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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31, 2011

탈레반에 신세 지게 된 미군의 처지

오사마 빈라덴 사망 이후 미군의 아프간 철군이 가시화되며 이제 미국은 탈레반과의 협력이 절실해졌다. 치안이 불안한 아프간에서 발을 빼려니 탈레반이 여전히 미국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공식 석상에서 처음 미국과 탈레반 간의 평화협상 얘기를 꺼낸 것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다. 그는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상이 그들(탈레반)과 이미 시작됐고, 잘 진행되고 있다. 외국 군, 특히 미국이 이 협상에 앞장서고 있다”라고 밝혔다.

카르자이가 발언한 바로 다음 날인 6월19일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CNN 방송 인터뷰에서 이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6월23일 뉴욕 주 포트드럼에 있는 제10 산악사단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탈레반이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 안정에 결정적 구실을 할 정치적 합의에 관심이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가장 큰 명분은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알카에다 지도자인 빈라덴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주적이 탈레반이었기에 미국이 아프간 땅을 공격할 수 있었다. 아프간 전쟁 10년간 탈레반을 소탕하겠다고 대규모 군사 작전을 전개하고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탈레반 지도자들을 살해하기 위해 폭격을 가했다.


  
ⓒAP Photo
6월23일 미국 뉴욕 주 제10 산악사단을 방문해 아프간에서 돌아온 병사들을 격려하는 오바마 대통령.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분리하려는 전략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그토록 때려잡고 싶어하던 탈레반과 이제 와서 손을 잡고 싶어하는 걸까?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대테러 노선의 변화이다. 10년 전 미국의 대테러전 대상은 ‘알카에다 지도자 빈라덴과 손잡고 있는 탈레반’이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한통속으로 보고 둘 다 소탕하려 했던 것. 그러나 지금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분리해서 서로 다른 대상으로 본다. 우선 미군의 아프간 관련 브리핑 때 공격과 방어의 대상이 탈레반에서 알카에다로 바뀌었다.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7월4일, 카불 사령부에서 기자들과 회견을 갖고 “올가을부터 좀 더 많은 특수부대와 정보요원, 공중 전력과 정보감시 자산들이 동부 지역의 아프간-파키스탄 국경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동부 지역이야말로 알카에다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미군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인 곳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아프간 남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프간 동부 중심으로 군사전략을 바꾼 것이다. 이 같은 전략 변화는 아프간 주둔 미군의 타깃이 알카에다에 집중될 것이라는 뜻이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분리하여 탈레반과는 협상을, 그리고 알카에다에 대해서는 소탕 작전을 벌이겠다는 뜻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프간 민심이 미군과 아프간 정부보다는 탈레반에 많이 기울어진 것이다.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저지르는 미군과 부정부패의 상징이 된 아프간 정부보다 차라리 탈레반을 선택하는 쪽으로 민심이 기울면서, 미군에게나 아프간 정부에게 탈레반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권력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아프간에서 미군이 2014년으로 예정된 철군 절차를 밟으려면 탈레반의 협조가 절실해진 것이다.

세 번째는 파키스탄과 미국의 불편한 관계이다. 오사마 빈라덴 사망 이후 양국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다. 그동안 아프간 전쟁을 치르며 미국은 파키스탄에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부분을 의지했다. 특히 탈레반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탈레반 지도자를 색출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협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빈라덴 사살 작전 때 제멋대로 파키스탄 영토에 들어가 작전을 펼친 미국에 대해 파키스탄 국민과 정부는 크게 분노했다. 이후 파키스탄이 미국에 비협조적으로 돌아섰다. 무능한 아프간 정부에 기댈 수도 없는 미국으로서는 2014년 철군 일정을 예정대로 지키기 위해 탈레반이라도 껴안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AP Photo
6월28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인터컨티넨탈 호텔 앞에서 대치 중인 아프간 경찰과 탈레반.


아프간 민심은 탈레반으로 기울어


하지만 탈레반과 평화협상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예비 접촉하고 있다는 탈레반 리더가 누구인지는 물론 탈레반 조직의 실체도 미국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눈치다. 지금껏 미국이 탈레반의 리더라고 접촉한 수십 차례 사례 중 단 한 번도 진짜 탈레반이 없었다. 탈레반에 정통한 ‘파지와크 통신’의 샤하 기자는 “미국이 탈레반이라고 생각하고 만난 사람 중 진짜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돈이나 뜯어내려는 사기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기꾼들이 여전히 대기 중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탈레반에 내건 조건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탈레반 지도부가 무장을 해제하고, 알카에다 지도부와 관계를 끊는 한편 아프간 정부를 인정하고 여성의 인권 존중을 포함한 아프간 헌법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탈레반이 이런 조건을 굳이 들어줄 이유가 있을까? 2014년 미국이 떠나면 자연히 대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마당에 탈레반이 미국의 조건을 수락할 전망은 희박하다. 탈레반과 미국의 협상은 미국만의 소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탈레반의 속내가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지난 6월28일 밤 중무장한 탈레반이 카불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급습해 교전이 발생하면서 탈레반 9명을 포함해 최소 2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했다. 폭탄 조끼·기관총·수류탄으로 무장한 탈레반은 경비원을 사살한 뒤 폭탄을 터뜨리며, 투숙객을 인질로 삼아 호텔을 공격했다.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계속된 교전은 나토군 헬리콥터가 나선 뒤에야 겨우 끝났다. 이날 미국과 파키스탄, 아프간 정부 대표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대해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자비울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공격은 다음 달 시작되는 관할권 이양 논의를 위해 카불에 온 미국·아프간·파키스탄의 관계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바람과 달리 탈레반은 카불에서 제일 크다는 호텔을 대담하게, 조직적으로 급습하며 더 공격적 양상을 보였다.

7월1일, 4년7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 서부 시애틀로 돌아간 전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퇴임 직전 “우리는 항상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정치적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제는 탈레반이 심각하게 논의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탈레반은 미국에 아프간 10년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일지도 모른다. 탈레반이 미국의 러브콜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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