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교육감이 2억을 전달했다는 발언이 나오자 진보진영에서는 항상 그랬듯이 차별화하기에 바쁘다. 혹시라도 흙탕물이 자신에게 튈까 봐 곽 교육감에게 빨리 사퇴하란다. 이 문제로 시간 끌면 중도층이 등을 돌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나는 여론과 선거, 홍보 분야를 30년 가까이 공부했지만 이런 이론도 사례도 없는 주장은 처음 듣는다.
정치는 세력 싸움이다. 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한 표라도 더 얻는 쪽이 이긴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선거는 편 가르기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편 가르기가 항상 한쪽에 유리했다. 수구기득권 세력이 계속 집권을 해왔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늘 한 줄 서기를 했다.
그러나 지난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고 IT혁명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적어도 선거에서만큼은 네 편과 내 편의 세력이 비슷해지는 유사 이례 최초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모든 권력을 동원해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이유도 시민들의 힘이 성장해 양쪽의 세력균형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점진적이고 조용하지만 확실한 역사의 진보가 이 땅에도 일어난 것이다.
선거에는 내 편, 네 편, 그리고 중도층이 있다. 한나라당 세가 민주당보다 우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민주당이 진보정당과 연대를 하면 내 편과 네 편의 수는 비슷해진다. 결국 선거결과를 좌우하는 건 중도층이다. 정치인이나 논객이 중도층에게 잘못 보이면 끝이라는 위기의식을 갖는 것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민주당은 좌클릭 하다 중도층에 다가가기 위해 다시 우클릭 하고, 진실을 묻기도 전에 된장 묻은 같은 편을 내쳐서 똥 묻는 다른 편과 같아 보이게 만든다. 과연 그게 승리하기 위한 선거 전략인가?
중도층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해보면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분명해진다. 사람은 어떤 사안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으면 뚜렷한 선호를 갖게 된다. 따라서 중도층은 대체로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투표율도 가장 낮다. 그러나 중도층이라고 해서 정치적 선호가 중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에게도 약한 편향성이 존재한다. 그 편향성에 일관성 마저 발견된다. 가령, 중도층은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 때 같은 정당을 지지했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들은 선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낮을 뿐이다.
중도층에는 정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관심도 적어 결국에는 기권하는 집단과 선거 때만큼은 비교적 정보를 많이 습득하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집단, 두 종류가 존재한다. 선거 때 최종공략의 대상이 되는 집단은 후자이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한 건 정보, 설득, 기 싸움이다.
중도층은 결국 잘 나가는 집단에 힘을 실어주게 되므로 내 편이 네 편과의 기 싸움에서 이기는 게 관건이다. 중도는 달려가서 표를 얻는 게 아니라 끌어당겨서 표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석을 상대방보다 세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편 다 내치고 잘못하지도 않은 잘못을 인정하면 상대편에게 백기투항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홍보의 시작은 내부홍보에서부터
모든 홍보는 내부홍보에서 시작된다. 적극적 지지층, 소극적 지지층, 그리고 중도층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내부를 충분히 다진 다음에 서서히 외연을 확대해야 성공한다. 내부가 분열하면 일관된 메시지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중도층은 무조건 분열한 쪽에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
곽노현 교육감이 지금 사퇴하면 중도층이 “진보는 그래도 보수보다 양심적이다”라고 생각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공정택이나 곽노현이나 똑 같구나”가 된다. 중도층은 정치불신이 높기 때문에 중도가 된 것이다. 선거가 과열되지 않는 한 중도층은 잘 동원되지 않는다. 전혀 같은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 스스로 같은 사안으로 처리하면 중도층에게는 같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갖는 우리 편의 지지자들은 열정이 꺼져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중도층은 불신으로 등을 돌리는데 어떻게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중도층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정택과 곽노현이 다르다는 것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선거 때는 중도층도 정보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므로 설득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이다. 곽노현의 도덕성 프레임에 빠지지 말고 이 정부의 편파성, 기획수사, 검찰의 부도덕성 프레임으로 가야 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보수의 프레임을 거부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라.
찌질이들이 싸워보기도 전에 백기 들고 잘못했다고 반성한다. 그러면 국민이 알아준다고? 스스로 잘못했다는데 뭘 알아주나? 국민은 정치인이 아마추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프로가 되기를 바라고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의 <3무1반정책>에 중도층이 등을 돌리는 것은 정책의 진보성 때문이 아니라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같은 전략으로 그렇게 망했으면서도 아직도 교훈을 못 얻은 것이 신기하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시 당의장의 젊은이 투표독려 발언은 노인을 폄훼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조중동 프레임에 춤추며 같은 편들이 당의장 사퇴를 요구했다. 탄핵 덕분에 과반수 의석은 확보했지만 지금까지도 노인들은 민주당과 정동영을 보면 치를 떤다.
2006년 참여정부의 성과를 가지고 치렀어야 할 지방선거를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며 잘못했다며 한 번만 봐달라고 읍소하다가 선거도 대패했지만 그 직후 추락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영원히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2007년 대선 패배도 마찬가지이다. 겸손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결과에 대한 사과는 “다음번 기회를 박탈해주세요” 하는 메시지와 같다.
그동안 보수언론에게 잘 보여 혼자만 튀어보겠다고 같은 편에 돌 던진 정치인들의 정치역정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보면서도 모르는가. 갈대 한 개는 세울 수 없지만 세 개를 묶어 놓으면 잘 서 있게 된다. 가뜩이나 힘도 돈도 언론도 없는 진보가 이길 수 있는 건 협력과 연대뿐이다. 나 혼자만 살겠다고 소중한 사람 시궁창에 밀어 넣지 말길 바란다. 끝까지 믿어주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단죄해도 늦지 않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2007년 발간된 <마법에 걸린 나라>에 다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걸 말하고 또 말해도 못 알아먹는 진보진영 정말 너무해서 딱 관심 끊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단체로 이 책을 독파했다고 들었다. 정작 읽어야 할 진보언론, 논객은 다들 잘나서 이런 책은 안 보는 것 같다.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에게 밀리는 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발 공부 좀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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