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이성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가 피의자 신분이 된 우병우 민정수석을 경질하는 대신, 우 수석을 수사의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직격했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대 위법행위이고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국기를 흔드는 일이 반복돼선 안되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특정 언론에 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는 ‘물타기’이자, 검찰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다. ‘우병우는 무죄다. 이석수를 치라’는 신호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 특별감찰관은 새누리당 추천으로 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청와대가 특별감찰관을 찍어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건 비상식·비논리의 극치다. 황당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납득하기 힘든 청와대의 대응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시민은 묻는다. ‘우병우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기에 청와대가 이토록 무리수를 두는가?’ 만약 우 수석 처가와 넥슨의 부동산 거래 의혹이 불거진 직후 우 수석이 물러나서 수사를 자청했다면, 사건은 단순한 개인비리 차원으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기관이 특별감찰을 방해하는 등 비상식적 수준으로 우 수석을 비호하면서 사태의 성격이 달라졌다. 청와대에선 이 특별감찰관과 특정 기자의 대화를 문제 삼고 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언론 보도로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 기밀 누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외려 시민의 의구심은 다른 데로 향한다. 이 특별감찰관의 대화 내용이 유출된 과정에 국가기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우 수석이 조기에 사퇴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정권 차원의 ‘은폐·축소 스캔들’로 비화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정권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특유의 물타기와 색깔론으로 모면하려 해왔다. 이번에도 전가의 보도를 들고나온 셈이니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다. 낡은 꼼수가 언제까지 먹히겠는가.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대로 가야 한다. 이성을 되찾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집권당 원내대표마저 “민정수석 신분을 갖고 어떻게 검찰에 가서 조사받느냐”고 말하고 있다. 우 수석을 즉각 해임하고, 특별감찰관 흠집 내기를 중단하라. 청와대 참모 한 사람 보호하자고 정권 전체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선 안된다. 지금 나라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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