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19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유출은 중대한 위법행위이자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bo.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키려는 것은 우병우가 아니다. 대통령 본인과 정권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9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논란을 둘러싼 박 대통령의 인식을 이같이 요약했다.
‘우병우 사퇴’를 우 수석을 표적 삼아 청와대를 흔들려는 세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당분간 우 수석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청와대는 우 수석 아들의 의경 꽃보직 변경 특혜 의혹과 가족회사 자금 유용 의혹, 처가 부동산 편법 매매 의혹 등에 대해 여전히 근거가 취약한 정치 공세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18일 우 수석에게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 등을 적용해 검찰에 수사의뢰 한 것에는 박 대통령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청와대가 하루 만에 이 감찰관에 대한 역공에 나서 정권의 명운과 자존심을 건 ‘전쟁’의 시작을 알린 배경이기도 하다.
청와대는 “이 감찰관이 특정 언론에 감찰 내용을 불법 유출하고 의견을 교환해 국기를 흔들었다”며 이 감찰관을 실명 비판하고 특별감찰관법 위반 여부 수사도 검찰에 우회적으로 지시했다. 이날 청와대의 대응은 우 수석 논란을 처음 제기한 뒤 끈질기게 의혹을 캔 보수 진영의 ‘특정 언론’도 동시에 겨냥한 것이라는 게 여권의 해석이다. 청와대가 발표한 입장문에는 ‘특정 언론(신문)’이라는 문구가 네 번이나 등장한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이 감찰관과 ‘특정 언론’ 소속 기자의 전화통화 녹취록에는 양측이 우 수석을 함께 몰아 붙이려 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화들이 적지 않다.
참모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언론 등 반대 세력의 정권 흔들기와 정치 개입 시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박 대통령이 정권의 ‘힘’을 지키기 위해 특유의 정치적 승부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해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재원 정무수석, 박 대통령,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연합뉴스
문제는 청와대가 이번 싸움에서 이길 명분도 동력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사항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다. 이 감찰관도 지난해 3월 박 대통령이 ‘1호 특별감찰관’으로 직접 임명한 인사다. 특별감찰관의 독립성 침해 논란도 부담인 데다 스스로 인사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될 수 있어, 청와대 역공의 파괴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여론이 우 수석의 사퇴 쪽에 기울어져 있다. 병역 특혜와 최고급 외제차 마세라티, 1,30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매매가 등이 소재로 등장하는 의혹에 휩싸인 것만으로도, 우 수석은 고위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또 우 수석이 민정수석 직함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는다면, 우 수석이 결백하다는 수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공정성 시비가 일어 청와대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우 수석 감싸기가 급속한 레임덕(임기말 대통령의 권력 누수)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강경 대응을 선택한 것은 박 대통령의 분노가 워낙 커 참모들이 제대로 조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번 주말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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