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6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하는 보후슬라프 소보트카 체코 총리를 영접하기에 앞서 정호성 비서관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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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최순실씨 연설문 작성 개입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학 동기인 목수정 작가와 SBS CNBC 김형민 PD가 26일 SNS에 정 비서관을 비판하는 글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올려 눈길을 끈다.
JTBC는 26일, 최순실씨에게 전달된 청와대 문건의 작성자 중 한 명이 정호성 부속비서관이라고 보도했다. 최씨 태블릿 PC를 확인한 결과, 2013년 8월 4일 작성된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발언용 청와대 내부문건을 마지막으로 저장한 사람의 아이디가 'narelo(나렐로)'였다는 것. 이 아이디가 정 비서관의 청와대 아이디로 알려짐에 따라 그가 최씨에게 문건을 전달하는 '연결고리' 중 하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정계로 입문하는 98년부터 박 대통령의 보좌진으로 일했으며,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비선 실세 의혹을 받아 논란이 됐던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들의 거취에 대해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이들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대학원 졸업 후 그가 가진 첫 직업이 박근혜 보좌관이었다'고 운을 뗀 목 작가는 '당시 그는 확신범이었다'며 '박근혜 보좌관을 하며 밥을 먹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썼다. 이어 박정희 총격 직후 첫 보고에서 "휴전선은요?"라고 물은 박근혜의 신화적 일을 예로 들며 '(정 비서관이) 박근혜는 오직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대선에 관심 없다고도 했다. 당대표인데도, 국감 준비를 하자고 보좌관들을 채근하는 범생이라고도 했다'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목 작가는 '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질 줄 아는' 정 비서관이 법정에 서게 될 것'을 생각하니 한나 아렌트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며 "그는 20년간 한 직장에 근속하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충실하게 상사의 지시를 따랐을 것이다. 그것이 5천만 명이 사는 나라의 국기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는 사실에 대해 그는 인정하지 못할 것 같다. 악은 평범하다. 선이 그러하듯이"라고 일갈했다.
김 PD 역시 편지 형식을 빌려 정 비서관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모든 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모든 사실을 낱낱이 밝혀야 된다고 주장했다.
김 PD는 "자네와 한 울타리에 있었던 것이 수치스럽고 자네와 동기라는 사실 자체가 저주받은 느낌이다, 이 나라에 이런 똥흙칠을 한단 말인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자발적으로 모든 직을 내려놓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사법적 판단과 국민의 심판을 받기 바라네"라며 충고한 뒤, "조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후퇴시킨 죄악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국민 앞에 고하게. 그것만이 자네가 살길"이라며 철저한 반성과 고백을 촉구했다.
한편 정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판단과 메시지 관리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주간동아>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 명의로 공개되는 연설문과 담화문은 반드시 정 비서관의 검토를 거치는 것이 지금까지의 '프로세스'였다는 것. 최씨의 연설문 작성 개입에 있어 정 비서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야 할 대목이다.
아래는 목수정 작가와 김형민 PD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허락 하에 그 전문을 싣는다.
<목수정 작가의 글 전문>
대학동기이던 그를 다시 만난 건, 2004년이었다. 국회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참을 잔디밭에서 이야기 나누었다. 대학 동기들 중 당시로선 유일하게 국회 밥을 먹던 두 사람. 하나는 박근혜의 보좌관 정호성이고 또 하나는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인 나였다. 정호성은 노문과를 졸업하고 정외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대학원 졸업 후 그가 가진 첫 직업이 박근혜 보좌관이었다.
난 도대체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당시 그는 확신범이었다. 적어도 박근혜 보좌관을 하며 밥을 먹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박정희 총격 직후 첫 보고에서 박근혜의 일성 " 휴전선은요? " 신화를 예로 들며, 박근혜는 오직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대선에 관심 없다고도 했다. 당 대표인데도, 국감 준비를 하자고 보좌관들을 채근하는 범생이라고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평범한 보좌관의 태도를 견지했다. 열우당에 있다가 민주노동당으로 와서 일하는 몇몇 보좌관들의 탁월함에 대해 칭찬하는 아량도 보였다. 자신에겐 오직 근본주의자들만이 불편한 대상일 뿐이란 얘기도. 그가 최순실에게 메일을 보낸 바로 그 남자로 지목된다.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법정에 서게 될 그 친구를 생각하니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매사 뾰족하던 나와는 달리, 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학교 때도 그랬고,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에도 그랬다. 어쩌다 정윤회가 구성한 보좌관 4인방에 발탁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정외과를 나왔으니,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건 가능한 하나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년간 한 직장에 근속하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충실하게 상사의 지시를 따랐을 것이다. 그것이 5천만 명이 사는 나라의 국기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는 사실에 대해 그는 인정하지 못할 것 같다. 악은 평범하다. 선이 그러하듯이.
<김형민 PD의 글 전문>
정호성 실장. 나는 당신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고려대학교 88학번이네. 면식은 없어도 서관 잔디밭에서 오다가다 얼굴을 자주 스쳤을 거야. 느낌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명한 자네 얼굴 어딘가 낯이 익네. 술 한 잔은 커녕 통성명도 못 나눈 처지이지만 같은 시기에 청춘을 보내고 함께 울고 웃었으리라는 믿음으로 오늘 이렇게 글을 띄우네.
알다시피 우리 88학번은 '최초의 신세대'였네. 우리 88학번은 그 지난한 과거와 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꽃피기 시작한 민주화의 혜택을 받은 첫 세대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전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대학 생활을 즐길 수 있었고 보다 폭넓은 사회 진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 때문이었네.
우리들 가운데에도 소중하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몸 바쳐 투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겠지만 세월은 흘렀고 생각도 많이 바뀌어, 우리 대부분은 대개 중년의 생활인으로서 각자의 영역에서 저마다의 행복과 보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지. 나도 그렇고 청와대 비서관들 사이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높으신 분이라는 자네도 그렇겠지.
그러나 비슷한 시기 청춘을 보낸 우리 가슴 속에는 동아줄 같은 믿음 하나 남아 있었다고 생각하네. 우리 역사를 짓눌렀던 독재의 시대, 야만의 세월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 우리가 힘이 있든 없든 상식을 지닌 국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발전에 저해되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 사회가 강한 자들 앞에서 정의롭고 약한 이들에게 연민을 지닌 공동체로 발전하는데 손톱만큼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일세.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88학번 정호성 자네도 그러했으리라 믿네. 대학원 다니다가 어찌어찌 정치판에 흘러들어 가기 전의 자네를 아는 친구들은 자네를 참 정도 많고 예의 바른 이로 기억하더군.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대통령의 뒤에서 정체불명의 사람이 대통령 연설을 뜯어고치고 국가 기밀과 남북 관계까지 미리 보고를 받아보며 국정을 농단하는, 마치 판타지 소설 속 나라의 황궁에서나 볼 듯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일이 버젓이 벌어진 가운데, 그와 대통령을 연결하는 통로로 다름 아닌 '88 꿈나무' 소리를 함께 듣던 정호성 실장 자네가 등장했네 그려.
대관절 자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한때 정치학도로서 조국의 미래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했던 머리를 어찌 그런 무당 같은 이 앞에서 쉽게 조아렸으며 어떻게 야만의 시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그 손으로 이런 국기문란 사태를 빚어냈는가? 자네와 한 울타리에 있었던 것이 수치스럽고 자네와 동기라는 사실 자체가 저주받은 느낌이네. 명색 대학 교육을 받은 자로서, 톨스토이를 읽고 도스토옙스키를 공부하고 정치학도의 꿈을 키우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라스푸틴 같은 자들의 방자가 되고 알렉산드라 황후 같은 바보의 수족이 되어 이 나라에 이런 똥흙칠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옛 동기로서 자네에게 거는 마지막 기대를 토로하니 부디 귀 기울여 듣기 바라네. 일국의 대통령의 측근으로서 나랏일을 요령부득 정체불명의 탐욕스런 이에게 갖다 바친 자로서 명예라는 두 글자가 자네 곁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자네 심장 어딘가에 뿌리 내리고 있다면, 자발적으로 모든 직을 내려놓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사법적 판단과 국민의 심판을 받기 바라네.
자네의 죄는 드러냄으로써만 씻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자네가 자네의 아내와 자식에게 다시금 제대로 된 아버지로, 남편으로 설 수 있으며, 우리가 자네의 이름을 기탄없이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라네.
다시 한 번 험악한 경고와 충심 담은 충고를 한때의 동기에게 전하네. 한때 자네가 자네보다 더 사랑했던 조국의 역사를 송두리째 후퇴시킨 죄악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국민 앞에 고하게. 그것만이 자네가 살길임을 다시 한 번 고하면서 이만 맺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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