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덕 전 문체부장관, 전문가 그룹 추천한 디자인 거부하고, 청와대 엉뚱한 디자인 일방 통보한 것으로…보이지 않은 손 ‘최순실’ 결정 의혹 확산
[미디어오늘 차현아 이재진 기자]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하는 로고 디자인 채택 과정에서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사업 기획에 최순실씨가 관여한 흔적이 나온데 이어 정부 상징 로고 디자인까지 최씨가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디자인업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상징체계 교체 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 추진됐지만 중단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디자인 전문가 김종덕 전 문화체육부장관이 임명되면서 탄력을 받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디자인과 홍보 등 전문가를 꾸려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 3월 67년 만에 무궁화 문양에서 태극 문양으로 바뀐 정부상징체계 로고를 발표했다. 정부 각 부처에서 쓰고 있던 고유 디자인의 로고도 태극 문양으로 통합 교체됐다.
문체부는 부처별로 개별적인 상징 로고를 사용해 정부 조직 개편 때마다 부처 상징이 교체돼 예산과 행정이 낭비되고, 각 부처 상징에 대한 국민 인지도가 낮고 일관성이 없다며 대한민국 정부상징체계 교체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체부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정부상징체계 개발 추진단을 꾸리고 자문회의까지 만들었다. 또한 정부상징체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국민 아이디어 제안 및 전시회, 전문사업단 공모등을 거쳐 기본디자인을 도출한 후 정부협의체의 의견 수렴을 통해 태극문양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예산도 수십억원이 투입됐다. 지난해 11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파악한 결과 정부상징체계 교체 대상 기관은 758개, 기관 당 1천만원으로 교체비용만 모두 75억 8000만원이 책정됐다. 문체부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통합이미지 연구개발과 관련해 2억7천만원이 쓰였고, 정부상징체계 홍보비로 24개 언론매체에 1억 8천만원을 썼다.
사업의 취지나 규모로만 보면 대한민국 정부 상징체계 사업에 상당한 공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전문사업단과 여론조사 등 여러 의견을 수렴해 결정한 정부 상징 로고 디자인을 거부하고 전혀 엉뚱한 디자인을 채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상징체계 개발 전문사업단으로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문체부는 정부상징체계에 폰트와 웹 등 여러 요소가 얽혀있어 컨소시엄 형태로 전문사업단을 공모했고, ㄷ디자인 회사와 폰트 디자인 회사 등 3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꾸려 전문사업단으로 선정됐다. 디자인 회사가 응모작으로 제출한 두 개의 시안이 전체 디자인 시안 8개 중 1~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보통 응모작을 수정 보완해 디자인을 최종 결정하지만 청와대는 처음부터 다른 시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별도 심사를 통해 디자인을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문제는 청와대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시안을 선택하면서 시작됐다.
공들여 수정 보완하고 추천했던 시안은 뒤로 밀리고 수백개 중 하나였던 태극문양의 디자인을 찍어서 청와대가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디자인 업체는 추천한 시안에 대해 설명할 기회라도 달라고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관계자는 "직접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이미 끝난 얘기니까 말을 꺼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자문단회의에서 추천했던 시안을 지지한 사람과 김종덕 장관이 추천한 디자인을 지지한 사람도 있었는데 결국 청와대에서 내려온 건 현재 태극문양의 디자인이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보면 디자인 전문가가 장관으로 왔고 전문가에게 이미 맡겼으면 이만저만 그냥 올리는 게 아닌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여론조사하고 스크린하고 모두 거쳐 의견 취합해서 올린 것인데 갑자기 추천안을 버리고 엉뚱한 디자인을 채택해놓고 문제제기를 하지 말라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차례 진행된 자문단 회의와 1년 가까운 전문사업단과의 협의를 통해 합의한 디자인이 청와대의 한마디에 폐기돼버린 것이다.
실제 문체부는 지난 3월 정부 상징 로고 결정 내용을 발표하면서 정부상징체계 디자인 공모 설명회, 추진단 회의, 국민공모 전시, 정부상징 아이디어 공모 국민심사단 심사, 국가브랜드 및 상징전, 사업단 심사, 정부상징체계 개발 전문가 자문회의, 국제디자인총회 정부상징 해외디자이너 전시, 정부협력체 회의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 태극문양의 로고가 결정됐다고 설명했지만 결국 청와대에서 찍은 한 디자인 시안으로 결정된 것이다.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순실씨 관련 뉴스를 보고 농간에 당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몹시 불쾌하고 회사에서도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제일 웃긴 얘기는 최종 결제를 맡으러 김종덕 장관이 청와대에 가도 대통령 대면을 못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추천한 시안을 두고 가라고 해놓고 나중에 엉뚱한 디자인으로 하라고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로고가 박근혜 대통령과 실무 장관이 대면도 못하고 결정된 셈이어서 청와대의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홍보·브랜드 전문가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ㄱ교수는 정부 상징체계 최종안으로 A안과 B안을 올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B안은 현재 정부 상징체계로 확정된 태극 문양의 디자인이었고, A안은 또 다른 안이었는데 정부상징체계 자문단 회의에서는 B안에 대해 태극문양의 바탕색 적용이 쉽지 않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ㄱ교수는 "청와대에서 시안을 두고 가라서 해서 보니 B안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이거는 아니다 싶어서 다시 A안과 B안을 올린 보고서를 올렸더니 B안 쪽에 동그라미가 쳐서 내려왔다"며 "A안을 다시 손을 봐서 다시 올렸더니 청와대에서 왜 자꾸 올리냐고 역정을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ㄱ교수는 "청와대에서 대면보고도 안 받아 장관조차 B안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지지 못했다"며 "전문가들이 만들고 결정해서 안을 올리면 전혀 다른 차원이 결정이 내려왔다"고 증언했다.
28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국가브랜드 사업 기획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표절 논란이 불거졌던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를 만들게 된 사업 기획 단계에서 목차까지 최순실씨가 빨간 펜으로 첨삭을 하며 설계한 흔적이 담긴 문서가 공개된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정부상징체계 개발 사업 역시 국가브랜드 사업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통합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주도한 문화 융성 프로젝트 중 중점사업 1번이 바로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통합사업'이기도 하다. 사실상 최순실씨가 정부상징체계 작업에도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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