종 추문 확인 결과 및 평가', '종북 발언 및 행태 종합',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의혹 등 비리 수사로 조기퇴출', '봉은사 내 명진 지지세력 분포 및 시주금 규모' 등이다. 자료목록의 제목만 봐도 국정원이 명진 스님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불법 사찰하면서 퇴출 공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1월 7일 작성된 '명진 봉은사 주지 최근 특이 동향 및 평가' 문건에는 "명진 봉은사 주지가 최근 좌파 매체를 통해 대통령 및 정부 정책 비판에 앞장서고 있어 저의를 진단하고 관리방안을 강구"한다는 목적을 명시했다.
이 문건에는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자승 스님의 속내를 유추할 수 있는 국정원의 분석까지 담겨 있다. "명진은 (삭제 처리, 자승 스님으로 추정)에게 봉은사 내 거처 제공 등 친분을 유지해 오다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 이견을 보여 소원"해졌다면서 "(삭제 처리, 자승 스님으로 추정)은 명진의 과도한 대정부 비판활동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 포지"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직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국정원이 조계종 총무원과 결탁했다는 것을 의심할만한 정황도 이 문건에 나와 있다. 3쪽짜리 문건의 마지막 장에는 "명진의 '정부 발목잡기' 행태에 일일이 대응할 경우 명진의 대외 위상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면서 "조계종 종단 내부적으로 연임을 반드시 저지하도록 간접적인 압박 스탠스를 유지"한다고 적었다.
이를 위해서 "각계 친분 인사를 통해 대정부 비판활동 자제를 유도"해야 한다면서 구체적인 이름은 삭제된 채 공개됐지만, 정부 측과 종단 내 인사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명진 단속에 주력할 것을 주문", "좌파와 연계활동 자제 설득활동에 적극 나서도록 주문"했다고 적시했다.
이에 대해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의 전준호 회장은 1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문건은) 국가권력기관이 사찰을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종단에 이야기해서 종단은 따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라며 "기본적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배했고, 종단 안팎으로 권력을 더 강화시키기 위한 유착관계가 그야말로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상황까지 온 듯하다"라고 말했다.
국정원과 조계종 총무원의 커넥션 의심
2010년 3월 31일 작성한 5쪽의 '명진 봉은사 관련 각종 추문 확인 결과 및 평가' 문건의 '평가 및 조치 고려사항'에도 국정원과 조계종 총무원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의심할만한 내용들이 적시되어 있다.
이 문건에서 국정원은 "명진은 (삭제 처리)이 많으나 승려생명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이 부족"하다면서 "더구나 반정부활동을 본격화한 이후에는 사찰내 CCTV 설치를 비롯, 개인 신변관리를 강화하여 부조리 행태 채증이 어려운데다, 언론인 관리까지 나서면서 여론 활동 등 지능적 행태를 표출"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따라서 "종단 차원의 주지직 퇴출 유도와 함께 면밀한 동향 점검 및 보수언론을 통한 부조리 실태 부각 등 입체적인 압박 전개가 바람직"하다면서 조계종단과 언론, 단체들과의 부적절한 '협업'을 대안으로 제시한 다음과 같은 4개 대책을 내놨다.
1) (삭제 처리)에게 직영사찰 전환 조기집행은 물론 종회 의결사항에 대한 항명을 들어 호법부를 통한 승적박탈 등 징계절차에 착수토록 주지
2) (삭제 처리) 보수언론 대상 명진의 실체를 알려 명진과 봉은사를 옹호하는 논조 전개는 자제토록 협조 강화
3) (삭제 처리) 보수 인터넷 언론으로 하여금 명진의 부조리 의혹-설 등을 기획연재 보도토록 하여 명진의 신뢰도에 타격
4) (삭제 처리) 보수 성향 신도단체로 하여금 명진 실체 폭로 유인물을 봉은사 등에 배포함으로써 봉은사 신도들의 지지 차단
당시 위와 같은 대책들이 실행된 정황도 확인됐다. 우선 이 문건이 만들어지기 20여 일 전인 3월 11일 조계종 중앙종회에서 봉은사 직영안을 통과시켰다. 봉은사가 조계종 직영사찰이 되면 새로운 주지를 임명할 수 있다. 당시 국정원은 종회의 의결사항에 명진 스님이 항명한다면 호법부를 통한 징계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결국 조계종 총무원은 또 다른 이유 등을 들어 징계절차를 밟았다.
명진 스님은 결국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2010년 11월 9일 짐을 싸서 봉은사를 떠났다. 그날 오후 2시까지 봉은사에서 나가달라는 총무원의 요구를 들었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승 전 총무원장이 내게 직접 '죽을죄를 졌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누가 시켰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자승 전 총무원장의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4개 대책 중 3번도 구체적으로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2010년 4월 12일에 내놓은 신문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주지 더할 욕심' 발언에 '속물 명진' 비판", "명진스님은 종법 파괴자... 조계종에서 퇴출하라" 등의 보수 언론 기사가 이어졌다.
또 당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 등이 봉은사에 명진 스님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렸으며, 대불총과 상이용사불자회 등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 명진 스님 비판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자승 총무원장 측근으로부터 입수한 사찰 정보
국정원이 '명진 스님 퇴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조계종 총무원과 교감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0년 4월 16일에 작성된 '명진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의혹 등 비리 수사로 조기퇴출' 제목의 문건에는 "(삭제 처리) 등 명진과 적대관계에 있는 승려들로부터 명진 비리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의법조치 및 부도덕성 공론화 방안 강구"해야 한다면서 자승 총무원장의 측근으로부터 입수한 사찰 정보를 실제로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에는 "(삭제 처리)의 측근인 (삭제 처리)은 4.5(일)경 명진이 자신을 찾아와 '당신의 출입국 기록을 떼어봤더니 최근 필리핀을 다녀왔던데 해외 원정도박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협박하더라면서 명진이 개인의 출입국 기록을 어떻게 입수했는지를 추적하여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고 격앙"이 됐다면서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확인결과 부산지방경찰청에서 2.18, 4.1 등 총 3회에 걸쳐 (삭제 처리)의 출입국 기록을 열람(실제 열람자는 미상)"이라고 확인한 내용을 실었다.
이 문건에는 또 다른 종단 핵심 관계자를 직접 만나서 "(삭제 처리)도 총무원에서 명진이 경북에 개인 사찰(12억원 상당)을 소유한 정황을 포착, 금명간 정밀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면서 "명진의 출입국 기록 열람 관여 여부 및 개인사찰 소유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명진을 불교계에서 축출할 수 있는 추가근거로 활용 가능"하다고 적었다.
2009년 11월 13일에 작성된 '좌파인물들의 이중적 행태 및 고려사항' 문건에는 "좌파 인물들의 이중적 실상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비난여론을 조성, 근로자·학생 등 추종기반 와해 및 좌파 조직내 구심력 약화(를) 모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국가 권력기관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내용을 적었다.
1) 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 등과 긴밀협조하(에) 좌파의 부정부패 등 취약점을 철저히 조사, D/B를 구축함으로써 차후 좌파견제·대응논리로 활용
2) 공식·비공식 루트를 통해 좌파 핵심인물들의 비위사실을 언론에 적극 전파하는 한편, 폭로기사 및 비난 사설·칼럼 게재를 측면 지원
이 문건에는 또 "증거제시가 어려운 설에 대해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의혹(을) 적극 유포"한다면서 "특히 좌파 핵심인물들의 반도덕적·파렴치한 행태 폭로를 통해 조직내 분열을 꾀하면서 기존 회원들의 탈퇴 및 지원중단 유도에 박차, 내부 조직원들의 자괴감·분노 확산을 통한 투쟁의지 무력화"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 중에는 '국(삭제 처리) 공작 대상자'라는 제목의 리스트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가려져 있고 5번에 기록된 명진 스님의 명단만 공개되어 있다. 국정원은 수많은 민간인들 사찰을 넘어 '공작 대상자'로 분류해 철저하게 관리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또 주간보고 형식으로 작성된 문건의 2010년 7월 13일 '종북좌파 세력 연계 불법 활동 명진승 내사 계획'에는 단계별로 "대상자 주변인물 협조자 포섭 및 집중 미감(미행감시) 실시, 봉은사에 내부사정에 정통한 신도 (삭제 처리)을 협조자로 포섭" 등의 내용이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공개된 문건에는 미행감시 기록들이 거의 누락됐다. 결국, 국정원이 명진 스님 측에 공개한 사찰 문건은 수많은 불법 기록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13건의 문건은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입증하는 기록이자, 이명박 정권을 비판해온 명진 스님을 불교계에서 퇴출하기 위해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뿐만 아니라 조계종 총무원과도 결탁했다는 정황 증거이기도 하다.
▲ 정보공개 통해 국정원에서 공개한 명진스님 사찰 기록 중 일부 | |
ⓒ 명진스님 |
조계종 "봉은사 직영 전환, 정부나 국정원과 관련 없다"
하지만 대한불교조계종 기획실 홍보국은 11일 "봉은사의 직영 전환은 종단의 종책과제 수행을 위해 내부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된 사안이지 정부나 국정원과 관련이 없다"면서 "귀사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를 꺼내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기획실 홍보국은 또 "봉은사 직영 전환과 명진 스님 문제와 관련하여 국정원의 외압이 없었다는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의도되거나 계획된 보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의 무분별한 주장 내지 억측을 근거로 보도할 경우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귀사에 있음을 알려드린다"고 답했다.
2010년 당시 조계종 호법부장이었던 덕문스님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결정이 아니며, 자신이 가진 "모든 직을 걸고서라도 국정원 직원과 만나서 봉은사 직영 전환에 대해 협의하고 논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 명진 스님 | |
ⓒ 이희훈 |
이에 대해 명진 스님은 "조계종과 국정원이 아주 긴밀하게 협조관계에 있었다는 걸 문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서 "문건을 보니 이미 승적 제적이 2010년부터 기획됐는데, 자승 전 총무원장이 그 부분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명진 스님은 또 "봉은사 직영 문제가 조계종 총무원의 단독 결정이었으면 수긍을 했을 텐데, 이명박 정권의 압력이 직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국정원이 사실상 사설 흥신소 역할을 한 거다. 국정원은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입신하려는 사람들이 갈 텐데 이들이 만든 개인 문건을 보면 대한민국 국정원이 마치 심부름센터 같다. 이게 국가기관에서 공무원이 만드는 문건인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한편, 국정원을 상대로 한 명진 스님의 소송을 대리한 김남주 변호사는 "행정법원은 국정원에도 정보공개법이 적용된다는 원칙을 명확히 밝혔고, 종교인을 비롯한 국민들을 상대로 한 국정원 사찰이 국가 안보와 무관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 사찰 정보가 법원의 명령에 따라서 정보의 주체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며 밝혔다.
다만 김남주 변호사는 행정법원도 비공개를 결정한 나머지 17건의 문건에 대해 "명진 스님이 북한에 다녀왔다는 점을 들어 '(대북) 정보를 취득한 건 국가 안보와 연관이 있다'고 판결했는데, 몰래 다녀온 게 아니라 공식적으로 방북 승인을 받고 민족 화해 차원에서 다녀온 것"이라며 "이런 문건조차 국가 안보와 관련됐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남북 화해나 교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명진 스님 X파일②] "명진 비판 칼럼 싣고 의혹·설로 신뢰도에 타격" http://omn.kr/1mjfp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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