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프트럭이 쌩쌩 지나다니는 2차선 도로 옆, 붉은색 페인트칠이 된 자전거 도로 바닥이 여름 뙤약볕 아래 이글거렸다. 철제 펜스와 잿빛 가드레일의 이중 차단막에 갇힌 이 길에는 드문드문 자라난 잡초와 흩뿌려진 모래만 있을 뿐, 자전거 탄 사람은커녕 걸어가는 행인 한 명 없었다. 충남 당진군 당진읍과 고대면 일대에 조성된 길이 3.5㎞, 폭 3m짜리 자전거 도로이다.
지역 예산 감시 활동을 벌이는 당진참여연대 조상연 사무국장은 이 길만 보면 분통이 터진다. 2006년 당진군청이 ‘친환경’ 도민체육대회를 치른다며 공사비 22억원을 들여 만든 길이다. 그해와 지난해 각각 군청과 지역 신문사 주최로 ‘자전거 대행진’을 벌인 것 외에, 조 국장은 이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지난 5년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난 7월18일 인적 없는 자전거 도로를 다시 찾은 조 사무국장은 “이 무용지물을 만든 돈 22억원이면 당진군내 모든 초·중학생에게 2년간 무상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5년 동안 자전거 한 대도 못 봤다”
있는 도로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판에, 당진군청은 새 자전거 도로를 또 만들 계획을 세웠다. 국비와 지방비 각각 10억원씩, 총 20억원으로 신평 한약방-농협 주유소, 삽교호 방조제-32번 국도를 잇는 자전거 도로 두 구간을 올해 말까지 신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 사무국장은 “지난해 경사가 심하고 대형 트럭 통행량이 많은 노선(정미면 배터삼거리-탑동초등학교)을 자전거 도로로 잡아놓았기에 지역 시민단체가 반대한 일이 있다. 그 뒤 당진군이 구간을 새로 잡은 건데, 그 역시 자전거 이용객이 없고 길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군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작 필요한 자전거 도로는 따로 있다. 지역 자전거동호회 회원이면서 당진읍내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황 아무개씨(44)는 “출퇴근길에 정체가 심한 원당에서 오도 방향, 당진읍내에서 순성으로 나가는 벚꽃길 방향 등 길을 내면 사람들이 당장 많이 이용할 곳은 놔두고 왜 아무도 가지 않을 길에 자전거 도로를 깔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굳이 왜 그 길에 자전거 도로를 내겠다는 건지 조 사무국장이 군청 담당자에게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정부가 전국 자전거 도로 구축사업을 벌인다며 그은 선 안에서 만들 수밖에 없다.” 주변 도시와 연결하기 위해 32· 34번 국도 안에서만 자전거 도로를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통화한 당진군청 도시교통과 담당자는 “아무래도 주민들은 집 주변에서 즐길 수 있는 도로를 선호하는데, 이는 행정안전부의 자전거 도로 사업안과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 행안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목표로, 교외를 다니는 자동차를 줄이기 위해 자전거 도로를 내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행안부 안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진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이미 전국에는 짧지 않은 길이의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행정안전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2월31일 기준 전국의 자전거 도로 길이는 총 1만3037㎞에 달한다. 경기도가 2905㎞로 가장 길고 강원도와 경남이 각각 1098㎞, 1092㎞로 뒤를 이었다.
경부고속도로의 30배가 넘는 길이인 이 자전거 도로가 모두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자전거 경계석이 차량 흐름을 방해한다는 민원 때문에 지난 2월 설치한 지 두 달도 안 된 잠원동 일대 자전거 전용도로를 철거했다. 인천시는 2009년 141억원을 들여 설치한 도심의 자전거 도로 37.3㎞ 중 상당 부분을 철거·축소했고, 대전시도 대덕대로 자전거 도로를 철거하고 있다(29쪽 아래 사진).
멀쩡한 산을 깎아 ‘스릴 넘치는’ 자전거 도로를 만든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북 상주시의 ‘낙동강 투어 로드’. 83억5000만원을 들여 2009년 10월 완공한 이 자전거 도로는 4대강 사업 낙동강 33공구가 내려다보이는 비봉산 능선을 깎고 시멘트를 깔아 길을 냈다. 나무가 뽑혀 나간 자리에는 앙상한 새 묘목이 심겼다. 상주에 사는 김영태씨(46)는 “지역 사람들끼리는 그곳을 봅슬레이 경기장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이다. 낙동강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기 위한 순례단에 참가해 그 자전거 도로를 여러 번 올랐다는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 회원 박종관씨는 “우리 순례객 외에 그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욱이 자전거를 탄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자전거 도로에 1조 6500억원 투입
그래도 자전거 도로 공사는 계속된다.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해 생태문화가 뿌리내리게 하겠다”라는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가 본격적으로 포클레인의 시동을 걸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시작한 ‘국가자전거도로 구축사업’. 2019년까지 전국을 3214㎞의 자전거 길로 모두 잇겠다는 목표 아래 예산 1조205억원을 배정했다. 지난해 1048억원을 사용했고, 올해에도 1050억원을 써서 단계별로 길을 이을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도 2800억원 예산을 투입해 전국 국도변에 자전거 도로 약 400㎞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또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섬진강 변에 총 1728㎞에 이르는 자전거 길이 생기고(30쪽 딸린 기사 참조), 경인 아라뱃길을 따라서도 자전거 길 41.3㎞가 조성된다. 인천 강화군에서 강원 고성군 사이의 비무장지대(DMZ)에 설치되는 495㎞ ‘평화 자전거 누리길’도 사업비 3490억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 국토가 자전거 도로 공사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설치된 자전거 도로도 잘 활용되지 않는 마당에 왜 이렇게 새 길을 늘리려고 할까? 지난해 6월 한국교통연구원 등이 작성해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용역 보고서 <전국자전거도로 기본계획 수립연구>에는 “녹색성장을 실현하는 자출족(출퇴근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 증가를 위해서는 생활형 자전거 도로 개선보다 레저형 자전거 도로 개선이 더 효과적이다”라고 분석해놓았다. 자전거 비이용자가 레저를 통해 ‘첫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자출족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도시 내 근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자전거 도로보다 강변이나 국도변처럼 ‘이벤트형’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공간에 집중하는 정부 정책은 이 같은 분석에 근거한 셈이다.
자전거로 레저 생활을 즐기는 이들은 이런 자전거 도로의 증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10년째 자전거를 타며 종종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는 직장인 김요안씨(35)는 “관리만 잘 된다면, 자동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전용 코스가 늘어난다는 것에 찬성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질 자전거 도로가 유용하지 않으리라 보는 시각도 있다. 충남 당진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황 아무개씨는 “갖고 나가면 집 앞에서부터 탈 수 있어야 진정한 자전거 도로이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어디론가 가서 타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전국이 자전거 길로 이어진다는 것은 우리 같은 자전거족에게 솔깃하게 들리지만, 마치 4대강 공사처럼 진행되는 건 반대이다. 다른 꿍꿍이가 있으니 만드는 것이지 자전거 사용자들을 위해 도로를 만들어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가끔 동호회 회원들과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겨온 건설업계 종사자 장 아무개씨(39)는 “자전거 도로망 구축에 돈을 쓰는 이유는 4대강 공사 등 사실은 콘크리트 사업에 불과한 정부의 주요 개발 정책에 ‘시원한 강변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라는 환상적인 친환경 이미지를 입히기 위함이다. 전국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놓으면 결국 사이클 선수나 건설업자만 좋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자전거 도로를 늘린다고 해서 정부가 말하는 ‘녹색성장’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2008년 전국 자전거 도로 길이는 9170㎞로 1999년의 4206㎞보다 2배 넘게 늘었지만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2.4%에서 1.2%로 오히려 절반으로 감소했다.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오히려 감소
자전거로 택배업을 하는 ‘자전거 메신저’ 지음씨(35)는 아예 자전거 도로 신설을 반대한다. “자전거가 좋은 건 환경을 망치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달릴 수 있기 때문인데, 풀숲과 습지와 밭과 논을 갈아엎고 만든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녹색의 정반대, 자동차 비슷한 괴상한 물건에 불과하다.”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부터 안동 철교까지 펼쳐진 DMZ 지역은 환경 연구단체 ‘생태지평’이 매년 여름 청소년들을 데리고 찾는 생태 탐방 명소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중학생 20명과 함께 그곳에서 야생 동식물의 흔적을 체험한 생태지평 김동언 연구원은 열 달 뒤 다시 들른 DMZ 탐방 코스에서 ‘산양 똥 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년 갈 때마다 산양 똥이 수북이 쌓여 있어 “이곳 근처에 산양이 살고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알려주던 그 자리에는 ‘공사 중’이라 쓰인 노란 깃발이 꽂혀 있었다. ‘평화 자전거 누리길’ 사업 구간에 포함돼 흙길이 시멘트 도로로 바뀌는 중이었다(아래 두 번째 사진).
올해부터 2015년까지 3490억원 예산을 들여 조성되는 이 자전거 길의 취지는 ‘비무장지대의 생태적 우수성을 보존하고 접근을 용이하게 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 김 연구원은 당장 ‘올해는 어디에 가서 산양이 있다는 얘기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산양이 똥 누는 자리까지 빼앗은 자전거 도로는 오늘도 ‘녹색성장’ 깃발 아래 굽이굽이 연장되고 있다.
지역 예산 감시 활동을 벌이는 당진참여연대 조상연 사무국장은 이 길만 보면 분통이 터진다. 2006년 당진군청이 ‘친환경’ 도민체육대회를 치른다며 공사비 22억원을 들여 만든 길이다. 그해와 지난해 각각 군청과 지역 신문사 주최로 ‘자전거 대행진’을 벌인 것 외에, 조 국장은 이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지난 5년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난 7월18일 인적 없는 자전거 도로를 다시 찾은 조 사무국장은 “이 무용지물을 만든 돈 22억원이면 당진군내 모든 초·중학생에게 2년간 무상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인적이 드문 충남 당진군 자전거 도로. |
“5년 동안 자전거 한 대도 못 봤다”
있는 도로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판에, 당진군청은 새 자전거 도로를 또 만들 계획을 세웠다. 국비와 지방비 각각 10억원씩, 총 20억원으로 신평 한약방-농협 주유소, 삽교호 방조제-32번 국도를 잇는 자전거 도로 두 구간을 올해 말까지 신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 사무국장은 “지난해 경사가 심하고 대형 트럭 통행량이 많은 노선(정미면 배터삼거리-탑동초등학교)을 자전거 도로로 잡아놓았기에 지역 시민단체가 반대한 일이 있다. 그 뒤 당진군이 구간을 새로 잡은 건데, 그 역시 자전거 이용객이 없고 길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군민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작 필요한 자전거 도로는 따로 있다. 지역 자전거동호회 회원이면서 당진읍내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황 아무개씨(44)는 “출퇴근길에 정체가 심한 원당에서 오도 방향, 당진읍내에서 순성으로 나가는 벚꽃길 방향 등 길을 내면 사람들이 당장 많이 이용할 곳은 놔두고 왜 아무도 가지 않을 길에 자전거 도로를 깔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
당진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이미 전국에는 짧지 않은 길이의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행정안전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2월31일 기준 전국의 자전거 도로 길이는 총 1만3037㎞에 달한다. 경기도가 2905㎞로 가장 길고 강원도와 경남이 각각 1098㎞, 1092㎞로 뒤를 이었다.
경부고속도로의 30배가 넘는 길이인 이 자전거 도로가 모두 유용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자전거 경계석이 차량 흐름을 방해한다는 민원 때문에 지난 2월 설치한 지 두 달도 안 된 잠원동 일대 자전거 전용도로를 철거했다. 인천시는 2009년 141억원을 들여 설치한 도심의 자전거 도로 37.3㎞ 중 상당 부분을 철거·축소했고, 대전시도 대덕대로 자전거 도로를 철거하고 있다(29쪽 아래 사진).
멀쩡한 산을 깎아 ‘스릴 넘치는’ 자전거 도로를 만든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북 상주시의 ‘낙동강 투어 로드’. 83억5000만원을 들여 2009년 10월 완공한 이 자전거 도로는 4대강 사업 낙동강 33공구가 내려다보이는 비봉산 능선을 깎고 시멘트를 깔아 길을 냈다. 나무가 뽑혀 나간 자리에는 앙상한 새 묘목이 심겼다. 상주에 사는 김영태씨(46)는 “지역 사람들끼리는 그곳을 봅슬레이 경기장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이다. 낙동강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기 위한 순례단에 참가해 그 자전거 도로를 여러 번 올랐다는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 회원 박종관씨는 “우리 순례객 외에 그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더욱이 자전거를 탄 사람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제공 경남 창원시에서 2009년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자전거 축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관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자전거 도로에 1조 6500억원 투입
그래도 자전거 도로 공사는 계속된다.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해 생태문화가 뿌리내리게 하겠다”라는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가 본격적으로 포클레인의 시동을 걸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시작한 ‘국가자전거도로 구축사업’. 2019년까지 전국을 3214㎞의 자전거 길로 모두 잇겠다는 목표 아래 예산 1조205억원을 배정했다. 지난해 1048억원을 사용했고, 올해에도 1050억원을 써서 단계별로 길을 이을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도 2800억원 예산을 투입해 전국 국도변에 자전거 도로 약 400㎞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또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섬진강 변에 총 1728㎞에 이르는 자전거 길이 생기고(30쪽 딸린 기사 참조), 경인 아라뱃길을 따라서도 자전거 길 41.3㎞가 조성된다. 인천 강화군에서 강원 고성군 사이의 비무장지대(DMZ)에 설치되는 495㎞ ‘평화 자전거 누리길’도 사업비 3490억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 국토가 자전거 도로 공사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설치된 자전거 도로도 잘 활용되지 않는 마당에 왜 이렇게 새 길을 늘리려고 할까? 지난해 6월 한국교통연구원 등이 작성해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용역 보고서 <전국자전거도로 기본계획 수립연구>에는 “녹색성장을 실현하는 자출족(출퇴근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 증가를 위해서는 생활형 자전거 도로 개선보다 레저형 자전거 도로 개선이 더 효과적이다”라고 분석해놓았다. 자전거 비이용자가 레저를 통해 ‘첫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자출족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도시 내 근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자전거 도로보다 강변이나 국도변처럼 ‘이벤트형’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공간에 집중하는 정부 정책은 이 같은 분석에 근거한 셈이다.
자전거로 레저 생활을 즐기는 이들은 이런 자전거 도로의 증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10년째 자전거를 타며 종종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는 직장인 김요안씨(35)는 “관리만 잘 된다면, 자동차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전용 코스가 늘어난다는 것에 찬성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질 자전거 도로가 유용하지 않으리라 보는 시각도 있다. 충남 당진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황 아무개씨는 “갖고 나가면 집 앞에서부터 탈 수 있어야 진정한 자전거 도로이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어디론가 가서 타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전국이 자전거 길로 이어진다는 것은 우리 같은 자전거족에게 솔깃하게 들리지만, 마치 4대강 공사처럼 진행되는 건 반대이다. 다른 꿍꿍이가 있으니 만드는 것이지 자전거 사용자들을 위해 도로를 만들어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 경기도 남양주시 한강 살리기 제9공구에 조성되고 있는 자전거 도로. |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며 가끔 동호회 회원들과 교외에서 자전거 타기를 즐겨온 건설업계 종사자 장 아무개씨(39)는 “자전거 도로망 구축에 돈을 쓰는 이유는 4대강 공사 등 사실은 콘크리트 사업에 불과한 정부의 주요 개발 정책에 ‘시원한 강변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자전거’라는 환상적인 친환경 이미지를 입히기 위함이다. 전국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놓으면 결국 사이클 선수나 건설업자만 좋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자전거 도로를 늘린다고 해서 정부가 말하는 ‘녹색성장’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2008년 전국 자전거 도로 길이는 9170㎞로 1999년의 4206㎞보다 2배 넘게 늘었지만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2.4%에서 1.2%로 오히려 절반으로 감소했다.
자전거 교통 분담률은 오히려 감소
자전거로 택배업을 하는 ‘자전거 메신저’ 지음씨(35)는 아예 자전거 도로 신설을 반대한다. “자전거가 좋은 건 환경을 망치지 않고 생명을 죽이지 않고 달릴 수 있기 때문인데, 풀숲과 습지와 밭과 논을 갈아엎고 만든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녹색의 정반대, 자동차 비슷한 괴상한 물건에 불과하다.”
ⓒ박종관 제공 걸어 올라가기도 힘들 만큼 경사가 가파른 경북 상주의 낙동강 투어 로드. |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부터 안동 철교까지 펼쳐진 DMZ 지역은 환경 연구단체 ‘생태지평’이 매년 여름 청소년들을 데리고 찾는 생태 탐방 명소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중학생 20명과 함께 그곳에서 야생 동식물의 흔적을 체험한 생태지평 김동언 연구원은 열 달 뒤 다시 들른 DMZ 탐방 코스에서 ‘산양 똥 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년 갈 때마다 산양 똥이 수북이 쌓여 있어 “이곳 근처에 산양이 살고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알려주던 그 자리에는 ‘공사 중’이라 쓰인 노란 깃발이 꽂혀 있었다. ‘평화 자전거 누리길’ 사업 구간에 포함돼 흙길이 시멘트 도로로 바뀌는 중이었다(아래 두 번째 사진).
올해부터 2015년까지 3490억원 예산을 들여 조성되는 이 자전거 길의 취지는 ‘비무장지대의 생태적 우수성을 보존하고 접근을 용이하게 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 김 연구원은 당장 ‘올해는 어디에 가서 산양이 있다는 얘기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산양이 똥 누는 자리까지 빼앗은 자전거 도로는 오늘도 ‘녹색성장’ 깃발 아래 굽이굽이 연장되고 있다.
ⓒ@flylhy417 대전광역시 둔산동 정부청사역 앞 자전거 도로가 철거되고 있는 현장을 한 시민이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냈다. |
ⓒ생태지평연구소 제공 자전거 공사 현장으로 변한 강원도 화천 DMZ.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